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Follicle Exhibition RAW novel - Chapter 484
483화 여포와 원희의 거래(行業交?) (2)
————– 483/753 ————–
“어차피 그 일은 먼 훗날의 일이 아닙니까? 그러니 지금에 집중해야 합니다. 가 선생께서 원하시는 걸 한 번 말씀해보십시오. 물론 원희가 줄 수 있을 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오직 양식 뿐이오. 하내를 얻으며 그 많은 면포비단과 보옥들을 얻었고, 귀한 서책과 장신구도 많소. 하지만 그것은 진귀하지만 먹을 수는 없는 것들이 아니오?”
가후의 말대로 여포는 하내를 취하며 많은 것들을 얻었다. 사마 부에서만 해도 그 재물이 얼마나 많았던가. 뿐만 아니라 곳곳에서 제후군을 패퇴시키고 얻은 군수품도 상당했다.
하지만 양곡이 아니면 여포가 백성을 구휼하는 데에는 아무런 쓸모가 없는 것이었다.
충해로 인해 한 해 농사가 물거품이 되었고, 모진 겨울을 살아서 넘긴 백성들 사이에선 이미 재물은 돌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것은 양곡의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았기 때문이다.
그나마 한호를 이용해 하내 호족들의 곳간을 풀게 했으나 언 발에 오줌을 누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원희에게 영보 상단이 관동군에 군납을 하게 만들 능력만 있어도 재물과 양식을 맞바꿀 수 있을 텐데······.”
“원희에게는 그런 능력이 없지요. 이제 간신히 원소의 눈에 들기 시작했는데 무슨 수로 군납까지 연결해줄 수 있겠습니까?”
“아쉬운 마음에 한 번 해 본 소리요.”
그러자 진의록이 미소를 머금었다.
“원희에게 능력이 없다는 것이지 그 일이 불가능하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방법이 있소?”
“이미 육예 상단의 이름에 잿가루를 뿌려 놓은 일을 잊으셨습니까?”
“그래도 쉽지는 않을 텐데?”
“유 부인을 이용하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요. 육예 상단이랑 장남 원담을 엮어놓았으니 조금의 불씨만 당겨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견제하려 들 겁니다. 우리는 가만히 앉아서 구경하며 즐기면 됩니다.”
일전에 원희가 원소의 부인이자 삼남 원상의 어미인 유 부인에게 의탁했을 때 이미 큰 틀은 짜여 져 있었다. 육예 상단을 원담의 후원자로 맞춰 놓고 그 증거까지 들이밀지 않았던가.
육예 상단은 관동군을 후원하는 열여섯 개 상단 중 당당히 한 자리를 차지하는 거상이지만 유 부인에게는 감히 원담을 지원하는 발칙한 세력에 불과했다.
그러니 유 부인은 원담을 견제하기 위해서라도 육예 상단과 대립할 상단을 원할 터였다.
유 부인의 입장에선 영보 상단을 군상에 합류시켜주는 것이 편할 것이다. 굳이 다른 군상들을 후원해줄 필요도 없이 판에 끼워만 주면 알아서 육예 상단과 물고 뜯을 테니까.
물론 돌아가는 판 자체가 가후와 진의록, 그리고 단목영이 원하는대로 돌아가고 있는 것은 변함없는 사실이었다.
* * *
여포와 원희가 술잔을 돌리며 이런 저런 쓸데없는 얘기들로 시간을 때우던 그 때. 가후와 진의록이 교섭을 끝내고 왔다는 보고를 받았다.
이내 여포 앞에는 한번 접힌 합의서가 놓여졌다. 가후와 진의록은 각각 여포와 원희의 뒤로 가 시립했다.
여포는 합의서를 펼쳐 내용을 읽지도 않고 그대로 인장을 찍어버렸다. 그러자 원희가 놀라 물었다.
“어찌 읽어보시지도 않고 곧장 인장을 찍으신단 말입니까?”
“나는 내 군사를 절대적으로 신뢰하니 당연히 읽어볼 필요가 없지. 자네는 가는 길에 잘 읽어보게. 특별히 봉납은 하지 않겠네. 설마 원소가 아들을 믿지 못하지는 않겠지?”
“물론입니다.”
“친한 벗이라면 객관에 묵게 하여 밤새도록 술을 마시며 지난 일들을 얘기할 수 있을 것이나 자네는 적의 아들이란 말이지.”
여포가 축객령을 내리자 원희는 이를 알아차리고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소생은 그럼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보중하게.”
작별인사가 끝나자 가후가 밖에 명했다.
“죄인 전주와 조안민을 데려와라!”
가후의 말에 원희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처음에는 웬 떡이냐 싶었지만 이내 원희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자신은 아무것도 줄 수 있는 게 없는데 여포는 전주와 조안민을 내놓은 셈이기 때문이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허술한 상대라면 이익만 취하고 요구를 무시할 수 있겠지만 상대는 여포가 아닌가. 원희는 자칫 이것을 빌미로 여포에게 얽매이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었던 것이다.
