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Follicle Exhibition RAW novel - Chapter 417
416화 백승지성(百乘之城) (1)
————– 416/753 ————–
악진은 우적군 병사들과 뒤섞여 있는 자신의 병사들을 속아내며 시간을 끌었다. 하지만 결국 양군의 싸움은 시작되었다.
“공격! 공격하라! 누구든 장백기의 수급을 베어오는 자, 은병 일백 개를 얻을 것이다!”
우적은 태항의 호걸들을 다루는 정석을 보여주었다. 우적군은 명리 따위는 좇지 않는다. 어차피 산에 들어오며 이름을 버린 자들인데 명성을 좇아 무얼 하겠는가.
하지만 우적이 내건 조건은 참으로 군침 도는 조건이었다. 장백기를 죽여 의리를 따르고, 재물 또한 챙길 수 있으니 일석이조라.
“오오!”
우적군 병사들이 함성을 지르며 달리기 시작했다. 이에 화답하듯 장백기 역시 공격명령을 내렸다. 후군에 자리한 장백기는 부장 백요를 내보내 공격명령을 내렸다.
“공격하라!”
이윽고 두 무리가 서로를 향해 치달렸다. 하지만 우적은 선두에 섰건만 장백기는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필두 우적의 쇠몽둥이가 불을 뿜었다.
후웅!
둔기가 만들어내는 탁한 파공성이 울려 퍼졌다. 그와 동시에 적병 하나가 피를 뿌리며 나가떨어졌다.
둔기는 그 특성상 베거나 찌르는 게 불가능하다. 오로지 타격으로만 피해를 입힐 수 있기 때문에 우적은 쉴 새 없이 쇠몽둥이를 휘둘러댔다.
방패를 든 자는 방패로 막았다가 방패가 박살나며 나가떨어졌다. 머리를 맞은 자는 뇌수가 터져 흐르고, 빗맞아도 뼈가 으스러지니 우적이 지나간 자리에는 처참한 시체들과 중상자들의 절규로 가득했다.
선두에서 우적이 빛나는 전공을 쌓고 있었지만 승부는 백중세였다.
양군 모두 보군이니 전열의 병사들이 쓰러지고 난 후에야 후열의 병사들에게 싸울 기회가 전해질 터. 때문에 길고 지루한 소모전이 계속될 뿐이었다.
보통 이런 싸움은 지금의 경우처럼 병사들끼리도 앙금이나 원한이 있어 한쪽이 전멸할 때까지 싸우고자 하는 경우가 아니면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가장 빨리 끝나는 전투는 총사가 전사하거나 사로잡히는 경우였다. 총사가 당하면 병사들은 싸움을 멈추고 달아나거나 항복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이런 전투는 병사들의 희생이 크다 할 것이다. 힘과 힘이 부딪혀 병사들끼리 끊임없이 죽고 죽이는 싸움이 반복되기 때문이다.
악진은 전황을 지켜보며 병사들의 피해가 너무도 안타까웠다.
‘지금이라도 천인대를 끌고 우회하여 공략한다면 빨리 승부가 날 터. 그러면 피해를 줄일 수 있다.’
양측 모두 정면대결만 고집하니 측면을 공격해 승부를 빨리 결정짓고 싶었다. 하지만 주장 우적의 명이 없는데 멋대로 병사들을 움직일 수는 없었다.
“장군, 출격 안 합니까?”
“옳소! 지금이라도 가세합시다!”
장백기가 나타나자 잔뜩 겁을 먹고 달아날 때는 언제고 이제와 병사들이 악진에게 공격명령을 내려달라 졸랐다.
하지만 악진은 공격명령을 내리지 않았다. 군령을 어기는 것은 둘째 치고라도 아직은 기다려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다.
‘곽가는 이곳이 원술에게 중요한 곳이라 했다. 분명 그런 곳을 저 정도 군세로 지키게 할 리 없지.’
악진은 조금 전 보았던 전서를 떠올렸다. 우적에게는 거짓말을 했지만 사실 그 전서는 고순이 아니라 곽가가 보낸 것이었다. 하지만 그대로 전하지 않은 까닭은 우적이 복수에 눈이 뒤집혀 있기 때문이다.
