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Follicle Exhibition RAW novel - Chapter 495
494화 물사지모(勿使知謀) 부이납지(扶而納之)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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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밤이건만 유표는 찾아온 괴월과 함께 군략을 논하고 있었다.
“정녕 그 방법 밖에는 없소? 아무리 내 처지가 궁박하기로서니 백성들을 방패막이로 쓸 수는 없잖소? 그리 했다가는 태사록에 내 이름이 어찌 남을지······.”
“역사는 승자의 기록입니다. 태사록이 정녕 진실만을 기록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백성들도 따르지 않을 거요.”
“무지한 백성들 따위에게 있는 그대로를 알려 줄 필요는 없습니다.”
괴월이 가져온 책략은 유표를 곤혹스럽게 했다. 그것은 바로 백성들을 이용해 지공을 펼치는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수법은 예부터 있어온 것이지만 실제로는 거의 쓰이지 않는 귀계였다.
성공하든 실패하든 반드시 백성들의 피해가 뒤따르기 때문이라는 것이 표면적인 이유다.
하지만 이 귀계의 진실이 알려졌을 때에는 뒷감당을 할 방도가 없다. 그렇기에 웬만한 강심장이 아니면 군사가 이 같은 계책을 내놓아도 쉽사리 용납을 못하는 것이다.
“백성들을 속이란 말이오?”
“그래야지요. 소신의 뜻대로 된다면 오히려 주공께서는 인의군자로 태사록에 그 이름이 남게 될 것입니다.”
괴월의 말에 유표의 눈이 번쩍 뜨였다. 백성들을 희생양으로 삼으면서도 도리어 자신은 인의군자로 추앙받을 수 있다고 하니 관심이 안 갈 수 없으리라.
예부터 위정자들에게 백성은 소와 말, 개나 돼지와 같은 가축 정도로 여겨졌다. 자신의 평판을 높일 수만 있다면 집에서 기르는 가축 따위야 얼마든지 잃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어찌 말이오? 좀 소상히 말해보오.”
“소신이 생각하기에 원술의 최대 약점은 바로 병량입니다.”
“그야 그렇겠지. 여포에게 쫓겨오며 뭘 얼마나 챙길 수 있었겠소? 보나마나 제후군은 초근목피로 연명하고 있을 게 뻔하오.”
“그걸 이용하자는 것이지요.”
괴월의 입고리가 호를 그렸다.
승리로 이끌 군략을 내놓는 것이야 말로 군사들의 존재이유였다. 상대의 약점을 찾아 이를 이용한 계책을 마련하는 것은 당연했다.
* * *
“혹시 견벽청야(堅壁淸野)를 염두해두고 있는 것이오?”
“영명하십니다.”
견벽청야는 손자가 제시한 청야전술이었다. 적이 현지에서 보급물자를 조달하는 것을 막기 위해 식량은 물론이고 백성들까지도 몽땅 데리고 와버리는 수법이었다.
원술은 여포에게 패하고 궁지에 몰릴 대로 몰린 상황이다. 그런 상황에서도 고향 여남이 아닌 남양으로 온다는 건 그만큼 남양이 풍요로운 땅이라 여겨서일 터.
하지만 견벽청야로 텅텅 비워버리면 얘기가 달라진다.
사람도 없고, 식량도 없으면 제후군이 남양으로 귀환해도 여전히 군량부족에 시달리게 될 터였다.
전쟁을 하려면 가장 먼저 행해져야 할 것이 병사들을 배불리 먹이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제후군은 병량이 부족할 터이니 병사들은 굶주린 상태에서 싸울 수밖에 없었다.
“남양은 원술의 지배하에 있었던 땅인데 백성들이 순순히 따르겠소? 호족들의 반발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오.”
“무작정 견벽청야를 행한다면 필시 큰 반발에 부딪히게 될 겁니다. 그래서 소신 같은 자가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괴월의 입가에 미소가 번져나갔다.
“주공께서 명분과 실리를 모두 취할 수 있는 계책이 있습니다.”
“오오! 선생, 경청하리다.”
“진실은 큰 노력을 하지 않아도 사람의 마음을 파고드는 힘이 있습니다. 그래서 거짓말을 할 때에는 조금의 진실을 섞는 것이지요.”
역대의 지배자나 세객들만의 비밀이었던 얘기가 괴월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유표는 자기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아마도 괴월의 입에서 이어질 얘기가 무척이나 기대되는 것이리라.
“원술의 군세가 하내에서 여포에게 대패를 당해 빈손으로 쫓겨오고 있다고 백성들에게 알리십시오.”
“그건 진실이잖소. 거짓은 어디에 있소?”
유표가 묻자 괴월은 백우선을 부쳐댔다. 괴월도 사람인지라 백성들을 희생양으로 삼는 계책을 말하려고 하니 얼굴이 화끈거리는 것이리라.
