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Follicle Exhibition RAW novel - Chapter 419
418화 전장(戰場)에서 무엇을 장담할 수 있으랴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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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
고순은 당장이라도 구원에 나서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그 마음을 담아 곽가를 불렀다. 그제야 곽가는 지면에 훌쩍 내려서서는 뒤도 안 돌아보고 말에 올랐다.
“고 교위, 함마갱을 피할 수 있는 방도를 일러드리겠습니다.”
곽가는 여전히 시선조차 주지 않은 채로 고순에게 말했다. 고순에게 곽가의 말은 기대 반, 의심 반이었다.
‘한 번 본 것만으로 함정을 피하는 방법을 알아냈다고? 그게 정녕 가능하단 말인가?’
고순의 의심은 이를 테면 합리적인 의심이라 할 수 있었다.
사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곽가가 높이 뛰어올라 전장을 살필 수 있던 시간은 찰나에 지나지 않았다.
그 짧은 시간에 적의 함정을 간파한다는 것은 범인(凡人)은 말할 것도 없고, 머리 깨나 쓴다는 책사에게도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마냥 부정할 수 만도 없는 것이 다른 사람도 아니고 곽가가 한 말이기 때문이다. 한 번 본 것은 줄줄 꿰는 엄청난 암기력은 물론 대단한 것이다.
하지만 가후가 그를 하내 동부 전선의 책임자로 삼은 것은 그저 암기력이 뛰어나기 때문만은 아닐 터였다. 가후가 곽가의 지모를 인정했다고 봐도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무엇이오? 선생, 시간이 없소.”
“전차가 지나간 자리에는 필시 바퀴 자국이 남습니다.”
곽가의 말 한 마디에 고순은 무릎을 쳤다.
‘그런 간단한 것을 몰랐구나! 곽 선생의 지모가 상상 이상으로 대단한 것인가? 아니면 내가 너무 아둔한 것인가?’
순간 고순은 곽가가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자신은 너무 멍청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곽가가 내놓은 해결책은 조금만 냉정하게 전황을 볼 수 있다면 누구나가 알 수 있는 것이다.
적군은 어느 곳에 함마갱이 있는지를 알기 때문에 그곳으로는 걸음을 하지 않을 터. 반대로 지나간 자리는 안전한 곳이라는 얘기가 된다.
사람 발자국과는 달리 전차의 바퀴가 지나간 흔적은 선명하게 남고 쉽게 지워지지 않으니 그야말로 생로(生路)라 할 것이다. 그 길만 따라가면 최소한 함마갱에 당할 리는 없으니까.
몰이사냥을 당한 우적군에게는 불행한 일이나 이제 새로이 전장에 나서는 고순군에게는 다행한 일이었다. 함정이 어디에 있는지 안다는 것은 전장에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전장으로 달려나가는 고순군을 보며 곽가는 자신이 설명을 잘했다고 생각했다.
‘팔괘니 태극이니 들먹였으면 안 하니만 못했을 수도······.’
곽가는 고순의 도움을 받아 높이 뛰어올랐을 때 이미 드러난 함마갱의 위치를 보았다.
그것만으로 아직 숨겨져 있는 함마갱을 찾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곽가에게는 함마갱을 찾을 단서가 있었다.
서백이 갇혔던 유리성이 바로 보이는 곳이고, 이곳에서 후천팔괘를 그렸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곽가는 이 점에 착안했다.
곽가의 눈에 가상의 팔괘가 그려졌고, 이미 위치가 드러난 함마갱을 이은 선과 팔괘가 정확하게 일치했다.
그의 예상으로는 유리성에 주둔하고 있던 자들이 팔괘 모양에 따라 땅을 파헤쳐 뭔가를 찾았다. 찾던 것이 나왔는지 안 나왔는지는 단정할 수 없었다. 그래도 확실한 것은 파헤쳤던 땅을 그냥 메우지는 않았다는 점이었다.
이런 것들을 모두 고순에게 설명했더라면 시간도 많이 걸리고 제대로 이해시키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무장에게 후천팔괘의 원리를 설명하는 것은 여포에게 논어의 정수를 잠깐 사이에 가르치겠다는 것과 하등 다를 게 없는 일이다.
* * *
“비겁······ 하다. 장백기!!”
투둑!
우적의 절규가 터지는 순간 날아든 강전이 그의 몸을 두들겼다. 이미 우적은 고슴도치를 연상케 할 정도로 강전을 맞은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아직 숨이 붙어 있을 수 있었던 까닭은 그가 입은 갑주가 진대의 손을 거친 것이기 때문이다.
강전이 갑주에 박혀도 깊이 파고들 수 없었다. 특히나 엄심갑은 아직 강전도 뚫지 못했다.
하지만 워낙 많은 강전이 그에게 쏘아진 탓에 만신창이가 되어버렸다. 갑주 사이로 흘러나온 피가 바닥을 축축하게 적시고 있을 정도였다.
“사람 목숨이 의외로 질기구나.”