곁에서 악진이 하는 충고도 듣지 않는데 알아보지도 못할 글로 군령을 전한다 한들 우적이 받아들일 리 없었다.
때문에 악진은 자신이 나설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함정이든 매복이든 분명 뭔가가 있을 터. 지금은 승패가 갈리지 않으나 장백기가 지닌 비장의 수가 드러나면 우적 형의 군세는 밀린다. 그 때가 바로 내가 나서야 할 때지. 곽가가 원병을 이끌고 나타날 때까지 버티는 것이 내가 해야 할 일이다.’
악진은 그럴 일이 없기를 바랐지만 만일 우적군이 패퇴한다면 퇴각로 만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다짐했다. 진세가 무너져 이리저리 뿔뿔이 흩어지는 것 보다는 한 곳으로 피하게 하는 것이 피해가 적기 때문이다.
병력을 보존할 수만 있다면 반격에 나설 수도 있고, 곽가가 원군을 이끌고 올 때까지 원진이라도 이루어서 버텨볼 수도 있을 터였다.
* * *
“장군, 우리도 나갑시다!”
“이러다 우리는 전공도 못 쌓고 뒤에서 놀고먹었다는 오명을 쓸 판이오.”
병사들이 재촉하자 악진은 못 이기는 듯 입을 열었다.
“졸백들은 모두 모이라!”
졸백을 소집한다는 것은 곧 공격을 할 거라는 얘기. 이를 모를 리 없는 병사들은 더 이상 악진을 재촉하지 않았다.
졸백들이 악진 앞에 늘어섰다. 그들은 악진이 무슨 명을 내릴 지를 기다리고 있었다.
졸백이 하는 일은 천인장이 내린 명을 병사들에게 전하는 것, 그리고 싸움을 준비시키는 것이다. 악진이 복잡한 진법을 논하지는 않을 것임을 알기에 긴장하는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병력을 오(伍) 단위로 재편성한다. 최소한 오장(伍長)은 방패를 들게 하라. 오(伍) 간의 십 보를 유지한다.”
언뜻 복잡할 수 있는 명령이었으나 실상은 간단했다. 어차피 기수 유역까지 퇴각한 후로 병력을 재편했다.
보통은 십인 단위로 편재를 하지만 오(伍) 단위는 다섯 명을 뜻하는 것이니 한 단위를 두 조로 나눈 것에 불과했다. 단지 방패의 숫자가 문제가 되었다.
“오장까지 들만큼 방패가 많지 않습니다. 어찌 할까요?”
졸백 하나가 방패의 부족을 꼬집어 말했다. 단일병종으로 이루어진 부대가 아닌 이상 오장은 나무 방패라도 드는 것이 기본이다. 하지만 장백기 때문에 도망칠 때 방패를 버린 자들이 적지 않아 지금은 십장(什長) 만이 방패를 들고 있었다.
그러자 악진은 전장을 향해 턱짓을 했다.
“선봉군이 버리고 간 것이 있지 않느냐? 편재가 끝나는대로 전진 할 터이니 방패를 들 수 있는 자들은 반드시 들라하라. 내가 정지명령을 내리면 오장을 앞세워 자리를 사수한다.”
복수전에 몸이 달아오른 우적군 병사들 중 일부가 버린 방패들이 바닥을 나뒹굴고 있었다. 장백기군에 궁수대가 없으니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병사들이 방패를 버린 것이다.
악진은 병사들이 최대한 방패를 갖출 것을 명했다. 후군의 임무야 적의 기습에 대비하는 것이니 병졸들 중 누구도 악진의 의도를 의심하지 않았다.
악진군이 전진을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우적군과 장백기군은 팽팽한 전선을 유지하고 있었는데 돌연 장백기군이 퇴각을 시작했다.
물론 장백기군이 창칼을 버리고 도망치는 것은 아니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 전선을 뒤로 물리는 것이다. 우적군은 장백기군이 밀리기 시작했다 여기고 더욱 열을 올려 몰아붙였다.
‘아뿔싸! 장백기가 우적 형의 군대를 끌어들이는 모양이로구나! 곧 뭔가가 시작되겠다.’
