Thousand Treasure Sword RAW novel - Chapter 218
218
만수의 일초를 전수하고 있다.
틀림없다. 그게 아니라면 비비가 망치질할 이유가 무엇인가. 평생 망치라고는 잡아보지 못한 손으로 쇳덩이를 내리치는 게 가당키나 한 소리인가. 그것도 인검의 등장이 목전으로 임박한 상황에서 검은 수련하지 않고 망치질이라니!
다른 의견도 있다.
아니다. 만수의 일초는 깨달음의 무학이다. 전수하고 싶다고 해서 마음대로 전수해줄 수 있는 무공이 아니다.
의견이 분분했다.
해과월과 비비는 분명히 망치질을 하고 있다.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다. 또 깨달음은 전수할 수 없는 것이라는 부분도 일리가 있다. 그것도 확실하다.
비비는 만수의 일초를 전수받은 것일까?
비비가 대답했다.
“만수의 일초라는 건 없어.”
“종주, 그러시면……”
“나도 왠만큼 자신있어. 그러니 해줘.”
비비는 진지했다. 장난기 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었다. 괜히 치기어린 행동이 아니다.
‘흐음!’
교두는 침음했다. 이건 아닌데…… 검진을 발동하면 안 되는데…… 마음속으로는 여전히 부정적인 생각이 치밀었지만, 비비의 얼굴을 보니 거절만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정히 그러시다면…… 발진!”
창! 창창! 창……!
마흔두 자루의 검이 일제히 뽑혔다.
그녀들은 해과월의 검진을 수련했다. 눈을 뜨면서부터 잠이 들 때까지 검진만 수련했다.
그녀들은 검은 충분히 날카로워졌다.
삼 장로조차도 진 안에 들어서기를 망설일 정도로 아주 날카롭게 갈아졌다.
그녀들은 음살문을 적으로 삼았다.
이 말은 간단하지 않다. 음살문에는 인검이 있고, 마출성이 있다. 이 시대 최고의 무인이 건재한다. 음살문을 적으로 삼으려면 그들과도 싸울 각오가 서있어야 한다.
마흔두 명의 기무령은 누구와도 싸우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처음에는 싸울 생각을 못했다. 어쩔 수 없이 음살문이라는 적과 마주섰다. 그들이 모습을 드러내면 죽음 밖에 돌아올 게 없다고 생각했다.
아무런 희망도 없었다.
그러던 그들에게 해과월이 힘과 용기와 자신감을 안겨주었다. 한낱 종이 도면 한 장으로.
그 힘을 펼치면 누구도 빠져나가지 못한다.
검을 뽑는다. 하지만 그 검은 음살문을 향해서 쓸 것이다. 그렇기에 손속에 사정 담는 법을 수련하지 않았다. 펼치자마자 최강의 수법으로 죽이는 법만 수련한다.
아니, 그녀들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해과월이 건네준 검도에는 최선을 다하는 법만 기재되어 있다. 약간이라도 손속을 늦추면 검진이 깨지게 되어 있다.
이런 검진을 어떻게 종주에게 쓴단 말인가.
사박! 사박!
비비가 검진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쥐 죽은 듯한 침묵이 흐른다.
백여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마흔두 명 대 한 사람의 싸움을 구경하기 위해 늘어섰다.
그들은 죽은 듯한 정적에 침조차 삼키지 못했다.
휘이이잉! 휘잉!
비비가 마흔두 명에게 둘러쳐져 있다.
그녀는 이미 싸움 준비를 끝냈다. 몸의 준비, 마음의 준비가 완전히 끝난 상태다. 무인으로서 검을 들고 마주 서있으면 그것으로 준비는 끝난 게 아닌가.
마흔두 명이 종주에 대한 예의를 지키고자 한다면 충분히 기다려준 게 된다.
발진(發陣)!
명령도 이미 끝났다.
