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sand Treasure Sword RAW novel - Chapter 219
219
해과월은 볼품없는 쇠망치를 들어올렸다. 그리고 사십이 검진을 격파하듯 연달아 세 번을 내리쳤다.
팡! 팡! 팡!
둔중한 타격에 공기가 묵직한 신음을 흘린다.
텅!
몸통을 짓이겨오던 검기가 강력한 철벽에 가로막혔다.
그 순간, 하늘에서 떨어지던 검풍은 부드러운 솜을 후려쳤다.
검기는 아무 것도 건드리지 않았다. 검에 닿은 물체가 없다. 헌데 이불솜을 뜯어놓은 듯 부드러운 솜이 밀려와서 검이 나아갈 길을 차단해버린다.
푹! 푸욱!
내리치는 검에 힘을 가해본다. 전신 진기를 실어서 힘으로 밀어붙여 본다.
터엉!
땅을 쓸어오던 용권풍이 묵직한 철벽을 두들겼다.
“큭!”
싸움이란 게 시작되고, 처음으로 인간의 음성이 터져 나왔다.
무당파의 검학이라고 하면 태극혜검(太極慧劍)이나 양의문검(兩儀紋劍)을 손꼽는다. 무당파를 잘 안다고 하는 사람들 중에도 무당파에 무명유검(無明遊劍)이라는 검법이 있다는 것은 잘 모른다.
무명유검은 무당파의 삼대 절학 중에 하나다. 도인들을 천부로 이끌어주는 검학 중에 검학이다.
아쉽게도 무명유검은 깨달음의 무학이다. 노력으로 배울 수 없는 검학이다. 수 세기에 한 명만 깨우쳐도 다행이랄 수 있는 극고의 검학이다.
그러니 알려지지 않을 수밖에.
소림사의 절학은 너무 많아서 헤아리기도 어렵다.
일여화상은 대력금강장(大力金剛杖)을 손에 붙였다.
대력금강장은 일초에 천근의 힘을 싣는다. 태산을 뭉개버릴 듯한 힘으로 타격한다.
대력금장장이 전개되면 무조건 피해야 한다. 대력금강장을 뚫고 나간다는 것은 진기가 이갑자를 능가하는 무인이라고 해도 불가능하다. 계란으로 바위치기다.
그러나 이 심오한 절학을 소림사 무승들은 쓰지 않는다.
일초에 천근의 힘을 싣다보니 진기소모가 너무 극심하다. 순간의 움직임에 젖 먹던 힘까지 모두 쏟아 부어야 한다.
일초에 전신진기를 응축, 폭발시킨다!
그렇게 오초 이상 전개하면 천하장사라도 탈진하고 만다.
이러한 치명적인 단점이 있기 때문에 대력금강장은 계륵으로 남아있다. 먹으려니 성이 차지 않고, 버리려니 아쉽고.
일여화상은 과감하게 대력금강장을 썼다.
해과월이 만들어준 선장은 무척 가볍다. 쇠로 만든 게 아니라 나무로 만들었지 않나 싶을 정도로 가볍다. 거기에 타격력은 어느 쇠보다도 강하다. 그가 만든 모든 검이 선장을 가르지 못한다. 가볍게 휘두르기만 해도 바위들이 두부처럼 으깨져 나간다.
이러한 신병이 있기에 대력금강장을 쓸 수 있다. 진기를 절반 정도만 투입하고도 전력을 다한 효과가 나온다.
오초를 넘어서 십 초, 이십 초…… 싸움이 끝날 때까지 무지막지한 힘으로 몰아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개방 검법은 딱 하나, 규지검법(叫枝劍法)뿐이다. 허나 규지검법은 무명유검이나 대력금강장과 어울리지 못한다. 그들 사이에 집어넣으니 어쩐지 힘이 떨어지는 것 같다.
이강일약(二强一弱).
