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Follicle Exhibition RAW novel - Chapter 5
5화 낙양성의 재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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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포는 정원이 자신을 찾는다는 소리에 자사부로 향했다. 하지만 자사부에는 등고가 여포를 기다리고 있었다.
“봉선아, 왔느냐? 자사께선 기다리시다가 먼저 들어가셨다. 나와 얘기하면 되니 잠깐 내 방으로 가자.”
방에 들어서자마자 등고가 서동을 불러 차를 내오게 하자 여포가 손을 내저었다.
“저는 됐습니다. 차 마시는 고상한 취미는 없습니다. 제게 하명하실 일이 무엇입니까?”
“낙양에 좀 다녀와야겠다.”
“무슨 일로······?”
“그래, 중상시 조충 대인에게 자사의 서신과 작은 선물을 전해주어야겠다.”
여포는 썩 내키지 않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심부름이라 싫으냐?”
“서신과 작은 선물을 전하는 정도라면 급사를 보내면 될 일, 장수가 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그건 틀렸다. 황건 수괴인 장 씨 삼형제가 모두 병사했다 하나 그 군세가 꺾이지 않았느니라. 그 잔당들이 사예로 향하는 길목에 빈번히 출현한다고 하는데 어찌 급사를 보내고 마음을 놓겠느냐.”
황건적의 난은 진압되었지만 아직 그 잔당들의 군세가 대단했다. 각지의 도적들과 하나가 되어 환란이 장기화되는 조짐을 보이고 있었다.
“믿을 만한 수하 몇 명만을 데리고 다녀왔으면 싶구나. 네 뛰어난 용력이면 수천 군세도 쉽게 꿰뚫을 수 있으니 믿고 맡길 수 있다. 그만큼 중요한 일이니 돌아오면 크게 상을 내릴 것이다.”
간단한 심부름인 줄로만 알았는데 등고가 후사를 약속하니 여포는 내심 기분이 좋았다.
‘언제 깰지 모르는 꿈이든, 진짜 기적처럼 시간을 거슬러 온 것이든 나, 여포 두려울 게 무어냐? 그까짓 황건 잔당들, 안중에도 없다.’
여포는 그리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등고의 표정이 밝아진다.
“내일 아침에 바로 떠나도록 해라. 말과 건량은 준비해 두겠다. 그리고 이거······.”
등고가 품속에서 작은 종지 하나를 꺼내 내밀었다.
“이게 뭡니까?”
“네 상처가 덧날까하여 금창산을 좀 준비했느니라. 병주 제일 비방이니 오며가며 상처에 수시로 뿌려라.”
“등 선생,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고작 금창산 하나에 여포가 읍을 하여 예를 다했다.
* * *
여포 일행은 회수를 건너기 위해 배를 기다리며 서있었다.
“대형, 어려운 일이라 하지 않았소? 벌써 사예 땅이오.”
성렴이 비아냥거리자 위월이 주의를 상기시켰다.
“회수를 넘으면 그때부터가 시작인데 그것도 모르고······ 대형, 이런 멍청한 놈을 왜 데리고 왔수?”
“바보 같은 놈, 회수 넘으면 다 온 거지 뭔 소리야?”
두두두두두-!
성렴과 위월이 티격태격하는 사이 멀리서 한 떼의 기마가 흙먼지를 일으키며 달려왔다. 수십 기에 불과했지만 이들이 일으킨 흙먼지는 마치 용권풍이 불어닥치는 듯했다.
여포의 눈에 비친 상대는 딱 마적단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멀리서 달려오며 위협했다.
“말과 짐을 내놓고 꺼져라. 목숨만은 살려주겠다.”
하지만 여포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더욱 재촉해 달려나갔다.
마적들은 언뜻 당황한 기색을 보였지만 상대가 여포 하나뿐이다 보니 쉽게 생각하는 듯했다.
“목숨보다 재물이 더 아깝다면야 하는 수 없지. 얘들아, 저 덩치 큰 녀석을 자근자근 다져주어라!”
마적들은 일제히 창칼을 뽑아들어 여포를 겨누며 달렸다.
창칼을 앞세워 달려오는 마적들을 보며 여포의 입가에 비릿한 조소가 걸렸다.
* * *
반각도 지나지 않아 마적들은 여포를 당해내지 못하고 즐비한 시신들을 남긴 채 뿔뿔이 흩어졌다. 그러자 여포는 마구에 걸린 활과 화살을 꺼내들었다.
“그냥 보내줄까 보냐?”
여포는 여유롭게 화살을 시위에 걸었다. 그 때였다. 갑작스레 섬뜩한 기분이 드는 순간 여포는 활대를 크게 휘저었다.
