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Follicle Exhibition RAW novel - Chapter 516
515화 사람구실을 하려고 하면 그 길이 스스로 나타난다(我欲仁, 斯仁至矣)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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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문이 속삭이듯 말하자 여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러자 위월은 그 까닭이 궁금해 후문이 들고 있는 죽간을 보았다. 이제 글을 제법 읽고 쓸 수 있으니 읽는 재미가 있었다.
“갱살······. 여 장군이 포로들을 갱살해버리겠다고 말함.”
위월은 후문이 죽간에 쓴 글귀를 읽었다. 후문은 여포가 포로들을 갱살해버리겠다는 말을 그대로 써놓아 이를 기록으로 남기려 했던 것이다.
그러자 여포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그는 연신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에헤이! 농담이지 농담. 뭘 또 그런 것까지 기록하려고 그러오?”
여포는 적당히 둘러대려 한 것인데 후문은 또 죽간에 뭔가를 써내려갔다. 그러자 위월도 신이 나서 그걸 그대로 읊었다.
“여 장군이 사람 목숨을 가지고 농담을 함. 인명을 경시하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여겨짐.”
“내 실수했소. 없던 일로 합시다. 어서 지워주시오.”
“대형, 좀 전에는 있는 그대로 기록하라 하더니만 이제와서 딴 소리를 하면 후 선생이 얼마나 속상하겠소?”
“위월, 넌 빠져 있거라.”
여포는 위월을 밀쳐내려 했으나 그가 버텼다.
“에헴! 내 명색이 정도종사인데 주군의 언행이 바르지 않으니 어찌 충언을 아낄 수 있겠소? 목이 달아난다고 해도 할 말은 할 것이오.”
“이놈이······!”
여포는 위월과 더 실랑이를 할 생각이 없었다. 지금 중요한 것은 후문이 쓴 글을 없던 걸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후 선생, 내 돌아가면 은병 하나를 줄 터이니 거 좀 지워주시오.”
그러자 후문은 또 목탄으로 죽간에 글을 써내려갔다. 당연히 위월이 이를 대신 읽어주었다.
“금품을 뇌물로 주고 기록을 정정하려함.”
“에라 모르겠다. 마음대로 하오, 마음대로! 이래서야 어디 말이나 제대로 하겠소?”
“사관에게 윽박지르며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임.”
이에 여포는 자리에 몸을 깊숙이 묻고는 고개를 젖혀 크게 한숨을 쉬었다.
‘아아! 아무 생각 없이 망나니짓 하던 때가 그립구나!’
* * *
여포는 평정이 끝날 때까지 그 자세 그대로였다. 단단히 삐친 걸까? 아니면 그저 가벼이 여겼던 사관의 존재가 자신에게 족쇄가 되었기 때문일까? 아마도 후자일 것이다.
“후우! 가 선생.”
“예, 장군.”
“나 너무 얼토당토않은 일을 허락해버린 건 아닌지 모르겠소.”
“후 선생의 일 말입니까?”
그러자 여포가 다시 허리를 꼿꼿이 세워 가후와 시선을 맞추며 말했다.
“내 무덤을 내가 판 거요? 나는 사인들처럼 고상한 언사를 하지 못하는 사람인데······.”
여포는 병주에서도 변방이라 불리는 오원 출신이다.
병주 사람들은 중원인들에게 호한잡종이라 손가락질 받는 처지이지만 병주 안에서도 삭방이나 오원 출신은 좋은 대접을 받지 못했다.
게다가 군문의 솥밥을 먹으며 컸고, 어울리는 자들이라고 해봐야 싸움밖에 모르는 자들 뿐이었다.
때문에 그 시절 여포의 대화는 질펀한 욕설과 음담패설이 아니면 이어지기 힘든 정도였다.
지금은 많이 변했다고는 하나 결국 사인들처럼 세련되고 학식이 있어 보이는 언사를 하지는 못했다.
그렇다고 해도 여포는 역사에 자신의 언행이 경박했다는 기록을 남기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물론 후문이 강행한다면 힘으로 누를 생각 역시 없었다.
“혹시 내 사람들이 나를 놀려 먹는데 취미를 붙인 건 아닌가 모르겠소. 설마하니 후 학사마저 그럴 줄이야!”