그래서 적화자는 과감하게 규지검법을 버렸다.
역시 거지는 몽둥이를 들어야 제 맛!
그는 해과월이 만들어준 검을 몽둥이처럼 움켜잡고 천화봉법(天華棒法)을 썼다.
개방도라면 백의개부터 방주까지 모르는 사람이 없는 천화봉법이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는 아주 적절한 위력을 토해낸다.
무공이 널리 알려졌다고 해서 하찮은 게 아니다.
많이 알려졌다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움직임을 그만큼 많이 포함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들은 소림, 무당, 개방의 절학을 하나의 검진 속에 녹여 넣었다.
무림 역사상 두 번 다시 있지 않을 대사건을 만들어냈다. 문파가 다른 무인들, 그것도 장로들이 서로 손발을 맞춰서 합격진을 만든 일은 무림사에서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졌다.
그들이 검진을 잘못 파악했나? 뭔가 놓친 부분이 있었나?
그들이 만든 삼재진, 삼대문파의 절학을 녹여 넣은 검진이 너무도 간단하게 부셔졌다.
해과월이 길가에 굴러다니는 하찮은 망치로 절진을 부수는데 사용한 초식은 딱 삼 초.
일초에 한 명씩 나가떨어졌다.
깨달음의 검학 무명유검이 밀려났다. 무공의 근간, 무공의 정수가 모두 포함된 천화봉법이 퉁겨나갔다. 그리고 초식을 펼치는 순간, 무조건 피해야 한다는 대력금강장이 철벽을 부시지 못하고 오히려 무너져 내렸다.
뭔가 잘못되었다. 그렇지 않고는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없다.
“아마타불, 아미타불! 휴우! 십년은 감수했네. 아미타불!”
일여화상이 가슴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이놈아, 정말로 이 늙은이를 개패듯이 때려죽일 생각이었냐! 그냥 대충 밀어내면 되지 무슨 놈의 힘을 그렇게 써! 때려죽이는 줄 알았다, 이놈아!”
적화자가 인상을 확 구겼다.
백운진인은 검을 쳐다보면서 옅은 웃음을 지었다.
이 모든 결과는 예상된 거였다.
해과월은 사십이 검진과 비비를 갈라 치는 행동으로 자신의 무공을 스스로 입증했다.
삼재검진과 사십이 검진은 비등하다. 귀사령이 수련한 팔괘진도 어깨를 같이 한다. 이 세 개의 진은 우열을 가릴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위력을 발휘한다.
사십이 검진을 구성한 기무영들의 무공은 상당히 낮다. 백운진인이나 일여화상과 비교한다는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하지만 그들의 낮은 무공을 검진의 오묘함이 막아주고 있다.
삼재진은 백운진인, 일여화상, 적화자라서 가능하다. 사십이검진은 기무영들이라서 가능하다. 팔괘진은 귀사령들의 무공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렸다.
세 개의 검진은 세 부류의 무인들에게 딱 맞는 옷이다.
그 중에 하나를 해과월이 밀어냈다.
사십이 검진만 밀어낸 게 아니다. 그에 맞서서 팽팽하게 균형을 유지하던 비비까지 밀어냈다.
그의 무공이 검진 위에 있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안다.
검진이 잘못된 게 아니다. 삼 장로가 잘못 해석한 게 아니다. 무엇인가 잘못된 부분이 있는 게 아니다.
해과월이 강하다.
삼 장로는 이런 결과를 예측하면서, 그래도 자신들이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 알아보고 싶었다. 아니, 자신들의 몸으로 직접 쇠망치를 받아보고 싶었다.
해과월은 말하지 않았다.
스읏!
그가 망치를 들었다.
파앙!
만수의 일초가 전개되고, 압축된 공기가 돼지 허파 터지듯 찢어져 나갔다.
그 순간, 세 명의 장로는 얼어붙었다.
