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Follicle Exhibition RAW novel - Chapter 486
485화 한 조정에 여포의 세력이 생기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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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여 명이 응시한 시험이건만 결과가 나오기까지는 닷새가 걸리지 않았다. 채옹과 노식이 침식을 거르며 번갈아 답문을 교차 평가했다.
편죽 스무 편으로 제한한 것은 그야말로 신의 한 수였다. 이는 채옹이 제안한 것인데 본래의 목적은 선비들의 지혜를 시험한 것이었다.
난세의 이유와 성세를 불러올 방도를 자유롭게 논하라 했다면 대나무살 스무 조각으로는 어림도 없을 터. 고작 반 시진 밖에 시간이 없었다고는 해도 아마 저마다 몇 개의 죽간에 답문을 써서 제출했을 것이다.
그러나 길게 쓴다고 능사는 아니다. 짧은 글에 재기와 소신을 담을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자야말로 진정 현인이 아닌가.
허례허식을 경멸하는 동탁의 입장에서도 채옹의 제안은 쌍수를 들고 환영할 일이었다. 천자에게 바치는 상소문들은 하나 같이 불필요한 얘기들을 잔뜩 열거해두고 정작 필요한 말은 몇 줄에 지나지 않았다.
이런 풍토를 없애는 첫걸음으로는 이만한 것이 또 있으랴.
이번 현량방정은 공정성의 시비도 없었다. 이름 대신 즉석에서 교부받은 숫자를 답문에 기입했고, 신원을 확인했던 관인들은 집에도 가지 못하고 궁문 앞에 모여 닷새를 머물러야만 했다.
모든 것이 응시자들이 보는 곳에서 이루어지기에 공정성에 관해 어떤 이의도 나올 것이 없었다.
이렇게 오십 인의 합격자가 정해지고 그들의 답문은 조정의 문무백관들에게도 공개되었다.
각 세력은 서로 자기 사람이 합격하길 바랐지만 누가 자기쪽 사람인지 알 수가 없었다. 응시자의 신원을 기록한 명부는 합격자가 정해질 때까지 궁문 앞에 놓인 상자 안에 고스란히 잠들어 있어야만 했기 때문이다.
천자의 재가. 정확히 말하자면 하 태후가 임조청정을 하고 있으니 하 태후의 재가가 떨어진 후였다. 현량방정이 행해진지 열흘 만에 결과가 발표되었다.
당연하게도 관녕, 왕렬, 병원, 국연이 모두 합격했다. 영천에서도 상당수의 합격자가 나왔는데 그 중 으뜸은 조엄이었다.
더욱이 세간의 관심을 모은 것은 양책의 곽 씨들이 대거 응시하여 모두 합격의 영광을 누린 점이었다. 오십인 중 일할이 양책의 곽 씨였다.
합격자 오십인 중 곽(郭) 씨 성을 지닌 자는 모두 여섯 명인데 그 중 한 사람은 병주 태원 사람 곽온이었다.
거록 태수를 지냈던 하내의 장도 역시 합격했다.
이외에도 연주 학파와 형주 학파, 삼보 학파에서 두루 합격자를 냈다.
* * *
현량방정이 열렸던 금란전 앞에는 합격자 오십 인만이 남았다. 전각 안으로는 문무 대신들이 도열해 천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천자께서 납시었으니 문무대신들은 의관을 바로 갖추라!”
중상시가 고하는 목소리와 함께 소제와 하 태후가 금란전 안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동탁이 잡다한 의식을 없앤 탓에 짧은 인사를 끝으로 조회가 시작되었다.
먼저 나선 것은 역시 동탁이었다. 그는 하 태후 앞에 깊이 읍하여 고했다.
“전 의랑 채옹과 전 북 중랑장 노식이 밖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들은 비록 조정을 떠난 지 오래 되었으나 천자께서 은혜를 베풀어 다시 그들을 기용해주시기를 감히 청하옵니다.”
채옹과 노식의 이름은 조정의 대신들을 술렁이게 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하 태후는 여인의 몸임에도 그들의 명성을 귀가 따갑게 들어 왔을 정도이니 다른 자들이야 더 말해 무엇하랴.