“군량이 다 떨어져 병사들이 약탈을 자행하고 심지어는 사람도 잡아먹는다는 얘기도 섞는 겁니다. 사람을 풀어서 제후군을 피해 도망쳐 왔다하며 소문을 퍼뜨리면······.”
“그런 소문은 이상하게 빨리 퍼지지 않소?”
“그러니까요. 그리고 남양에선 완성의 백성들만 알면 됩니다. 남양의 다른 현은 신경 쓸 필요가 없지요.”
남양의 대도라 함은 응당 완이다. 그 외에도 완보다는 한 수 떨어지지만 완이 무너지면 대신할 땅이 두 곳 남아있었다. 신야와 양성이 바로 그곳이다.
괴월이 이를 모를 리 없는데도 이런 말을 한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신야는 이미 유표가 손에 넣은 땅이다. 게다가 양성은 장안으로 가는 길목에 있고, 남양을 지킬 때나 유용한 접경의 군사요충지일 뿐이기 때문이다.
괴월은 확신에 찬 어조로 말을 이었다.
“아마 못해도 사흘이면 완성의 백성들 모두가 그 소문을 알게 될 것이며, 닷새가 지나면 두려움에 떨게 될 겁니다.”
“그런 다음에는 어찌하오?”
유표는 괴월의 얘기에 빠져들었다. 병법자라 함은 입담 정도는 기본이었다. 주군을 먼저 말로서 설득해야 하니 같은 말이라고 해도 병법자가 하면 그 몰입감이 남달랐다.
“분위기를 고조시켜야지요. 서악에 주둔하고 있는 주공의 군대를 한 명도 빠짐없이 철수시키십시오.”
“그러면 백성들은 내게 버려진 거라 여길 거요.”
“바로 그겁니다. 서악에서 군대가 완성으로 돌아오면 그 때부터는 완성에서도 철수 준비를 시작하게 하십시오.”
“완까지 버리란 말이오?”
유표는 완성까지 버리라는 말이 못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완이라 하면 남양의 중심인 대도가 아닌가. 하찮은 마을 하나를 버리는 것은 몰라도 완을 버리기는 너무 아까웠다.
“완 따위가 뭐라고······.”
괴월이 혼잣말을 중얼거리자 유표는 살짝 기분이 상했다.
“방금 뭐라했소?”
유표가 도끼눈으로 괴월을 노려보았다. 하지만 괴월은 움찔하는 척도 해주지 않았다.
“완 따위가 뭐라고 아끼십니까? 원술의 목만 떨어지면 형주가 주공의 것인데······. 소신의 말이 틀렸습니까?”
“완까지 소요에 빠진다면 남양군 전체가 대혼란에 휩싸일 거요.”
그러자 괴월은 왼손으로 손날을 세워 앞으로 뻗었다.
“그 때가 바로 주공께서 나서실 때입니다. 주공께서 남양 백성들의 구원자가 되어주시는 것이지요.”
“아아! 답답하오. 제후군과 전면전을 벌일 수 없다는 건 선생이 나보다 더 잘 알고 있는 얘기가 아니오? 병력을 아끼는 건 둘째치고서라도 경험 없는 보기(步騎)가 제후군을 상대로 뭘 얼마나 할 수 있겠소?”
유표는 인정할 건 인정하는 사람이었다. 자신의 군세는 수군이 강세이며, 보기는 대규모의 전투를 경험해본 적이 없었다.
남만의 이적들과 싸우는 것과 제후군과 싸우는 것은 차원이 다른 싸움이다. 지금이야 기세등등하지만 제후군과 격돌해서 단 한 번이라도 밀렸다가는 죄다 비명을 지르며 도망칠 게 뻔했다. 그리되면 수습해서 반전을 노리는 일도 꾀할 수 없을 것이다.
물론 믿을 구석도 없는 건 아니다. 황조의 군세는 그 수는 많지 않으나 정병들로만 이루어져 있으며 싸움에선 결코 물러서는 법이 없었다.
원술에게 손견이라는 강력한 창이 있지만 유표에게도 황조라는 단단한 방패가 있었다. 황조만 있으면 손견도 두렵지가 않는 것이다.
다만 황조는 강하의 군벌이니 유표에게 고개를 숙이고 있다고는 해도 유표가 마음대로 부릴 수는 없었다. 유표에게 황조는 마치 원소에게 순우경과 같다고나 할까?
“주공께서 선봉에 서서 싸우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저 조금의 수고로움은 필요하겠지만······.”
“수고로움이라면 뭘 말하는 거요?”
“서악에서 완성까지 오십 리. 백성들이 아침 댓바람부터 짐을 싸고 출발을 해도 걸어서는 하루 안에 갈 수가 없습니다. 말을 듣지 않고 출발하지 않는 자들도 상당수 있겠지요.”
정병이야 하루에 백리 정도는 우습게 행군한다지만 백성들은 그렇지가 못했다. 게다가 환란을 피하는 것이니 가지고 갈 수 있는 것은 죄다 들고 가려고 할 터였다.