마흔 두 명이 검을 들었다. 평소 수련하던 모습 그대로 진형을 펼쳤다. 진기를 응축시킬 사람은 뒤로 빠졌고, 당장 공격해야 할 사람은 앞으로 나섰다.
헌데 공격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더 이상 예의를 지킬 것도 없고, 서로가 완벽하게 싸울 준비를 끝냈는데, 그래도 침묵만 이어진다.
‘꿀꺽!’
구경하던 사람들은 긴장감을 이지 못하고 마른 침을 삼켰다.
마른 침 넘어가는 소리가 목구멍 안으로 흘러든다. 그 소리가 너무 커서 깜짝 놀라 주위를 돌아본다. 혹시 결전을 방해하는 게 아닌가 싶어서.
“왜 안 싸우는 거야?”
홍화문 기녀가 아주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쉿!”
그 옆에 있던 귀사령 무인이 즉시 입을 틀어막았다.
홍화문 기녀들은 사십이 대 일의 싸움을 읽지 못한다. 이 싸움을 구경하려면 무공을 더 수련해야 한다. 싸우는 사람의 눈빛과 숨결까지 읽을 수 있을 정도로 경지를 높여야 한다.
저들은 싸우지 않는 게 아니다. 싸움은 이미 시작되었다.
검진이 발동되었고, 비비가 검을 들어 막아내고 있다. 검진을 수련할 때처럼 맹렬히 움직이지 않다 뿐이지, 이미 마음으로는 움직이고 있다.
이미 검기가 얽혔다.
마흔두 명의 검기와 비기의 검기가 서로를 베려고 한다.
비비가 기무영을 벨 리 없다. 기무영들이 비비를 죽일 리 없다. 그러니 이 싸움은 어느 쪽이든 물러설 생각만 하면 끝나게 되어 있다. 언제라도 말이다.
정말 그럴까? 아니다. 지금 상황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검기가 얽혔다는 것은 물러설 수 없는 싸움이 시작되었다는 뜻이다.
사십이 검진과 비비는 기세가 너무도 팽팽하다.
어느 한쪽이 양보를 하는 순간, 다른 쪽의 검이 사정없이 달려든다. 마음은 물러서고 싶어도 검이 달려 나간다. 그래서 물러서지 못한다.
남들이 보기에는 그저 대치한 듯이 보이지만, 그녀들은 이미 검기에 뒤엉켜서 사즉생(死卽生) 생즉사(生卽死)의 절박함을 느끼고 있으리라.
이런 경우는 양쪽 모두 생각하지 못했을 게다.
단순히 무공 겨룸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래서 가벼운 기분으로 구경에 나섰는데……
이제는 정말 큰일 났다.
약간이라도 양보하면 당장 검기가 휘몰아친다. 그래서 물러설 수 없다. 대치상태를 팽팽하게 유지시키던가, 힘껏 부딪쳐서 결판을 내던가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귀사령 무인들은 원래 비비가 되려고 했다.
자신들이 검진 한 가운데 선다. 그래서 자신들이 수련한 팔괘진과 저들의 사십이 검진을 비교한다. 어느 쪽이 더 강한지 이번 기회에 어울려 본다.
그러나…… 양쪽이 검을 들고 맞서자, 그들은 사십이 검진 쪽에 서게 되었다.
비비를 가운데 두고 검진을 펼친다.
어떻게 하면 비비의 검을 뚫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저 검을 무너트릴까.
검진이 발동되면…… 가장 먼저 달려드는 자는 죽는다.
비비의 검공은 용서를 모른다.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달려드는 자도 죽는다. 그 정도까지는 별 무리 없이 신속하게 죽일 수 있을 것 같다.
비비가 어떤 검공을 펼칠지는 모른다.
그녀가 펼치는 검공이 만수의 일초인지 아닌지도 모른다. 다만 그녀가 검을 떨쳐내면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갈 것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다가온다.
사십이 검진이 발진하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것이 그 때문이다.
