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Follicle Exhibition RAW novel - Chapter 500
499화 오국태의 서신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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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오 부인이 보낸 서신이건만 손견은 그 내용이 그녀의 머릿속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말하고 있었다.
이는 당연한 얘기다.
손견의 정실인 오 부인은 가문으로 따져도 부족함이 없는 명문의 영애였다.
뿐만아니라 이미 강동제일의 미녀로 손꼽히는 미색을 지니고 있었다. 게다가 지혜와 성품까지 뛰어나니 ‘완전(完全)’이라는 말이 아깝지 않았다.
하지만 제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규중에서만 자란 그녀가 병략을 알 리 만무했다. 초선처럼 집안이 병법자 집안인 것도 아니지 않은가.
“예? 그럼 누가······?”
황개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주치가 팔꿈치로 그의 옆구리를 찔렀다.
자연스레 황개의 시선이 주치에게로 향했다. 그러자 주치는 목소리는 내지 않고 입모양으로만 누군가의 이름을 말했다. 그제야 황개는 손뼉을 치며 말했다.
“주랑! 그렇지 주랑이었구나!”
주랑이라 함은 주유를 말하는 것이었다. 주유는 손견의 장남 손책과 막역지우다.
범의 새끼가 강아지와 어울릴 리 없는 법. 주유의 가문은 양대삼공의 명문이다. 원 가는 사세삼공이라 하여 명문으로 친다. 사대에 걸쳐 삼공의 벼슬을 낸 집안이기 때문이다.
주유의 가문은 사대에 걸쳐 연달아 증조부와 조부가 삼공의 지위에 올랐다. 그러니 원 가 보다는 부족해도 명문이라기에 하등 부족함이 없었다.
주유는 가문과 혈통에 있어서 흠 잡을 데가 없고, 일신에 지닌 실력 또한 대단했다.
그는 강동의 수많은 명사들에게 가르침을 구했다. 자질이 뛰어난 데다가 명사가 사사했으니 그 결과로 어린 나이에 경학부터 음률에 이르기까지 갖가지 학문에 두루 정통했다.
게다가 보기 드문 미장부에 뛰어난 무예까지 갖추었으니 하늘이 시기할까 두려울 정도의 인재였다.
자식이 뛰어난 인재와 친교를 쌓는다는데 이를 싫어할 부모가 어디 있으랴. 더욱이 주유는 어린 나이에도 엄청난 친화력을 지닌 자였다. 오죽하면 오 부인이 주유를 두고 ‘내 배로 낳지는 않았으나 내 아들과 같다’고 했을까.
황개가 손견에게 물었다.
“주군, 군략을 낸 자가 주랑이라면 직접 서신을 보내면 될 것이지 어째서 대부인의 손을 빌렸을까요?”
“이래서 주유, 그 아이가 대단하다는 게다. 자신의 나이가 어려 내가 이 군략을 제대로 읽지도 않을까 싶었던 것이겠지.”
이른바 ‘베갯머리송사에는 당할 자가 없다.’는 얘기다. 손견 부부의 금슬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것이다.
나이를 먹어가고 부부의 연을 맺은 세월이 흘러갈수록 보통은 서로를 소 닭 보듯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들 부부가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까닭은 서로의 말을 경청하기 때문이다.
한조의 지배이념은 경학이다. 경학이 지배하는 한조에서 여인은 결코 사내와 동격이 아니다. 심지어는 가문의 재산으로 취급받는 경우도 드물지 않았다.
하지만 강동에선 여인의 처우가 그리 박하지 않았다. 안주인으로서 가문의 일에 관여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러한 것들 때문에 주유는 자신보다는 오 부인에게 붓을 들게 했던 것이다.
주유가 아무리 뛰어난 인재라고 한들 손견이 보기에는 어린 아이와 같다. 주유 역시 이를 알기에 오 부인의 위세를 이용한 것이다.
