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Follicle Exhibition RAW novel - Chapter 328
327화 동탁, 왕도파와 손을 잡다! (2)
————– 327/753 ————–
이이자의 제안은 파격, 그 자체였다. 한조의 과거제도는 효렴, 무재로 대표되지만 그 외에도 몇 가지 제도가 더 있었다.
그 중에서도 ‘현량방정(賢良方正)’이라는 제도가 있는데 이이자의 제안은 이와 상당히 유사했으나 핵심적인 부분이 달랐다. 그것은 바로 천거가 아니라 시험을 보는 점이라는 것이다.
현량방정은 조정이 인재를 구한다는 것을 각 지방관에게 알리면 그들은 이를 은거한 재인들을 찾아 조정에 천거한다. 지방관의 천거를 받은 자들을 경성으로 불러올려 시험을 치게 하고, 그 성적에 따라 출사가 결정되는 방식이다.
이이자가 제안한 방식은 지방관의 천거를 제외한 것이다. 방을 붙이든 소문을 내든 은거한 재인들에게 중히 재주를 뽐낼 기회가 왔음을 알리고 그렇게 모인 자들을 시험해 사관하게 하는 방식이었다.
“으음······!”
노식이 침음성을 터뜨리자 여포가 물었다.
“어찌 그러십니까? 이 대인의 제안이 파격적이기는 하나 출신에 상관없이 재인들을 사관케 하기에는 좋은 듯합니다.”
여포가 자신의 생각을 밝히자 노식은 관자놀이를 비비며 답했다.
“좋은 생각이기는 하지. 다만 자칫 외부에서 이를 알면 천자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처럼 여겨질 수 있다는 점이 문제일세. 관원을 뽑는 것은 오직 천자께서 행할 수 있는 일인데 지방관인 자네가······.”
“상산에 점장대를 세울 때는 그런 말씀을 하지 않으셨잖습니까?”
여포가 상산에 점장대를 세운 것은 차후에 점장대회를 열어 무장을 선발하기 위함이었다. 노식도 이에 대해서는 지금과 같은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무장과 사인의 출사는 다른 것일세.”
“그럼 이 대인의 좋은 제안을 쓸 수 없단 말입니까?”
“한조는 유가의 도로 다스려지는 나라이니 예법을 따라야 하네. 번거럽고 거추장스럽지만 따르지 않으면 손가락질을 받아야 하고, 심하면 천자의 권위를 부정했다 매도당할 수도 있지.”
노식의 말을 쉽사리 이해할 수 없었던 모양인지 여포는 머리를 벅벅 긁어댔다.
하기야 노식의 말을 이해하려면 천명사상 정도는 알고 있어야 했다. 하지만 여포는 경문은 커녕 설문해자를 겨우 익힌 처지이니 서경의 사상을 들어보지도 못했을 터였다.
“혹시 조 자룡이의 혼인에 관한 것처럼 백개 선생께 도움을 청하면 어찌 되지 않겠습니까?”
“예법은 해석하기 나름이긴 하나, 더 중요한 것은 누가 해석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네. 백개 선생이 긍정적인 해석을 내놓는다면 천자의 권위에 도전한다는 시비는 피해갈 수 있을 거라 보네.”
지금의 한조가 지니는 사상적인 한계가 그대로 드러나는 부분이었다. 이미 유가의 수많은 경문이 분서갱유로 실전되었고, 그나마 남은 것들 역시 위작이 판을 치는 것이 한조의 현실이었다.
그 중 진본으로 확인된 것도 옛 서체로 쓰인 것이라 해석이 달라지니 이를 두고 고금학이 대립했다.
노식 역시 마융의 제자로 큰 학문을 이룬 사람이었으나 그의 해석이 학계에서 가지는 의미는 거의 없다고 봐도 좋았다. 첫째는 그가 북삼주 중 하나인 유주 출신의 변방인이고, 둘째는 그가 무장으로 이름난 자이기 때문이다.
“아아! 왜 이리 복잡합니까?”