뭔가가 활대에 닿았다가 땅바닥에 틀어박혔다.
슬쩍 흘겨보니 화살이었다. 이에 화살이 날아든 방향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러자 그곳에는 활을 든 마적 하나가 여포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제법이다.’
거리는 백 보 남짓.
웬만한 궁사들은 제자리에 가만히 서서 쏘아도 맞히지 못할 거리였다. 그런데 상대는 마상에서 쏘아 맞히니 여포는 큰 흥미를 느꼈다.
여포는 화살을 피해 급히 갈 ‘지(之)’ 자로 말을 몰았다. 그러면서 한 손으론 고삐를 다른 손으로는 전통을 짚어 화살의 개수를 헤아렸다.
‘화살이 하나 뿐이라 아쉽군. 제대로 놀아보려 했거늘······.’
화살을 아슬아슬하게 피해가면서도 여포의 입꼬리가 호를 그렸다.
여포는 말을 몰아 달려가며 좌우로 몸을 뉘어 중심을 맞추는 듯하더니 그때마다 지면에 손을 뻗어 박혀 있던 화살들을 갈무리했다.
두 대는 입에 물고, 세 대는 활대와 함께 쥐었고, 전통에 있던 한 발은 벌써 시위에 걸려 있었다.
여포가 앞서 달리면, 마적이 뒤를 쫓으며 활을 쏘는 형국이었는데 돌연 여포가 상반신을 비틀며 뒤를 보았다. 그와 동시에 여포의 활시위에서 화살이 쏘아져 나갔다.
이것이 바로 배사(背射).
여포는 마적이 쏘아낸 화살들을 일일이 쏘아 맞혔다. 그리고 마지막 한 발을 하늘 높이 쏘아 올렸다.
이를 본 마적은 득의에 찬 미소를 지으며 자신도 여포를 향해 마지막 한 발의 화살을 떠나보내려 했다.
시위를 당기려는 찰나에 마적은 슬쩍 뒤돌아보는 여포의 옆얼굴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의 입가에 걸린 미소도······.
그 순간 마적은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퍽! 하는 둔탁한 파열음이 귓구멍을 찌르고 들어왔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피비가 뿌려지며 마적은 말과 함께 고꾸라졌다.
흙먼지가 잦아들 때쯤 마적은 말에 깔려 옴짝달싹 할 수 없었다.
쿨럭! 쿨럭!
마적은 미친 듯이 기침을 해댔다. 모래와 흙이 입 안 가득 핏물과 뒤섞여 기침을 할 때마다 튀어나왔다.
따각! 따각!
경쾌한 말발굽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여포가 다가온 것이다. 그러자 마적은 힘겹게 고개를 들어 여포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사예 땅에서 궁술 하나만큼은 내가 제일이라 여겼거늘······ 하늘 위에 하늘이 있음을 알았소. 좋은 승부였소. 졌으니 내 목을 가져가시오.”
그의 말에 여포는 호탕하게 웃으며 손을 뻗었다.
그러고는 축 늘어진 말의 모가지를 한 손으로 움켜쥐고는 덜렁 들어 옆으로 던져버린다. 가히 믿을 수 없는 신력이다.
그러고는 그에게 손을 내밀며 물었다.
“네 이름이 무엇이더냐?”
이에 마적은 여포의 손을 붙잡으며 답했다.
“어려서 버려지는 바람에 이름은 없고 하동의 형제들에게 응조라고 불리고 있소.”
응조라면 매의 발톱이라는 뜻인데 그는 제 입으로 말을 하면서도 부끄러운 듯했다. 거창한 이름값을 못하고 이렇게 졌기 때문인데 어쩌랴, 상대가 여포였던 것을······.
“응조······ 좋은 이름이다. 너, 내 부하가 되어라.”
여포의 말에 응조는 그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대형으로 모시겠소.”
* * *
낙양 성내. 중상시 조충의 저택.
서신을 조충에게 전하고 저택을 나왔을 때에는 이미 달도 기울고 있었다.
‘제길! 하루를 날려버렸군.’
여포는 고개를 털며 걸음을 재촉했다.
여포는 싸구려 분주 한 병을 사서 반병쯤 비우고 기분 좋게 취해 숙소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 먼저 간 미인이 기다리고 있네. 싸구려 분주만 있어도 부차와 서시가 부럽지 않으리.
하동(황하의 동쪽) 사람이라면 모를 리가 없는 익숙한 노래가 여포의 발길을 멈추게 했다.
