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Follicle Exhibition RAW novel - Chapter 481
480화 현량방정(賢良方正)이 열리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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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녕은 우측으로 높이 두 손을 모아 들며 말을 이었다.
“당금 천자께선 연치 미령하시어 태후께서 임조청정을 하시고, 동 상국은 개혁에 박차를 가하나 젊은 사인들에게는 실력이 없습니다. 명문의 후예들이 자리를 꿰고 앉아 나라를 망치고 있으니 이제야 말로 우리가 나서야 할 때입니다.”
“여 장군에게 마음을 뺏긴 자네가 그를 위해 일하겠다면 말리지 않겠네. 하지만 우리에겐 그런 생각이 없으이.”
왕렬의 말에 국연과 병원이 동조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관녕은 설득을 포기하지 않았다.
“여 장군이 소생에게 말하기를 현량방정을 통해 천하에 그 실력을 인정받아 출사하라 했습니다. 그렇게 해야 뜻을 펴는데 걸림돌이 없을 거라 했습니다. 매관매직이나 인맥으로 천거를 받아 관직에 오르면 반드시 그 대가로 부정을 저질러야 하니까요.”
“여 장군의 말이 실로 옳네. 실력으로 관직을 얻는다면 곳곳에 만연한 부정부패가 많이 사라지겠지. 하지만 독버섯은 난 자리에 또 나는 법. 더러운 곳에는 발걸음을 하지 않는 것이 상책이겠지.”
왕렬이 재차 부정적인 뜻을 표명하자 관녕의 목소리가 거칠어졌다.
“우리가 지금 분연히 일어서지 않는다면 우리가 익힌 학문이 다 무슨 소용이란 말입니까? 그저 시문이나 읊으면서 세월을 보내려고 그 많은 낮과 밤을 수학하며 보냈단 말입니까?”
관녕의 말에 세 사람은 눈을 내리깔았다. 어쩌면 자신들은 비겁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어진 관녕의 말은 이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만들었다.
“지금 조정에선 권신들이 전횡을 일삼고, 도처에선 환란이 거듭되니 도리가 땅에 떨어지고 백성들은 고통에 신음하고 있습니다. 오직 무장의 칼만이 난세를 끝낼 수 있다고 보십니까? 틀렸습니다.”
관녕은 그리 말하고는 왕렬과 시선을 맞췄다.
“조금 전에 언방 선생께선 독버섯은 난 자리에 또 난다 하셨지요?”
“그랬네.”
“난세를 끝내는 것은 칼이 아니라 붓입니다. 여 장군은 무예와 용맹이 하늘에 닿고, 그 군대는 백전불패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간웅들을 척결한다고 해도 태평성세를 불러올 정책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또 다른 간웅들이 일어서 다시 난세를 불러올 겁니다.”
“결심했네. 자네의 말을 듣고 보니 이 머릿속에 든 학문을 세상을 위해 쓸 때가 된 것 같네.”
왕렬은 병원과 국연을 향해 시선을 두며 권했다.
“이보게들, 우리가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지 않고 오직 우리의 실력으로 관직에 오를 기회가 왔네. 그렇게 출사를 한다면 누구의 뜻에도 휘둘리지 말고 우리가 꿈 꿔 온 태평성세를 만들 뜻을 펼쳐보세.”
“좋습니다. 왕 언방께서 출사하신다면 삼공구경의 자리가 앞 다투어 달려들 터. 나도 승(承) 자리 하나 있으면 얻어서 죽림 대신 궁중에서 시문을 읊어봅시다.”
병원까지 현량방정에 도전할 뜻을 보이자 국연이 고개를 기울였다. 그도 하는 수 없다는 듯 동조했다.
“나만 혼자 남으면 죽림의 운치는 누구와 함께 감상할 것이며, 좋은 술도 혼자 마시면 맹물과 다름없지. 나도 선생들과 함께 경성으로 가겠소. 다만 수석의 자리는 결코 양보할 생각이 없소.”
요동에 은거한 네 명의 현사들이 현량방정에 응시하기 위해 그 길로 길을 떠났다. 하지만 현량방정으로 뜻을 펼쳐보고자 하는 자들이 어찌 이들 뿐이랴.