“이 공자, 이미 엎질러진 물입니다. 다른 소리 마시고 여포의 마음이 변하기 전에 얼른 저들을 데리고 떠나시지요.”
진의록이 곁에서 속삭이듯 말하자 원희는 무거운 마음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원희는 수레를 타고 야왕을 떠나 의양성으로 향했다. 야왕을 벗어나기가 무섭게 원희는 여포의 인장이 찍힌 합의서를 펼쳐들었다.
“선생, 불가침의 대가로 고작 십만 석이라니 어찌된 거요?”
원희가 묻자 진의록이 백우선으로 부채질을 하며 답했다.
“소생에게 미리 언질을 주셨다고 해도 더 부르거나 덜 부르지는 않았을 겁니다.”
“어째서 그렇소?”
“원 공과 여포의 거래입니다. 하찮은 지방의 맹주 따위와 거래하는 것과는 다르지요. 단위는 십만은 되어야 맞습니다. 원래라면 이십 만을 불렀을 것이나······.”
“부공께서 받아들이지 않으실까봐 그랬소?”
관동군은 사람과 물자가 넘치는 최대의 군벌이었다.
지략과 병략을 낼 참모들이 무려 수십에 이른다. 그들 하나하나가 삼십육가를 대표하는 병법자들이거나 이름만 대면 알만한 명문가의 후예들이었다.
장수는 수백에 이르고, 정병은 십만에 원소를 따르는 호족과 군벌들의 사병까지 모두 합치면 삼십 만에 이른다.
관동군 병력은 지금도 불어나고 있을 터. 기주와 예주에서 계속해서 모병하고 있었고, 연주 정벌을 시작했으니 연주의 호족들도 속속들이 투항하고 있는 중이다.
몸집을 불리기 위해 계속해서 병사들을 늘리고 있으니 그것은 곧 군량에 대한 걱정이 없다는 반증.
그러니 원희는 원소가 고작 이십 만 석의 군량을 아까워 할 리 없다고 여겼다. 하지만 진의록의 생각은 달랐다.
“원 공께선 누구보다 체면을 중시하시는 분입니다. 이십 만 석을 내줘야 한다면 굴욕으로 느끼실 것이나 십만 석이면 적선으로 여기실 테지요.”
“어째 아들인 나보다 진 선생이 부공을 더 잘 아는 것 같소.”
당연했다. 진의록은 종횡가의 가르침을 좇는 유세객이 아닌가. 가능하면 상대에 대한 철저한 이해를 선행했다.
이번 경우는 다행스럽게도 원소가 너무 유명한 명사였기에 그에 대한 정보가 많았다. 그것을 바탕으로 원소에 대한 파악이 끝난 상태이기 때문에 무슨 말을 하든 자신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설마 자식보다 더 잘 알 수야 있겠습니까? 소생이야 그저 짐작하는 것 밖에는 안 되지요.”
“어쨌거나 십만 석 정도면 부공께서도 문제 삼지 않으시겠지. 그런데 전주와 조안민의 몸값은 너무 과한 거 아니오? 군납이라니······. 그건 내 힘으로 어찌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걸 선생이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지 않소?”
원희는 진의록이 야속했다. 지금 자신의 처지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이가 진의록이기 때문이다. 형과 동생 사이에 끼여 마음고생을 안 한 날이 없었다.
야심을 숨기고 눈에 띄지 않으려 숨죽이고 지내온 세월이 얼마던가. 이제 겨우 날개를 펼치고 날아오르려 하지만 곁에는 세력도 사람도 미미했다.
그런데 무슨 수로 영보 상단이 관동군의 군상이 될 수 있도록 선을 놓아줄 수 있단 말인가.
“당연히 이 공자에게는 그런 힘이 없지요. 뿐만 아니라 영보 상단은 여포의 군상인데 능력이 있다 한들 다리를 놓아주면 후일 반드시 문제가 생깁니다.”
“그런데 어쩌자고 그런 약조를 한 것이오?”
원희는 역정을 냈지만 진의록은 여전히 한가로이 부채질을 계속했다.
“원 공의 인장이 찍힌 것도 아니잖습니까? 그 서신에는 오직 여포의 인장만 찍혀 있습니다.”
“여포의 군사가 어리석은 사람은 아닐진대······.”
“그렇지요. 지모로 따지자면 소생보다 수십 배는 더 뛰어난 사람입니다.”
“그런데 우리만 이익을 취하는 꼴을 보고만 있겠소?”
원희의 입장에서는 분명 이번 교섭은 큰 성과를 얻은 것이다. 불가침의 맹약을 고작 양곡 십만 석에 샀고, 영보 상단이 관동군의 군상이 될 수 있도록 주선하는 조건으로 전주와 조안민의 신병을 양도받은 것이다.