여포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흰옷에 흰 머리띠를 맨 동녀가 관을 끼고 앉아 있었다.
어둠 속에서도 머리카락에는 윤이 났고, 눈은 필시 봉목이라 부르지 않으면 마땅히 부를 말이 없을 정도로 컸다.
초롱초롱 빛나는 눈빛은 나이에 맞지 않게 현기가 흐르는 듯했고, 앙증맞은 볼은 복숭앗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이대로만 커준다면 미인도를 그리는 세상 모든 화공들은 그녀의 그림을 그리게 될 터였다.
‘설마······ 아니겠지.’
분명 동녀의 얼굴에서 낯익은 얼굴이 보인다. 하지만 어릴 때 얼굴만으로는 확신이 없어 생각을 접었다.
“하동 노래를 낙양에서 듣게 될 줄이야. 이봐, 너. 하동 사람인가?”
여포가 턱짓을 하며 물었지만 동녀는 그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은 채 대답했다.
“하동 태원(지금의 흔주)에서 태어났습니다.”
“이 시간에 어찌 여기 혼자 나와 있느냐?”
그러자 동녀는 세워놓은 깃대를 보라는 듯 흔들었다. 하지만 여포는 일자무식이었다.
“글을 모르는데 어찌 읽을 수 있을까?”
글을 모른다는 말에 동녀는 피식 웃었다.
“어찌 용력만으로 사슴을 쫓을 수 있겠습니까? 이 정도 글을 읽지 못하면 제후의 권세는 손에 쥘 수 없습니다.”
사슴을 쫓는다는 말은 곧 천하를 쫓는다는 말.
필부에게는 농으로 할 수조차 없는 무게가 실려 있었다.
웅패천하의 야심을 가슴에 품은 여포는 이를 부정하지 않았다.
“재미있는 계집아이로구나. 글을 모르면 천하를 얻을 수 없다는 말이냐?”
“글을 읽고 쓰는 것뿐이겠습니까?”
“언문과 용력 말고 또 무엇이 필요하더냐?”
“제게 제자백가의 글을 가르쳤던 스승께서 말씀하시기를 관료와 선비들은 시, 서, 예의 고문과 춘주는 물론 역경과 고사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글들 중에서 자기가 하고픈 말을 따온다 했습니다.”
동녀의 말에 여포는 질렸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머리에 먹물 깨나 들어찼다는 자들이 원래 그렇지.”
여포에게도 다른 군웅들에 못지않은 책사들이 있었다. 진궁을 비롯해 각지의 명사들이 자신을 도왔는데 그들이 말하는 수법이 늘상 이러했었다.
“그렇지요. 그런 자들은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그냥 그대로 쓰면 될 것이지 진의 장의가 어떻고, 여불위가 어떻고, 옛 얘기를 빗대어 쓴단 말이지요.”
장의는 전국시대 진나라의 재상까지 오른 자로 그 유명한 ‘합종연횡’의 계책으로 제후들을 유세했던 뛰어난 유세객이었다.
또한 여불위는 양책의 대상인에서 진의 승상에 상국까지 오른 자로 ‘여씨춘추’를 편찬하기도 했다.
문관이라는 자들은 이런 자들의 고사를 언급해가며 어려운 말로 자신의 의견을 포장하는데 이골이 난 자들이었다.
아마 길을 걷다가 넘어지기만 해도 누군가의 고사를 끄집어내어 자신의 아픔을 표현하려 들 것이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여포는 이 어린 계집아이가 나이답지 않게 어른스럽고, 말하는 걸 들어보니 배운 것도 많으며 똑똑하다는 걸 느꼈다.
여포는 동녀의 옆에 주저앉아 다시 분주 한 모금을 들이켰다. 동녀는 그제야 옆에 앉은 여포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송옥과 반안이 울고 가겠구나.’
날카로운 분위기를 풍기는 것이 흠이긴 하지만 인세에 다시없을 미남자였다.
동녀가 자신의 얼굴을 유심히 살펴보자 여포는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내 뭐 하나만 물어보자. 도저히 내 머리로는 알 수가 없는데 네 제법 똑똑한 듯하니 너라면 답을 내줄 수 있을 썽 싶구나.”
“대인, 말씀해 보시지요.”
동녀는 긴긴 밤을 지새워야 할 처지인지라 여포의 말동무가 되어주기로 한 듯했다.
동녀의 허락이 떨어지자 여포는 기다렸다는 듯 말했다.
“내가 모시는 분이 사내도 계집도 아닌 놈에게 줄을 대려 큰 재물을 바쳤어.”
여포의 말이 다 끝나지도 않았는데 동녀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분은 병주 자사 정 건양이시겠군요.”
