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sand Treasure Sword RAW novel - Chapter 222
222
촤라라랑!
염사검과 수교빈 사이에 짧은 교감이 이루어졌다.
그것이면 족하다. 가장 맑은 물끼리 만났기에 스스럼없이 섞인다.
수교빈은 주한극의 손에서 염사검을 빼냈다. 그리고 주한극의 배에 찔러 넣었다.
푸욱!
주한극은 저항하지 못했다. 비명도 지르지 않았다.
아픔을 느끼지 못하는 목석처럼 멀뚱멀뚱 서 있다가 뒤로 쿵! 하고 넘어갔다.
아! 주한극!
그는 염사검이 그를 버릴 수 있다는 점을 계산하지 못했다. 그것이 치명적인 실수다.
“크크크! 크크크크!”
수교빈이 염사검을 손에 쥔 채 키득키득 웃었다.
2
‘좋지 않다!’
불길한 예감이 온몸을 휘저었다.
인검은 냉정함을 잃지 않는다. 감정을 표현하지 않는다. 그러니 웃음 같은 것을 흘릴 리 없다.
아니, 웃음소리가 아니다!
인검이 내뱉는 소리는 거친 호흡소리나 다름없다. 그런 종류의 소리만 흘려낸다. 자신도 모르게 툭 튀어나오는 소리들만 무심결에 흘린다.
그런데 크크크?
웃음 속에 감정이 담겨 있다. 득의, 만족함, 그리고 상당한 쾌감도 내포되어 있다.
“돌아와라!”
소문주는 진기를 돋워 고함을 내질렀다.
인검은 늘 자신 곁에 있어야 한다. 적을 격살하는 순간만 잠시 떨어져 있고, 생명을 끊은 다음에는 즉시 돌아와서 시립해 있어야 한다. 자신의 진기가 인검의 몸속에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종류가 같지만 음과 양으로 갈린 진기가 서로를 끌어당긴다.
그런데 오지 않는다. 염사검을 들여다보기 바쁘다.
“돌아와!”
쩌렁 일갈을 내질렀다.
“크크크! 크크크크!”
수교빈은 말을 듣지 않았다. 그녀는 염사검에 현혹되어서 거부할 수 없는 명령, 절대적인 명령을 무시했다.
‘좋지 않아!’
소문주의 가슴에 불안감이 더욱 짙게 깔렸다.
수교빈은 빠르게 깨어났다.
검령은 창살 없는 감옥을 단숨에 깨트렸다.
음과 양의 균형이 일시에 무너지면서 내면 깊이 잠들어 있던 본성을 일깨워냈다.
“크크크크! 크크!”
수교빈은 뱃속에서부터 터져 나오는 웃음을 쏟아냈다.
그녀는 웃고 있지 않다. 웃음을 일으킬만한 감정의 변화가 없다. 헌데 웃는다. 무심결에 내지르는 탄식처럼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흘려진다.
검…… 검……
이 검에 무엇인가를 해야 할 것 같다.
그녀가 죽인 자, 주한극은 검령에 자신을 던졌다. 검에 육신과 영혼을 몰입시켰다. 검령의 진입을 막고 있던 혈도를 자기 스스로 풀었다. 봉맥이 하나씩 깨어지면서 그의 영혼도 검령이 일으킨 침묵 속에 잠겨버렸다.
그런 것을 느꼈다.
타악! 탁!
검령이 몸속으로 흘러든다.
주한극의 봉쇄를 풀었듯이 그녀의 봉쇄도 풀어낸다. 다만 그녀는 주한극과는 반대의 경험을 했다. 주한극은 봉쇄를 풀수록 정신을 놓았지만, 그녀는 반대로 안에 숨겨져 있던 정신이 되살아났다.
검령이 잠겨 있는 바깥 열쇠를 부순다. 그리고 거침없이 밀고 들어온다.
탁! 탁탁탁!
그녀를 세상으로부터 격리시켰던 열쇠가 부서져 나간다.
