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Follicle Exhibition RAW novel - Chapter 418
417화 백승지성(百乘之城)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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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적군 병사들이 어지럽게 뒤엉켜 퇴각하기 시작하자 악진의 안색이 더욱 어두워졌다.
‘사슴 사냥이라도 나온 것처럼 전차들이 아군 병사들을 몰고 있구나!’
악진의 평대로였다.
우적군 병사들은 전차들이 몰아가는 방향대로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쫓기는 사슴마냥 방향을 바꾸고 있었다. 병사들은 어떻게든 살아보겠다고 흩어졌다 모이기를 반복했지만 하나둘씩 희생이 불어났다.
이것은 이미 우적군의 진세가 완전히 와해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동시에 우적의 군령대로 움직이지 않을 정도로 혼란에 빠졌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으아악!”
한 무더기의 병사들이 돌연 지면 아래로 푹 꺼지며 비명을 질러댔다. 마상에서도 잘 볼 수는 없었지만 악진은 그들이 함정에 당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함마갱인가?’
악진은 그 함정이 함마갱임을 단번에 알아보았다.
함마갱(陷馬坑).
구덩이를 파서 그 아래에 뾰족하게 깎은 나무창을 잔뜩 세워둔 함정이다.
악진은 함마갱에 빠진 자들이 어찌 되었을지 보지 않아도 충분히 짐작이 갔다. 단번에 죽은 자들은 차라리 운이 좋은 것일 정도로 처참한 부상을 입고 비명을 질러대고 있을 터였다.
여기저기서 우적군 병사들이 함마갱에 당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따지자면 함마갱의 수는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럼에도 우적군 병사들을 더욱 당황하게 만들었던 것은 그 숫자 때문이 아니다. 언제 어디서 땅이 꺼질지 모른다는 공포였다. 그것이 우적군을 더욱 괴롭혔다.
발 한 번 잘못 딛으면 황천길로 가고, 뒤에는 전차가 쫓아오니 그야말로 진퇴양난이라. 죽음을 피할 길이 보이지 않았다.
전차의 극병 하나가 등을 보이며 열심히 줄행랑을 놓던 우적군 병사를 향해 극을 휘둘렀다. 창날이 갈고리처럼 어깻죽지를 파고들었다. 그 충격으로 앞으로 엎어졌는데 여전히 창날에 꿰어 있었기에 전차의 움직임을 따라 바닥을 질질 끌려갔다.
전차의 극병은 마치 즐거운 놀이라도 하듯 병사를 질질 끌고 가다가 다른 전차의 진로 앞에서 극을 회수했다.
멈추면 죽는다는 것을 알기에 병사는 어떻게든 도망치려고 했으나 이내 네 마리 말이 그를 덮쳤다.
마치 햇빛을 가리듯 손을 들어 막아보려 했으나 무슨 수로 전마의 말발굽을 맨손으로 막을 수 있으랴. 그의 비명을 순식간에 말발굽소리가 덮어버렸다.
* * *
“우와악!”
절망에 빠져 걸음을 멈추었던 병사 하나가 전차의 축에 박힌 칼날에 갈려나가며 단발마의 비명을 질렀다.
다리를 잃고 쓰러진 그 병사는 간신히 팔로 지면을 딛고 상체를 세웠다. 그런 그를 기다리는 것은 다른 전차의 축에 박힌 칼날. 비명을 지를 새도 없이 그렇게 머리가 달아났다.
마상에서 그 모습을 보고 만 악진은 이빨을 드러내며 콧잔등에 주름을 만들어냈다. 당장이라도 달려나가 싸우고 싶었지만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따로 있었다.
“우리 천인대는 아군이 무사히 퇴각할 수 있도록 죽음으로 이 자리를 지켜야 한다! 명심하라! 우리가 무너지면 정말 끝이다!”
악진은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대혼란에 빠진 우적군의 비명소리를 누르고 수하들에게 자신의 목소리를 들려주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악진군 병사들은 대오를 유지한 채 악을 쓰듯 함성으로 답했다. 악진에게 들려주겠다는 생각보다는 스스로에게 하는 다짐과 같았다.
옥쇄 명령은 전장에서 받을 수 있는 마지막 명령과도 같은 것이다. 옥쇄 명령이 떨어지면 퇴각 명령은 없다. 이 전투가 끝날 때까지 살아남지 않는다면 자신이 선 자리에서 뼈를 묻어야 하는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이들의 함성은 혼란에 빠진 아군 병사들에게 전해졌다. 전차대에 몰이사냥을 당하고 있던 우적군 병사들 중 일부가 악진군이 있는 곳을 향해 퇴각을 해왔다.
그들이 보기에 악진군은 불과 수백으로 이루어져 있다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세를 이루고 있었다. 악진군은 각 오 간에 제법 간격을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적군 병사들이 그 사이를 빠져나가 퇴각을 계속하는 중에도 악진군은 자리를 지켰다.
악진군은 방패를 든 오장(伍長)이 선두에 서고 그를 기준으로 좌우익에 각기 둘씩의 병사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우적군 병사들이 이곳으로 몰리기 시작했으니 곧 장백기군 전차대의 관심도 이들에게로 쏠리게 될 터였다.
