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Follicle Exhibition RAW novel - Chapter 153
152화 원소의 이 효장(梟將)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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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원소군이 함성을 내지르자 학맹은 뭔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리고 그 불길한 예감은 현실로 드러났다.
맞은편에서 일련의 무리를 이끌고 달려오는 장한을 보았다. 흔히 ‘검창’이라 불리는 ‘피(?)’를 비껴 든 안량이었다.
안량과 문추를 직접 본 적은 없으나 학맹은 안량을 한 눈에 알아보았다. 원소군에도 피의 고수가 있는데 그가 바로 안량이었다.
피를 쓰는 고수는 흔치가 않은데 원소군에서 피를 들고 나선 장수가 있다는 것은 그가 곧 안량임을 의미했다.
게다가 이토록 무시무시한 기도를 풍기는 장수라면 안량이 아닐 수가 없었다. 안량과 문추가 무기를 바꿔 들고 나오지 않은 다음에야······.
‘저자가 바로 안량이로구나. 저자를 베어 내 이름을 크게 날리리라!’
학맹은 안량을 베어 자신의 이름을 천하 십삼 주에 날릴 생각에 조금 전 느꼈던 위압감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네놈이 안량이렷다?”
학맹이 고함을 치자 안량은 비껴든 피의 검극을 앞세워 학맹을 가리켰다.
“내 이름을 알고도 나와 대적하려 들다니 그 용기가 가상하구나!”
“네놈 따위가 뭐라고······.”
“네놈의 목숨을 받아갈 사람이다!”
학맹과 안량의 격돌이 시작되고, 첫 합이 오갔다. 그렇게 몇 합이 이어지며 학맹의 대도와 안량의 피가 맞부딪혔다. 그 때마다 굉음과 함께 불똥이 튀었다.
“이놈! 제법이구나!”
안량은 학맹이 자신의 일합을 버티지 못하리라 여겼었다. 하지만 몇 합을 나누고 보니 제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학맹은 달랐다.
‘아무래도 오늘 몸 상태가 영 좋지 않구나! 이런 몸 상태로는 내 실력을 모두 펼칠 수 없다. 이곳은 내 전장이 아니야!’
학맹은 안량과 몇 합을 겨루고 그의 상대가 되지 못함을 깨달았다.
‘빠른 결정만이 나를 지킬 수 있는 길이지. 지금이 아니면 기회가 없을 터.’
학맹은 안량과 싸우다 돌연 말머리를 돌려 줄행랑을 놓기 시작했다.
“가자!”
학맹은 마치 적진을 향해 돌진하는 것처럼 퇴각을 시작했다.
“이놈! 싸우다 말고 어딜 가느냐?”
“이 학맹 백절이 졸개 따위와 언제까지 어울려 줄 줄 알았더냐?”
“뭐라? 졸개? 이놈~!!!”
안량은 학맹을 쫓아 말을 몰며 학맹의 졸개들을 도륙냈다.
“비켜라, 비켜!”
안량은 어떻게든 학맹을 쫓아가 수급을 얻으려 했다. 하지만 졸개들의 방해가 아니더라도 학맹을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내빼는 거 하나는 천하제일이로구나!’
안량이 무예로는 학맹보다 월등이 우위에 있으나 그를 따라잡지 못하는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말이었다. 안량은 학맹을 뒤쫓아 달리며 그의 말을 눈여겨보았다.
‘거산자? 가히 천하 명마로다.’
무장이 마음에 두는 것은 첫째가 보검이요, 둘째와 명마이니 무장과 명마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였다.
하지만 안량에게는 명마가 없었다. 워낙에 안량의 체구가 장대하다보니 이를 감당할 수 있는 말을 구하는 것부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명마가 흔한 것이 아니었다. 그런 까닭에 안량은 그저 자신을 태우고 달릴 수 있는 말을 구하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할 뿐이다.
사실상 명마라 하면 서역의 한혈마 정도는 되어야 했다. 문제는 서역과의 교역은 서량이 독점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니 이곳까지 올 명마가 없는 것이다.
학맹의 거산자는 원래 화웅의 것이었다. 거산자는 산자거황의 피를 이어받은 품종으로 서역에선 명마 취급도 못 받는 말이나 안량의 말로는 도저히 따라잡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안량이 학맹을 따라잡을 수 없는 두 번째 이유는 학맹이 그야말로 ‘도주의 최강자’이기 때문이다.