천하 십삼 주의 와룡들이 쟁주하려 몸을 풀고 있었다.
* * *
여포는 하내를 시찰하려 천정관을 나왔다. 야왕을 시작으로 동진했다. 사실 시찰은 핑계일 뿐 사견성과 산양성에 주둔하고 있던 주준의 군세가 움직여 이를 견제하기 위함이었다.
주준은 경성으로 돌아와 병부를 반납하라는 조서를 받들어 성을 떠났다. 그런데 행로가 달랐다. 맹진으로 가지 않고 오히려 남동으로 방향을 잡은 것이 아닌가.
조정에서 이에 대해 여포에게 별다른 명을 내리지 않았기 때문에 싸울 수가 없었다. 노식이 옛 정을 생각해 직접 만나보려 했지만 그마저도 주준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들이 하내를 완전히 떠나자 여포는 입맛이 씁쓸했다. 난세에 수만 병사를 이끄는 군권과 그들을 먹일 병량이 있으니 주준에게 역심이 없다 한들 일군을 이루어 한 지역의 패자가 되고자 하는 야심이 생겨난 것인가 싶었다.
하기야 주준에게 다시 이만큼의 병력을 움직일 기회가 또 있으랴.
여포는 계속 동진하여 획가의 군량고 요새에 이르렀다. 마치 그가 도착하기를 기다렸던 것처럼 장왕이 수레를 몇 대나 끌고 왔다.
장왕이 헐레벌떡 달려와 여포에게 읍했다.
“장 대인, 무슨 일이오?”
여포는 손을 뻗어 예를 거두게 했다. 그러자 장왕이 자랑스레 말했다.
“여 장군, 장군의 말을 듣고 크게 깨달은 것이 있어 집안의 곳간을 모두 열었소이다.”
“그리하니 어떻소? 곳간이 텅 비어 마음이 심란하오?”
“처음에는 허한 마음에 잠도 안 왔소이다. 하지만 백성들의 곡소리 대신 노랫소리 들려오고, 원성 대신 칭송을 하니 이 정도면 양곡을 풀어도 그 값은 다 했다 생각하오.”
장왕은 여포 덕분에 진정한 명문이 어떤 것인지를 알게 되었다. 가문의 명망은 결코 곳간에 쌓인 양곡이 몇 석인가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다. 사병이 몇 명이나 되는지도 중요하지 않다. 물론 높은 벼슬을 한 자가 나왔느냐도 관건이 아니다.
한 지역에서 명문 소리를 들으려고 한다면 백성들이 그 가문을 얼마나 칭송하는 지에 달린 것이다. 그것은 곧 그 가문이 그 지역과 백성들을 위해 무슨 일을 했느냐와 같은 말이다.
“양곡을 쌓아 놓고 있다가 썩혀 내버리거나 쥐새끼들 배를 불려주는 것보다야 훨씬 낫다는 걸 알았으니 되었소.”
장왕은 그러더니 자신의 수하들이 끌고 온 수레들을 향해 손을 뻗어 보였다.
“이게 다 뭔지 아시오?”
“항아리를 왜 이리 잔뜩 싣고 왔단 말이오?”
“그냥 항아리가 아니외다. 이게 다 여 장군을 위해 백성들이 바친 술이오.”
“먹을 것도 없을 텐데 어찌 술을 빚는 단 말인가.”
여포는 통탄을 금치 못했다. 술을 빚는데 들어가는 양곡은 생각보다 많았다. 하내에 굶어 죽어가는 자들이 줄었다고는 하나 순무가 자라기 전까지 식량사정이 허락할지 장담할 수 없었다.
당장에 여포마저도 수수밥에 박채로 간신히 끼니를 잇는 처지가 아니던가. 그런데 양곡으로 술을 빚다니 당치도 않은 소리였다.
하지만 여포가 걱정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여 장군은 오해하지 마시오. 이 술들은 모두 호족가나 백성들이 보관하고 있던 것이지 새로 만든 술이 아니외다. 술을 마셔서 허기를 면할 수 있다면 진작 사라졌을 것들이나 그렇지가 않잖소?”
“그렇다면 고맙게 받겠소.”
