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sand Treasure Sword RAW novel - Chapter 52
52
암굴이 이토록 어두우면 횃불이라도 마련해 놓는 게 상식이다. 헌데 아무리 둘러봐도 불을 당길만한 물건이 안 보인다. 횃불을 걸어놓는 자리는 있는데, 횃불만 없다.
비성검문 무인들이 준비해놓은 횃불을 모두 수거해간 모양이다.
그래도 완전히 안 보이는 것은 아니다. 계단이 어디 있는지 짐작할 수 있을 정도로 어렴풋이 형태가 보인다. 그래서 예상 밖으로 편히 걸을 수 있다.
빛이 어디서 스며드는 것일까?
빛이 없으면 사물을 볼 수 없다.
이건 어린아이도 아는 상식이다. 어떤 물체를 조금이라도 보려면 반드시 빛이 필요하다.
그는 동굴 형태를 볼 수 있다. 계단도 보고, 암굴이 굽이진 모습도 본다.
어디선가 빛이 흘러든다는 소리다.
그런데 암굴 벽을 아무리 살펴봐도 빛이 스며들지 않는다.
기가 막힐 노릇이지만…… 그래도 걸을 수 있을 정도로 시야가 확보되니 천만다행이지 않나.
저벅! 저벅!
돌바닥을 내딛는 발자국 소리가 동굴을 울렸다.
캉! 컹! 퍼억!
멀리서 둔탁한 소리가 울린다.
소리가 울릴 때마다 암굴이 텅텅 울린다.
저들이다. 어느 새 꼬리에 달라붙었다.
당연히 그럴 줄 알았다. 저들의 움직임을 보면 모르나. 절대로 떼어놓을 수 없다.
저들의 눈은 맹수의 눈을 능가하다. 저들의 귀는 십 장 밖에서 바늘 떨어지는 소리도 듣는다.
세상에 못 보는 것이 없고, 못 듣는 것이 없다.
저들에 대하서 많이 알지는 못하지만, 풀밭에 찍힌 발자국조차도 찾아낼 수 있다고 한다. 저들의 코는 십 리 밖에서 밥 짓는 냄새도 맡을 수 있다고 한다.
무인들이란……
저들이 어떤 자들이건 간에 떼어놓을 수 없다는 점은 인지하고 있었다.
텅! 쾅! 터엉!
암굴이 부서질 듯 흔들거린다.
저들은 자신처럼 입구를 찾지 않고 부수기로 작심한 듯하다.
왜 그럴까? 구 멍 세 개만 찾으면 되는데…… 그저 쳐다보기만 해도 눈에 딱 띄는데. 왜 그걸 안 찾고 부수는 것일까? 삼척동자도 찾을 수 있는데? 너무 환히 보이는데? 전임 맹주답지 않게 기관 장치를 너무 허술하게 설치했는데?
쾅! 우르르르릉!
동굴이 무너질 듯 요동쳤다.
입구를 부수느라고 힘깨나 쓰는 장정들을 투입시킨 모양이다.
그래도 상관없다. 지금까지 걸어온 거리로 미루어보면…… 저들이 동굴을 부수고 안으로 들어설 때쯤이면 자신은 이미 이 지겹도록 어두운 암굴을 빠져나가고 없을 게다.
‘이곳을 벗어나면…… 어디 조용한 곳에서 농기구나 만들어야겠어. 휴! 무림이란…… ’
사부는 이래서 무림을 싫어했다.
무림이란 수렁과 같다는 말씀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했다.
똥통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려면 무림밥을 먹으라고 비웃듯이 말씀하셨다.
수렁에 빠져본 적이 있는가? 수렁은 빠져나오려고 허우적거릴수록 더욱 깊이 빨아 당긴다. 어떻게든 해보려고 꼼지락거리면 더욱 깊이 집어삼킨다.
수렁에서 빠져나오려면 일단 숨을 골라야 하다.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히고, 모든 행동을 멈춘 후에…… 밖에서 내던져주는 밧줄 같은 것을 의지하라. 그래야만 빠져나갈 수 있다. 나무줄기나 나무뿌리나…… 손에 잡히는 것은 뭐가 되었든 꼭 움켜잡아야 한다.
그것이 생명줄이다.
어쨌든 외부의 도움이 없다면 절대로 수렁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꼭 그와 같은 곳이 무림이다.
무림에 일단 발을 들이면 절대로 빠져나오지 못한다. 무림사에 관여를 하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면 칠수록 더욱 깊이 휘말려 든다. 누군가가 빠져나갈 수 있도록 도움을 주지 않는 한, 절대로 벗어나지 못한다.
이런 곳은 아예 발을 딛지 않는 게 상책이다.
헌데 자신은 이미 발을 디뎠다.
수교군과 수교빈이 무인들을 끌어들이는 순간, 이미 무림이라는 수렁에 깊이 빠지고 말았다.
그 결과 비오신장이 죽었다.
자신도 그리 좋은 형편은 못된다. 이런 깊은 산에 개 끌리듯 끌려와서 시키는 일이나 하는 처지로 전락했다. 시키는 일을 거부할 수는 없다.
