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Follicle Exhibition RAW novel - Chapter 172
171화 유주의 별들은 북락사문의 곁으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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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포?’
전풍은 이내 여포에 관해 들어 알고 있던 것들을 떠올렸다. 여포와는 일면식도 없는 사이이니 흔히 ‘여포’하면 떠오르는 그런 단편적인 것들 밖에 떠올릴 수 없었다.
‘병주 최강의 맹장’, ‘젊은 나이에 맨손으로 병주목의 자리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 ‘보국장군’, ‘북방의 수호신’, ‘무패전승’ 이런 수식어들이 전풍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하지만 여포의 이름과 함께 붙어다니는 수식어들은 마냥 좋은 것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무식’과 ‘아둔’ 같은 여포의 이름 끝에 꼬리표처럼 들러 붙어 다니는 것들도 있었다.
이런 것들을 종합해보자면 전풍에게 있어 여포라는 존재는 다른 천하 제후들에 비해 수준이 낮은 무장에 불과했다. 제아무리 용맹이 뛰어나고 벼슬이 높다한들 그 기반이 병주이기 때문이다.
‘수수 한 됫박만 있어도 병주에는 살지 않으리.’
병주의 빈궁함을 비웃는 말을 떠올리며 여포의 기반이 대단치 않으리라 판단했다. 그런데 어찌 이와 같은 천하 대의를 얻을 수 있었을까 궁금해졌다.
전풍은 이내 노식이 조금 전에 했던 말들 중 한 구절을 되뇌었다.
“지자는 은거하고 우인은 날뛰리라.”
전풍은 그 말을 곱씹어 보다가 돌연 무릎을 쳤다. 그 말 속에 숨겨진 뜻을 그제야 이해했던 것이다.
“지자는 천하를 얻을 대의. 하지만 아직 때가 무르익지 않아 숨기고 있을 수밖에 없으니 은거한 지자라 할 밖에······.”
“강성에게 삼년 수학을 한 것 치고는 제법이로구나. 그렇다면 날뛰는 우인은 무엇이더냐?”
“허울 뿐인 한실부흥을 기치로 건 무리가 아니겠습니까?”
그러자 노식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 같은 반응을 보며 전풍이 물었다.
“그렇다면 천명을 얻은 자는 천하 대의를 얻은 자. 곧 여포를 이름이 아닙니까?”
전풍은 자신이 말을 하고서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병주, 그 빈궁한 땅의 주인이 현사라도 얻었단 얘긴데······.”
“너는 멀었다. 원호, 너 역시 세상의 편견 때문에 재주를 펼치지 못하고 있거늘 그런 말이 나오더냐?”
노식이 꾸짖자 전풍은 고개를 푹 숙였다. 이제 지천명을 바라보는 나이이건만 잘못을 시인하지 않는 홍진의 더러움이 묻지 않은 듯했다.
“가보지는 않았으나 병주에서 온 남흉노 상인이 하는 얘기를 들어보니 병주는 이제 그 옛날의 빈궁한 땅이 아니다.”
“수수 한 됫박만 있어도 안 산다는 병주가 빈궁하지 않다면 세상 천지에 어느 곳이 빈궁하다 할 수 있겠습니까?”
“세상이 변했다. 병주는 여포라는 걸출한 영걸의 출현으로 우리가 알던 병주가 아니게 되었느니라. 백성들 모두가 쌀밥에 고깃국을 먹는 것은 아니나 병주에는 굶어 죽는 자가 없다.”
노식의 말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사예나 삼보는 물론 우항에서도 굶어 죽은 자들의 시신을 보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그런데 하물며 빈궁하기로 유명한 병주에서 굶어 죽는 자들이 없다하니 이 어찌 놀라지 않을 수 있으랴.
“대체 무슨 수로 백성들을 먹여 살렸답니까? 제가 알기로 병주는 평지보다 산이 훨 많고, 농지가 많지 않아 소출 역시 적다 들었습니다. 그나마 있는 농지 대부분은 황하 유역인데 홍수라도 지는 날에는 영락없이 한 해 농사를 망치게 됩니다.”
“콩과 목숙을 돌려지으니 백성은 콩으로 곡기를 대신하고 가축은 살찌는 태평세월을 맞이했다는구나.”
“정녕 여포 그자의 곁에 남방의 현사가 있는 겁니까?”