* * *
황개가 다시 물었다.
“주군, 가르침을 주십시오. 소장은 도무지 전서에 숨겨진 병략을 모르겠습니다.”
황개가 선수를 치자 정보, 한당도 두 손을 모아 들었다. 주치 말고 나머지 세 사람은 전서의 내용이 담고 있는 병법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 궁금한가?”
손견의 말에 그의 사효장 모두가 약속이나 한 듯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형주의 싸움이라 함은 원술과 유표의 싸움일 터. 유표는 분명 지공을 쓸 것이다. 유표는 자신의 군대가 육전의 경험이 부족함을 잘 알고 있을 테니까.”
여기까지는 다들 알고 있는 내용이기에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다만 주치 만은 자신의 예상이 맞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물었다.
“지공이라 하시면 완성을 수성하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은 아니겠지요? 소장이라면 완은 버립니다.”
“훌륭하다! 완은 지키기 위한 성이 아니지. 아마도 유표라면 신야를 염두해 두었을 터.”
“과연······.”
“원술과 유표가 싸워 서로 상잔하는 게 제일 좋으나 그럴 리는 없고······ 어쨌든 원술과 유표의 병사들이 많이 상하기를 기다려야겠지. 원술의 군대가 거듭되는 공성으로 지쳤을 때가 우리에겐 호기다.”
그러자 황개가 다시 한 번 우려를 표했다.
“시일을 지체할 명분이 없습니다. 주군께서 약속을 지키지 못한다면 손 유대 대인의 목이 달아나는 것은 물론이고, 원술에게도 책을 잡힐 겁니다. 그랬다가는 원술을 도모할 기회를 얻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여남의 부중을 취하라 쓰여 있지 않느냐.”
“여남의 부중이라면 대체 무엇을 말씀하시는 건지······?”
“여남의 부중이라하면 여양에 있는 원 씨의 본가를 말하는 것이지. 지금 그곳의 주인은 원술이나 집을 비웠다. 원술의 집이 비었으니 취해야지.”
여남은 예주에 속한 군이다. 여남에서도 여양은 그야말로 원 씨의 천하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그곳에 원 씨의 본가가 있기 때문이다.
원 씨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확실한 것은 사세삼공의 명문이라는 점이다.
조조는 조부인 조등이 일평생 모은 재산만으로도 군대를 일으킬 정도가 되었다. 하물며 사대에 걸쳐 삼공을 낸 집안이라면 그 부가 얼마나 대단하겠는가.
원소와 갈라지고, 경성에 있던 원외 일가가 몰락했다. 하지만 역시 부자가 망해도 삼대는 간다는 말처럼 아직도 여양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부가 잠들어 있었다.
어디 그 뿐인가?
원술은 애첩만 해도 수십에 이른다. 천하에 내로라하는 미인들을 마치 옥석을 수집하듯 데려다 놓았다. 강동군이 미인을 취하고 말고는 별개의 문제로 하더라도 그녀들을 위한 전각을 짓고 생활을 유지하게 했던 재물 역시 상당하리라.
물론 원 가의 재물을 취하는 것은 좋은 계책이다. 군자금은 많을수록 좋은 것이니까. 하지만 주치는 걱정스레 말했다.
“주군, 그런 짓을 했다가는 주군의 평판이 땅에 떨어짐은 물론이거니와 원술을 도모하는 일도 물 건너가 버리고 말 겁니다.”
“주유, 그 아이가 변명거리도 만들어 주었지 않았느냐?”
“여남에서 반란이라니요? 그건 변명거리가 못 됩니다. 대체 누가 여남에서 반란을 일으켜 원 가를 위태롭게 하겠습니까?”
손견이 원술 휘하에서 보낸 세월이 제법 되었다. 그러니 손견의 장수들도 원술의 사정을 속속들이 잘 알고 있었다. 하기야 손견은 원술에게 크게 중용을 받았으니 손견 휘하의 장수들도 원술의 속사정을 많이 알았을 것이다.
