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8 Books of the Court's Drama RAW novel - Chapter 133
133. 육손이 진언한 산월을 상대하는 두 가지 방책
육손은 자신의 인맥과 정보망을 총동원하여 촉의 남정이 어떠했는지 살폈는데, 그가 주목한 것은 바로 옹개와 고정이 내분을 일으켜 자멸한 부분이었다.
이에 육손은 분명 촉의 누군가가 옹개와 고정의 사이를 갈라놓는 책략을 쓴 것이라 확신했다.
‘그리고 그것은 분명 법정일 터인데. 그렇다면 법정이 수천 리 밖에서 계책을 내었다는 말인가?’
한데 촉군을 이끈 자가 누구인지는 확실히 알려지지 않았기에 육손은 섣부른 예단을 할 수 없었다.
다만 남정군을 이끈 자가 법정이라는 의구심이 강해게 들었으나, 작금 분명 양번에 법정이 있다지 않는가.
그렇다면 결론은 법정이 촉군의 진압군을 이끄는 장수에 자신의 계책을 일러 그대로 실행한 것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 법정이 비록 양번에 있는 관계로 남정군을 이끌지는 못하지만, 그가 신묘한 계책을 촉군 장수에게 전하게 하여 그대로 수행하게 하였다면 말이 되는 것이지.’
이러한 육손의 판단은 이번 산월의 반란에서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이니, 여기서도 육손은 법정이 산월에 계책을 알려준 것이라 여겼다.
그리고 그것은 전술한 바와 같이 실제와 거의 맞아떨어지는 부분이다.
이러한 육손은 이러한 추측(법정이 산월에 계책을 일러준 것)을 산월이 보즐의 1만 정병을 격파할 수 있었던 이유로 들었다.
그리고 이를 들은 손권은 법정의 계책을 쓰는 산월을 어찌 상대해야 하는지 육손에게 물었던 것이다.
* * *
“대도독, 법정이 술수를 알려준 산월을 어찌 상대해야 한다는 말이오?”
손권의 하문에 육손이 두 손을 모으며 자신이 생각하는 방책을 아뢰었으니 그것은 두 가지 방안이었다.
육손은 첫 번째 방안부터 손권에게 진언하기 시작했는데, 우선 촉 남중의 경우와 이번 산월의 반란이 다른 점에 대한 설명을 하였다.
“대왕, 촉 남중의 반란군은 남중 지역의 호족이 연합하여 일으킨 반란으로, 그들 사이의 반목(실상은 법정의 반간계)이 결국 옹개와 고정을 스스로 파멸하게 하였기에, 촉군이 쉽게 반란을 진압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촉이 이번 전까지는 남중의 남만에 대해 큰 억압은 하지 않은 까닭(오에 비하면)에 반란의 규모는 컸을지 몰라도 저항은 생각보다 크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에 반해 아국의 산월은 벌써 수십 년째 아국에 반기를 들며 크고 작은 저항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저들은 아국에 상당한 반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 아국이 대대적인 토벌에 나선다는 유언비어가 퍼지자, 산월이 한꺼번에 반란을 일으킨 것입니다. 따라서 남만의 반기에 이번 산월의 반란은 그 규모와 세력에서 더 대단하니, 이를 쉽게 진압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실제 평융장군 1만 병마가 산월에 패하는 결과로 이것이 입증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말한 육손은 잠시 숨을 고르고는 첫 번째 대책을 말하였다.
“대왕, 그리고 산월을 단시일에 제압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다만 방법은 산월을 단계적으로 격파해 나가는 방법을 쓰는 것입니다. 그리되면 기간이 오래 걸릴지 몰라도 확실하게 산월을 격파하고, 그들을 아국의 통제하에 넣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듯 육손이 꺼내든 첫 번째 방안은 점진적 진압책이었으니, 이를 제대로 구현하려면 몇 년의 시간이 필요할 수도 있었다.
하나, 이는 육손이 생각하기에 확실한 조치로 이것이 성공한다면 산월의 이번과 같은 대규모 반란은 더는 없을 것이고, 그에 더해 산월을 확실한 오나라 백성으로 만들 수 있을 터였다. 이 방안은 오의 병력을 더 확충할 수 있는 좋은 방안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이 시대 백성의 수는 곧 병사의 수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육손의 첫 번째 방안을 들은 손권은 썩 좋지 않은 표정으로 육손에게 물었다.
“대도독이 말한 계책을 쓰면 얼마의 병력과 시간이 걸리겠소?”
손권의 하문에 육손이 답을 올렸다.
“예, 대왕. 3만의 정예병과 2년여의 시간의 시간이 걸리고, 그에 상응하여 소요되는 군수품이 필요합니다.”