아이들도 있을 것이고, 노인들도 있을 것이니 이들이 걷는 속도는 젊은 사람만 못할 게 당연하지 않은가.
“강제로는 데려가지 않는다?”
“그렇습니다. 서악의 백성들이 그리 많지는 않으니까요. 빨리 따라나선 자들은 살 것이나 주저하거나 따르지 않는 자들은 죽게 될 겁니다.”
괴월은 남양 땅의 지도를 펼쳐놓고 자세한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 * *
제후군은 정말 어렵게 강을 건너야만 했다. 유표가 백하(육수)를 오가는 배들을 모조리 징발해버렸기 때문에 제후군이 탈 배가 없었다.
나무를 베어다 뗏목까지 만든 끝에 강을 건넜지만 제후군을 기다리는 것은 유표군의 기습이었다.
두두두두!
지축을 뒤흔드는 말발굽소리와 함께 유표군의 기병 수백여 기가 흙먼지를 일으키며 달려왔다.
먼저 강을 건너온 제후군은 오천을 넘기고 있었지만 모두가 보병들 뿐이었다.
유표군 기병의 선봉에는 왕위가 달리고 있었다. 황조와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하지만 왕위도 나름의 무명을 날리고 있는 맹장이었다.
왕위가 검을 뽑아 하늘 높이 치켜들었다. 그리고는 제후군 병졸들을 향해 검을 앞으로 겨누며 공격명령을 내렸다.
“공격하라! 원술의 졸자들을 모조리 쓸어버려라!”
“오오!”
선두에서 달리던 왕위에게 개전의 제물을 올릴 기회가 오는 것은 당연했다. 왕위는 말과 한 몸이 되어 제후군 병사들 무리로 파고들었다.
왕위의 검예는 맹장 소리를 듣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마상에서도 적병을 찌르고 베는 솜씨는 북방의 장수들과 견주어도 부족함이 없었다.
섬뜩한 검음이 울려 퍼지고 쉴 새 없이 비명 소리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뒤이어 왕위의 기병들이 들이닥쳐 혼란에 빠진 제후군 병사들을 몰아쳐갔다.
족히 열 배는 될 법한 병력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왕위의 기병들은 거침없이 제후군 병사들을 도륙냈다.
혼란에 빠진 보군은 기병의 먹잇감에 불과했다. 경험 많은 제후군도 지금 같은 상황에선 속절없이 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나마 다행한 것은 유표군 기병이 수백에 불과하다는 점이었다. 아마 이천여 기만 있었어도 제후군 병사들은 진작 지리멸렬했을 터였다.
“저···! 저···! 저···!”
원술은 강 건너편에서 그 모습을 보며 당황해서 말을 잇지 못했다. 하지만 이대로 자신의 병사들이 죽어나자빠지는 꼴을 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그가 믿을 사람은 교유 뿐이었다.
“교 장군! 어떻게 좀 해보게! 이대로 가다가는 내 병사들이 전멸을 당할 거란 말이네!”
교유는 원술이 자신을 애타게 부르며 하는 말을 듣고 잠시 착각에 빠졌다.
‘주공께서 병사들을 이리도 아끼시던 분이셨던가? 내가 지금껏 주공을 잘못 생각하고 있었던가?’
교유는 흔들리던 마음을 다잡고 원술을 위해 병사들을 지휘했다.
“원진(圓陣)을 펼치도록 신호를 보내라!”
교유의 명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깃발을 든 자들이 진세를 이루라는 신호를 보냈다. 물론 난전 중에 이쪽을 보고 있을 자는 없었다. 교유의 실책인가? 아니다. 뒤이어 뿔피리소리가 강을 건넜다.
뿌우우~!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뿔피리 소리 덕분에 다행히 신호기를 본 자들이 있었던 듯했다.
“원진(圓陣)이다, 원진! 원진을 펼쳐라!”
신호기가 보내는 신호를 알아볼 정도라면 분명 장수의 반열에 있는 자일 터. 이름도 없는 하급 지휘관 하나의 외침만으로 병사들은 병진을 이루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제후군 병사들은 오백의 사상자가 나기 전에 혼란에서 벗어났다.
보병은 흩어지면 하나하나가 수수깡이나 다름없이 쉽게 꺾이는 존재들이다.
하지만 뭉치면 얘기가 달라진다. 지금처럼 원진을 이루면 제아무리 우위에 있는 기병이라 할지라도 그 예봉이 무뎌지는 것은 당연했다.
게다가 최초의 돌파 이후에는 기병의 기동력도 한층 떨어지기에 처음과 같은 파괴력을 가질 수는 없었다.
더욱이 방패병들이 창병들과 뒤섞여 있었기에 그들이 만든 원진은 견고하기 짝이 없었다. 급박하게 이룬 진세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
왕위의 기병 몇몇이 진세를 뚫으려다가 제후군에게 당해버리고 말았다. 이에 왕위는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퇴각 명령을 내렸다.
“철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