그녀는 첫 번째 일진을 죽일 것이다. 무적에 가깝다고 자부한 사십이 검진을 흠집 낼 게다.
열두 명이 공격에 나서는데…… 아마도 첫 번째 공격을 떨쳐낸 여덟 명은 즉사하지 않을까?
도대체 이 무슨 해괴한 생각인가.
비비의 무공을 모르고, 어떤 검을 떨쳐낼 지도 모르고…… 아무 것도 모르는데, 싸움이 벌어지면 몇 사람 정도가 죽을 건지는 어떻게 헤아려지는 것일까.
사십이 검진도 똑같은 생각을 하는 것 같다.
지금 비비는 종주가 아니라 적이다. 격살해야 할 대상이다. 그러므로 비비만 살상할 수 있다면 약간의 희생쯤은 얼마든지 감수한다. 헌데 그런 보장이 없다. 자신이 서지 않는다. 제일진이 몰살당하고 난 후, 제이진이 뚫을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
결국 제일진의 희생은 개죽음이 되고 만다. 그러면 죽을 수 없지 않은가. 죽을 때는 죽더라도 비비를 깨트릴 수 있을 때나 죽어야 하지 않나.
검진을 펼친 사람의 마음은 다 똑같다.
귀사령들은 사십이 검진 기무영들의 마음을 헤아렸다. 그녀들의 고충을 단번에 알아챘다. 그래서 그녀들 편에 서서 비비를 어떻게 쳐야 하는지 연구한다.
‘방법이 없어.’
귀사령들의 얼굴이 납처럼 창백해졌다.
그들이 비비를 모를 리 없다. 비비가 어떤 종류의 무공을 수련했는지, 경지는 어느 정도인지, 그녀가 어떤 싸움을 즐기는지까지도 모두 다 안다.
비비는 결코 강자가 아니다.
그녀는 근본적으로 홍화문도다. 소문주라고 불렸지만 무공이 강해서 그런 호칭을 들었던 것은 아니다.
홍화문주가 그녀를 무인으로 키운 것도 아니다.
그녀는 홍화문의 기녀로 태어났고, 기녀의 소양을 가르침 받으면서 성장했다.
그녀가 본격적으로 무공을 수련한 것은 기무영이 되겠다고 작심했을 때부터다. 그러니까 이를 악물고 검을 쥔 게 겨우 한두 해 밖에 안 됐다는 뜻이다.
그런 그녀가 어떻게 귀사령의 상대가 될 수 있겠는가. 어떻게 구파일방 장로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겠는가. 어떻게 인검까지 상대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검진과 마주할 수 있는가.
마흔두 명의 기무영은 그녀를 종주라고 부른다. 하지만 그것은 홍화문이 해체되는 과정에서 발생한 새로운 조직 형성일 뿐, 깊은 의미는 없다.
헌데 지금은 가히 일대 종사의 기도를 선보인다.
‘역시 만수의 일초인가?’
이 부분도 혼란스럽다.
해과월은 망치를 머리 위로 들어올렸다. 그 모습 그대로 석상처럼 굳어졌다.
망치가 하늘에서 떨어지는 순간!
바로 이 순간에 만수의 일초가 일어난다. 망치를 머리 위로 들어 올린 순간부터 벼락이 떨어지는 순간까지가 만수의 일초다.
비비는 검을 가슴 앞으로 들어올렸다.
이런 자세에서 검을 쓰려면 제이의 동작이 필수적으로 일어나야 한다. 검을 들어 올린다거나 뒤로 뺀다거나…… 그래서 타격이 이루어지는 형태를 만들어야 한다.
아무래도 속도 면에서 만수의 일초와 똑같을 수 없다.
그런데도 그녀는 사십이 검진과 팽팽하게 맞서도 있다. 검진의 발동 자체를 기도로 막아내고 있다.