“어떻게 그걸······?”
“하동 말투를 쓰시니 하동 사람일 테고, 하동의 무장은 사예에서 무명을 떨치기 힘들지요. 정 자사 역시 하동 사람. 팔은 안으로 굽는 법입니다. 더 말해보오리까?”
여포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내도 계집도 아닌 놈이라면 환관일 테고 병주 자사가 줄을 대려 할 정도의 권세를 쥔 환관이라면 필시 십상시 조충 뿐입니다.”
“어린 계집이 대나무라도 꽂았느냐?”
여포는 동녀가 마치 자신의 뒤를 밟기라도 한 것처럼 알아맞히자 그녀에게 신기가 있는 건 아니냐는 농을 했다.
여포의 말에 동녀는 붓으로 바닥에 깔린 벽돌에 세 사람의 이름을 썼다.
장양, 조충, 건석.
동녀는 이들의 이름을 손가락으로 두드리며 말했다.
“십상시 중 권세를 쥔 자들은 장양과 조충, 그리고 건석, 이 세 사람입니다. 그 중 이미 정 자사가 건석과 긴밀한 관계에 있다는 걸 낙양 사람 중 모르는 자가 없지요.”
“장양은······?”
여포는 천자마저도 ‘아부’로 부르며 따르는 막후의 권력자인 장양의 이름을 뉘 집 개 이름을 부르듯 불렀다.
“아마 장양은 정 자사가 직접 오지 않으면 만나주지 않을 사람입니다. 천자마저도 손에 쥔 자가 대인을 만나줄 리 없지요. 그러니 정 자사께서 줄을 대려 한 환관은 십상시 조충 뿐입니다. 제 말이 틀렸습니까?”
“네 말이 옳다. 그런데 말이다. 진짜 궁금한 것은 왜 정 자사가 조충에게 줄을 대려 하느냔 거다.”
“삭방으로 쫓겨간 전 의랑 채옹 때문입니다. 십상시들은 채옹이 살아서 떠들고 다니는 걸 용납하지 않을 테고, 정 자사께선 병주 땅 삭방에서 그가 죽는 걸 원치 않을 테니까요.”
그래도 여포는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정 자사는 채옹과 일면식도 없거늘 그가 죽든 말든 무슨 상관이란 말이냐?”
“채옹은 십삼 주 전역에서 이름 높은 선비입니다. 삭방에서 죽임을 당한다면 정 자사의 명성에 큰 누가 될 테지요.”
그러자 여포는 동녀가 쓴 세 이름 중 건석의 이름자를 손가락으로 두드리며 물었다.
“이미 건석과 연줄이 닿아 있는데 굳이 조충에게 줄을 댈 필요가 있을까?”
“화무십일홍 인무천일호라 했습니다. 세상 일이 어찌 변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지요. 이는 너구리가 굴을 여럿 파두는 것처럼 후일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화무백일홍(花無百日紅) 인무천일호(人無千日好).
백일 붉은 꽃이 없고, 천일 좋기만 한 사람이 없다는 뜻으로 세상 일이 변화무쌍함을 경계하는 말이다.
“네 얘기를 들으니 막혔던 속이 탁 트이는 기분이구나. 어린 계집이 제법이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남에게 가르쳐 줄만한 것이 못 되옵니다.”
“어쩔 수 없지. 청산은 변함없고, 장강은 마르지 않으니 인연이 있으면 또 만나자.”
여포는 비록 상대가 동녀였지만 가르침을 받았으니 예를 다해 두 손을 모으고 허리를 굽혀 읍을 하고는 자리를 떴다.
* * *
해가 중천에 뜨고, 다시 그 자리.
여전히 동녀는 아비의 장례를 치러줄 사람을 기다리며 저잣거리에 앉아 있었다.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 무뢰배들이 모여 동녀를 노리고 있었다.
“야, 쟤 좀 쓸만한 것 같지 않냐?”
대장으로 보이는 자가 동녀가 있는 쪽을 향해 턱짓을 했다. 그러자 부하 하나가 손바닥을 비비며 말했다.
“어휴! 진작 말씀하시지 그러셨어요? 아무 집에나 들어가서 딸년들을 데리고 나와도 부모들은 입 하나 준다고 좋아하는데······ 지금이라도 다녀올까요?”
그러자 대장은 부하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이런 멍청한 놈! 저 동녀의 얼굴을 보고도 그런 말이 나오냐? 어디 가서 저런 동녀를 구해올거야? 저렇게 귀티가 좔좔 흐르고 고운 동녀는 팔면 큰돈이 된단 말이다.”