장백기는 우적이 아직도 살아 있는 것이 못마땅했다. 그러자 백요가 소기를 높이 치켜들었다.
이를 신호로 수십여 대의 전차가 우적을 에워싸고 일제히 쇠뇌병들이 우적을 향해 강전을 겨누었다.
슈슈슉!
높이 든 소기가 아래를 향해 떨어지는 순간 우적을 향해 수십여 대의 강전이 날았다.
투두두둑!
마치 굵은 빗줄기를 두들겨 맞는 것처럼 강전들이 우적의 몸에 박혔다. 우적의 무릎이 꺾였다. 하지만 쓰러지진 않겠다는 듯 우적은 쇠방망이에 기대어 고개를 떨구었다.
누가 봐도 비참한 최후이건만 명을 달리한 우적의 입가에는 희미한 미소가 그려져 있었다. 마지막 순간까지 수십 여 대의 전차를 혼자 상대한 셈이니 그가 번 시간만큼 휘하 장졸들의 희생을 줄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적은 알지 못했지만 그가 장백기군 본진의 이목을 잡아둔 탓에 곽가가 이끄는 원병이 전장에 나타날 때까지 장백기와 백요가 대응하지 못했다.
“놈의 수급을 베어라. 여포에게 선물로 보내야지.”
장백기는 우적의 수급을 여포에게 보낼 생각을 하니 기분이 한껏 좋아졌다. 여포의 화극에 얼마나 많은 수하들의 목이 달아났던가. 그 때의 복수를 해주는 것만 같았다.
장백기의 명을 받고 백요가 우적의 수급을 베는 사이, 우적군 병사들은 악진군이 진을 치고 있는 곳을 향해 열심히 달리고 있었다.
악진이 홀로 나가 전차 두 대를 망가뜨려 악진군이 이루는 진세를 지켜냈기 때문에 퇴각은 제법 순조로웠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뿐. 우적군 병사들이 무사히 퇴각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 전차들이 몰려들었다.
우적의 수급이 떨어진 후에야 고순군이 전장에 난입했다. 퇴각하는 우적군 병사들 사이를 비집고 전진하는 모양새가 마치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물고기 떼처럼 보였다.
쿵! 쿵! 쿵! 쿵!
일보, 일보를 내딛을 때마다 지축을 흔들며 마치 땅을 접어 달리듯 고순의 쾌속질주가 이어졌다. 그러자 우적군 병사들은 도망치면서도 그에게 길을 내주었다.
“팔건장 필두 고순! 출전이오!”
* * *
고순의 목소리는 우적군 병사들에게 구원의 빛과 같았다. 여포군 무력 서열 2위에 빛나는 맹장이 등장하자 전장의 분위기가 다시 미묘하게 바뀌었다.
고순이 대군을 이끌고 왔다면 분위기가 반전했을 것이나 그것은 또 아니기 때문이다.
악진은 고순의 목소리를 듣자 그에게 인사의 말이라도 건네려 했다. 하지만 고순은 커다란 족적을 남기며 뛰어올랐다. 사람이 저만큼 높이 뛰어오를 수 있나 싶을 정도로 대단한 도약에도 끝이 있었다.
콰쾅!
고순의 신형이 전차 위로 떨어지는 순간 굉음과 함께 전차병들이 전차 밖으로 튕겨나갔다.
“악진, 전열을 재정비하라! 곽 선생이 합류하는대로 반격을 시작할 것이다!”
“소장 악진, 고 교위의 명을 받듭니다!”
대답은 우렁차게 했으나 악진은 이곳을 지킬 자신이 없었다. 이미 전차대가 이곳을 향해 밀려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순군이 온 이상 수십에 불과한 전차대 따위는 하등 걱정할 염려가 없었다. 여포군 최고의 무력집단은 당예기이나 병사 하나하나의 실력으로 따지자면 고순의 천인대를 당해낼 수는 없었다.
그 중에서도 실력으로 백인을 추려 원정을 온 것이니 가히 한 사람 한 사람이 장수에 비할 수 있을 정도였다.
고순이 전차 하나를 박살내며 전차를 상대하는 방법을 보여준 이상 고순군은 주저함이 없었다.
마치 약속이나 한 것처럼 두 사람이 한 조를 이루어 한 사람은 다른 사람의 도움닫기가 되어 동료를 높이 뛰어오르게 했다.
아무리 근갑법을 익혔다고 해도 네 마리 말과 정면으로 부딪히고도 멀쩡할 수는 없었다. 전차의 바퀴 축에 달린 칼날도 위험했다.
쇠뇌 역시 조심해야 할 병기였다. 짧은 거리에서라면 쇠뇌의 강전은 갑주를 꿰뚫기에 부족함이 없는 관통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니 근갑법만 믿고 강전 한 두 대쯤 맞겠다는 생각을 가질 수 없었다. 근갑법은 날붙이에 당할 때 피해를 줄이는 수법일 뿐이니 결코 전가의 보도가 아니다.