“아아! 공치사는 내 몫이 아닌 것 같소. 이것이 모두 여 장군의 홍복이 아니겠소? 백성들이 바친 술중에 특별히 좋은 것이 있어 따로 빼어 실어 두었으니 수레를 끌고 온 공을 생각해서 소생에게도 한 잔 내어주시구려. 그거면 족하외다.”
“군량도 아끼지 않고 구휼미로 내놓은 내가 어찌 술을 아끼겠소? 자, 안으로 가십시다. 거친 나물이나마 안주로 괜찮다면 허리띠를 풀어놓고 즐겨봅시다.”
여포는 조촐한 주연을 열었다. 병사들도 한 두 모금 목을 축일 정도로 술이 돌아갔다.
여포와 장왕이 몇 순배를 돌았을 때였다. 장왕이 장년의 문사 하나를 데려와 소개했다.
“여 장군, 이 쪽은 소생의 종형이외다.”
“소생은 장도 경명이라 하외다.”
장도가 두 손을 모아 들자 장왕은 기다렸다는 듯 장도를 여포에게 소개했다.
“경명 형으로 말씀드리자면 광화 삼 년에 거록 태수를 지내셨고, 지난 회맹 때에는 회맹군에······.”
장왕은 말을 하다가 끝을 흐렸다. 여포가 동탁의 사람이라 여겼기 때문에 반동탁의 회맹에 참여한 일을 언급한 게 잘못되었다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한 번 내뱉은 말을 다시 주워 담을 수는 없었다. 그저 여포가 화를 내지 않기만을 바랄 뿐······.
* * *
“회맹에 참여한 것이 무슨 대수요? 다만 아직까지 원 씨 형제의 수족을 자처하는 등신 같은 자들이 문제인 것이지.”
여포의 말에 장도는 손사래를 쳤다.
“원소는 용주요, 용주! 게다가 원술은 신천자를 세우고자 하니 역적이오. 내 경학을 익힌 자로 어찌 용주와 역신을 가까이 하겠소? 그들의 진면목을 알게 되자마자 자리를 털고 돌아왔소이다.”
“그건 잘 하셨소. 그런 자들과 가까이 한들 화만 입을 뿐 결코 득이 될 일이 없소.”
여포는 맞장구를 쳐주고는 장왕에게 시선을 옮겼다.
“그런데 어째서 장 대인의 종형을 내게 소개하는 거요? 벼슬을 바라는 것이라면 내게는 그럴 생각이 없소. 벼슬을 사고파는 일로 나라가 이 꼴이 되었는데 내 어찌 그런 파렴치한 짓을 할 수 있겠소?”
여포는 그리 말하고는 장도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이보오, 장 대인. 벼슬을 얻고자 한다면 이번에 열리는 현량방정에 응시해보시오. 이번 현량방정은 지금껏 열렸던 것과는 다르오. 오직 그 실력으로만 인재를 널리 구하기로 했소. 만약 장 대인에게 실력과 출사의 뜻이 있다면 현량방정이 바로 그 길이 될 것이오.”
그러자 장왕 대신 장도가 답했다.
“장군, 소생은 벼슬 따위에는 관심이 없소이다. 이미 거록 태수까지 지냈고, 중앙의 관직은 허울 뿐이니 그냥 준다고 해도 싫소.”
“그럼 무엇을 원하시오?”
“실은 내가 장군을 만나고자 종제에게 부탁을 했소. 장군, 장군은 굶주린 백성들에게 양식을 그냥 내주지는 않는다 들었소.”
“그렇소. 부역을 시킬 일이 있으면 그 대가로 양곡을 나누어 주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소. 하지만 하내 백성들의 사정이 딱하고 당장에 몸도 가누지 못하는 자들에게 부역을 시켜봐야 희생만 날 뿐이니 그러지 않고 있소.”
여포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더니 장도는 여포에게 두 손을 모아 들었다.
“소생 장도. 여 장군께 성과 요새를 보수하는 부역은 길이 아님을 말씀드리고 싶소.”
“지금 도처에 군웅들이 난립하여 천자의 어심은 팔관의 관문을 넘지 못하고 있소. 한실을 재건하고 난세를 끝내려면 싸움은 피할 수 없지. 이왕 해야 할 싸움이라면 마땅히 이겨야 하오. 그래서 부역을 시킨다면 성을 보수하고 요새를 쌓는 것이 당연한 일이 아니겠소?”