“본 태후는 그들의 이름을 익히 들어왔소. 일단 한 번 만나봅시다. 결정은 그 후에 하도록 하겠소.”
하 태후의 허락이 떨어지자 동탁이 소리쳤다.
“채옹과 노식은 어전에 들어 천자를 배알하라!”
동탁은 무장 출신이기에 목청껏 소리치지 않아도 그 목소리가 멀리까지 뻗어나가는데 무리가 없었다.
채옹과 노식은 금란전 밖에서부터 허리를 구부리고 들어왔다. 그리고 천자를 만나는 예법을 갖추었다. 그 예법이라는 것은 어전에 들어서서부터 열 걸음에 한 번씩 엎드려 삼고두를 행하는 것이다.
금란전 전각의 출입구부터 천자에게 가장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거리는 삼십 보였다. 물론 사람마다 보폭이 다르니 가감이 있을 수 있으나 대략적으로 삼십 보 정도라는 얘기다.
삼십 보를 허리를 굽히고 걷고, 세 번의 삼고두를 행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하 태후는 수렴 뒤에서 미소를 지었다.
왜냐하면 채옹과 노식이 예를 제대로 갖춘 것은 곧 그들이 천자의 위엄을 인정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채옹과 노식은 천하가 인정하는 명사 중의 명사였다.
채옹은 연주 학파는 물론이고 천하의 많은 선비들이 우러러 따르는 경학의 거두이며, 천하의 문인묵객들이 그의 글씨 한 점 얻기를 바랄 정도로 대단한 명필이었다.
노식은 문무를 겸비한 유장이면서 한조를 위해 무수히 많은 공을 세운 충신 중의 충신이었다. 무인들 사이에선 채옹보다 노식의 명망이 더 높았다.
지금 낙양을 지키는 팔관의 장졸들은 대부분 서량병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것은 동탁이 중앙군을 완전히 장악하지 못했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동탁의 이십 만 서량병들은 효무(驍武)하지만 중앙의 무관들이 보기에 그들은 호인(胡人)과 다를 바가 없었다. 당장은 그들의 위세에 눌려 복종을 하고는 있을 뿐이다. 만약 경성에 변고가 생긴다면 언제 칼끝을 서량병들을 향해 휘두를지 몰랐다.
그런데 노식이 나선다면 얘기가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무관들은 한조의 세 중랑장 중에서도 노식을 최고로 치고, 그를 존경하는 자들이 적지 않았다.
노식이 중앙군을 장악할 수만 있다면 동탁은 서량병을 좀 더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을 터. 더 이상 여포에게만 의존할 필요가 없게 된다.
이런 두 사람이 천자의 권위를 인정하여 예를 다하니 하 태후는 기쁠 수밖에······.
반대로 명문회는 입맛이 씁쓸했다. 수장 양표도 없는 마당에 그들과 견줄만한 명사도 없고, 원술이 망해서 형주로 도망쳤으니 뒷배도 사라진 셈이었다.
“신, 채옹이 천자를 뵙습니다. 만세 만세 만만세!”
“신, 노식이 천자를 뵙습니다. 만세 만세 만만세!”
그들이 엎드려 절하자 하 태후가 말했다.
“두 노신들은 예를 거두라.”
“은혜가 하해와 같습니다.”
“은혜가 하해와 같습니다.”
하 태후는 수렴 뒤에서 그들을 훑어보았다. 노식은 태후의 시선이 자신을 위아래로 훑고 있음을 느꼈지만 뭐라 할 입장은 아니었다. 그저 태후가 무슨 말을 할지 기다릴 뿐이었다.
“본 태후가 보기에 그대들은 이제 뒷방으로 물러나 손주의 재롱이나 보며 여생을 보내는 것이 좋을 듯한데 어찌하여 다시 출사를 하고자 하는고?”
하 태후의 말에 장온이 찬동하고 나섰다.
“태후의 말씀이 참으로 지당하십니다. 저들이 비록 명사라고는 하나 나이가 있어 대임을 맡긴다 해도 정무에 얼마나 매달릴 수 있겠습니까?”