“그건 알 수 없으나 목숙은 서역에서 들여온 거라 하더구나. 그러니 목숙으로 남방의 현사를 추론하는 것은 잘못이다.”
천하의 전풍이 노식 앞에서만큼은 기를 펴지 못했다.
‘글 만큼 무정한 것이 없다 하더니 스승님 말씀이 하나 틀린 것이 없구나. 장군께서는 장성 너머에 은거하셨으면서도 학문에 정진하여 현기를 잃지 않으셨는데 어찌 나는 영달을 쫓아다니며 학문을 멀리하고 있었구나.’
전풍은 노식의 꾸지람을 듣고 마음이 상하기보다는 자신을 되돌아보는 계기로 삼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여포에 대해 알아가는 것이었다.
“장군, 여포에 관해 관심이 많으신 모양입니다.”
“많다마다. 그의 대의야 말로 죽어가는 한조를 살릴 마지막 희망이다.”
노식은 여포의 대의를 우연치 않게 알게 되었다. 그는 이곳에 은거하여 사냥으로 연명했는데 짐승을 잡아 그 고기는 먹고, 가죽을 팔았다.
노식의 무예는 의심의 여지가 없는 만큼 궁술도 대단하여 그가 사냥해 얻은 가죽은 다른 가죽보다 흠이 적어 상인들은 높은 값을 쳐주어서라도 사들이려 했을 정도였다.
게다가 그가 만든 싸리나무 살대는 병주에선 구경하기 힘든 것이기 때문에 남흉노의 족인들 사이에 수요가 상당했다. 싸리나무 살대를 구하기 위해 이곳까지 온 병주의 상인 하나가 그와 연이 닿았다.
그렇게 병주 상인 한 사람과 교분을 쌓으면서 여포에 대해 많은 것들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만민무류의 대의는 여포가 대외적으로 알리지는 않았으나 어찌된 영문인지 노식과 만난 병주의 상인은 이를 알고 있었다.
“장군, 한조의 부흥을 위해 어찌 장군께서 직접 나서시지 않으십니까? 장군의 말 한 마디면 수만 정병이 움직일 것이고, 장군의 제자들 중에 공손찬이 있으니 그 역시 장군의 명을 따를 것입니다.”
전풍의 말에 노식은 인상을 찌푸리며 손사래를 쳤다.
“그 아이의 이름은 들먹이지 마라하지 않았더냐?”
“송구합니다.”
“고기나 먹자. 네 다리랑 맞바꾼 멧돼지 고기니라.”
* * *
다음날 아침.
전풍은 해가 뜨기 전부터 일어나 부산스레 움직였다. 먼 길을 떠나려는 듯 의관을 정제하고 마구를 살피는 것으로 일출을 맞이했다.
“부러진 뼈가 아직 붙지도 않았거늘 어딜 가려느냐?”
새벽에 덫을 보러 나갔다가 돌아온 노식이 전풍에게 물었다. 그러자 전풍은 머리를 긁적였다.
“늦기 전에 여포를 찾아가보려고 합니다.”
“성격 한번 급하구나. 아직 때가 아니니 기다리거라.”
“더 늦기 전에······ 더 나이 들기 전에 인생을 걸고 큰 내기를 하려 합니다.”
그러자 노식은 혀를 찼다.
“쯧쯧쯧! 네가 아직 이 땅의 사정을 잘 모르나 본데 지금 길을 나선다면 여포를 만나기도 전에 명을 달리 할 것이다.”
“일신에 무예를 지니지 않았다고는 하나 수중에 재물이 없으니 도적을 걱정할 필요가 없고, 원한다면 말을 내주면 될 일입니다.”
“말을 내주면 도적이 널 살려준다하더냐? 설사 살려준다치자 그 다리로 어딜 가겠다고·········.”
노식은 고개를 설레설레 가로저으며 말을 이었다.
“십만의 황건잔당들이 거용관을 넘었다. 이곳 상곡 일대가 초토화되었느니라. 이제 곧 대군도 놈들의 창칼에 폐허가 되겠지.”
유주목 장연의 비호 아래 미쳐 날 뛰던 황건의 잔당들이 유주의 북변에서 기승을 부리고 있었다. 상곡 일대의 부락들은 노식의 말대로 초토화되었다.