이윽고 두 대의 전차가 악진군을 향해 말머리를 틀었다. 단 두 대 뿐이지만 전차가 달려오는 모습은 악진군을 긴장하게 만들었다.
쓸만한 궁사가 있는 것도 아니고 장병을 다루는 것은 서툴렀다. 작은 방패 하나로 막아야 할 것은 너무 많았다.
오장들은 생각했다. 이 작은 방패 하나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자신의 몸 하나 지키는 것도 벅차다. 그렇다고 자신이 이끄는 오의 병사들을 나몰라라 하기도 어렵다. 오장이란 오를 이끄는 우두머리이니 휘하의 목숨을 책임질 의무가 있었다.
악진 역시 천인대를 이끄는 대장으로서 병사들을 죽음으로 내몰아야 하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자리를 지킬 수만 있다면······. 전차에 대한 공포를 이겨낼 수만 있다면······.’
유리성에서 쏟아져 나온 전차는 모두 일백여 대. 일개 성을 지키는데 백승(百乘)을 거느린다는 것은 분명 과한 처사였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눈앞의 전차 두 대만 막아내면 된다. 다음 일은 다음에 생각해야만 했다.
두 대 정도의 전차로는 사실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 도망치는 자들을 쫓아 등에 강전을 박아 넣는 것이나 추수하듯 수급을 베는 것 정도는 쉬운 일이다.
반대로 지금은 각 오가 가로로 늘어서서 일자진을 이루고 있으니 목책처럼 창을 사선으로 기울여 고정만 시켜놓아도 두 대의 전차는 기껏해야 거리를 두고 쇠뇌 정도를 쏠 수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전차에 대한 공포. 우적군 병사는 악진군보다 십 수 배 많았지만 전차에 쫓겨 다니고 있었다.
‘일단은 전차도 별 거 아니라는 걸 보여주어야만 한다.’
악진은 사기를 끌어올리지 못하면 희망이 없다는 걸 알기에 자신이 직접 나서기로 했다.
* * *
같은 시각.
우적은 장백기가 있는 곳을 향해 맹렬히 돌진하고 있었다. 그에게 있어 기울대로 기울어버린 이 싸움을 뒤집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적 총사인 장백기를 쓰러뜨리는 것 뿐이기 때문이다.
“장백기, 이놈! 이 쥐새끼 같은 놈아! 어서 나와라! 한판 붙어보자! 내가 그리 겁이 나느냐!”
우적은 연신 도발을 해댔으나 장백기의 깃발은 미동도 없었다. 이 싸움이 시작될 때부터 지금까지 장백기는 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있는 곳에 우적이 닿을 때까지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을 터였다.
‘총사로서의 그릇도 저놈만 못하단 말인가?’
우적은 본능적으로 직감하고 있었다. 병서를 읽은 적도 없지만 싸움터에서 총사가 자리를 지키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모를 리가 있으랴.
장백기는 처음부터 줄곧 자리를 지키며 공격부터 퇴각, 그리고 전차대까지 출격시켰다. 퇴각 시에 진세가 무너졌다면 전차대 출격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반격이 모두 물거품이 되었을 터였다.
반대로 우적은 어떤가. 총사라는 자가 복수전에 열을 올리며 선봉에 서서 싸웠다.
물론 총사가 스스로 선봉장이 되어 큰 전공을 쌓으면 병사들의 사기가 높아지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승리까지 그대로 직행할 수 없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우적군은 단 한 번의 유인에 당해 진세가 무너지고 말았다. 진세를 유지했다면 전차대에게 이렇게까지 처참하게 당하지는 않았으리라.
우적은 일군의 총사로 진세를 유지하는 일을 소홀히 했으니 패전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여포가 선봉에서 자유롭게 날 뛸 수 있었던 것은 저수를 감군으로 두어 지휘에 대한 부담감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적은 여포가 아닐뿐더러 저수 같은 감군도 없었다.
“슬슬 내가 나설 차례인가?”
장백기는 우적이 도발을 걸어오자 출전을 고려했다. 하지만 부장 백요가 그를 만류했다.
“총사! 우공재패 두령, 우적 따위는 제게 맡겨 주십시오.”
하지만 장백기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네가 상대할 수 있는 자가 아니다. 스무 합도 버티지 못할 게야.”
“알고 있습니다. 소장의 실력으로는 정면승부로 이길 가능성이 전혀 없겠지요.”
“그걸 알면서 나가겠다니 생각이 있는 것이냐, 없는 것이냐?”
장백기가 불같이 화를 냈다. 하기야 우적을 상대로 백요가 나선다면 이는 자살행위나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그만큼 둘 사이에 실력의 차이가 있다는 얘기였다.
그럼에도 백요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총사, 진정하시지요. 소장이 설마 주제도 모르고 날뛰는 아둔한 자로 보였습니까?”
“그럼 대체 무얼 할려고?”