학맹은 스스로를 ‘육전의 최강’이라 칭하지만 무예는 사실 안량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하지만 회피와 기동에 있어서는 최강이라는 이름이 아깝지 않았다. 게다가 도망치는데 있어서 냉철하고 정확한 판단력을 가지고 있으며, 지금처럼 도망칠 때 전장에서 갑주를 벗어던지는 과감성도 가지고 있었다.
“적군이 도망친다! 추살하라!”
학맹을 놓친 안량은 그대로 전진해 학맹의 졸개들을 추살하는데 여념이 없었다. 하지만 학맹의 졸개들도 도망치는데는 날래기 짝이 없었다.
학맹의 졸개들은 학맹을 쫓아 퇴각하기에 이르렀는데 이 모습을 지켜보던 왕굉군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학맹군이 안량군에 쫓겨 전장을 이탈하는 모습은 왕굉군에 충격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다. 원소군 전열을 크게 우회해 원소군의 좌측을 공략했던 왕창군의 깃발이 꺾였다. 그리고 문추가 왕창의 수급을 대도에 꽂아 치켜들고 달려 나오자 왕굉군이 술렁였다.
안량과 문추가 어깨를 나란히 한 채로 선봉에서 왕굉군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의 뒤를 따라 원소군 전체가 추행진을 이루어 왕굉군을 향해 뻗어나갔다.
* * *
왕굉군의 좌우 선봉이었던 학맹과 왕창이 무너지자 결국 전풍이 우려하던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왕굉군은 전의를 상실했고, 안량과 문추를 앞세운 원소군의 공세를 당해내지 못했다.
전풍의 예상대로 사기가 꺾인 왕굉군은 원소군보다 병력이 훨씬 많음에도 불구하고 제각기 흩어져 제 살 길을 찾아 뒤엉켰다.
혼란을 수습할 명령체계가 바로 서지 않았고, 왕굉에 의해 복속당한 호족가의 사병들은 그를 위해 목숨 걸고 싸우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총사! 왕창 장군이 전사했습니다.”
이제야 왕굉은 아들, 왕창의 전사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왕굉은 아들을 잃은 슬픔을 느낄 새가 없었다.
“응전하라! 전군, 응전하라!”
왕굉은 칼을 뽑아들고 병사들을 독려했다. 비록 통일된 명령체계가 없어 병력을 유기적으로 움직일 순 없지만 어쨌든 숫자는 왕굉군이 원소군의 우위에 있었다.
“총사! 전위군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좋지 않은 소식이 전해졌지만 왕굉은 오히려 다행이라 여겼다.
‘아직 피해는 그리 크지 않다. 어떻게든 이 혼란만 수습한다면 한 번 판세를 뒤집을 수 있다.’
왕굉이 그리 여기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전위군이 무너진 것은 안타깝지만 그들의 수는 기껏해야 수천에 불과했다. 전위군이 전멸당한다고 해도 여전히 왕굉군의 병력은 원소군의 병력을 압도할 정도로 많기 때문이다.
“천홍, 방적! 각기 군사 이천을 이끌고 중군을 보강하라. 삼채, 적만! 좌우군을 정비해 반전하라!”
전위군 중 전열의 일부와 좌, 우군은 왕굉의 병사들로만 구성되어 있었다. 그 수는 적으나 단일 부대인만큼 빨리 진정시킬 수 있을 터였다. 혼란에 빠진 그들을 재정비해 반전을 꾀하려 했던 것이다.
반면에 중군은 그 수는 많으나 호족들의 사병들이 주를 이루고 있어 혼란을 수습하기가 쉽지 않았다. 전풍이 우려하던 것도 이것이었다.
하지만 전풍은 떠난 지 오래고 이제와 후회한들 때는 이미 늦었다. 그저 넘어간 승기를 가져오기 위해 안간힘을 쓸 뿐.
왕굉의 명에 휘하 장수들이 움직였다. 하지만 그들 중 적만이라는 장수만은 왕굉의 명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왕굉의 곁으로 가 걱정스런 눈빛을 거두지 못한 채 물었다.
“총사, 저희를 모두 내보내시면 지휘부의 호위병력이 일천 밖에 남지 않습니다.”
전투를 벌이는데 있어 적병을 얼마나 사살하느냐도 중요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것은 적장을 베거나 사로잡는 일이었다.