무조건…… 이유 불문하고 하라는 대로 해야만 한다.
보수나 대가? 그런 걸 요구할 처지도 안 된다.
저들은 일을 시키면서도 당당하다. 살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죽으란다.
장인이 쇠를 다루는 건 일상사인데, 그런 것에 목숨이 걸린다.
또 있다. 저들의 원하는 물건을 만들어내지 못해도 목숨을 걸어야 한다.
모든 일에 항상 죽음을 생각한다.
도대체 사람을 이렇게 만드는 무림이란 어떤 요물인가.
이런 무림이 싫다.
이런 사람들과는 기쁘게 일할 수 없다.
사부가 그토록 가지 말라고 신신당부하던 더러운 시궁창의 진실을 짧은 시간에 절실히 느꼈다.
지금이라도 빠져나간다.
조금도 미련 없이, 한 톨의 아쉬움도 없이 애증을 훌훌 털어버리고 빠져나간다.
이들의 기억에서 자신이라는 존재가 완전히 지워지려면 언제까지 숨어있어야 할까?
이들은 벌써 자신의 맛을 알아버렸다.
천살검이 무림 최대의 보검으로 등극했다.
혈황검을 반 토막으로 잘라버리면서,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병기를 잘라버리는 절대신검의 위치를 차지했다.
그런 검을 자신이 만들었다.
세상 사람들은 그런 검을 만들기 위해서 사부가 녹영철을 내놓았다는 사실은 기억하지 않는다. 사부의 노력, 조언, 땀방울도 기억하지 않는다.
해과월이 천살검을 만들었다.
딱 이 점만 기억한다.
보검을 만들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쇠와 불과 물과 정성과…… 모든 것이 하늘의 이칠로 하가가 되었을 때, 보검이 탄생한다.
세상은 그런 점도 생각하지 않는다.
해과월, 그 놈은 만들 수 있다.
이것만 기억한다. 보검을 만든 놈이니 또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세검(洗劍)도 봤다.
칼을 간다는 것이 단순히 쇳덩이를 가는 것이 아니다. 그런 말은 더 이상 하지 마라. 세검을 쇠의 성질을 가는 것이다. 한낱 쇠에 영성을 부여하는 과정이다.
평범한 철검도 세검만 잘 하면 살검이 된다.
해과월에게는 아무 검이나 던져줘도 명검으로 재탄생시킨다. 그런 놈이다.
이게 무인들이 기억하는 해과월이다.
이들은 자신을 잊지 못한다. 잊지 않는다. 조그만 일이 있어도 당장 생각할 것이다.
놈만 있다면, 놈이 세검만 해준다면…… 놈이 만들어준 검 한 자루만 있으면…… 그래서 포기하지 않고, 몇 년이 지나더라도 잊지않고, 두고두고 찾을 것이다.
‘어쩌면 평 숨어살아야 할지도……’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사부는 보검을 만들 줄 안다. 그래서 사부에게 보검 만드는 법을 배웠다. 자신이 철광석에서 쇠를 추출하고, 제련하고, 칼을 만드는 모든 과정은 사부에게서 흘러나온 것이다.
사부를 칼을 갈 줄 안다.
칼을 가는 것은 대장장이의 기본이다. 하지만 의외로 이 일을 잘 못하는 사람이 많다. 그래서 어떤 대장장이는 칼을 만들기만 할 뿐, 가는 것은 전문적인 세검사에게 맡기기도 한다.
칼을 만든 사람이 성질을 만들어 주는 게 기본이다.
설마 사부가, 비오신장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칼을 갈 줄 모르겠는가.
자신이 드러낸 모든 세검 기법, 세검 정신은 모두 사부에게서 물려받은 것이다.
헌데 사부는 칼을 갈지 않았다. 농기구도 갈지 않았다. 그 흔한 식칼 한 자루 갈지 않았다.
사부가 왜 칼을 갈지 않았을까?
해과월은 이제야 그 이유를 절실히 깨달았다.
칼을 갈면 당장 무림사에 휘말린다.
보검을 만드는 것은 어찌어찌 피할 수 있다. 녹영철을 구하지 못했다, 보검에 맞는 쇠가 없다, 지금은 보검을 만들지 않는다…… 여러 가지 이유를 댈 수 있다.
하지만 칼을 갈지 않는 것은 이유가 다르다.
그것은 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하지 않는 것이다.
누구 마음대로?
사람의 의지 따위는…… 천하제일검을 갖고자 하는 무인들에게 한낱 대장장이의 의지 따위는 언제든 짓밟아 버려도 좋을 정도로 하찮은 것이다.
그래서 사부는 갈지 않았다.
그가 도부의 도끼를 갈아줄 때…… 사부는 한숨을 내쉬었다.
도부의 도끼를 갈아준 돈이 자식들의 옷 값, 유흥비, 노름빚으로 쓰이는 것을 안 후에는 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야 그 한숨의 의미를 알겠다. 하지만 어쩌랴. 이제는 너무 늦어버린 것을. 이미 알 사람은 모두 알아버린 것을.
평생 무인들 눈에 띄지 않고 살아야 한다. 그만한 각오는 해야 한다.
