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Follicle Exhibition RAW novel - Chapter 110
109화 천하를 향한 일보 (2)
————– 109/753 ————–
산 너머 산이라는 말은 지금을 두고 하는 말이리라.
“정 전 자사의 심복이라 할 수 있는 자들 중 왕 씨 가문은 가장 큰 성세를 누리고 있으며 오직 그들만이 여 장군과 정 전 자사의 싸움에서 온전히 세력을 보전하였습니다.”
정원의 심복이라 할 수 있는 자들은 등고를 제외하면 등고 대신 모사 자리를 맡았던 온서, 용장 송익, 기주목 왕굉을 손에 꼽을 수 있었다.
온서는 고순에 의해 묵사발이 나서는 자리를 보전하고 누웠고, 그의 아들은 아직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소년이니 온 씨 가문의 재산이 아무리 많다고 한들 지금은 무용지물이나 다름이 없었다.
송익은 등고와 함께 독주를 마셔 저승길 길동무가 되었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것은 기주목 왕굉인데 그는 이번 싸움에 참전하지도 않았고, 벼슬도 여포와 동급이며, 세력으로 따지자면 병주만큼 넓은 땅에 수만의 군세를 보유하고 있었다.
태항 산맥의 지배권을 두고 다투게 된다면 분명 여포군 내부에서 그와 동조하는 자들이 나타나게 될 터. 내홍을 피할 수 없을 것이고 결국 자중지란에 휩싸이게 될 게 불을 보듯 뻔했다.
여포가 완전히 하나 된 병주의 주인이 되지 않고 시작해서는 안 되는 싸움이었다.
게다가 여포는 왕굉의 동생, 왕윤의 집에서 초선을 빼내오며 녹로까지 가지고 달아났으니 만약 사실이 들통나면 적대적인 관계를 피할 수 없을 터였다.
“결국 천정관도, 흑산적도 당분간은 외세로부터 병주를 지킬 방패로 삼자는 얘기로군. 아니 그렇소, 저 선생?”
“총명하십니다.”
“책문을 계속 전하시오.”
“예, 장군. 일단 장군의 말씀대로 천정관과 흑산적의 존재를 최대한 이용하여 외세로부터 병주를 방비하고 그 동안 내정을 실하게 하고 군마를 길러야 합니다. 그런 다음에는······.”
저수는 병주가 아닌 유주 일대의 지도를 두드리며 장내의 사람들을 쓸어보았다.
“병주의 내실을 기한 다음에는 유주를 노릴 것입니다.”
저수의 말에 몇몇 사람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유주가 주인 없는 땅이라고는 하나 그만큼 노리는 자들이 많았다.
아직도 유주 기주 일대에는 황건의 패잔병들이 군세를 유지하고 있으며, 오환의 대인들 역시 야심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쉽사리 움직이지 못하는 까닭은 요서의 공손찬 때문이었다.
“요서 일대에 큰 세력을 구가하고 있는 공손 가문이 걱정되실 겁니다. 여러분도 익히 알고 계시겠지만 공손 씨의 적장자도 아닌 공손찬 한 사람의 세력만 해도 하북 최대의 군벌로 불립니다. 삼천에 달하는 백마의종은 그 적수를 찾지 못했고, 오만의 정병을 보유하고 있지요.”
그러자 가후가 저수에게 물었다.
“원정의 불리함을 미루어볼 때 공손찬과 싸운다면 우리의 손실도 만만치 않을 것이오. 게다가 공손 가문에 공손찬만 있는 것은 아니지 않소?”
“그래서 흑산적을 이용하자는 것입니다. 흑산적과 공손찬을 서로 싸우게 만드는 것이지요.”
하북 최대 군벌이라 할 수 있는 공손찬과 수십만에 달하는 단일 세력으로는 최대의 규모를 자랑하는 흑산적이 격돌한다면 누가 이기던 회생 불가능에 가까운 타격을 입을 터였다.
문제는 어떻게 두 세력을 싸움 붙일 것인가에 관한 것이었다. 가후 역시 이 점을 정확하게 짚었다.
“공손찬과 흑산적 수괴, 장연이 바보가 아닌데 이겨도 상처 뿐인 싸움을 하려하겠소?”
“이 책략의 관건은 동탁을 이용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동탁은 낙양의 주인이며 근왕하고 있어 사실상 벼슬을 내릴 수 있는 자입니다.”