병력과 병력이 부딪히면 시간이 지날수록 사상자의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가게 되어 있었다.
사상자들이 적병들이라면 모를 일이나 아무리 승기를 잡고 몰아붙이는 상황이라고 해도 아군의 희생을 피할 수는 없는 법. 이 시대의 싸움이란 어떻게든 적장을 쳐서 싸움을 빨리 끝내는 것만이 목적이 되는 시기였다.
때문에 총사를 호위하데 병력의 상당부분을 할애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왕굉에게서 명을 받은 장수들은 모두가 왕굉의 호위군 소속이었다. 정예 중의 정예로만 구성된 오천의 호위병 중 사천이 임무를 받고 이 자리를 뜬다면 왕굉의 곁에는 일천의 호위병 밖에 남지 않는 것이다.
“중군이 그리 쉽게 뚫리지는 않을 것이다.”
왕굉은 그 때까지만 해도 적만을 빨리 보낼 생각이었다. 하지만 적만을 등 떠밀어 보내기도 전에 또 다시 비보가 날아들어다.
“총사! 견가군이 내응하여 아군을 공격하고 있습니다!”
“뭣이라? 견가놈들이 원소와 내통하고 있었단 말이냐?”
왕굉은 예상치도 못한 일이 벌어지자 머리가 어지러워 하마터면 낙마할 뻔했다. 적만이 그를 부축하지 않았다면 낙마를 면치 못했으리라.
“적만아, 호위병 전부를 이끌고 가서 견가군을 참살하라!”
“호위병을 어찌 모두 뺀다하십니까?”
“적병보다 무서운 것이 내응한 놈들이다. 그들을 빨리 처리하지 않으면 반전의 기회가 없느니라.”
“차라리 퇴각해 대오를 정비하심이 어떠신지요?”
적만의 진언에도 불구하고 왕굉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대로 밀리면 호족들의 군대를 통제할 수 없을 것이다. 어떻게든 재정비해서 반전을 꾀해야 한다. 오! 다행히 학맹이 오고 있구나! 학맹에게 호위를 맡길 것이니 넌 어서 견가군을 쳐라!”
학맹이 오는 모습을 보고 왕굉은 한 시름 놓았다 싶었다. 적만도 학맹이 오자 군대를 이끌고 배신한 견가군을 공격하러 떠났다.
“학맹! 어서 오너라!”
학맹이 맹렬한 기세로 달려오자 왕굉은 손을 들어 그를 반겼다. 그런데 학맹은 왕굉을 쳐다도 보지 않고 그대로 스쳐 지나갔다.
‘저 놈이 대체 왜 저런단 말이냐?’
왕굉은 학맹의 이런 행동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잠깐 당황해 멍하니 있는 사이 학맹과 졸개들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뒤이어 맹렬한 기세로 안량이 달려오고 있었다. 이천여 기의 기병들을 이끌고 학맹군의 뒤를 쫓아오는 길이었다.
안량군이 왕굉의 시야에 들어왔다는 것은 곧 중군이 무너졌음을 의미하는 것. 그리고 또 한 가지는 학맹이 이 방향으로 도망쳤기 때문에 왕굉의 위치를 안량에게 알려준 셈이라는 점이다.
우연인지 아니면 자신이 무사히 퇴각하기 위해 왕굉을 희생양으로 삼은 것인지 진실은 오직 학맹만이 알 것이다.
안량은 왕굉을 보자마자 학맹을 쫓는 걸 멈추고 왕굉을 향해 달려들었다. 적장이 눈앞에 있는데 장수 따위를 쫓아 무엇 하겠는가. 안량의 창끝은 왕굉을 향했다.
“적장 왕굉은 내 창을 받으라!”
왕굉은 크게 당황해 말머리를 돌렸다. 호위병력 대부분을 내보낸 왕굉의 곁에는 고작 수십여 기에 불과한 호위병들만이 남았을 뿐이었다.
왕굉의 충성스런 호위병들은 왕굉이 도망칠 수 있도록 시간을 벌기 위해 안량을 향해 달려들었다. 하지만 졸개들 따위가 안량을 어찌 당해내겠는가.
순식간에 피비를 뿌리며 왕굉의 호위병들이 절멸해 버리고 안량은 왕굉을 바짝 쫓았다.
안량은 문추가 이곳에 오기 전에 왕굉의 수급을 얻고자 하는 마음에 왕굉을 향해 손에 든 창을 집어 던지고 곧장 검을 뽑아들었다.
