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Follicle Exhibition RAW novel - Chapter 12
12화 적장을 베고 무명을 떨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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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보요!”
호복을 입은 전령이 여포군 진영 안으로 들어왔다. 그러자 여포는 잔뜩 찌푸린 얼굴로 전령에게 턱짓을 하며 말했다.
“호복을 입은 자가 어찌 전령을 사칭하느냐?”
여포가 묻자 전령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뭐라고 쉴 새 없이 떠들어 댔다. 오환의 말이었기에 고순이 나섰다.
“주군, 이자는 대의 오환대인 철탈의 부하라고 합니다. 삼군의 오환병들이 상곡의 사신단을 노리고 군대를 움직였다 합니다.”
삼군 오환이란 요동속국, 요서, 우북평에 군락을 이루고 있는 오환족을 가리키는 말이다.
“설마 장양 형님이 오환의 사신단을 호위하기 위해 대로 가신 것은······. 삼군 오환의 병력이 얼마나 되는지 물어보아라.”
여포의 명에 고순은 전령과 오환말로 몇 마디를 나누더니 급히 아뢰었다.
“천인장 셋이 나섰다 합니다.”
고순의 대답에 여포의 표정이 종잇장처럼 구겨졌다.
‘낭패다! 삼천의 오환병을 기백명의 군사로 어찌 당해낸단 말인가!’
“출병을 준비하라. 대군으로 간다!”
여포가 돌아서며 말하자 성렴이 그를 만류했다.
“대형, 군사를 함부로 움직이면 그 죄가 얼마나 큰지 몰라서 이러오?”
여포는 성렴의 말뜻을 모르는 바는 아니나 하비성에 고립되었을 때 오직 장양만이 열일을 제쳐두고 달려왔던 일을 생각하면 가만히 두고 볼 수가 없었다.
“칫!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
여포를 필두로 팔 속의 장수들이 말을 몰고 달려 나갔다.
* * *
평성의 대평원으로 이어지는 운중산 협곡.
두두두두-!
협곡의 고요를 깨뜨리는 일련의 무리가 있었으니 십리하를 따라 달려온 장양과 이백여 기의 병주병들이었다.
“햐아-! 햐아!”
그들 하나하나의 눈빛이 대단하여 마치 한 무리의 이리 떼가 움직이는 듯했다.
“장군, 평성 쪽에서 수십여 기의 인마가 이곳을 향해 달려오고 있습니다.”
부관 견척의 보고에 장양의 검미가 꿈틀댔다. 이내 눈앞으로 수십에 이르는 한 무리의 인마가 달려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백기를 들고 있었기에 장양의 손을 들어 부하들에게 속도를 낮출 것을 명했다.
“공격하지 마시오! 대군 오환에서 왔소!”
백기를 든 오환병이 소리치며 달려왔다.
그리고 그 뒤를 따라 연이어 수십의 인마가 수십 보를 두고 장양과 마주 섰다.
“어느 분이 장양 장군이시오?”
체구도 다른 자들에 비해 작아 보이는 데다가 목소리까지 가는 자가 장양을 찾았다.
“어찌 날 찾소?”
“장군, 지금 삼군 오환의 무리들이 장군을 노리고 있으니 이 길로 회군하십시오.”
꽤나 다급한 말투였다.
“처음 보는 자의 말을 어찌 믿는단 말이오? 그리고 삼군 오환의 병사들이 어찌 장성을 쉬이 넘을 수 있겠소?”
“장성은 무너져도 보수를 하지 않으니 있으나 마나 한지 오래요. 게다가 형 교위가 삼군 오환과 내통해 언제든 거용관의 문을 열어주니 천하구새의 이름이 아깝소.”
하지만 장양은 반박할 바를 찾지 못했다.
“시간이 없습니다, 장군.”
“흥! 오관을 바로 갖추고 말을 해도 믿기 어려운 판에 거짓 모습으로 하는 말을 누가 믿겠느냐?”
그러자 상대는 털모자를 벗으며 긴 머리를 풀어헤쳤다.
“병주 제일 무장의 눈은 못 속이겠군요. 대군 오환대인 철탈의 딸, 호희라 합니다.”
호희의 미색에도 장양은 흔들리지 않았다.