“설마 공손찬에게 벼슬을 주자는 것은 아닐 테고······. 그러면 흑산적 수괴, 장연에게 유주목 자리라도 주라 할 참이시오?”
저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만 된다면 그들 세력은 서로 건곤일척의 승부를 걸려 할 겁니다.”
저수의 말에 가후는 그를 향해 두 손을 모아 들었다.
“정녕 묘책이오. 저 선생께서 이리 대단한 책략을 가져오셨으니 이 가후도 군사 자리를 잃지 않으려면 분발해야겠소.”
“아닙니다. 제 사주평정지계는 이제 겨우 골자만 나온 것일 뿐 세부사항은 선생께서 도와주셔야 합니다.”
“그럼 자세한 내용은 나중에 다시 논합시다. 그럼 그 다음은 어찌 하오?”
“한 산에 두 마리 범이 살 수는 없는 법이지요. 기주에는 두 마리 호랑이가 있으니 그들 역시 상잔하게 하여야 합니다.”
“두 마리 범이라 함은······?”
“당연히 하북 최고의 명문이라 할 수 있는 원 씨 일족과 기주목 왕굉입니다.”
대국을 보는 저수의 안목은 정확했다. 원 씨 일족의 주인은 원소 본초. 아직까지는 큰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으나 분명 어딘가에서 군마를 기르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이미 황건 동란에서 보여준 그의 용맹과 지략은 그를 영웅이라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사세삼공’이라는 말 한마디로 모든 설명을 대신할 수 있는 명문가인 원 씨 일족의 후예이며 황건 동란 때, 단 한 번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천하 십삼주 전역에 자신의 이름을 떨친 원소.
그리고 기주목으로 실권을 쥐고 있는 백전연마의 명장 왕굉.
그들은 기주를 근거지로 하는 이상 언제고 한번은 부딪혀야 하는 사이였다. 작은 불씨만 던져줘도 결전을 벌일 것이고, 누가 이기든 큰 피해가 남을 게 뻔했다.
“병주, 유주, 기주까지 셋이니 나머지 한 주는 어디요? 설마 서량은 아닐 테고······.”
“청주입니다.”
저수는 가후의 물음에 청주 전역도를 두드리며 답했다. 그러자 여포가 물었다.
“청주라······. 왜 하필 청주요? 넓은 땅이라면 서량이 있고, 풍요로운 땅을 원한다면 연주를 노리는 것이 옳은 선택이라 할 수 있지 않겠소?”
서량은 서역과 교역할 천산남로를 끼고 있으니 땅이 척박하다 해도 큰 이익을 노릴 수 있는 땅이었다.
반대로 연주는 옥토가 지천으로 깔린 곳이며 조조의 가문, 즉 조부(曺府)의 땅을 밟지 않고는 어디든 갈 수가 없을 정도였다. 연주를 치는 것은 조조의 기반을 무너뜨리는 일이 될 터이니 여포에겐 어느 쪽이든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하지만 청주는 얘기가 달랐다. 황건 동란으로 무법천지가 되어버린 땅이기 때문이다.
“청주를 얻어야 하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째는 황건동란으로 청주의 원기가 크게 상하기는 했으나 그곳은 대대로 부유한 땅입니다. 이는 자초 선생께서 확인해주실 겁니다.”
저수는 단목영에게 발언권을 넘겼다. 단목영은 진상의 영수이나 본디 그는 유상의 후예였다.
그의 가문은 자공의 후예이며 그 터전이 청주와 서주 일대에 걸쳐 있었으니 그곳의 실정에 훤했다.
“소생이 어디까지나 소출만 두고 한 말씀 드리리다.”
단목영은 두 손을 모아 들며 말을 이었다.
“병주 전체의 한 해 소출보다 청주 일군의 소출이 더 많을 거요.”
단목영의 말에 병주 출신들은 말할 것도 없고, 서량 출신인 가후마저 입을 떡 벌렸다. 병주가 아무리 척박한 땅이라고 해도 천하 십삼주 중의 하나인데 어찌 병주 전체의 소출이 청주 한 개 군의 소출보다 적다니 믿기 힘든 얘기였다.
하지만 호구 수는 더 했다.
“놀라지 말고 들으시오. 병주의 호구수를 모두 합친 것보다 청주 평원군 하나의 호구수가 더 많소.”