농담? 할 수 없다. 두 눈? 부릅 떠진채 가라앉지 않는다. 두 손? 부들부들 떨린다.
해과월이 공손하게 포권지례를 취했다. 그리고 묵묵히 몸을 돌려 자리를 떴다.
“무명유검이라는 말 자체가 잘못된 것이지. 후후후! 무명에 들어섰는데 어찌 또 부드러움을 찾는고. 허허허!”
백운진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그가 사용한 검법은 무명유검이 아니다. 진정한 무명유검이라면 검진 자체가 필요 없다. 그 자신 자체가 이미 자연이거늘 검진 속에 자신을 녹여 넣을 필요가 무엇인가.
그는 검초를 빌려왔을 뿐, 무명유검을 깨달은 것은 아니었다.
이제 그 단초를 잡았다.
털썩!
그는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비무가 끝난 그 자리에서 두 눈을 감고 묵상에 잠겼다.
일여화상은 두 발을 땅에 딛고 섰다.
금강부동신법(金剛不動身法)이 그의 두 발을 땅에 단단히 붙박아 놓았다.
두 손은 합장했다.
쇠로 만든 선장, 천하에 모든 예검을 막아주던 선장은 땅에 깊숙이 꽂혔다.
그 모습 그대로 굳어졌다.
‘선장은 강하다. 너무 강하다. 강하기에 대력금강장을 쓸 수 있는 것…… 하지만 너무 강하기에 주변과 어울리지 못한다. 대력금강장을 펼치는 순간, 조화가 깨진다. 만물의 조화가……’
가장 완벽한 줄 알았던 무공이 단점 투성이다.
이것은 해과월과 실전 비무를 치르기 전에는 깨닫지 못한 부분이다. 대력금강장을 완벽하게 펼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미숙한 점이 있었다.
무공이란 강하다고 능사가 아니다. 강하면서 세상과 어울려야 한다. 주변과 조화를 이뤄야 한다. 대력금강장을 펼치되, 용권풍이 일어나면 안 되는 거였다.
조화를 이루면 부드럽다.
타격이 이루어지는 순간 힘이 폭발한다. 강함의 진정한 실체를 드러낸다.
이것이면 되는 거였다.
‘아미타불……!’
그는 고요히 묵상에 잠겼다.
적화자는 팔베개를 하고 누웠다.
해과월이 포권지례를 취한 후 돌아간다. 하지만 그 모습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한 순간, 퍼뜩 심득이 떠오른다.
이 순간의 심득을 놓치면 평생 후회할 것이라는 것은 자명하다. 이건 무인의 본능이다.
그는 주변 사람을 모두 잊고 해과월이 방금 전에 펼친 만수의 일초를 떠올렸다.
망치가 들어 올려진다. 그리고 내리쳐진다.
너무 간단하지 않은가. 어린아이도 할 수 있지 않은가. 헌데 그 간단한 동작에 천화봉법이 무너진다.
‘반(絆), 벽(劈), 전(纏,) 착(捉), 도(挑), 인(引,) 봉(封), 전(轉)!’
적화자는 해과월의 망치질에서 어처구니없게도 타구봉법(打狗棒法)의 정화를 찾아냈다.
사람은 아는 것만 보게 되어 있다.
만수의 일초와 타구봉법은 전혀 상관없다. 티끌만한 연관도 없다. 하지만 그의 마음속에 늘 타구봉법의 팔초진결(八招眞訣)이 들어있었기에 그게 보였다.
– 개방진방지보( 幫 幫之寶),봉법공유삼십륙로(棒法共有三十六路),팔결초식(八訣招式),변화정미기묘지극(變化精微奇妙之極)…… 중략(中略)…… 실시고왕금래제일등적공부(實是古往今來第一等的功夫),봉법지정묘(棒法之精妙),이시무학중적절예(已是武學中的 詣).
방주만 전수받는다는 비적(秘籍) 타구봉법을 설명한 말이다.