육손의 답변을 들은 손권은 더 부정적이 될 수밖에 없었고, 육손의 첫 번째 대책을 사실상 채택하지 않았다.
“대도독이 말한 방책은 과인이 생각하기에 상당한 물자와 병력이 소모되는 데다, 시일이 너무 오래 걸리는 것 같소. 작금의 상황은 평융장군(보즐)의 1만 병마가 산월에 패하며 절체절명이라는 말이오. 대도독의 대책처럼 그리 오래 걸리는 것은 안 될 것 같소.”
손권의 입장에서는 ‘발등에 불 떨어진 상황’인데 병마와 시간, 물자 등이 많이 드는 이러한 방안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다.
하나, 육손의 이러한 방안과 유사한 계책이 원 역사에서 실제 시행이 되어 성사가 되었으니, 실제 역사에서는 제갈각이 원안을 입안하고 이를 손권이 윤허하여 그대로 실행되며 대성공을 거두게 된다.
원 역사에서 제갈각이 어찌 산월을 상대했는지 살펴보자면.
234년 8월, 제갈각(이때 제갈각은 32세의 나이었다.)은 자신을 단양의 태수로 임명하면 산월을 토벌하겠다는 과감한 계획을 손권에게 상주하며, 3년이면 4만 병력을 얻을 것이라 호기롭고 자신 있게 말했다.
하나 이러한 제갈각의 계획안을 받아본 손권은 처음에는 이에 부정적이었으니, 그것은 험한 산지에 숨어사는 약탈을 일삼는 산월을 진압하는 것이 힘들다는 것을 손권도 알고 있던 것이다.
손권뿐만 아니라 오나라의 대신들 또한 제갈각의 계획에 반대하기는 마찬가지였으니, 산월은 단양 지방의 수 천리에 달하는 넓고 험난한 지세에 살고 있는 강인한 자들로 이미 많은 토벌 작전에도 그들을 복속하는 것에 실패하였기에, 중신들은 제갈각의 계획을 반대했던 것이다.
그리고 제갈각의 아버지인 제갈근 또한 아들의 ‘단양평정책’에 걱정을 하였는데, ‘제갈각은 집안을 크게 일으키지 못하고, 장차 집안을 멸하겠구나’라며 제갈각이 무모한 일을 벌이는 것에 크게 *우려를 표하였다.
[* 그리고 이러한 제갈근의 우려는 원 역사에서 후에 실제로 벌어지게 되니, 제갈각이 20만 대군으로 합비를 쳤으나 대패하고 몰락하게 되며 손준에 주살되었다. 그리고 오나라의 제갈 가문 또한 멸문지화를 당하게 된다. 다만 제갈량의 양자로 들어가 촉에 있던 동생 제갈교가 있었기에, 제갈교의 아들인 제갈반이 오로 가서 겨우 제갈근의 대를 이었던 것이다.]하지만, 제갈각은 자신의 계획이 완벽하다며 이를 밀어붙였고, 결국 손권은 제갈각의 계책을 받아들여 제갈각을 무월장군 겸 단양태수로 삼아 산월의 소탕을 맡겼던 것이다.
이리하여 제갈각은 산월의 토벌을 시작하였으니, 1년여 만에 진압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여 제갈각이 호언장담 하였듯이 많은 병사를 모으고, 제갈각 스스로도 1만 병력을 거느리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제갈각이 쓴 방법은 다음과 같으니.
임지에 도착한 제갈각은 인근 *네 개군의 장리들에게 문서를 보냈는데, 그 내용은 각 군의 영을 경계하고 군대를 정비하는 한편, 오나라 백성으로 귀화한 산월인들을 주둔지에 머물게 하는 등 관할지의 백성들을 안정시키라는 것이다.
[*오군(吳郡), 회계군(會稽郡), 신도군(新都郡), 파양군(鄱陽郡)]이어서 제갈각은 산월족이 주로 출몰하고 거주하는 지역에 장수들을 나누어 배치하는 한편, 험지에 병사들을 주둔하되, 진지를 수리하고 방어하게만 하고 절대 산월과의 교전을 금하였다. 그러한 가운데 제갈각은 추수할 때가 되자 병사들로 하여금 이를 수확을 명하였는데, 한 톨의 곡식도 남지 않게 하였다.
평소 산월은 산적이나 다름이 없었기에 수확기가 되면 약탈을 하였으나, 제갈각의 이러한 조치로 약탈을 하지 못하게 되자, 굶게 되는 자들이 속출하며 절로 사기가 떨어졌다.