“원술이 여양에 남긴 자가 장훈이라는 걸 내 어찌 모르겠느냐?”
“장훈이 반란이라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원술 휘하의 장수들 중에 장훈만큼 충성스러운 자는 없습니다.”
“여양에 장훈만 있는 것은 아니지. 그리고 필요하면 죄는 만들면 되는 것이다. 죽은 자는 말이 없으니까.”
독하지 않으면 장부가 아니라 했던가. 하지만 이런 독심은 방향도 정도도 너무 심했다.
“그래도 원 가의 식솔들이 있는데 비밀이 유지되겠습니까?”
“그들도 죽일 것이다. 한 명도 남김없이 모조리! 반란군에게 화를 입었다고 고하면 될 터.”
황개는 손견의 말이 썩 마음에 든 모양이다.
“주군, 소장에게 선봉을 맡겨주십시오. 어차피 여양에 남은 장훈에게는 많아봐야 수천 병마 뿐일 것입니다. 여양의 원 씨들이 누리는 부귀영화는 따지고 보면 모두가 강동의 것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겠습니까?”
“황개, 훌륭하다! 사실 원술, 그 놈이 좋은 집안에서 태어난 것 말고 내세울 것이 무엇이더냐? 내 비록 대업을 위해 그런 졸자에게 고개를 숙이기는 했으나 이제 더 이상은 그러지 않을 것이다.”
“당연하신 말씀! 주군이야 말로 천하제일의 영웅이십니다. 어찌 범이 개새끼 밑에 있겠습니까? 이참에 원 가의 씨를 말리고 그들이 수탈해간 재물을 되찾아 대업을 도모하십시오!”
“좋다! 모두 들으라! 명이다!”
손견의 말에 그의 사효장이 일제히 두 손을 모아 들었다. 그러자 손견은 그 모습을 흡족한 표정으로 보며 말을 이었다.
“지금 이곳에서 병마를 나눈다! 주치, 정보는 보군을 이끌고 비양(比?)으로 가라. 반드시 대악산(大樂山)과 학산(?山) 사이의 협로를 지나야 하며, 나흘의 시간을 주겠다.”
손견이 명하자 주치와 정보가 깊이 읍했다. 비양은 남양의 동쪽 끝에 자리한 현읍이다.
지금 있는 곳에서 정상적으로 진군한다면 이틀이면 갈 수 있는 거리였다. 재촉한다면 하루 반나절이면 갈 수 있으리라. 그런데도 나흘의 시간을 준 것은 손견의 기병들이 여양을 치고 돌아와 합류할 때까지 그만한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황개, 한당은 나와 함께 기병을 이끌고 여양으로 간다! 원 가의 씨를 말려버리자.”
* * *
여양의 본가가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해 있음에도 이를 알 리 없는 원술은 신야로 진군하고 있었다.
피난민 무리를 몇 번이고 만났는데 작게는 수십, 많게는 수백에 이르는 규모였다.
원술은 사실 그들을 모두 벨 생각은 없었다. 그들 사이에 자객이 숨어 있다고는 해도 그저 자객들에게 암살시도는 소용이 없다는 걸 알게 해주고 싶은 마음 정도였다.
하지만 굶주린 병사들이 피난민들의 봇짐 속에서 얼마간의 식량을 털어먹기 시작한 후로 일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버렸다.
피맛을 본 병사들은 말할 것도 없고, 굶주린 병사들은 피난민을 죽이면 식량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어 눈이 뒤집혀버린 것이다.
이제는 명을 내리지 않아도 제후군 병사들이 앞다투어 피난민들을 공격하니 도적의 무리가 따로 있으랴. 근왕의 기치를 세우고 동탁의 대척점에 섰던 제후군의 기상은 이미 오래전에 사라져 버린 후였다.