“철탈이 이 몸을 어찌 보았기에 계집을 보내 말을 전한단 말인가?”
장양은 되레 기분이 나빠 탄식하듯 말했다.
“한인은 격식을 차리는 데 힘을 뺀다 하더니 그 말이 틀리지 않습니다.”
“뭣이라?”
“화를 내시려거든 안문이든 정양이든 가셔서 내시지요. 저도 고이 따라가 드리리다.”
“계집은 베지 않는다. 허나 계속 지껄인다면 그 때는 이 약조를 지킬 수 없을 것이다. 가라!”
호희는 애가 탔다. 언제 삼군 오환의 병사들이 들이칠지 모르는데 장양이 자신의 말을 믿어주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그녀의 우려는 현실로 나타났다.
* * *
호희의 무리가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일천여 에 가까운 오환병들이 흙먼지를 일으키며 달려왔다.
“적병이 너무 많습니다. 차라리 말을 버리고 운공산에서 방어전을 펼치심이······.”
부관의 말에 장양의 눈동자가 빠르게 흔들렸다.
“놈들에게 등을 보인다면 그때부터 우리는 사냥감이 되는 것이야!”
아군보다 몇 배나 많은 병력을 상대로 등을 보인다는 것은 위험한 짓이었다.
“병주 사내들이 어찌 싸움을 피하겠는가! 돌파하라!”
장양이 고집을 꺾지 않자 부관 견척은 병사들에게 고함쳤다.
“전군, 응전하라!”
명령이 떨어지자 장양의 군사들은 두려운 기색 하나 없이 진형을 이루어 달리기 시작했다.
샤샤삭!
약속이나 한 것처럼 말을 타고 달리는 와중에도 양측은 일제히 화살을 쏘아 날렸다.
투두두둑!
화살비가 쏟아지고, 몇몇이 화살에 맞아 거꾸러진다.
곁에서 함께 달리던 동료가 말과 뒤엉켜 굴러도 결코 멈추지 않는다.
초반의 승기는 놀랍게도 장양의 병주병들에게로 기울었다. 하지만 초반 돌파력이 꺾이자 수적 열세를 이기지 못한 병주병들이 하나둘씩 쓰러져 갔다.
죽어나가는 병사들을 볼 때마다 장양은 더 힘을 내어 적진을 헤집었다. 그러다 그만 너무 깊숙이 들어가 부하 몇몇과 함께 고립되고 말았다.
“헉! 헉!”
장양은 이 빠진 검을 들어 전방을 겨누며 연신 거친 숨을 몰아쉰다.
“촤하아!”
장양은 기합을 터뜨리며 오환돌기 한 기를 말과 함께 그대로 베었다.
쏴아아아!!!
그 틈으로 피비가 쏟아지고, 그 피를 뒤집어쓰기도 전에 장양의 검은 또 다른 먹잇감을 향해 날아들고 있었다.
검극을 앞세워 오환돌기 하나와 그대로 맞부딪쳤다.
장양의 검이 마갑 사이를 파고들자 말은 구슬픈 울음소리와 함께 바닥을 나뒹굴었다.
말에 타고 있던 오환돌기는 바닥에 몇 번이나 짓이겨져 꼼짝도 않았다.
장양의 몰골도 말이 아니었다.
말의 가슴팍을 꿰었던 검은 검신이 부러져 반검(半劍)이 되었고, 검을 쥐었던 손목도 부러진 듯 기이하게 꺾여 있었다.
대지에 박힌 기둥 같던 두 다리도 힘없이 구부러져 이제는 이대로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얼마나 남았을지 모를 수하들을 기다리든지, 아니면 자신의 목을 취할 오환병들의 칼을 기다리든지······.
* * *
여포는 선두에서 말이 입에 거품을 물 정도로 치달려 장양의 군대와 오환병들의 전장에 당도했다.
병주병들의 패색이 짙어보이는 전황을 확인하자마자 여포는 활대를 뽑아 들었다.
핑! 핑핑!
여포 혼자서 퍼부은 화살비에 오환병들이 픽픽 쓰러지며 길이 났다. 여포는 마지막 화살을 활이 부러질 듯 당겼다가 쏘아냈다.
시위를 떠난 화살은 한 줄기 빛이 되어 날아갔다.
쿠왁!!!