개방진방지보, 삼십육로, 팔결초식…… 이런 말만 듣고는 타구봉법을 이해할 수 없다.
타구봉법 속에는 천하무학의 요체가 모두 포함되어 있다.
팔자진결 중 도(挑) 자결(字訣)은 사량발천근(四兩撥千斤)을 의미한다. 아주 작은 힘으로 천근의 힘을 다룰 줄 아니, 대력금강장이 몰아친다 한들 웃지 못 할 이유가 무엇인가.
사량발천근이 무당파의 전유물은 아니다.
이렇게 팔자진결의 진정한 의미를 알지 못하는 한, 타구봉법에 접근할 수 없다.
헌데…… 해과월이 그 모든 변화를 선보였다.
그의 일초 속에 타구봉법의 정화가 모두 폭출되었다.
‘절자결(截字訣)…… 선발제인적경전절초(先發制人的經典 招)…… 끊을 절…… 먼저 때리는 놈이 장땡……이쾌제쾌(以快制快)…… 빠름은 빠름으로 제압…… 무학정요(武學精要)……’
그가 알고 있는 개방 무학들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었다.
모두가 아는 것들이다.
타구봉법은 멀리 있는 게 아니었다. 자신들이 쓰고 행하는 몸짓들 속에 있는 거였다.
***
삼 장로가 검진을 펼쳤다.
자신이 깜짝 놀라서 벌떡 일어설 정도로 완벽함의 극치였다.
헌데 무너졌다.
‘단 삼 초!’
마출성도 저렇게 못한다. 주한극도 못한다. 혈황검이나 천살검의 힘을 빌리지 않는 한, 저렇게 무너트리지 못한다.
‘저 정도였단 말인가!’
그녀는 해과월의 진정한 모습을 봤다. 그가 가지고 있는 힘을 봤다. 만수의 일초랍시고 싸우지는 않고 기로 기를 타격하는 방식이 아니었다. 실제로 싸우는 모습을 봤다.
“흠!”
침음이 절로 새어나온다.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지금까지 수많은 결단을 내려왔지만, 지금 이 순간에 내리는 결단은 유림의 운명을 좌우할 게다.
‘저 정도라면…… 한 번 모험을 해볼 만하지 않나.’
붉은 입술이 잘근잘근 씹힌다.
해과월의 무공을 보고자 스며들었고, 몇날 며칠이고 숨어서 지켜봤다. 그리고 마침내 그토록 보고 싶던 그의 무공을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
그리고 알았다.
저들은 자신이 스며든 것을 알고 있다. 저 정도의 무공을 지닌 자들이 자신들 곁에 외인이 있다는 것을 모를 리 없다. 알면서도 내버려 둔 것이다.
삼 장로는 과거 주한극을 연상시킨다.
주한극 정도의 무위를 선보인다. 해과월에게 패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그녀가 보기에는 그랬다.
저런 사람은 허풍 좀 섞어서 십 리 밖에 개울물 흘러가는 소리도 듣는다.
자신의 존재를 이미 알고 있다.
‘말이나 나눠봐야겠어.’
그녀는 숨었던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산속 마을 한 가운데를 걸어갔다.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쳐다본다. 하지만 아는 척은 하지 않는다. 경계를 하지도 않는다.
‘치잇! 역시 알고 있었어!’
햐과월이 어디 있는지는 그녀도 안다. 그는 항상 대장간에서 살다시피 한다.
그녀는 대장간을 향해 걸었다.
5
해과월과 비비는 사이좋게 앉아서 화로의 뜨거운 불길을 쳐다보고 있었다.
“보여?”
“노란색이요.”
“……”
해과월은 침묵했다.
비비도 침묵했다. 해과월의 침묵은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러니 불길을 더 지켜봐야 한다. 그가 원하는 색이 무슨 색깔인지 찾아내야 한다. 어떻게? 계속 보는 길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