“학문이 정치에 너무 깊이 동화되었기 때문이지. 해석의 차이를 이용해 반대파를 역모로 몰아갈 수 있으니 이 얼마나 강한 무기란 말인가.”
노식의 말대로 ‘역모’라는 말은 정적을 숙청하는 가장 확실한 수단이었다.
해석이라는 것이 귀에 붙이면 귀걸이, 코에 붙이면 코걸이가 아닌가. 시 한 수, 노랫말 한 마디도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역모로 엮을 수가 있었다.
반대로 말하자면 해석이라는 것이 ‘역모’라는 말을 움직일 만큼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얘기였다.
“결국 백개 선생을 모시고 오긴 와야 할 듯합니다.”
그리고 여포는 다시 위월을 불러 채옹을 모시고 올 것을 명했다.
* * *
낙양 황궁.
동탁은 조정의 백관들이 모두 퇴청한 시간에도 만세전에 남아 있었다. 그는 뭔가를 기다리는 듯 의자의 손잡이만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리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가 기다리는 것은 장락궁에서 올 답이었다. 하 태후에게 만남을 청했던 것이다.
동탁이 아무리 상국의 자리에 있다고 해도 하 태후를 오라가라 하지는 않았다. 하 태후가 임조청정을 할 수 없도록 장락궁에 유폐시켰기 때문에 사이가 좋다고는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는 하 태후가 어린 아들을 앞세워 정권을 쥐려 했기 때문이었다.
한조는 유가의 도로 다스려지는 나라이니 여인이 정권을 쥐는 것은 결코 용납될 수 없는 일이었다.
장락궁에 유폐된 후로 하 태후가 표면에 나서지 않았기 때문에 동탁 역시 그녀에게 기본적인 예우를 다하고 있었다.
“왜 이리 답이 오지 않는가?”
동탁은 초조한 마음에 날카로운 투정을 부렸다. 그를 다독이는 것은 이유의 몫이었다.
“곧 답이 올 겁니다. 편하게 기다리십시오.”
“간지가 언젠데 아직도 답이 없으니 하는 소리가 아니겠소?”
“태후를 만나는 일입니다. 신하된 자가 태후의 궁전에 드는 것은 꽤나 복잡한 예법과 절차를 따라야 하니 시간이 걸릴 수밖에요.”
“그놈의 예법, 예법! 하여간 그놈의 예법이 나라를 망치고 있소.”
서량 출신으로 강족과 어울려 오랜 세월을 보냈던 동탁의 입장에서는 결코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예법이라는 것이었다.
쓸데없이 시간과 노력을 잡아먹는 것으로 동탁에게는 타파해야할 구태 중의 하나였다.
동탁이 유가의 법도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의 예법은 성현의 가르침을 크게 벗어나는 것으로 절차를 위한 절차, 예법을 위한 예법이 기승을 부리는 실정이었다.
“그래도 참으셔야 합니다. 지금은 하 태후와 연수를 맺을 때가 아닙니까? 대의를 위해서는 고개를 숙이고 무릎도 꿇을 수 있다 하신 말씀을 다시 떠올리십시오.”
“으음······!”
동탁은 이유의 말을 되뇌며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는 것으로 분을 삭였다.
그렇게 반 시진이 더 지났을 때 드디어 장락궁에서 답이 왔다. 입궁을 허락한다는 소식을 접하자 동탁은 이유에게 명했다.
“선생, 대홍려 한융을 불러들이시오. 태후와는 자주 만나기 힘드니 이 참에 결판을 보아야겠소.”
* * *
장락궁.
동탁은 면포 가림막 하나를 사이에 두고 하 태후와 마주 앉았다.
“상국, 본 태후를 장락궁에 유폐시킬 때는 언제고 무슨 바람이 불어 만나자고 하셨소?”
하 태후의 목소리에는 불편한 심기가 그대로 묻어나고 있었다. 그러자 동탁은 다른 눈이 없기에 굳이 쓸데없는 말을 더하지 않았다.