화살은 오환돌기 하나를 그대로 꿰뚫었는데 그 힘이 어찌나 대단하던지 화살이 가는 방향으로 오환돌기의 몸뚱아리가 던져지는 듯했다.
여포는 한 손에 방천화극을 쥐고 달려 나가 청랑한 일기가성과 함께 휘둘렀다.
“하아~!!!”
단 일수에 오환병들이 피비를 부리며 사방으로 튕겨져 나갔다. 주위의 오환병들은 절대적인 병력의 우세에도 불구하고 겁을 집어먹고 뒷걸음질 쳤다.
“내가 여포 봉선이다! 누구든 목숨이 아깝지 않은 자, 내게 덤벼라!”
여포의 포효에 약속이나 한 것처럼 일백에 달하는 당예기(唐猊騎)가 오환병들과 맞부딪쳐 갔다.
투두두두!
여포와 부하 장수들을 앞세운 일백 당예기의 위력은 실로 엄청났다.
“여포군이다! 당예기다!”
이리저리 흩어져 있던 장양의 병사들도 당예 깃발을 보고 모여들었다. 모여든 자들은 기십에 불과했지만 자기들이 해야 할 바를 알고 있었다.
“성렴, 위월! 병사들을 이끌고 장 사부를 구하라! 나머지는 나를 따르라. 적장을 치겠다!”
여포는 이곳의 요서 오환병들을 이끄는 지휘관을 찾아 나섰고, 성렴과 위월은 군사들을 이끌고 장양을 찾아 나섰다.
여포는 수하 몇 명만을 거느리고 오환병들의 지휘관을 찾아 곳곳을 헤집고 있었다. 여포는 저 멀리 후방에서 전투의 형세를 살피는 듯한 자들이 시야에 들어오자 고순을 불렀다.
“고순, 저자가 지휘관이냐?”
고순은 여포의 방천화극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모자에 붉은 수실이 달려 있는 걸 보니 요서 오환족의 천인장인 듯합니다.”
적장을 확인한 여포는 그들에게로 말머리를 돌렸다.
‘시간을 끌수록 병력이 더 상하겠지. 적장을 베어야 끝날 싸움이라면 이 화극으로 싸움을 끝내주마.’
고순의 말이 맞는지 여포가 그들을 향해 달리기 시작하자 오환병들이 앞길을 가로막았다.
하지만 화극을 손에 든 여포를 막을 수 있는 자는 없었다.
* * *
“저 놈들은 대체 누구란 말이냐?”
요서 오환의 천인장, 봉평은 전투를 관전하다가 급작스럽게 뛰어든 여포군을 보자 눈이 휘둥그레졌다.
“장양을 구하러 온 자들인 듯싶습니다. 일백여 기 정도에 불과하니 크게 걱정하실 바는 아닌 줄로 압니다.”
부관이 아뢰자 봉평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쉽게 볼 자들이 아니다. 아군의 진세가 무너지고 있지 않느냐!”
봉평은 칼을 뽑아 들며 말을 달렸다.
“이놈아! 목을 내놓아라!”
봉평이 고개를 돌려보니 큰 체구의 젊은 사내가 한 자루 방천극을 들고 맹렬하게 달려오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봉평이 시키지도 않았는데 부하 장수 하나가 여포를 향해 말머리를 돌리고는 달려 나갔다.
이야아아압!
거창하게 기합성을 내질러 여포에게 잔뜩 기대감을 갖게 해놓고는 여포의 방천화극이 매섭게 가른 궤적을 따라 몸이 갈라지며 봉평의 부하 장수는 기합처럼 요란한 비명을 내질렀다.
“네놈 수하들은 죄다 허풍선이로구나!”
여포가 크게 소리치자 봉평의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내 칼을 받아라!”
봉평의 말은 오환말이라 여포가 알아들을 리 없었다. 그런데 그걸 또 굳이 고순이 옮겨줬다.
“지 칼을 주겠답니다.”
순간 여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 뜻이 아니지 않나?’
하지만 그건 생각뿐, 이미 몸은 달려오는 적장을 반기고 있었다.
챠하아~ 챠!
여포의 재촉에 지친 말이 게거품을 물며 달려 나간다. 이내 여포와 봉평은 서로의 사정권 안으로 뛰어들었다.
컁~!!!