예전에도 황건의 잔당들은 유주를 떠돌며 약탈과 살인을 저질렀으나 그 피해는 유주 남부에 국한되었다. 황건잔당들이 북변으로 진출하지 못한 것은 오환족 때문이다.
특히나 상곡에는 오환의 육부 중 상곡 오환부의 기세가 대단하여 황건잔당들은 거용관 인근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상곡오환부의 오환대인 난루가 죽고, 그 아들들 간의 권력다툼과 공손찬의 간섭으로 상곡의 오환족들은 황건잔당들에게 제대로 대항하지 못했다.
싸우다가 죽거나, 다른 땅으로 도망칠 수 밖에 없었는데 대군오환부의 오환대인 철탈에게 많은 수의 상곡오환족이 귀부했다.
“많이 돌아가야 하겠지만 기주를 통해 태항산맥을 넘으면 됩니다.”
“그렇게 힘들여 찾아가면 여포가 ‘어서옵쇼!’하며 반긴다더냐?”
“그럼 어찌해야 할지 소생에게 가르침을 주십시오.”
“주군과 신하의 관계는 남녀 사이의 관계와 다르지 않음이니 가까이 다가가면 멀어지고, 멀어지면 다가오는 것이 아닌가.”
노식은 전풍이 여포를 찾아가기보다 여포가 전풍을 찾아오도록 해야 함을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게 어디 쉽겠습니까? 이미 소생은 그의 원수라 할 수 있는 왕굉의 휘하에 들었던 적이 있으니 소생을 곱게 보지 않을 겁니다.”
“여포와 왕굉의 관계를 알지 못하나 만일 네 말대로 서로가 원수지간이라 왕굉을 따랐던 이유만으로 너를 쓰지 않으려 한다면 그자의 그릇도 그 정도 뿐인 것이겠지.”
“어찌하면 여포가 저를 찾아오도록 할 수 있겠습니까?”
“강성의 이름을 팔면 되지 않겠느냐?”
노식은 전풍의 스승이 유명한 명사이니 그 명성을 이용해 여포를 불러들이고자 했다. 하지만 전풍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스승님의 이름을 팔아 영달을 꾀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전풍의 말에 노식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역시 강성이 제자를 잘못 가르치지는 않았구먼. 그러면 내 이름을 팔아라. 천날만날 책만 파는 서생의 이름보다는 그래도 같은 무장이니 내 이름을 파는 것이 좋겠구나. 내게 오도록 하면 응당 네게 오도록 하는 것이니라.”
“정녕 그리 해주시겠습니까?”
“이 일을 내게 맡기고 너는 몸조리나 잘하거라. 뼈가 제대로 붙지 않으면 그 지팡이, 평생 손에 쥐고 살아야 할 테니······.”
* * *
평성 인근 대군오환부 근거지.
여포 일행은 공손찬과 흑산적의 싸움을 관전하고 돌아와 있었다.
저수는 가후와 함께 군략을 세우기 위해 두문불출했고, 장수들은 공손찬과의 싸움에 대비해 저마다의 절기를 닦으며 굵은 땀방울을 아끼지 않았다.
그 싸움을 보고 공손찬의 군세가 얼마나 대단한지를 알았으니 그들과의 싸움은 지금까지와는 비교할 수 없이 어려운 싸움이 될 게 뻔했다.
여포는 무장들이 절예를 갈고 닦는 것을 보며 그들을 도왔다. 여포와 같은 고수가 한 수 지도를 해주는 것은 혼자서 몇 날 며칠을 연공한 것보다 기량을 높이는데 훨씬 더 도움이 될 터였다.
“위월, 너는 군문의 솥밥을 몇 해를 먹었는데 아직도 대도를 다루는 게 그 모양이냐?”
여포가 나무라자 위월은 입을 삐죽 내밀며 구시렁거렸다.
“누굴 본들 대형 눈에 차겠소?”
“뭐?”
“아무것도 아니오.”
“이리 줘봐라. 내 한 수 가르쳐 줄 테니.”
여포가 손을 내밀자 위월은 못 이기는 척 대도를 건넸다. 여포는 대도를 손에 들고 칼춤을 추기 시작했다. 흔히 볼 수 있는 단조로운 움직이지만 여포가 펼치니 웅장한 기세가 실렸다.
“도(刀)는 쾌(快), 검(劍)은 변(變)이다. 하지만 절정에 오르려면 도에도 변이 가미되어야 하고, 검은 쾌를 더해야 하는 법이지.”