악진은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양군의 군세나 전황을 지켜본 바로는 싸움은 이제 시작이어야만 했다. 벌써 어느 한쪽으로 승기가 기울 수가 없는 싸움이다. 양군 모두 잃은 병력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장백기가 군대를 천천히 물리는 것은 분명 그에게 흉계가 있음을 의미했다.
“전군, 정지!”
악진은 전진을 멈추라 명하고 졸백들에게 손짓해 신호를 보냈다. 어차피 미리 명을 전해둔 것은 하나 뿐이었기에 졸백들 역시 곧장 졸개들을 부렸다.
– 오장을 앞세우고 거리를 유지하며 자리를 지킨다.
악진이 졸백들을 불러모아놓고 한 말을 요약하자면 이거 하나다. 오장을 앞세운다는 것은 방패를 든 자를 앞세운다는 것과 같은 의미였다. 오 간의 거리는 십 보. 자리를 지킨다했으니 퇴각은 없다.
옥쇄 명령임에도 불구하고 누구도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아직까지는······.
* * *
장백기군은 천천히 군세를 물려 우적군을 유리성 오백 보 앞까지 끌어들였다.
장백기는 전황이 어찌되는지는 관심도 없다는 듯 작은 숫돌로 창날을 갈고 있었다.
“총사! 태항의 버러지들이 유리성 오백 보 앞까지 이르렀습니다.”
부장 백요가 아뢰자 그제야 장백기는 숫돌을 손에서 놓았다.
“퇴각명령을 내려라! 좀 더 끌어들인다.”
이에 백요는 난색을 표했다.
“총사, 이곳까지 위험해질 수 있습니다.”
“전장에서 위험하지 않은 곳은 없다.”
“그래도 적병이 총사가 있는 곳까지 닿아서야······.”
“미끼가 먹음직스러워야 물지. 잔말 말고 퇴각명령을 내려라.”
장백기는 스스로 미끼를 자처했다. 백요는 더는 그를 말리지 못하고 결국 퇴각명령을 내렸다.
“퇴각하라!”
그 때부터 장백기군이 줄행랑을 놓기 시작했다. 그러자 우적군은 신이 나서 그들을 쫓았다.
‘진세가 무너진다! 장백기가 의도한 건 이거였나?’
악진은 우적군이 퇴각하는 장백기군을 쫓느라 뒤엉키는 모습을 보며 위기가 다가오고 있음을 직감했다.
그 단순한 일자진마저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은 우적이 뜻대로 병사들을 움직일 수 없음을 의미하는 것. 그리고 악진의 우려는 그대로 적중했다.
활짝 열린 유리성 성문에서 전차들이 달려 나오기 시작했다. 네 마리 말이 끄는 전차들이 줄줄이 모습을 드러냈다. 한 대, 두 대, 세 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타나는 전차의 수는 순식간에 수십에 이르렀다.
“전······ 차라니!”
선봉의 자리를 놓치지 않은 탓에 우적은 전차의 출현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보게 되었다. 사실 우적도 전차를 실제로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전차는 지금에 와선 의장용 혹은 기마를 하지 않는 지휘관이나 책사들 정도만이 사용하는 것이다. 기병들이 주축이 되면서 전차는 설 자리를 잃었기 때문이다.
전차는 기병에 비해 운용하는데 군비가 더 많이 들어간다. 그럼에도 바닥이 고르지 못한 곳에서는 속력을 내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었다. 거기다 수레의 특성상 기병에 비해 방향 전환이 느릴 수밖에 없어 기동력 역시 기병에 못 미친다 할 것이다.
그런 이유로 전장에서 전차의 모습은 점차 사라져갔고 동한에 이르러서는 그 모습을 완전히 감추게 되었다.
하지만 전차는 여전히 보군에겐 위협적인 상대였다. 사두마차는 정원이 세 명이다. 수레를 모는 마부, 원격을 담당하는 궁사, 그리고 접근하는 적을 상대하기 위한 창수. 이렇게 셋이 한 조를 이루어 전차에 오르는 것이다.
물론 장백기군의 전차는 궁사 대신 쇠뇌병이, 창수 대신 극병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쇠뇌는 연사력과 사거리는 떨어지지만 다루기가 쉬우니 어려운 궁술을 익힐 필요가 없다. 창 대신 극을 쓰는 것도 비슷한 이유다.