일수를 나누는 순간 여포의 화극과 봉평의 칼이 맞부딪치며 서로를 크게 밀어냈다. 순식간에 몇 합을 주고받은 봉평은 내심 경악을 금치 못했다.
‘칫! 대체 어떻게 된 놈이란 말인가!’
봉평은 부들부들 떨리는 손을 감추려 애썼다. 여포가 휘두른 방천화극을 몇 차례 막은 것만으로도 그의 왼손은 이미 손잡이를 쥘 수 없을 만큼 엉망이 되어 있었다.
그때쯤 봉평에게 구원의 빛이 쏟아졌다. 오환돌기 십여 기가 여포를 향해 돌진하는 사이 봉평이 줄행랑을 놓았다.
“쉽게 보내줄 줄 알았더냐! 으라아아아~!!!”
여포는 마치 불덩어리를 토해내는 듯한 기합성을 터뜨리며 방천화극을 휘둘러 갔다. 오환돌기의 수급들이 둥실둥실 떠오르는 무시무시한 광경에 봉평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저! 저! 저! 괴물 같은······!!! 도망쳐야 한다! 저자에게서 되도록 멀리······.’
봉평은 여포의 신위에 기겁을 하며 미친 듯이 말 엉덩이를 후려쳤다.
“주군!”
여포는 고순의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황급히 시선을 옮겼다. 고순은 봉평의 측면을 향해 맹렬한 기세로 달려가고 있었다.
고순은 눈 깜짝할 사이에 봉평과의 거리를 좁혔다. 그리고 그의 주먹이 봉평의 넓적다리에 작렬했다.
우아아아악!
봉평은 고통에 의한 비명이라기보다는 놀람과 공포에 짓눌린 듯한 비명을 내지르며 말과 함께 허공을 날았다.
이 때를 놓치지 않고 여포의 방천화극이 청량한 일기가성과 함께 뻗어나갔다.
“하아~!!!”
창끝이 팽이처럼 돌며 봉평의 가슴팍을 단숨에 꿰뚫었다.
“이 여포가 적장의 목을 베었다!”
여포는 방천화극에 꿰인 봉평의 수급을 높이 치켜들자 곳곳에서 병주군의 함성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멀리서 여포의 모습을 지켜보던 호희는 부하들을 이끌고 사라졌다.
* * *
평성 현부.
현부는 여기저기 잔뜩 낡아 보수가 시급한 상황이었지만 밤이슬을 피하기엔 군막보다 몇 배는 낫다. 사상자가 많았던 탓에 장양과 여포는 이곳을 군영으로 삼았다.
현부가 크지 않은 탓에 부상자들이 안에서 쉬고, 움직일 만한 자는 죄다 밖에 쳐놓은 군막에서 밤을 보냈다.
여포는 장양이 잠든 걸 본 후에야 비로소 현부를 나섰다. 그러자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위월이 다가왔다.
“밤인데 한잔 안 할 거요?”
위월은 입안에서 혀를 퉁겨 술 따르는 소리를 만들었다. 그러자 여포는 쓴웃음을 지으며 그를 따라 나섰다.
* * *
현부에서 조금 떨어진 마을의 초입.
여포가 멀리서 보아하니 당예기 수십여 명이 십여 명의 사람들을 둘러싸고 있었다.
꼭 포위를 한 것처럼 오도 가도 못 하게 하는 듯했다.
살짝 언덕진 곳에서 내려다보니 아주 가관이다. 싸움이 난 듯한데 당예기 병사 몇 명이 호복을 입은 소년 하나를 당해내지 못하고 있어 여포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성렴이 여포의 눈치를 살피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새로 들어온 놈들은 영 실력이 글렀소. 어린놈 하나를 못 당해서 저리 쩔쩔 매니 원······.”
“이놈아, 잘 좀 봐봐라. 상개랑 붙여놔도 볼만하겠구나.”
여포는 호복 소년의 실력이 상개와 맞먹을 거라 여겼다. 하지만 성렴의 생각은 달랐다.
“대형, 그 뭐 말도 안 되는 소리요? 상개가 암만 막내라도 애랑 비교를 하면 어쩌오! 대형, 따라오우. 가까이서 보면 그런 말 못 할 거요.”