‘고단한 삶이 되겠군.’
암굴을 빠져나가기도 전에 고단한 삶부터 생각했다니, 너무 안일한 생각이 아닐까? 솔직히 그런 배부른 생각을 하기에는 처한 상황이 너무 답답하지 않나?
고단함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검은 경장을 입은 사내가 보인다.
사내는 복면을 썼다. 손목이며 발목이며 움직이기 편하게 검은 끈으로 꽁꽁 묶었다. 검도 묵칠을 해놓은 듯 전혀 광채가 없다. 어둠 속에 완벽하게 동화되어 있다.
사내는 빛 한 점 들지 않는 암굴에 완벽하게 녹아있다.
‘비성검문!’
해과월은 그가 누구인지 짐작해냈다.
저벅! 저벅!
해과월은 그를 향해 걸었다.
암굴에서 마주친 이상 피할 곳이 없지 않나.
뒤에는 탁좌량이 쫓아오고 앞에는 비성검문 검사가 있다. 그리고 그가 있는 곳은 앞으로 가거나 뒤로 물러설 수밖에 없는 암굴이다. 어디로 피할까?
그럴 바에는 차라리 비성검문쪽으로 가는 게 좋지 않나 싶다.
탁좌량에게 잡히면 영락없이 청천맹으로 끌려가야 하지만, 맹주에게 돌아가면 빠져나갈 기회가 있을 것 같다.
잡힐 바에는 비성검문에…… 그런데,
스읏!
비성검문 검사가 슬쩍 검을 쳐들었다.
그는 소리 없이 검을 들었지만, 해과월은 그런 모습을 똑똑히 봤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검은 묵검에서는 진한 살기마저 은은하게 번져 나온다.
‘왜?’
그가 미처 생각을 정리하기도 전,
스으읏!
묵검을 뽑은 검사가 계단을 밟아 올라왔다.
유령이 허공을 부유할 때처럼 스르륵 미끄러져 온다.
사람이 움직이고 있는데 발자국 소리가 일절 들리지 않는다. 계단을 밟아 올라오는데, 땅을 밟는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마치 기름 위를 미끄러져 오는 것 같다.
스읏!
그는 불길한 느낌에 조용히 혈황검을 뽑았다.
만약 검사가 살기를 띄고 공격해 온다면 사력을 다해서 방어해야 하지 않나.
얌전히 당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검을 뽑기는 했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싸워야 한다면 전력을 다한다.
상대는 무인, 반면에 자신은…… 검초는커녕 검을 쓰는 기초조차 모른다.
마음은 평온하게 갖는다. 절대적인 침묵 속에서 고요히 흘러가는 바람 소리를 듣는다. 그런 기분으로 검을 맞이한다. 탁좌량의 검을 막았을 때처럼……
‘누구요! 왜 날 죽이려는 거요!’
목구멍까지 치솟은 물음도 도로 삼켜버렸다.
대충 상대의 의도를 알 것 같다. 상대…… 비성검문의 검수는 뒤따르는 자들을 차단할 목적으로 남겨졌다. 일정한 시간동안 암굴을 막아서는 게 그의 임무다.
맹주는 이미 떠나가고 없다.
이 자가 얼마동안만 뒤를 막아준다면 맹주를 다시 찾기란 하늘의 별따기가 될 게다.
그가 지켜선 곳에서는 일당백이 가능하다.
무공만 약간 보태준다면 청천맹 무인들을 막아낼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그런데…… 그가 움직이지 않자, 아무 거리낌 없이 계단을 밟아오던 사내가 멈칫 멈춰섰다.
사내는 조용히 서서 귀를 기울인다.
‘헛! 보지 못해!’
해과월의 놀라움은 매우 컸다.
비성검문 검사가 자신을 보지 못한다.
이것은 직감이지만 맞을 것이다.
비성검문 검사는 누가 내려오는 발걸음 소리를 들었다. 거기에 인기척을 감지하는 고도의 능력 또한 구비했을 터이다. 그런 점들이 그로 하여금 계단을 밟아오게 만들었다.
헌데 자신이 움직임을 멈추자 당황해 한다.
눈으로 보지 않고 기감으로 느낀다. 즉…… 이 어둠 속에서 볼 수 있는 사람은 자신뿐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을까?
무인들은 어둠 속에서도 사물을 꿰뚫어볼 수 있다. 그런 수련을 한다고 들었다. 특히 비성검문 검수 정도 되려면 죽을 고비를 서너 번쯤은 넘겼을 터이다.
그런 사람이 보지 못하는 것을 어떻게 자신이 볼 수 있을까.
해과월은 벽에 몸을 바짝 기댔다. 벽에 몸을 붙이고, 소리 나지 않게 천천히 한 걸음씩 걸음을 떼어놓는다.
살짝, 살짝!
3
스읏!
검사가 움직인다. 해과월은 즉시 움직임을 멈췄다.
평범한 사람들이 봤을 때, 무인은 신에 가깝다. 그들은 어떤 일도 다 할 수 있는 사람처럼 보인다. 또 사실이 그렇다. 범인들의 상식과 무인들의 상식은 전혀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