육양을 지척에 두고 피난민들이 보이자 제후군 병사들의 눈이 뒤집혔다.
“죽여라!”
피난민들을 보자마자 창칼을 치켜들고 제멋대로 달려나가는데도 원술은 이를 막지 않았다. 그에게 있어 지금의 상황은 자신의 군대가 백성들을 학살하는 것이 아니다. 자객이 섞여있는 피난민 무리를 쫓아내는 것에 불과했다.
제후군의 공격이 시작되자 피난민들은 비명을 지르며 정신없이 도망쳤다. 병사들은 피난민들을 닥치는 대로 베어버렸다.
“사람을 잡아먹는다!”
도망치던 피난민들 사이에서 터져 나온 말이 불씨가 되었다. 하기야 멀리 떨어진 곳에서 보면 그리 보일 법도 했다.
창칼에 피난민들이 쓰러지면 병사들이 우르르 달려들었다. 병사들이 피난민들의 봇짐에서 먹을 것을 찾는 모습은 마치 사냥한 사슴을 뜯어먹기 위해 주둥이를 박고 있는 승냥이무리를 방불케 했다.
피난민들은 봇짐을 내던지고 비명을 지르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아마 자신들을 구하러 오지 않는 유표를 원망할 겨를도 없었을 것이다.
육양의 포구에선 피난민들이 속속 전함에 승선하고 있었다.
“장정들은 걸어가라! 노인과 아이만 탈 수 있다! 서둘러라! 시간이 없다! 어서!”
장윤이 고래고래 고함을 치며 백성들을 재촉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아이와 노인들이 배에 오르는 것을 도왔다.
“짐은 버려! 한 사람이라도 더 타야지 짐을 실으면 사람이 못 탄단 말이다!”
장윤의 장졸들도 백성들을 한 사람이라도 더 싣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그런데 그 때 저 멀리서 비명소리가 들리며 피난민들이 우르르 밀려들기 시작했다.
“적군이 온다! 적군이 온다!”
적의 출현을 알리는 목소리와 함께 편경을 두드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내 피난민들을 참살하며 살육에 미친 제후군 병사들이 나타났다. 이동을 하면서도 진세를 이루는 것은 적의 기습에 대비하는 최소한의 준비였다.
하지만 그들에게 그런 것은 없었다. 그저 열심히 도망치는 피난민들을 쫓아가 칼을 휘두르는데 정신이 팔려 있을 뿐이었다.
그 처참한 광경을 보며 분통을 터뜨리는 자가 있었으니 바로 유표의 상장 문빙이었다.
‘저저저! 저런 쳐 죽일 놈들을 보았나!’
매복하고 있던 문빙은 하마터면 큰 소리를 낼 뻔했다. 고향의 백성들을 도륙하는 제후군 병사들을 보고 있노라면 피가 거꾸로 솟는 듯했다.
당장이라도 칼을 뽑아들고 뛰쳐나가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매복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적을 좀 더 깊숙이 끌어들일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분노로 구겨졌던 그의 표정은 어느새 며칠 묵은 대업을 이룬 것처럼 밝아졌다.
“쏴라!”
문빙의 우렁찬 목소리와 함께 길 양 옆의 작은 언덕에서 궁사들이 일제히 모습을 드러냈다. 팽팽하게 당겨진 시위마다 걸린 화살들이 제후군을 향하고 있었다.
투두두둑!
제후군 병사들을 향해 화살이 빗발쳤다. 순식간에 수십여 명의 제후군 병사들이 화살에 맞아 비명을 지르며 나동그라졌다.
“아악!”
“매복이다! 적군의 매복······ 끄르륵!”
적군의 매복을 알리기 위해 소리치던 병사 하나는 화살이 목구멍에 박히며 절명해버렸다.
“전군, 공격하라!”
문빙이 칼을 높이 치켜들고 소리치며 이내 언덕 아래로 몸을 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