여포는 도세를 펼치며 위월에게 조언을 했다. 그러자 위월은 새끼손가락으로 귓구멍을 후비며 심드렁한 반응을 보였다.
“그 얘기는 장 사부께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수다.”
“알면서 왜 그걸 못하느냐?”
“대형 만큼 무예가 높지 않은데 어찌 대형의 도세를 따라하겠소?”
“나만 못해도 할 수 있느니라.”
“칫!”
여포는 위월이 영 못미더워하자 악진을 불렀다.
“악진, 이리와 보거라!”
“막내는 왜 부르오? 설마 내 도법이 막내만 못할 것 같아서 그러오?”
위월이 투덜거려도 여포는 그를 나무라지 않고 악진이 오기를 기다렸다. 악진이 헐레벌떡 달려오자 여포는 위월에게 악진을 보라며 턱짓을 하고는 악진에게 말했다.
“도법을 한번 펼쳐보거라.”
여포는 위월의 어깨에 팔을 두르며 악진의 도법을 감상했다. 그러자 절정의 도법이 악진의 손에서 펼쳐졌다.
“어떠냐? 제법 하지 않느냐?”
여포가 묻자 위월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제길! 동무양의 악부 하면 하북제일도라 불릴 정도로 대단한 도법을 지닌 가문인데 그 후예가 도법의 달인인게 당연하지 않나?’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묘한 오기가 생겼다. 위월의 도법은 장양에게서 기본을 익혔을 뿐 수많은 실전을 통해 다져진 것이었다. 그러니 위월은 악진의 도법이 비전의 도법이건 뭐건 자신의 도법만 못하리라 여겼다.
악진이 도세를 마무리하자 여포는 위월과 악진을 세워놓고 말했다.
“위월, 너는 백전을 치렀으니 악진과 실전처럼 겨루며 경험을 쌓게 도와주어라. 악진, 너는 위월과 상의해서 가문의 도법에서 불필요한 움직임을 없애야 한다. 보여주는 도법과 전장에서 쓰는 도법은 하늘과 땅 차이니라.”
제법 그럴 듯한 말이었지만 위월은 심술이 잔뜩 난 얼굴로 여포의 소맷단을 잡아 끌었다.
“대형, 나랑 얘기 좀 합시다.”
그러자 여포는 못 이기는 척 위월의 손에 끌려 몇 걸음을 걸었다.
“대형, 지금 내가 애송이 뒤나 닦아주게 생겼소?”
위월은 악진이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도우라는 여포의 말에 심술이 난 듯했다. 그러자 여포는 잔뜩 목소리를 낮춰 속삭이듯 말했다.
“이런 멍청한 놈아! 악진의 도법이 어디의 것이더냐?”
“대형도 참······. 나도 명색이 도를 쓰는 사람인데 동무양의 도법이 하북제일이라는 말을 모르겠소?”
“그럼 악진이 동무양의 비전 도법을 익힌 것도 알 테고, 그 도법이 외인에게 전해지지 않는다는 것도 알게 아니냐?”
상산의 창술처럼 동무양의 도법 역시 비기는 외인에게 전하지 않았다. 오직 가문의 일원만이 비기를 익힐 자격이 있었고, 그 중에서도 실력이 되어야만 전수받을 수 있었다.
상산 조 부나 동무양의 악 부가 아니더라도 가문의 무예를 외인에게 전수하는 무가를 찾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야 당연하오.”
“그걸 아는 놈이 그래?”
쿵!
위월이 잘난 척을 해보이자 여포는 그의 머리통을 쥐어박았다. 그러자 위월은 머리통을 싸매며 표정을 찡그렸다.
“왜 때리오?”
위월이 대들 듯 말하자 여포는 그의 귀를 잡아 당겨 귓속말을 했다.
“저 녀석을 도와주면서 악 부의 도법을 훔쳐배우란 얘기가 아니냐. 이 밥통아!”
여포의 말에 위월은 고통이 씻은 듯 가시며 표정이 밝아졌다.
“아! 그런 거였소?”
“그래, 이놈아!”
“대형, 글을 깨우치더니 장방자가 다 되셨소.”
“장자방아니냐?”
“확실하오?”
“아닌가?”
고개를 갸웃거리는 여포를 향해 멀리서 장합이 무시무시한 살기를 내뿜으며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