* * *
장온의 말은 채옹과 노식을 기분 나쁘게 하기에 충분했다. 반박할 말은 산더미처럼 많지만 문제는 이들에게 벼슬이 없다는 점이었다.
벼슬을 청하러 조정에 든 것이고 천자와 태후까지 있는 이 자리에서 관인들과 언쟁을 벌일 수는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들 대신 목소리를 높여줄 동탁의 입이 조정 안에 있었다.
“상서령 한복이 감히 한 말씀 올리겠습니다.”
한복이 나와 태후와 천자에게 읍했다. 그러자 하 태후의 목소리가 수렴을 넘어왔다.
“신하가 조정에서 의견을 개진하는 것은 마땅히 권장해야 할 일이니 기탄없이 말하라.”
“예, 태후마마. 소신 역시 태후의 말씀이 참으로 지당하시다 봅니다.”
그 순간 동탁의 매서운 눈빛이 한복의 신형을 난자했다. 하지만 한복은 조금의 동요도 없었다.
하 태후는 흥미롭다는 듯 물었다.
“어째서 그리 생각하는고?”
“이번에 현량방정이 열렸는데 모두 오십 인의 합격자가 나왔습니다. 그들 중 몇몇을 빼면 대부분이 이삼십대로 젊음과 지모를 갖춘 자들입니다.”
“그 말을 지금 하는 연유가 무엇인가?”
“이참에 조정에서 노신들을 은퇴시키고 그들로 하여금 천하 경략의 대임을 맡기십시오.”
한복의 말은 금란전 안의 분위기를 급반전시켰다. 하마터면 하 태후도 웃음을 터뜨릴 뻔했을 정도였으니 더 말해 무엇하랴.
“한복! 지금 나를 놀리는 건가?”
“위위께선 말씀을 삼가하십시오. 태후와 천자께서 계시는데 어찌 함부로 언성을 높인단 말입니까?”
장온과 한복의 한차례 설전이 끝났다. 장온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다.
“한 상서, 지금 우리 고명대신들이 늙었다하여 은퇴를 종용하는가?”
“장 위위께서 직접 하신 말씀을 잊으셨습니까? 이런······ 이런······ 아직 노망이 들 연세는 아닌 듯한데······. 정무에 시달리셔서 그런 모양입니다. 이제 모든 것을 내려놓고 명예롭게 퇴진하십시오. 정무를 잘못하여 죄를 받고 물러난다면 자식들의 출사도 쉽지 않을 겁니다.”
“저들은 관직을 오래 떠나 있던 몸이고 나, 장 백신은 계속해서 경성에 남아 천자를 모셔왔네. 내가 어찌 저들과 같단 말인가?”
“말이야 바른 말이지 위위 벼슬을 하시면서 숙위를 몇 번이나 보셨습니까? 아마 한 번도 없을 텐데요?”
한복은 장온을 몰아붙이고는 하 태후를 향해 두 손을 모아 들었다.
“태후 마마, 고령의 대신들이 명예롭게 벼슬길에서 물러날 수 있도록 용단을 내려주십시오.”
“한 상서는 그쯤 하시오. 그 정도면 장 위위도 실언을 했음을 알았을 것이오.”
한복이 장온에게 미소를 지으며 물러났다. 설전은 그렇게 한복의 승리로 끝났다.
하 태후는 채옹에게 물었다.
“그대의 이름은 궁 안에서도 모르는 자가 없소. 백개 선생의 글씨 한 점 얻기 위해 수많은 자들이 금병을 쌓아놓고 기다린다지, 아마?”
“과찬이십니다. 소신에게는 그저 하찮은 재주가 있는 것일 뿐인데 세인들이 높이 평가해준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겸손은 그 정도면 되었소. 천자께서 그대에게 벼슬을 내린다면 어떤 벼슬을 받고 싶소?”
“소신에겐 하찮은 글재주 뿐이니 태사국의 승(承)이라고 해도 좋습니다. 선주와 지금의 역사를 기록으로 남겨 후세에 전하는 대임을 맡고자 합니다.”
채옹은 사서 편찬을 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그러자 하 태후는 의외라는 듯 물었다.
“겨우 그런 걸로 되겠소? 당대의 대 문호에게 고작 사서 편찬을 맡긴다면 후세의 사람들이 천자의 안목을 의심할까 두렵소.”