내면으로 침잠해 들어가기 전에 보았던 밝은 빛이 보인다. 세상이 보인다. 공기가 느껴진다. 사물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나 자신을 느낀다.
“크크크크크!”
“빌어먹을!”
소문주는 술이 확 깼다.
그는 주한극이 온다는 소리를 듣고도 마음껏 취할 수 있었다. 싸움은 자신이 하는 게 아니라 인검이 하는 것이기에, 그리고 인검이 진다면 자신 또한 파리 목숨일 게 자명하기에…… 차라리 술에 취해 있는 편이 나았다.
주한극이 죽으면서 일차로 술이 깼다.
인검에 의해 죽은 게 아니라 염사검의 배신으로 죽었기에 정신이 번쩍 났다.
그리고 지금, 지금은 정신이 났다는 표현 정도로는 설명이 안 될 정도로 눈이 번쩍 뜨였다. 술기운 같은 건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온 신경이 팽팽하게 곤두섰다.
수교빈이 염사검을 손에 쥐는 순간부터 불길한 예감이 스멀스멀 피어났는데…… 그녀가 노골적으로 말을 듣지 않는다. 혼천음양공으로 제련된 인검이 통제를 거부한다.
‘이제 어쩐다?’
소문주는 곤혹스러움에 수교빈만 멀뚱멀뚱 쳐다봤다.
혼천음양공에 관한한 토씨 하나 빼놓지 않고 다 읽었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 대한 언급은 어느 구석에도 없었다.
인검은 죽는 순간까지 그의 통제를 벗어날 수 없다.
어떤 경우, 어떤 사정이 일어나든 인검은 그의 뜻에 따라서 움직이는 도구일 뿐이다.
수교빈은 그 범주에서 벗어나면 안 된다. 벗어날 수가 없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경우를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아무도…… 음살문의 그 누구도 이런 상황을 예측하지 못했다.
“돌…… 아와!”
물론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할 수 있는 말은 그게 전부였다.
그런데…… 수교빈이 뒤를 돌아봤다.
징그럽게 흘려대던 웃음소리도 그쳤다. 예전과 다름없는 얼굴, 무표정한 얼굴로 그를 쳐다봤다.
“그래, 그래! 그래야지. 돌아와!”
소문주는 자신 있게 말했다. 순간,
쒜엑!
수교빈이 번개처럼 신형을 쏘아왔다.
소문주는 깜작 놀라서 뒤로 물러섰다. 수교빈이 그의 명을 쫓아서 돌아오기는 하는데…… 돌아오는 모습이 심상치 않다. 섬뜩한 살기가 감지된다. 아니나 다를까,
쒜에에에엑!
수교빈이 가까이 오기도 전에 검기부터 흘러온다. 그를 향해서, 그의 목숨을 노리고 염사검이 지쳐온다.
“엇!”
소문주는 화들짝 놀라서 검을 뽑았다.
그는 싸울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그녀가 자신을 공격한다는 생각은 하지 못한다. 불길한 예감은 느꼈지만 공격까지 하리라고는…… 이건 정말 아니다.
혼천음양공의 실체를 모르는 사람이라면 ‘혹시 그래도’라는 생각을 할 수 있겠지만, 인검이 어떤 식으로 만들어지는지 아는 사람이라면 티끌만큼도 의심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녀가 공격해 온다.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
“뭐, 뭐야!”
쒜에엑!
그는 엉겁결에 절초를 쳐냈다. 하지만,
퍼억! 퍼억!
무엇인가 눈앞에서 번쩍 섬광을 토해냈다. 그리고 그의 몸에 번개가 관통했다.
‘소문주!’
그들은 전신에 소름이 오싹 돋았다.
인검이 주한극에게 당하는 경우는 상상해 봤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 인검이 주한극을 죽이는 경우를 더 많이 상상했다. 하지만 인검이 소문주를 죽이는 경우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소문주가 죽었다. 단 일초 만에 목이 뎅겅 잘렸다.
이건 경악 정도가 아니다. 몸이 얼어버린다.