‘대단하다! 대단해! 만수의 일초든 아니든 대단한 무인이 되어서 나타났어. 단 며칠 만에!’
뚜벅! 뚜벅! 뚜벅!
힘차게 내딛는 발걸음 소리가 바늘 떨어지는 소리도 들릴 적막을 일깨웠다.
사람들은 발걸음 소리가 들려오는 곳을 쳐다봤다.
‘어떤 놈이!’
가장 긴장해야 하고, 가장 존중해야 하는 적막을 누가 감히 이런 식으로 망가트리는가.
발걸음의 주인공은 해과월이다.
사람들의 사나운 눈초리는 곧 순한 웃음으로 변했다. 그이기에, 해과월이기에 용납할 수 있다.
뚜벅! 뚜벅!
해과월이 걸어왔다.
“그만!”
그는 싸움을 중재했다. 허나 마흔두 명은 물론이고 비비도 꼼짝하지 않는다. 해과월의 말을 무시하고, 진기를 전혀 풀지 않고 서로만 쳐다본다.
그럴 수밖에 없다. 그녀들은 자의적으로 물러설 수 없는 상태가 되어 버렸다.
“쯧!”
해과월이 허리춤에서 망치를 꺼냈다.
특별하게 만든 망치가 아니다. 대장간에서 늘 사용하던 볼품없는 망치다.
그는 망치를 머리 위로 들어올렸다. 그리고 텅 빈 공간을 향해 내리쳤다.
쉬잇! 파앙!
망치가 허공을 때리는데, 마치 철판을 내리치는 듯한 벼락소리가 울렸다.
“크윽!”
검진을 구성하던 마흔두 명 중 대여섯 명이 격한 신음을 토해내며 비틀거렸다.
비비도 신형을 꿈틀거렸다.
그녀는 검진 한 가운데에 위치한다. 그런데도 공기의 여파에 흔들거린다. 그녀 앞에 있는 기무영은 아무렇지도 않은데, 그녀만 휘청거린다.
‘단 일 초! 그것도 격공(隔空)으로…… 사십이 검진 중 몇 명을 빼내고, 그녀들이 빠져나간 만큼 비비의 기세를 약화시켰다! 검진과 비비를 동시에 상대한 격! 아아!’
무공을 알아보는 사람들의 눈이 퉁방울 만하게 커졌다.
쉬잇! 파앙!
“큭!”
또 한 번의 타격이 이루어지고, 마흔두 명 중에 대여섯 명이 검진에서 빠져나왔다.
비비도 검 든 손을 축 늘어트렸다. 가슴 앞에 세워졌던 검이 배꼽 밑으로 내려왔다. 검에 깃든 진기도 예전처럼 강해 보이지 않는다. 마지못해 검을 들고 있는 듯하다.
쉬잇! 파아앙!
이번에는 조금 더 격한 파공음이 터졌다. 그리고 길이 열렸다.
“뭐하러 그랬어?”
“미안해요. 내 무공이 어느 정도인지 알아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만족해?”
“만족해요. 기무영의 검진이 저토록 강한데 놀랐고, 제 무공이 일취월장한데 놀랐어요. 아주 만족해요.”
비비가 활짝 웃었다.
4
세 명이 해과월을 에워쌌다.
쒜엑!
다짜고짜 검풍이 일어난다. 온유하고 유연한 살검이 살며시 육신을 저며온다.
쒜에엑!
한 여름에 일어나는 폭풍처럼 강맹한 검기도 쏟아진다.
온유한 검풍이 육신을 젖어온다면 강맹한 검기는 하늘에서 뚝 떨어져 내린다.
파라라랑!
땅을 휩쓸어 버리는 돌풍도 있다.
용권풍은 밑에서 시작하여 위로 솟구친다. 몸으로 움직일 수 있는 모든 방위를 차단했다. 언뜻 보기에도 무지막지한 경력을 실렸다. 그런 힘으로 육신을 짓뭉개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