“소신은 지금의 난세가 어찌해 일어났는지를 역사의 기록으로 남길 것이며, 이 난세를 극복하고 치세를 여시는 천자의 정책 또한 기록으로 남기고자 합니다.”
“그걸 남겨서 무얼 한단 말이오? 치부는 가리고 자랑할 것만 늘어놓아도 좋을 것을······.”
“그건 아니 될 말씀입니다. 한 황실이 사백여 년을 이어져 내려왔으니 앞으로 사백 년을 더 이어가지 못하겠습니까? 그 긴 시간 동안 지금과 같은 위기가 또 없으리라는 보장이 있겠습니까?”
채옹은 난세를 끝내고 치세를 여는 기록을 후대에 남겨 다시 난세가 시작되면 이 기록을 바탕으로 난세를 끝내길 바라는 것이었다.
“그럼 좋소. 천자께선 그대에게 ‘난대령사’ 벼슬을 내리실 것이오.”
하 태후의 말로 인해 금란전 안을 발칵 뒤집혔다.
난대령사(蘭臺令史).
육백 석의 녹봉을 받는 관직으로 상주문과 황제육새를 관리하는 임무를 맡았다. 녹봉으로 보자면 이천 석 관리가 수두룩한 중앙의 조정에선 그다지 높은 관직이 아니다.
하지만 그 임무를 생각한다면 삼공도 함부로 할 수가 없는 대단한 관직이다.
마치 환관들 사이에서 관직으로는 중상시가 가장 높지만 실권은 소황문이 가장 강한 것과 같은 이치였다.
또한 난대령사로 임명된다고 함은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을 만큼 높은 학문을 지녔다는 것을 천자가 인정한다는 것. 뿐만 아니라 천자께 상주되는 모든 문서를 마음대로 볼 수 있는 권한이 있었다.
이외에도 전국옥새를 제외한 천자의 여섯 가지 직인을 통틀어 황제육새라 하는데 이를 관리하는 책임 역시 난대령사에게 있었다.
“난대령사라니!”
“태후마마! 전 의랑에게 난대령사라니요? 그런 막중한 대임을 이리 쉽게 맡기시면 아니되옵니다.”
명문회의 고관들은 한 목소리로 반대했다. 그러자 하 태후가 나서서 분란을 일거에 일소해버렸다.
“관인을 임명하는 것은 천자의 권한이거늘 그대들이 이에 토를 다는 것은 천자를 능멸하는 대죄가 아닌가?”
하 태후가 역정을 내자 사공 ‘순우가’가 나섰다. 그는 홀을 천자에게 높이 들어 보이고는 천천히 걸어나와 수렴 너머의 하 태후와 마주섰다.
“신, 사공 순우가가 말씀드립니다.”
상대는 삼공 중 하나인 사공 벼슬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하 태후도 말에 감정을 실을 수가 없었다.
“순우 사공은 말씀하시오. 경청하겠소.”
“장 위위의 말이 과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는 우국충정에서 비롯된 것이니 태후께선 부디 넓으신 아량으로 용서해주십시오.”
“순우 사공이 그리 말을 한다면 어쩌겠소? 내 없었던 일로 하리다.”
“소신의 생각으로는 백개 선생에게 난대령사의 대임을 맡기는 것은 물론이고, 궁내의 기록 일체를 열람할 수 있는 권한까지 내리시는 것이 합당하다 사료됩니다.”
순우가의 말에 장온은 내심 화가 치밀어 올랐다.
‘저 늙은이가 드디어 망령이 들었구나. 명문회의 사람이 어째서 나와 뜻을 달리 한단 말인가?’
장온은 순우가의 의도를 의심했다. 하지만 순우가는 명문회를 위해 건곤일척의 승부수를 던진 것이다. 순우가는 깊이 읍하며 생각했다.
‘어차피 채 백개가 난대령사가 되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그렇다면 차라리 그의 환심을 사서 우리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 백 번 좋은 일이지. 서량의 호한잡종 동탁과 연주 학파의 거두가 한 편이 될 수는 없을 테니까. 물과 기름이 어찌 섞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