단목영의 말에 병주와 서량 출신 인사들의 얼굴에는 짜증이 묻어났다. 호구수도, 소출도 천하 십삼주 중 하나인 병주가 청주의 일개 군에도 미치지 못하니 남방 사람들이 북방사람들을 얕잡아보는 것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뿐이었다. 이들은 마치 살이 토실토실 오른 먹잇감을 눈앞에 둔 범처럼 번들거리는 눈빛으로 청주 지도를 노려보았다.
“기주를 얻은 후에 청주를 얻어야 하는 두 번째 이유는 기주와는 경계를 맞대고 있으나 낙양과의 거리는 떨어져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저수는 서량 지도를 톡톡 건들며 말을 이었다.
“서량은 동탁의 근거지로, 그곳을 평정하려 든다면 이는 동탁과의 전면전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리 말하고 저수의 손길은 연주 지도를 어루만지고 있었다.
“연주는 분명 탐나는 땅이나 얻는다해도 실익이 적습니다. 연주는 빼앗기는 쉬우나 지키기는 힘든 땅입니다. 방어력이 높은 수비 거점이 없으며, 군국을 가릴 것 없이 조부에 우호적이니 연주를 얻는다면 대부분의 병력을 연주를 지키는데 써야 할 겁니다.”
연주 지도를 보며 여포 또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조조가 서주를 치러 출병할 때를 노려 연주를 취해보았던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어렵사리 연주를 집어삼키고도 조조의 대군이 회군하자 여포는 다시 연주를 내놓고 돌아서야만 했던 기억이 있었다.
“저 선생이 동탁과 경계를 맞대지 말자는 의도임은 익히 알겠소. 청주를 얻어야 할 마지막 이유나 들어봅시다.”
“마지막 세 번째 이유는 청주목 ‘초화’라는 자는 청주를 지킬 능력도, 의지도 없는 자라는 점입니다.”
저수의 말에 사람들의 시선이 태사자에게로 향했다.
태사자는 청주 출신이며 작은 군벌을 이끄는 임협이니 자사부와 관련된 것 또한 잘 알거라는 생각을 다들 했던 것이다.
그러자 사람들의 의도를 눈치 챈 태사자는 슬쩍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이렇게 병주, 유주, 기주, 청주를 평정하는 사주평정지계에 관한 설명이 막바지에 이르렀다. 저수는 사람들 앞에 서서 맺음말을 읊었다.
“여포군은 병주, 유주, 기주, 청주를 평정하여 기틀을 잡아, 지(地)를 취해야 합니다. 그런 연후에 맹장과 현사를 후대하여 천하의 영웅들을 여포 장군의 깃발아래 모이게 하여 인(人)을 취한다면 천시(天時) 역시 장군께 깃들 것입니다.”
저수의 말이 끝나자 무장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향해 읍을 하여 훌륭한 책문에 대한 예를 아끼지 않았다.
* * *
다른 자들과는 달리 태사자는 대청의 기둥에 기대어 생각에 잠겼다.
‘초화······. 무능하기로는 천하제일이다. 능력도 안 되는 자가 욕심만 꽉꽉 들어차서는 당치도 않은 자리를 꿰어 차고 있다. 공 태수가 청주에선 그나마 영웅이라 칭할 만 하나 청주의 주인이 될 그릇은 아니다.’
태사자는 여포에게 시선을 두었다.
‘여포는 분명 영웅이라 할 수 있으나 힘으로만 패업을 이루려 한다면 천하를 얻을 수 없을 터. 차별 없이 모두를 품에 안을 그릇이 되는지 알아봐야겠다.’
태사자는 청주에서 주조사(奏曹史)로 봉록을 받았던 관인이었다. 원래 주조사는 현부터 향(鄕), 정(亭), 리(里)에 이르기까지 군(郡)에 바치는 상소를 모아 상주하는 일을 맡은 관리다. 뿐만아니라 군의 상소를 조정에 올리는 일도 주조사의 소관이었다.
그래서 본디 주조사는 문관으로 취급하였으나 동한 말, 도처에 도적이 출몰하여 길을 오가는 것이 쉽지 않으니 무예가 뛰어난 자가 아니면 그 일을 맡을 수가 없었다.