“성과 요새는 오직 싸움을 위해서만 쓰이는 것이니 어찌 그것이 백성들을 위하는 길이라 하겠소? 오히려 성과 요새가 있는 곳에 싸움이 있으니 대가로 양곡을 받는다 한들 백성들이 어찌 마음이 편하겠소?”
여포는 장도가 부역에 관한 것을 말하자 깊이 새겨들었다. 하지만 장도는 여포가 기분이 상한 줄로 오해했다. 물론 싹싹 빌 생각은 없었다. 다만 여포는 선정을 베푸는 지방관이니 그에 대한 예우 정도는 해줄 요량으로 말했다.
“천학이 어사대부를 가르치려 든 것 같아 송구하외다.”
장도가 두 손을 모아 들자 여포는 손사래를 쳤다.
“나 여포 봉선은 부족한 게 많소. 무예 말고는 모두가 내 스승이 될 수 있지. 대인의 고견은 잘 들었소.”
“그리 말해주니 고맙소이다.”
“말이 나온 김에 하나 묻겠소. 그럼 장 대인은 내가 부역을 시키지 말아야 한다고 여기시오?”
여포가 묻자 장도는 돌연 여포에게 정중히 읍했다.
“어찌 이러시오?”
“소생 장도 경명, 여 장군께 치수를 할 것을 청하오.”
“치수(治水)?”
“그렇소. 치수요. 소생은 천문에는 조예가 없으나 사서를 공부하며 한 가지 법칙을 깨닫게 되었소. 그것은 바로 황충으로 큰 충해를 입은 다음해에는 반드시 강물이 범람하여 큰 홍수가 난다는 것이오.”
“큰 홍수가 난다? 황하에 큰 홍수가 날 거란 말이오?”
여포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소생에겐 확신이 있소. 소생이 듣기로 여 장군의 휘하에는 맹장 만큼이나 현사들이 많다 들었소. 만약 소생의 말이 거짓이라 여겨진다면 그들 중에 천문을 읽을 줄 아는 자에게 물어보시오. 과연 올해에 홍수가 날지 안 날지를 말이오.”
“다행히 천문에 밝은 선생이 있어 도움을 청할 수 있겠으나 문제는······.”
여포는 말끝을 흐렸다. 그러자 장도가 물었다.
“여 장군이 정녕 백성들을 생각한다면 응당 황하를 치수하여야 하오. 어찌 망설인단 말이오?”
“내 비록 학문이 짧으나 치수는 온 나라의 힘을 집중해야만 가능한 일로 알고 있소. 치수에 뜻이 있다고 해도 역량이 부족하오.”
차라리 백만 대군과 싸우라면 싸울 수 있으나 치수는 여포의 역량 밖이었다.
실제로 치수는 국가적 역량을 쏟아 붓는다고 해도 성공을 장담할 수 없는 대공사였다. 하물며 사람과 물자가 부족한 여포의 힘으로 이를 행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어불성설이었다.
“그러면 홍수가 날 줄 알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않으시겠다는 얘기요? 여포가 목민관이라 하더니 세상의 소문은 믿을 것이 못되는 구나!”
장도의 말에도 여포는 화를 낼 수가 없었다.
“좋소. 조건을 달지. 장 대인은 현량방정에 응하시오. 그리고 합격하든 낙방하든 천자께 상주하시오. 치수를 해야 한다고 말이오.”
“어심이 팔관을 넘지 못한다고 말한 건 여 장군, 본인이오.”
“그렇소. 내 그리 말했소. 천자께서 명을 하시어 나라의 힘을 모아 치수를 할 수 있다면 그것이 상책 아니겠소?”
“만일 그리되지 못한다면 그 때는 어쩔 것이오?”
장도는 당금천자나 조정이 치수를 행할 리 없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자 여포는 손가락을 높이 치켜들었다.
“이 자리에서 하늘과 땅에 약속하오. 만일 그리 되지 못한다면 이, 여포!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이라도 치수를 행하여 조금이나마 천하에 보탬이 되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