맞은 곳을 비비며 부하 하나가 억울한 듯 대꾸했다.
“형님, 자고로 계집이라 함은 나올 때 나오고, 들어갈 때 들어가야지 최고지 저런 어린 계집을 누가 사간단 말입니까?”
“내가 이런 놈을 데리고 뭘 하겠다고······.”
대장은 답답하다는 듯 한숨을 내쉬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이 등신들아! 돈 많은 늙은이들이 장생불로하려고 밤마다 동녀를 끼고 잔다는 얘기 못 들었냐? 극상품이다. 아마 부르는 게 값일 테니 다른 놈들이 채가기 전에 우리가 데려가자.”
얘기가 끝나기 무섭게 무뢰배들이 동녀에게 우르르 몰려갔다.
“대낮부터 재수 없게! 얘들아, 뒤집어버려!”
구경 온 사람들은 그들의 기세에 눌려 길을 터주었고, 그들은 동녀에게 가서 난장을 치기 시작했다.
무뢰배 중 하나가 동녀의 머리채를 붙잡았다.
동녀가 비명과 함께 도와달라고 부르짖었지만 누구하나 나서는 자가 없었다. 이대로 동녀가 끌려갈 판이었다.
그때였다.
동녀와 꼭 다시 한 번 만나기를 기대하던 여포가 이 광경을 보고 나섰다. 그는 인파를 가로지르며 달려와 동녀의 머리채를 쥔 무뢰배의 손목을 덥석 움켜쥐었다.
“아악!”
무뢰배는 뼈가 부서지는 듯한 고통에 비명을 지르며 동녀의 머리채를 놓았다. 여포는 기다렸다는 듯 동녀를 자신의 뒤로 세웠다.
“웬 놈이냐? 목숨이 아깝거든 썩 꺼져라.”
무뢰배의 호통에도 여포는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한쪽 입꼬리가 호를 그렸다. 천군만마가 달려든다 해도 눈 하나 깜빡이지 않을 그에게 고작 무뢰배 따위의 호통이 먹힐 리 없었다. 오히려 웃음이 날 밖에······.
“웃어? 얘들아! 이놈, 버릇 좀 고쳐주거라.”
무뢰배들이 달려나오자 여포도 그들을 향해 달려 나갔다. 그의 발이 지면을 찍어 누를 때마다 바닥에 깔린 돌이 으스러져 발도장이 남았고, 그의 고함 소리는 마치 우레와 같아 주위 사람들은 귀를 틀어막아야만 했다.
여포는 마치 성난 황소가 돌진하듯 달려들어 순식간에 무뢰배들을 때려눕혔다.
부하들이 추풍낙엽처럼 쓰러지자 무뢰배들의 대장은 동녀를 해치려 했다. 나무 몽둥이가 높이 치켜 들리는 순간 동녀는 날카로운 비명을 터뜨리며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동녀는 누군가가 자신을 꼭 껴안은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붕~! 하는 소리와 함께 바람을 가르며 몽둥이가 날아드는 소리가 들리고 연이어 둔탁한 소리와 함께 몽둥이가 산산조각 났다.
동녀는 놀란 사슴처럼 큰 눈을 떴다. 그리고 그녀의 눈 속에는 여포의 영준한 얼굴이 맺혔다. 눈물이 그렁그렁한 동녀의 눈을 보며 여포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씽긋 웃어보였다.
여포는 살기 가득한 안광을 뿜어내며 몽둥이를 휘두른 무뢰배 대장을 단방에 거꾸러뜨렸다.
자신들은 도저히 당해낼 수 없다고 판단한 무뢰배들이 코피를 잔뜩 쏟아내는 대장을 부축해 도망치듯 떠나 버렸다.
그러자 동녀가 여포의 앞에 엎드려 감사했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은공, 은공의 존함은 어찌 되십니까?”
“남에게 알려줄 만한 것이 아니다.”
“은공의 존함을 알지 못하고 어찌 보은할 수 있겠습니까? 비록 지금은 은공의 은혜에 보답할 처지가 아니오나 언제고 보은하겠습니다. 부디, 은공의 존함을 알려주시어요.”
“오원 사람, 여포 봉선이다. 청산은 변함없고, 장강은 마르지 않으니 인연이 되어 또 만나거든 그 노래, 다시 한 번 들려다오.”
여포는 더는 동녀에게 눈길을 주지 않은 채 노랫가락을 뽑으며 자리를 떠났다.
– 먼저 간 미인이 기다리고 있네. 싸구려 분주만 있어도 부차와 서시가 부럽지 않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