“그 때는 태후께서 너무 큰 욕심을 부리시니 어쩔 수 없었습니다.”
“어설픈 변명 같은 걸 하지 않으니 마음에 드는구려. 하나, 내 아들이 보위에 있는 한 결국 내 세상이 올 텐데······ 이를 어쩌나?”
“어차피 상국 노릇을 그리 오래 할 생각이 없습니다. 해보니 그리 좋은 자리는 아니더이다.”
면포 가림막 너머로 태후가 자신의 입을 가리는 듯한 움직임을 보였다.
“세상 제일 좋은 자리에 앉은 상국이 그리 앓는 소리를 하면 어쩌오?”
“소신의 손으로 나라의 더러운 것들을 솎아내고 천자께 바치려 했는데 권신이라는 자들이 사사건건 훼방을 놓으니 어찌 마냥 즐거울 수 있겠습니까?”
“힘들면 그 자리 내게 돌려주시오.”
“태후께서 맡으셔도 혼자서는 감당하실 수 없을 겁니다.”
동탁은 은연중에 연수를 맺으러 왔다는 운을 띄웠다. 그러자 태후도 만만찮은 인사인지라 이를 바로 알아차렸다.
“본 태후와 연수를 맺자?”
“얘기가 빠르겠습니다.”
“본 태후가 왜 상국이랑 손을 잡아야 한단 말이오?”
“같은 적을 두고 있으니까요. 정녕 왕미인의 소생이 보위에 오르는 꼴을 보시렵니까?”
동탁의 말에 충격을 먹은 것인지 분기탱천한 하 태후가 자리를 박차고 벌떡 일어났다. 그녀는 칼을 뽑아들어 단칼에 가림막을 갈라버렸다.
천한 신분이나 그 뛰어난 미색으로 입궁했던 것만큼 시간이 지나도 그녀의 아름다움은 변함이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손에 들린 것은 서슬 퍼런 검이었다.
그녀는 검극을 동탁에게 겨누며 앙칼진 목소리로 물었다.
“다시 한 번 말해보라! 누가 보위에 오른다고?”
하지만 동탁은 눈하나 깜빡이지 않고 답했다.
“몇 번이라도 다시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왕미인의 소생인 발해왕 협이 보위에 오르는 꼴을 보시겠습니까?”
“내 아들 변이 용상에 앉아 있거늘······.”
동탁은 맨손으로 칼날을 붙잡아 가볍게 검신을 부러뜨려 버렸다. 하 태후가 흠칫 놀라 뒷걸음질치자 동탁은 부러진 검신을 곁에 놓으며 고개를 조아렸다.
“명문회가 움직이고 있습니다.”
동탁의 말에 하 태후는 반(半) 검을 마구잡이로 휘두르며 소리질렀다.
“원외를 쳤듯이 놈들을 죄다 베어버리시오.”
“그리 하면 낙양은 편안해질 것이나 원소와 원술 형제가 손뼉을 치며 기뻐할 겁니다. 아마도 지난 번 보다 훨씬 더 큰 규모의 제후군이 경성으로 쳐들어올 테지요.”
하 태후는 흥이 깨졌는지 반검을 떨어뜨리며 잠깐 생각에 빠졌다. 동탁의 말이 하나 틀린 게 없다 여긴 모양인지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본 태후와 상국이 손을 잡으면 그들을 막을 수 있단 말이오?”
“노력해 봐야지요. 소신, 아직 해야 할 일이 많이 남았습니다.”
“말씀해보오. 어찌하면 그들이 경거망동하지 못하게 할 수 있소?”
“우선은 발해왕의 봉지를 바꾸는 게 좋을 듯합니다.”
“사봉하자는 말씀이오?”
사봉(徙封).
번왕의 봉토를 바꾸는 것으로 지금 발해왕 협 역시 황궁 안에 머무르고 있으나 원래의 봉지는 발해. 발해는 곧 원소의 근거지였다.