‘보고를!’
제일 먼저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이 이 일을 어떻게 보고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여기서 살아나가야 한다.
슷! 스슷!
그들은 무언의 손짓을 주고받았다.
그럴 리는 없지만, 만일의 경우가 발생하면 한 명만 도주한다. 다른 세 명은 인검을 막아선다. 얼마 동안이나 버틸 수 있을지 모르지만 최대한……
쒜에엑!
검이 날아왔다. 그들이 주고받는 손짓을 비웃기라도 하듯.
“도주…… 컥!”
손짓은 무의미했다. 인검 앞에서는 그 누구도 도주할 수 없다는 사실을 절감해야만 했다.
“컥!”
“끄윽!”
음살문 본단과 소문주를 연결시켜 주던 선이 잘라졌다.
‘이, 이건 괴물!’
그들은 도주할 생각도 하지 못하고 몸을 납작 엎드렸다.
소문주와 수교빈은 중원의 최대 관심사다.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이 곧바로 무림 판도에 영향을 끼친다. 그런고로 그들을 지켜보는 일은 모든 문파의 일상사가 되었다.
오늘도 어느 때처럼 소문주를 지켜본다.
아니, 오늘은 조금 심각하게 지켜본다. 주한극과 인검이 부딪칠 것이기에 신경을 곤두세워야 한다.
헌데 그 싸움이 너무 싱겁게 끝났다. 조금 격렬하게 부딪치는가 싶더니 이내 육신을 내준다.
그것만 해도 놀라운데, 더욱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인검이 소문주를 쳤다!
아니, 아니다. 인검이 주위에 있는 모든 무인들을 도륙하고 있다. 숨어 있거나, 숨어있지 않거나…… 무인의 숨결을 지닌 사람이라면 모두 죽인다.
스읏!
그들 앞에도 피 묻은 혈검이 나타났다.
“헉! 사, 살려주…… 컥!”
그들은 애초에 인검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인검의 일검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
그러나…… 그들은 밀마를 적었다. 혼신의 힘을 다해서, 자신의 심장에서 뿜어져 나오는 피로 그림 같은 글씨를 남겼다.
인검이 미쳤다!
인검은 아무나 죽이는 게 아니다. 수교빈은 정확하게 죽일 사람만 골라서 죽인다.
은밀하게 숨어서 뒤따르는 사람들!
음살문에서 파견한 고수들이 제일 먼저 죽임을 당했다. 개방에서 파견한 걸개들도 죽었다.
수교빈은 소식을 전하는 끈만 절단내고 있다.
왜 그들만 죽이는 것일까? 그들은 죽이면 소문이 퍼지지 않는다고 믿는 것일까?
아니다. 주변에는 그들 외에도 많은 무인들이 있다.
무인들은 인검과 주한극의 싸움에 호기심을 느낀다. 일세에 한 번 있을까 말까한 싸움이라고 생각해서 은밀히 뒤따르는 무리가 상당히 많다.
그들이 오늘 일을 보고 있다.
이미 소문이 번지는 것은 막을 수 없게 되었다. 수교빈이 그들 모두를 죽이지 않는 한은.
수교빈이 정녕 미친 것인가? 검을 든 무인들은 모조리 도륙해버릴 심산인가? 그래서 사전 경고도 주지 않고 다짜고짜 검을 써서 목숨을 취한 것인가.
아니다. 차라리 그렇기라도 하다면 큰 걱정을 하지 않는다. 그런 일을 벌인다면 정말 미쳤기 때문이다. 사람을 죽이는 일에 맛을 붙인 살인귀가 지나지 않는다면 걱정할 필요가 없다.
수교빈은 무인들을 골라서 죽인다.
일차로 각 문파의 눈이라는 사람들을 죽였다. 밀자(密者)들만 골라서 처리했다.
그녀의 이지가 제대로 돌아왔다는 뜻이다.
그녀가 생각할 줄 알고, 위험이 되는 요인들을 골라낼 줄 안다는 뜻이다.