그런 점을 비춰보면 고순이 처음 전차 하나를 박살냈던 수법은 가히 정석을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었다.
고순군 병사들이 일제히 뛰어올라 전차들을 향해 날아들었다. 고순 같은 위력을 보인 것은 아니나 전차 위로 뛰어들어 짧은 비수로 살인검예를 펼쳤다.
전차병들은 세 사람이 한 조를 이루는 구조다. 한 사람은 말을 몰고, 한 사람은 장병인 극을 들며, 나머지 한 사람은 쇠뇌를 들었다. 그러니 비수를 무슨 수로 막겠는가?
그것도 일검, 일검이 필살의 살의를 지닌 살초를······.
* * *
곽가는 고순이 휘하를 이끌고 전장에 난입한 후에도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안색이 초췌한 것이 당장 각혈을 해도 하등 이상할 것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그가 이곳을 떠나지 않은 까닭은 따로 있었다.
그의 곁에서 장수들이 명을 기다리고 있었다. 곽가는 물론이고 아직 다들 우적이 전사했음을 알지 못하고 있었기에 군략에 따라 움직일 평정심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단 한 사람. 고석왕 연제 저고만은 발을 동동 구르며 야단법석을 피우고 있었다.
“왜 못 싸우게 하느냐? 빨리 큰 전공을 세워서 여포와 자식을 만들어야 한단 말이다!”
저고가 수천 리 먼 원정길을 순순히 따라나선 까닭은 오직 하나. 큰 전공을 세워 그 포상으로 여포와의 하룻밤을 보내기 위해서였다.
강자를 품어야 그 자식도 용맹한 여인 용사의 일원이 된다고 생각하기에 여포 같은 강자를 취할 생각으로 안달이 나있었다.
하지만 곽가는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그는 저고에게 손바닥을 펴보이며 말했다.
“아직은 때가 아니오.”
“저 곰 같은 사내가 전공을 쌓고 있는데 날 더러 얼마나 더 기다리란 말이냐?”
저고는 지금 이 순간에도 고순이 전공을 쌓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했다.
“잠시만 더 기다리면 반드시 출격하게 해주겠소.”
곽가의 말에 저고는 이를 갈았다. 여포와의 관계가 소원해질 걱정만 아니라면 아마 곽가를 향해 칼을 뽑아들었을 터였다.
장료는 저고의 편을 들 생각은 아니었지만 곽가가 아직 출격 명령을 내리지 않는 것에 대해 의문을 품고 있었다.
“곽 선생, 대체 뭘 기다리고 있는 거요?”
장료가 묻자 곽가는 대답 대신 유리성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설마 저 성까지 취할 생각이란 말이오?”
“단번에 그걸 이해하시니 얘기가 빠르겠습니다. 여러 장군들께서 지금 당장 출정하신다면 당연히 야전은 우리의 승리겠지요. 하지만 공성은 어떻습니까?”
곽가의 말에 장료는 입을 꾹 다물 수밖에 없었다. 보군 위주의 병력에 공성병기도 없었다. 이 상황에서 야전에서 패한 적군이 유리성으로 들어가 성문을 걸어 닫고 버틴다면 무슨 수로 유리성의 성문을 깨고 들어갈 수 있겠는가.
장합은 가만히 대화를 듣고 있다가 끼어들었다.
“선생, 그럼 그 때는 언제요?”
장합이 말하자 저고가 관심을 보였다. 그는 속발관에 두 가닥 긴 꿩깃을 꽂고 있었기에 여포를 떠올리게 했다.
그녀는 중원 여인이라면 생각도 못할 대담한 말을 입에 담았다.
“아쉬운대로 이 사내라도 품을까?”
그녀의 말에 장합의 얼굴이 홍당무처럼 붉어졌다.
이에 장료가 장합 대신 그녀에게 따끔하게 한 마디 하려 했다. 하지만 그가 나서기도 전에 저고가 고개를 설레설레 가로저었다.
“아니야 당장에 눈앞에 있는 닭이 맛있어 보인다고 해서 기다려온 봉황을 놓칠 수야 없지.”
그녀에게 장합은 닭이고, 여포는 봉황이라는 얘기였다. 장합이 졸지에 닭 취급을 받는 순간이었다.
장합의 표정이 묘하게 일그러지자 곽가가 나서서 상황을 정리했다.
“장군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언제 전장에 뛰어들어야 할까요?”
갑작스런 반문에도 장합은 제법 침착하게 답을 내놓았다.
“적의 본군을 최대한 성에서 멀리 떨어뜨려 놓아야지요.”
그러자 곽가는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장군의 말씀이 옳습니다. 적들이 아군을 끌어들여 진세가 흐트러지게 했으니 이번에는 반대로 우리가 똑같이 갚아주어야겠습니다.”
곽가가 곧이어 전략을 말할 것임을 눈치 챈 것일까? 장수들의 눈빛이 반짝였다.
“군략을 말씀드리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