“흑산의 수많은 형제들이 여포군과 싸워 목숨을 잃었습니다. 장수들 중에도 여포에게 당한 자들이 적지 않지요. 그 때의 복수를 해줄 생각입니다. 우적을 비참하게 죽여 여포의 속을 긁어놓아야 직성이 풀릴 것 같습니다.”
“그리해라.”
장백기의 허락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백요는 단 두 개의 소기를 이용해 전차대를 부리기 시작했다.
신호를 보내자마자 이를 본 수십여 대의 전차들이 우적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따라붙었다. 차륜전을 연상시키는 모습이랄까? 우적을 중심으로 돌아가며 쇠뇌를 쏘아댔다.
무거운 쇠몽둥이로 일일이 강전을 쳐낸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얘기였다. 게다가 탁 트인 곳이니 피할 수도 없었다.
백요는 소기로 전차대의 움직임을 수시로 바꿨다. 계속해서 쇠뇌를 쏘게 하여 우적은 점점 만신창이가 되어갔다.
먼저 쓰러진 것은 우적의 말이었다. 제몸 하나도 간수하기 힘든 우적이 말을 지킬 수 있을 리 없었다.
우적의 말은 강전이 엉덩이며 다리를 꿰뚫자 결국 구슬픈 울음소리와 함께 쓰러져버렸다.
말을 잃었다는 것은 기동력을 잃었다는 것과 같았다. 우적은 쇠뇌를 피해 정신없이 달렸다. 장백기에게로 달려가 그와 싸움을 시작하기만 하면 더 이상 강전이 날아들지 않을 것으로 여겼다.
하지만 장백기는 나설 생각이 없었다. 백요는 우적을 농락하듯 서서히 그의 피해를 늘려갔다.
툭! 하는 소리와 함께 강전 한 대가 우적의 무릎을 꿰뚫었다. 우적의 몸뚱이가 휘청거렸다. 하지만 우적은 쇠몽둥이를 지팡이 삼아 간신히 몸을 가눌 수 있었다.
우적이 더 이상 반항하기 힘들 때가 되어서야 백요는 전차대를 보며 엄지로 자신의 목을 그었다.
* * *
곽가가 병력을 이끌고 도착했을 때는 이미 손을 쓰기가 힘들 정도로 전세가 기울어져 있었다. 마상에서 봤을 때도 알 수 있는 것이지만 전황을 좀 더 자세히 보고 싶었다.
“고 교위, 잠깐이라도 좋으니 좀 더 높은 곳에서 보고 싶습니다. 도와주시겠습니까?”
곽가는 고순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러자 고순은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는 말에서 내렸다. 곽가는 말등을 차고 뛰어올랐다.
하지만 그 정도 높이로는 보고 싶은 것을 모두 눈에 담을 수 없었다. 전차들이 전장을 휘젓고 다녔기 때문에 한 눈에 담으려면 좀 더 높은 곳에서 내려다볼 필요가 있었다.
곽가의 신형이 포물선을 그리며 떨어지자 고순의 신형이 곽가의 낙하지점을 향해 쏘아졌다. 웅크렸다가 하늘을 향해 발을 뻗어 올렸다. 그의 발이 곽가의 발을 밀어 올렸다.
하늘을 나는 느낌이 이러할까? 곽가는 엄청난 힘을 받아 사람 키 몇 배는 될 정도로 높이 날아오를 수 있었다.
이는 고순이 천생신력을 타고 났기 때문이기도 했으나 곽가가 중독되어 몸이 많이 축이 났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어쨌든 곽가는 순간이나마 높은 곳에서 전장을 한 눈에 담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만으로 전황을 자세히 알 수 있었다.
‘대패(大敗)다!’
곽가는 함마갱과 전차의 전술 등을 종합해 볼 때 이 싸움을 뒤집기는 힘들다 여겼다. 원병을 끌고 왔지만 적군은 일백여 에 가까운 전차를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여차하면 성 안으로 물러나면 그 뿐이었다.
반대로 원병은 철기 일백을 제외하면 모두 보병이었다. 물론 보병이라고 해서 다 같은 보병은 아니다. 고순 휘하의 백인대는 아직 함진영의 이름을 얻지는 못했으나 실상은 여포가 시간을 되돌아오기 전의 함진영보다 더 강했다.
게다가 방상시부대는 공손찬이 산지에서 최강이라 자랑하던 연산병도 농락하는 강병이 아닌가. 어쩌면 전차대 정도는 해결할 수 있을 지도 몰랐다.
물론 전제조건이 있었다. 함마갱을 해결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분명 적들은 함마갱의 위치를 알 터. 곽가는 함마갱의 위치를 아는 것이야 말로 야전을 승리로 이끌 열쇠임을 확신했다.
‘이곳은 유리성이다. 유리성은 서백이 갇혔던 곳. 서백은······ 서백은······ 서백후천팔괘! 주역, 팔괘, 태극······.’
곽가의 머릿속에서 글자와 문양들이 연달아 뒤엉켜 구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고순이 ‘곤(?)’자를 이루며 하늘을 향해 뻗은 발 위에 무사히 내려섰다.
‘알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