이리 되자 굶주림을 참지 못하고 제갈각에게 스스로 투항하는 자가 늘어났으니, 제갈각은 투항자들을 체포하지 않고, 마을로 데려와 먹을 것과 지낼 곳을 제공하였다.
제갈각에게 항복을 하면 안전은 물론 숙식이 보장되는 것이 알려지자, 투항하는 산월이 점점 늘어났고, 그들은 곧 오나라 백성이 되어 농사를 짓고, 병사로 선발되었다.
제갈각이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반복하니, 불과 1년여 만에 산월의 기세는 크게 꺾이게 되었다.
야금야금 산월을 무너뜨리는 이러한 제갈각의 계책은 상당히 영리한 방법이라 하겠다.
그리고 원 역사에서 제갈각이 산월을 평정하자, 손권은 제갈각이 세운 공을 크게 치하하며 제갈각을 후작으로 삼았다.
이렇듯 실제 역사에서 제갈각은 싸우지 않고도 산월을 평정하였다.
이 역사에서 육손은 원 역사의 제갈각과는 다르게 10만이 넘는 산월의 대반란을 진압하는 동시에 제갈각과 유사한 방책을 실행해야 했기에, 실제 역사보다 더 많은 병력과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아무튼 이 역사에서 육손이 제갈각과 유사한 방책을 쓰려고 하는 것이나, 원 역사와는 다르게 손권은 이를 받아주지 않는 것이다.
하기야 작금 10만의 산월이 날뛰는 상황에서 이러한 진척이 느린 방안이 손권의 눈에 들어올 리 만무한 것이리라.
* * *
육손은 자신이 첫 번째 방안이 상책이라 여기고 있었으나, 이를 손권이 받아들이지 않자 어쩔 수 없이 차선책을 꺼내들었다.
“하오면 대왕, 신이 생각하는 두 번째 방안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대도독, 어서 말해보시오.”
손권의 재촉에 육손은 자신의 치부를 우선 꺼낼 수밖에 없었다.
“예, 대왕. 참담하옵게도 신이 지난 합비의 전투에서 크게 패한 일로 작금 아군의 병력이 많이 상하여 이를 회복하는데 꽤 오랜 시일이 필요하옵니다. 하온데 이러한 때 산월이 자그마치 십만이 넘는 병력으로 아국에 반기를 들었으니, 이를 막기가 참으로 쉽지가 않사옵니다.”
육손의 말에 손권은 얼굴을 찌푸렸다.
“그것은 과인도 아는 사실이니 대도독은 어서 방책을 말해보시오.”
“예, 대왕. 작금 아국의 정예병은 수만에 불과하오니 흉포한 산월의 대군과 싸우는 것을 택하는 것보다 저들을 회유(懷柔) 하는 것이 어떨까 하옵니다.”
손권은 육손의 입에서 ‘회유’라는 말이 나오자, 얼굴이 금시에 붉어지며 버럭 화를 냈다.
“대도독!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것이오? 감히 과인에게 반기를 든 저 무도한 산월을 회유하다니!”
육손은 손권이 자신의 두 번째 방책을 들으면 필시 진노할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하여 육손은 곧장 손권의 앞에 무릎을 꿇으며 이리 아뢰었다.
“대왕, 갑자기 쏟아지는 소나기는 피하고 보는 것이 상책일 것입니다. 작금 산월은 평융장군의 정예 1만을 꺾은 일로 기세가 오를 데로 올라 있습니다. 이러한 때 산월과 싸우는 것은 잠시 피해야 할 것이옵니다.”
이러한 육손의 설명에도 손권의 화는 누그러지지 않았다.
“아무리 그래도 산월을 회유하라니. 이보다 더한 굴욕이 어디 있다는 말이오?”
손권이 노기가 가득한 목소리로 육손에게 질책을 하듯 하문하자, 육손은 잠시 눈을 감고 생각을 했다.
‘작금의 상황에서 내가 생각하고 있는 최선의 계책을 대왕이 받아주지 않으시니, 차선책을 꺼낼 수밖에 없겠어. 어찌 보면 전자나 후자나 작금의 위급한 상황을 우선은 모면하고 보자는 임시방책일 수 있지. 하나 전자의 방안은 오래 걸리지만 확실한 방법일 것이야. 대왕이 두 번째 방안에 대해 저리 화를 내시니 어찌 보면 오히려 잘된 일일지 몰라. 대왕에게 두 가지 방책 중 하나를 선택하게 한다면 필시 내가 생각하는 상책의 방법을 대왕도 어쩔 수 없이 채택하게 되겠지. 그렇다면 두 번째 안에 대해 내가 고집을 부려 대왕이 첫째 안을 택하게 만들어야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