완벽하게 미친 것보다 훨씬 나쁜 상황이다.
쒜에에엑!
밀자들을 처리한 검은 그에게도 날아왔다.
“후후후!”
그는 웃으면서 검을 들었다.
아직 이 정도에 당할 정도로 약하지 않다. 솔직히 말하면 주한극이 이런 검에 죽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요망한!”
그는 우렁찬 일갈을 내지르며 검을 쳐냈다.
까앙! 까앙! 깡깡깡깡깡!
순식간에 수십 합의 교전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음!”
그가 먼저 침음성을 토해냈다.
수교빈의 내력이 엄청나다. 이건 마치 산에서 굴러 떨어지는 바위 덩어리와 부딪치는 느낌이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사실…… 그는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을 예상했다. 혼천음양마공이 어떤 무공인지 알고 있기에 수교빈이 이렇게 변할 것도 예상하고 있었다.
다만 자신이 직접 수교빈의 실체를 확인해 보고 싶었다. 정말 그토록 강한지.
강하다! 생각보다 훨씬 강하다!
‘주한극이 염사검을 쥐고도 쩔쩔 매더라니!’
그도 마찬가지다. 수중에 천살검을 쥐고 있지 않았다면 벌써 염사검의 재물이 되었을 게다.
망설일 시간이 없다. 망설이면 오히려 당한다.
그는 전력을 다해서 일검을 쳐냈다. 천하의 수교빈이라도 잠시 움찔거릴 정도로 거센 일격을 쏟아냈다. 그와 동시에 일갈을 내지르면서 뒤로 물러섰다.
“투척!”
휘익! 휙! 투투투툭!
고함소리가 터짐과 동시에 사방에서 작은 돌멩이들이 날아왔다. 돌멩이들이 날아옴과 동시에 거센 폭발을 일으켰다.
꽈앙! 꽈아앙! 꽈앙!
천번지복(天飜地覆), 하늘과 땅이 뒤집혔다.
세상이 알지 못하는 게 있다.
마출성, 그는 청천맹을 수중에 넣었다. 하지만 일은 하지 않았다. 무림이 어떻게 돌아가든 상관하지 않았다. 수교빈을 애첩으로 들인 후, 후원에서 놀기만 했다.
이것이 세상이 아는 그다.
정말 그랬나? 놀기만 했나? 아니다. 세상 사람들이 검에 정신이 팔려 있을 때, 그는 벽력당에 온 힘을 쏟았다.
벽력당은 청천맹의 지엽(枝葉)일 뿐이다.
그는 벽력당을 지극히 은밀하게 빼돌렸다. 군사인 사마소조차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 감쪽같이 빼내왔다.
그들은 뇌섬력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뇌섬력은 비성검문과 음살문을 동시에 상대할 수 있는 유일한 힘이다.
그는 그 힘을 완성시켰다.
폭발력은 두 배로 강하게, 말을 타고 달려도 터지지 않을 정도로 안정되게.
그 힘이 완성되지 않았다면 결단코 음살문을 이탈하지 않았을 게다. 주한극과 인검의 싸움을 지켜본 후, 승자를 제거하고 무림의 진정한 주인이 되겠다는 생각도 하지 않았을 게다.
그에게 그 힘이 주어졌다.
세상을 뭉개버릴 수 있는 가공할 힘을 가졌다.
“후후후후!”
그는 웃었다. 아무리 인검이라도 해도 저런 폭발 속에서는……
“웃!”
그는 생각을 마치지 못했다.
슈우우악!
검이 날아온다. 땅이 뒤집히는 엄청난 폭발 속에서 한 인형이 튀어나온다.
“이런!”
그는 급히 검을 들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사정이 달랐다.
스읏!
염사검이 천살검과 부딪치지 않았다. 천살검이 이런 식으로 흘러올 줄 알았다는 듯, 살짝 방향을 바꿔서 심장을 쑤셔왔다. 그리고 그 속도는 마출성이 예상한 속도보다 배는 빨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