안량이 던진 창은 마치 화살을 쏜 듯 맹렬한 기세로 날아가 왕굉이 탄 말의 다리를 꿰뚫었다. 그와 동시에 왕굉의 신형이 말과 함께 바닥을 나뒹굴며 흙먼지를 뿌옇게 피어올랐다.
그리고 다시 왕굉이 몸을 일으켰을 때 안량의 검이 그에게로 날아들었다.
‘제길! 학맹, 이 놈!!!’
왕굉은 학맹을 저주하며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안량의 검과 마주했다.
* * *
성평 대 회전에서 개전한지 반 시진만에 왕굉군은 총사 왕굉과 왕굉의 장남 왕창이 전사하고 병력의 이 할을 잃고 패주했다.
호족군들은 견가군의 내응과 선동으로 대부분 원소에게 항복했고, 왕굉군 병력 수천도 항복해 포로가 되었다.
학맹군은 삼 할의 병력을 잃었지만 무사히 성평을 빠져나가 악성으로 퇴각하는데 성공했다.
원소군은 이 기세를 몰아 서진을 결정했다. 그리고 왕굉이 평정했던 기주 서부 지역을 탈환하기 시작했다. 악성으로 퇴각했던 학맹은 저항하지 않고 학소가 있는 무수로 다시 퇴각했다.
그리고 원소군은 무수에 주둔 중인 학소의 군대로 공성전을 벌였다. 무수공략전의 총사는 고람이 맡았다. 그는 원래의 역사에서 안량, 문추, 장합과 함께 하북의 ‘사정주(四庭柱 : 네 개의 기둥)’으로 불렸던 용장이었다.
고람이 삼만 정병을 이끌고 무수를 공략했으나 결국 학소의 철벽수비를 뚫지 못하고 퇴각하고 말았다. 그 일로 크게 노한 원소는 고람에게 태형 삼십 대를 쳤다.
성평에서 잘 싸우고 무수에서 크게 망신을 당한 원소는 결국 기주 전역을 손에 넣을 수 없었다. 무수를 경계로 동쪽은 학소, 학맹이 왕굉군 잔당들을 거느리고 차지했다. 서쪽은 원소가 차지했지만 성평 대 회전에서 승리하고도 기주를 차지하지 못한 탓에 원소는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었다.
그 영향은 곧 회맹일에 나타났다.
동탁을 토벌하기 위해 천하 제후들을 불러 회맹하기로 한 날 원소는 다시 한 번 망신살을 뻗쳤다. 원소의 격문을 받고도 움직이기를 주저하던 천하 제후들은 성평 대 회전에서 원소가 왕굉을 크게 이겼음에도 불구하고 무수에서 학소에게 패퇴한 것 때문에 회맹날 대장기와 함께 소수의 병력만을 파견했던 것이다.
원소와 가까운 사이인 포신 등을 제외하면 서주자사 도겸이 삼천의 병력을 보내 성의를 보였을 뿐이었다. 나머지 제후들은 적으면 오백, 많아도 일천 정도의 병력만을 보내 반동탁의 기치에 이름만 더했던 것이다.
병력의 총수가 십만을 넘기지 못했기에 원소는 다음 회맹일을 정하고 제후들의 군대를 돌려보내려 하기에 이르렀다.
이렇게 반동탁 연합의 회맹은 두 차례나 흐지부지되는 듯했다. 하지만 회맹의 마지막 날, 반전이 일어났다. 공손찬이 유비를 총사로 삼아 오천의 병력을 보내왔으며, 연주의 조조 역시 조 부의 맹장과 현사들을 포함한 오천의 병력을 이끌고 나타난 것이다.
조조는 동탁 암살에 실패한 후 서량병의 추격을 피해 연주까지 달아나 그곳에서 거병했다.
조조가 가담한 것만으로 반동탁연합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미온적이던 천하 제후들이 추가로 병력을 파견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렇게 반동탁의 기치 아래 이십만의 군세가 모이자 동탁의 발등에도 불이 떨어졌다.
* * *
마읍에 주둔하고 있던 여포는 병주성에 동탁의 사자가 와있다는 소식을 듣고 적토마를 타고 달려 하루 만에 병주성에 당도했다.
자사부 대청에 뛰어든 여포를 보자 동탁의 사자로 온 이유가 읍소했다.
“여 장군, 동 공을 좀 도와주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