“원술이 유대를 보위에 앉히려는 것처럼 원소 역시 발해왕을 옹립하려 명문회를 암중에서 움직이고 있습니다. 발해는 원소의 영향력 아래 있는 땅이니 그로서는 당연한 선택이겠지요.”
“그럼 어디로 옮긴단 말이오?”
“진류입니다.”
진류는 조조의 영향력 아래 있는 땅이었다. 하 태후는 원소와 조조가 막역한 사이라는 걸 떠올리고는 고개를 기울이며 물었다.
“상국, 왜 하필 진류요? 조조는 원소와 둘도 없는 벗이 아니오?”
“천하를 놓고 부모 형제도 없는 법이거늘 어찌 친교가 있다하여 다툼이 없을 수 있겠습니까?”
“지금까지는 없었지만 앞으로도 없으리라는 보장이 없단 얘기요?”
“생각대로만 된다면 절친한 벗이 둘도 없는 원수가 될 겁니다. 태후,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여태껏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은 채 짖기만 하던 환관일파와 원가가 사력을 다해 싸우면 누가 이길 것 같습니까?”
동탁의 말에 하 태후의 입가에도 비릿한 조소가 맺혔다.
“상국, 역시 상국께선 대단한 사람이오. 그래, 본 태후가 무엇을 도와드리면 되겠소?”
“조회에 나오십시오.”
“임조청정을 허락하는 것은 아닐 테고······ 들러리나 서라는 것이오?”
“부정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명문회를 견제하는 일은 태후께서 처결해주셔야겠습니다.”
“골치 아픈 건 다 본 태후에게 미루려 하시는 구려.”
“싫으시면 강요하지 않겠습니다.”
“명문회를 향해 휘두르는 칼은 막지 않겠다하시니 본 태후는 기쁘게 상국의 청을 받아들이겠소.”
하 태후가 연수의 조건을 받아들이자 동탁이 말했다.
“대홍려를 부르겠습니다.”
“상국, 성격 한 번 급하오. 이 밤에 한 대홍려를······.”
“지금쯤 입궁하고 있을 것입니다.”
하 태후는 자신이 연수를 받아들일 것임을 동탁이 이미 예견하고 있었다는 것에 대해 내심 혀를 내둘렀다. 하지만 어차피 연수를 맺을 것이라면 유능한 상대와 맺는 것이 유리하다는 것을 떠올리고는 적극성을 보였다.
“발해왕의 봉토를 바꾸는 것만 하면 되오?”
“유주목 여포가 요동 태수 공손도를 요동왕에 봉해달라 청해왔습니다.”
“유 씨도 아닌데 번왕의 왕호를 받으려 하다니 욕심이 과한 자로고······.”
동탁은 이미 말을 꺼낼 때 하 태후의 이 같은 반응을 예상하고 있었다. 자신도 그 얘기를 들었을 때 같은 반응을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탁과 여포는 이미 떼려야 뗄 수 없는 맹방이었다.
“변방이 어지러우면 결국 소신의 군대가 출병해야 합니다. 이름뿐인 왕호를 줘서라도 이를 막을 수만 있다면 소신과 태후께선 명문회만 상대할 수 있습니다.”
벼슬이라면 동탁의 선에서 공손도를 공경의 반열에 올릴 수 있고, 솔중왕이나 솔의왕 같은 봉토 없는 왕호도 문제가 아니었다.
하지만 번왕의 왕호는 얘기가 달랐다. 대홍려 한융도 동탁의 사람이었으나 유씨가 아닌 자에게 번왕의 왕호를 내리는 것은 역시 황실의 재가가 필요했다.
동탁은 하 태후가 주저하는 모습을 보이자 말을 덧붙였다.
“그리고 왕호를 내려주신다면 여포가 천자의 은혜에 보은하기 위해 미력하나마 성의를 보이겠다 합니다.”
“그래요?”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던 하 태후는 여포가 성의를 보이겠다는 얘기에 미소를 머금었다. 역시 세상은 이(利)로서 움직인다는 노식의 말이 새삼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