태사자와 같이 군소군벌의 주인이나 협객들이 주조사의 일을 맡았다.
태사자는 청주 동쪽 끝, 동래군의 주조사였기 때문에 동래군의 상소를 조정에 전하기 위해서는 청주의 여러 군을 지나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청주 공략에 있어 태사자의 협력이 더해진다면 여포군이 청주를 어렵지 않게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제 관건은 여포가 청주를 얻는다해도 차별하지 않고 품을 수 있을 것인가에 있었다.
태사자의 시선이 장내의 인사들 하나하나를 훑고 지나가다가 저수에게 멈췄다.
“여 장군, 소장이 한 말씀 올려도 되겠습니까?”
태사자가 여포에게 물었다. 그러자 여포는 웬 일이지 싶었다.
“말씀하시오.”
“저 선생께서 제안한 책문에 대한 감회를 묻고 싶습니다.”
“저 선생의 책문은 시대의 물음에 답한 명문이오. 우리가 향후 어떤 일을 준비하고, 행해야 하는 지 명확한 목표를 제시해주었소.”
“그러면 다시 묻겠습니다. 지난 번 논공행상에서 유독 저 선생에게만은 벼슬을 내리지 않으셨는데 그 까닭이 있습니까?”
태사자의 질문은 좌중의 시선을 휘어잡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저수는 몇 번의 전투에서 군대를 지휘하는데 탁월한 수완과 능력을 보여주었다. 가후가 보여준 신묘한 책략이 실제로 전장에서 펼쳐질 수 있었던 것은 모두가 저수의 공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여포는 지난 번 논공행상 자리에서 태사자의 말처럼 그만 쏙 빼놓고 부하들에게 벼슬을 주었던 것이다.
다른 이들 역시 이 점을 의아하게 여기고 있었으나 논공행상이 끝나고 이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은 여포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이기 때문에 말을 아끼고 있었다.
그러자 여포는 사람들 앞에 섰다. 사람들은 그가 무슨 말을 할까 궁금해하며 그의 입을 주시하고 있었다.
저수 역시 마찬가지였다. 여포가 왜 자신에게만 벼슬을 내리지 않았는지 궁금해 미칠 지경이었다. 그런데도 직접 물어보지 않은 것은 사람들에게 벼슬에 욕심을 부리는 것처럼 비춰질까 걱정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태사자가 간지러운 곳을 긁어주니 속이 시원했다. 저수는 입을 꾹 다물고 여포의 답을 기다렸다.
“저 선생의 공로는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요. 그건 나도 잘 알고 있소. 그런데도 저 선생에게만 벼슬을 내리지 않았던 것은 저 선생이 감군의 역을 맡고 있기 때문이오.”
“이, 태사자는 장군의 말씀이 이해되질 않습니다. 벼슬을 내리는 것과 감군 역이 무슨 상관이 있단 말입니까?”
“그야 당연히 상관이 있소. 감군은 전군을 통솔하는 지휘관이오. 내가 병주목이나 보국 장군으로서 내릴 수 있는 속관 벼슬로는 지휘관의 위엄이 살지 않소.”
이미 고순이나 엄상 등이 속관 벼슬 중에서는 높은 벼슬이라 할 수 있는 교위, 장사, 사마, 군사마 등의 벼슬을 얻었다. 그런데 그들을 지휘해야 할 저수가 같은 벼슬을 가진다면 위계가 바로 서지 않을 터였다.
여포의 말에 공감하면서도 태사자는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그래도 사람의 기분이라는 것이 그런 것이 아닙니다. 공이 있는데 누구는 포상하고 누구는 하지 않는다면 이를 어찌 공평하다 할 수 있답니까? 장사 벼슬이라도 내렸어야 옳았습니다.”
태사자의 말은 마치 여포를 나무라는 듯했기 때문에 무장들 중 몇몇은 인상을 찌푸리며 도를 넘은 태사자의 언행을 탓했다.
분위기가 험악해져 당장이라도 싸움이 날 듯했다. 그러자 여포가 나섰다.
“상개야, 내 방에 가서 붉은 상자를 가져오도록 해라.”
여포는 상개에게 심부름을 시키고는 태사자를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태사 장군 덕분에 저 선생께 좋은 선물을 할 때를 놓쳐버리게 되었구려.”
하지만 태사자는 여포의 눈빛을 담담히 받아넘길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