전차부대의 등장에 승부는 대반전을 맞이했다. 생전 처음 보는 전차에 당황한 우적군 병사들은 장백기군을 뒤쫓던 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전차가 얼마나 큰 위협이 될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본능은 도망치라는 신호를 연신 보내고 있었다.
슈슈슉!
강전이 쇠뇌의 시위를 떠나며 뿌리는 파공성과 함께 쇠뇌의 사거리 안에 있던 자들 중 일부가 썩은 짚단처럼 쓰러졌다.
우적군은 병사들 간에서 유대관계가 깊다. 당한 자들의 동료들이 창칼을 들고 전차를 향해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들을 기다리는 건 자루가 긴 극이었다.
극이라고 해도 여포가 쓰는 방천화극과는 다르다. 과(戈)와 모(矛)를 합쳐 놓은 것이 바로 극이다. 찌르고 베는 것은 물론이고 내려찍는 동작으로도 공격이 가능한 것이다.
네 마리 말이 끄는 전차의 속도는 기병에게는 미치지 못해도 사람이 따라잡을 수는 없는 것. 게다가 자루가 긴 극을 휘둘러대니 보군들은 당해낼 엄두가 나질 않았다.
게다가 수레바퀴의 축에 박힌 칼날은 바퀴가 돌 때마다 함께 돌며 걸리는 모든 것을 갈라버리고 있었다.
우적군 병사들이 추풍낙엽처럼 쓰러졌다. 이 모습을 본 우적은 승기가 적에게로 기울었다 판단하고 퇴각을 명했다.
“퇴각하라! 전군 퇴각하라!”
보군만으로 전차를 상대한다는 것은 죽으라는 얘기나 다름없었다. 게다가 우적군에 쓸만한 궁사들이 있는 것도 아니고, 창이나 극 같은 장병에 능한 자들 역시 많지 않았다.
하기야 말이 좋아 산중호걸이지 따지고 보면 산에서 도적질을 하던 무리가 아닌가. 잡목이 우거진 곳에서도 방해받지 않고 쓸 수 있는 단병을 선호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 자들로 이루어진 병사들이 전차대를 상대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우적이 퇴각명령을 내리자 병사들은 즉각 반응했다. 전차를 당해낼 수 없으니 전장을 이탈하려 했다. 하지만 전차는 빠른 속도로 우적군 진세를 휘젓고 있었다.
‘퇴각할 시간을 벌어야 한다. 이대로라면 다 죽는다! 다 내 잘못이다. 내 잘못이야!’
우적은 장백기가 전차대를 가지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렇다고 해서 이 상황에 대해 책임이 없는 것은 아니다. 모든 것은 결과가 말을 해주는 것이 아닌가.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 병사들의 희생을 줄일 방도를 찾았다.
하지만 병법에 조예가 없는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병사들이 퇴각할 시간을 버는 것 뿐이었다. 그는 단기로 전차대를 향해 돌진했다.
그를 향해 쇠뇌가 연달아 쏘아졌지만 잔상이 남을 정도로 돌아가는 쇠몽둥이에 튕겨나기 일쑤였다. 하지만 그 무거운 병장기로 강전을 다 쳐낼 수는 없는 법이다.
투둑!
어깻죽지와 허벅지에 각기 한 발씩 강전이 박혔다. 하지만 고통을 느낄 틈이 없었다. 사람이 다급하면 아픈 게 느껴지지 않을 때가 있는데 지금 우적이 딱 그 짝이었다.
“이놈들! 내가 그리 쉽게 보내줄 성 싶으냐! 이야압!”
우렁찬 기합성과 함께 우적의 쇠몽둥이가 전차를 끄는 말의 머리를 강타했다. 네 마리 말 중 한 마리가 머리통이 짓이겨져 즉사해버렸다.
그러자 그 충격으로 전차가 달리는 방향이 바뀌고 말았다. 뿐만 아니라 우적에게 맞아죽은 말의 시체가 여전히 수레에 묶여 있었기에 질질 끌려 속도를 늦추게 만들고 있었다.
‘이놈, 장백기야! 내 결코 쉽게 당하지는 않을 것이야!’
우적은 최후의 일전을 준비하며 저 멀리 장백기의 깃발이 있는 곳을 향해 눈을 부라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