“그래, 가까이 가서 한번 보자. 내 말이 맞는지, 네 말이 맞는지.”
여포와 성렴이 나서자 바다가 갈라지듯 병사들이 좌우로 물러섰다.
앳된 얼굴의 호복 소년은 여포를 보자마자 대뜸 삿대질을 하며 유창한 한어 실력을 뽐냈다.
“이 약해 빠진 놈들의 대장이 너냐?”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고 호복 소년은 여포를 몰라보고 도발을 해왔다. 그러고는 덤벼보라는 듯 손가락을 까딱였다.
이는 명백한 도전이었다. 하지만 여포보다 성렴이 화가 난 듯했다.
“대형, 나설 거 없소. 저런 어린놈에게 하늘 위에 하늘이 있음을 알려주고 오리다.”
성렴이 발끈하며 튀어나가려 하자 여포는 솥뚜껑 같은 손을 들어 그를 막았다. 여포는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머금으며 호복 소년의 앞에 섰다.
호복 소년은 앳된 얼굴에 걸맞지 않게 제법 덩치가 있었다.
“몇 살이더냐?”
“그건 알아 뭘 하려느냐, 이 덩치만 큰 놈아! 어서 덤벼라! 약해 빠진 이 놈들처럼 바닥을 기어 다니게 해주마.”
“어린놈이 입이 걸구나.”
더 말할 필요가 없다는 듯 여포는 호복 소년을 향해 손가락을 까딱였다. 여포가 덤비라는 시늉을 해보이기가 무섭게 호복 소년이 땅을 박차고 날아올랐다.
호복 소년은 몸을 비틀며 제법 높이 뛰어 올랐다가 반월을 그리며 발로 내리찍어 왔다. 제법 실력이 있을 거라는 예상은 했지만 그 움직임에는 군더더기가 없었고, 날래기로는 흡사 한 마리 범을 보는 듯했다.
그러나 상대는 여포였다.
여포는 왼손을 크게 휘둘러 호복 소년의 발을 막았다가 튕겨 버렸다. 반탄력이 어찌나 대단하던지 호복 소년은 허공에서 몇 번이나 공중제비를 돈 후에야 지면에 내려설 수 있었다.
그 힘에 놀라 겁을 먹을 법도 했지만 호복 소년은 용수철처럼 지면을 박차고 여포에게로 쏘아졌다.
마치 칼춤을 추듯 권각이 쇄도했다. 하지만 여포는 여유롭기만 했다. 고순과 맞붙었을 때를 생각하면야 이 정도는 그야말로 애들 장난이기 때문이다.
‘이 움직임은 분명 타고난 것이나 아직은 다듬지 않은 옥석일 뿐이다.’
여포가 보기에 이 호복 소년의 공격은 다분히 감각적이었다. 좋은 스승을 만나 몇 해만 수련을 거친다면 천하에 이름을 날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라 여겼다.
여포는 호복 소년을 망가뜨릴 생각이 없었던 탓에 공격 한 번 하지 않고 왼손만으로 죄다 막아내고 있었다.
십여 합 정도를 막아낸 여포는 이제 더 볼 건 없다는 듯 물러나 뒷짐을 쥐고 섰다. 여포가 혀를 차며 고개를 설레설레 가로저었다.
그러자 호복 소년은 깊은 모욕감에 치를 떨며 달려들었다.
여포는 슬쩍 옆으로 빠지며 공격을 피하고선 호복 소년의 마빡에 손가락을 퉁겨 때렸다. 흔한 딱밤이지만 여포가 하면 다르다.
여포의 손가락이 호복 소년의 이마에 작렬했다.
따악!
“아아악!”
찰진 소리와 동시에 호복 소년은 비명을 지르며 이마를 붙잡고 바닥을 때굴때굴 굴렀다.
한 대 때린 거 가지고는 성이 차지 않는 모양인지 여포는 한 손으로 호복 소년의 멱살을 잡아 번쩍 치켜들었다. 그러고는 다른 손으로 다시 중지를 구부려 엄지에 걸었다.
이를 본 호복 소년이 기겁하며 두 손을 번쩍 들었다.
“항복! 항복! 때리지 마시오. 내가 졌소!”
호복 소년은 여포의 입꼬리가 호를 그리는 걸 보고는 뭔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이 전신을 훑고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