물론 열여섯에 달하는 관동군의 군상이 열일곱 개가 된다 한들 무엇이 문제겠는가.
하지만 여포의 군상이 관동군의 군상을 겸한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일이자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었다.
원담이 나서도 될 리 없는 일을 원희가 나서야 하니 미치고 팔짝 뛸 밖에······. 원희는 아예 안 되는 일이라고 내심 결론을 짓고 있었다.
“이는 반드시 지켜져야만 합니다.”
“안 될 일을 어찌 약속했단 말이오?”
“이 공자의 가치는 여포와의 소통로라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그걸 모르는 바는 아니나 안 하겠는 것도 아니고 못하는 일인데 어쩌겠소?”
* * *
진의록은 빨리 답을 줄 수 있음에도 여기까지 말을 돌려 원희를 애타게 만들었다.
‘너무 궁지로 몰아붙이면 안 되지. 이쯤에서 퇴로를 열어줘 볼까?’
병법자들이 만드는 군진은 병사들이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유세객의 군진은 유세객의 세 치 혀와 이에 놀아날 상대만 있으면 되는 것이다.
“이 공자, 소생의 말을 잘 들으십시오. 우선 영보 상단이 관동군의 군상이 되는 것은 여포가 원하는 일이 아닙니다. 우리와 여포를 잇는 것은 영보 상단의 자초 대인입니다.”
“그야 알지. 잘 알지. 내가 그걸 모르겠소? 아마 그 조건 역시 자초 대인이 내건 것이라고 봐도 무방할 테지.”
“이 공자, 총명! 그렇다면 자초 대인이 여포를 움직일 정도의 거물이라는 것도 충분히 짐작하고 계실 겁니다. 자, 한 번 생각을 해보십시오. 원가의 장자는 육예 상단의 후원을 받고 있습니다. 날이 갈수록 그 금력으로 세를 불려가고 있지요.”
“그럼 대부인께 부탁을 하란 말이오?”
원희가 핵심을 찌르자 진의록은 미소를 띠며 두 손을 모아 들었다.
“총명! 총명! 소생이 더 말을 할 필요가 없군요.”
“오히려 나는 선생의 지모를 칭찬하고 싶소이다. 내게는 힘든 일이나 대부인에게는 가능한 일이지. 형님을 지지하는 세력이 날로 그 기세를 더해가고 있으니 제동을 걸 필요가 있소. 하지만······.”
원희가 말끝을 흐렸다. 그러자 진의록은 애써 그와 시선을 마주하며 어린아이 달래듯 물었다.
“어찌 그러십니까? 마음에 걸리는 것이라도······?”
“암만 생각해봐도 대부인이 쉽게 움직이지 않을 것 같아서 그렇소. 육예 상단을 견제하는 것은 다른 상단에게 힘을 실어줘도 되는 일 아니오?”
“이 공자께선 영보 상단이 병주에 기반을 둔 상단이라 너무 업신여기는 군요. 소생의 말이 틀렸습니까?”
그러자 원희는 열심히 손사래를 쳤다. 진의록도 병주 사람이니까.
병주 사람들은 일종의 피해의식이 있었다. 하기야 병주 출신이라는 것 하나만으로 일단 밑지고 들어가는 것들이 어디 하나 둘이던가.
“내 그럴 리가 있겠소?”
“그럼 묻겠습니다. 관동군의 군상 중에 원 공을 움직일 만큼의 금력을 지닌 군상이 있습니까?”
“없지.”
“하지만 원 가의 장자를 쥐락펴락하는 상단은 있지요. 육예 상단이 바로 그들입니다. 그런 자들을 견제할 수 있는 상단이라면 소생이 알기로는 영보 상단 뿐입니다.”
실제로 영보 상단이 큰 상단이기는 했다. 하지만 육예 상단이 원담의 후원자도 아니거니와 그와 맞먹을 상단이 영보 상단만 있는 것도 아니다.
관동군의 군상은 모두 열여섯이나 되는데 어느 곳 하나 허술한 곳이 없었다.
하지만 원희는 이 말의 진위를 판별할 능력이 없었다. 그러니 진의록이 마음대로 농락하는 것이다. 심지어 이제는 세뇌까지 시도했다.
“명심하십시오. 이 공자께선 예주 사람이고, 기주에 기반을 둔 원 공의 자식입니다. 하지만 예주나 기주 사람은 공자의 편이 아닙니다.”
“그걸 내 어찌 모르겠소.”
“지금껏 공자의 능력과 야심을 알아본 이는 오직 소생 뿐이지요. 그리고 결과적으로 공자에게 도움을 준 것은 병주의 여포이고, 영보 상단의 자초 대인입니다.”
원희의 입장에서는 어느 것 하나 반박할 수 없는 말들 뿐이었다.
“아아! 원 가의 당당한 자손들이 하나는 예주, 하나는 병주, 하나는 기주의 세력에 기대어 있는 형국이로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