여포는 가후가 대꾸를 하지 않음에도 마치 고민을 털어놓듯 혼자서 떠들어댔다.
“백개 선생도 참으로 이상한 사람이오. 좋은 분이라 여기고 있었건만 어째서 후 선생에게 그런 일을 시키고 가셨을까? 실은 경사로 떠나고 싶지 않으셨던 거 아니오?”
여포는 채옹이 전했다는 ‘사필소세(史?昭世)’라는 글이 자신에게 족쇄가 되는 듯하여 이제와 싫은 마음이 들었다.
“백개 선생께선 분명 장군을 위하는 마음에서 그런 당부를 하셨을 겁니다.”
“결과적으로는 그게 아니잖소. 이제 기록에 남을까 싶어서 말도 편히 못하게 되어버렸소. 앞으로 후 선생을 평정에서 빼버릴 수도 없고······.”
“평정은 공적인 자립니다.”
“그럼 사석에서는 말을 편히 해도 된단 말이오?”
여포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공석에서보다는 편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앞으로는 가면을 쓰고 살아야겠구먼?. 공석에선 배운 사람들처럼 굴고, 사석에서는 나로 돌아가고······. 어떻소?”
여포가 비아냥댔다. 하지만 가후는 이를 당연하다 말했다.
“다들 그렇게 삽니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여러 개의 가면을 가지고 있지요.”
“겉과 속이 다른 자는 믿을 수가 없소.”
여포는 유비를 떠올리며 그 가증스러움에 몸서리를 떨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자라면 차라리 조조처럼 겉으로 티를 내면 좋을 터.
하지만 겉으로만 봐선 짐작도 할 수 없으니 미칠 노릇이 아닌가.
“공석에서는 그 자리에 맞는 언사와 행실을 보여야 합니다. 본래의 편한 모습은 가까운 자들만 알고 있는 게 좋지요. 이제부터는 연습을 하셔야 합니다.”
“내 생각은 좀 다르오. 내가 백성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은 내 스스로가 그들과 눈높이가 같기 때문이오. 서로가 편하게 얘기할 수 있어야 문제가 무엇인지 그 해답은 무엇인지를 알 수 있지 않겠소?”
여포의 생각은 이랬다. 어려운 문자를 써가며 백성들에게 말해봤자 그들은 이해하지 못한다고······.
자신은 글을 배웠는데도 가후나 다른 이가 옛 성현의 말씀을 들먹이면 머릿속에서 지진이 일어나는 듯했다. 하물며 글을 모르는 백성들이 이를 어찌 알아들을 수 있으랴.
“확실히 장군의 말씀은 틀린 게 없습니다. 사실 법령이 어렵고 학문의 극의가 어려운 것은 특별한 소수의 사람만이 알게 하기 위함입니다. 예부터 군주들은 백성들이 현명해지는 것을 원치 않았으니까요.”
“내 말이 그거요. 법령을 개떡같이 만들어놓으니 관리들이 멋대로 해석해서 백성들을 괴롭히는 거잖소. 분명 나는 백성들과 얘기가 통하오.”
“말이 통한다라······.”
“그렇소. 내 고상한 말도 제대로 할 줄 모르지만 백성들이 어찌 살아가는지 잘 알지 않소? 끼니 걱정을 해본 적 없는 사람이 백성들 배곯는 고통을 어찌 이해할 수 있겠소?”
여포는 장수나 구병들과 격 없이 지내며 끈끈한 결속력을 얻게 된 것은 자신이 하층민 출신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말하고 있었다.
백성들의 고된 삶을 여포 스스로가 잘 알고 있었기에 그들이 원하는 것들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는 점 역시 장점으로 내세우고 있었다.
여포는 자신의 이점을 살려 목민관이 되고자 했다. 하지만 가후의 생각은 달랐다.
“백성들과 가까이 지내려는 마음이 있고, 또 그들을 위하려는 마음이 있더라도 그것은 오직 시책으로만 드러나야 합니다.”
“말을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요?”
“군주의 말은 범부의 말과는 그 무게가 다른 법입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옛사람들은 말을 아꼈는데 이는 내뱉은 말을 지키지 못할까 두려워했기 때문이다.(古者言之不出 恥躬之不逮也)’라고 했습니다.”
가후는 여포가 또 성현의 말씀을 듣지 않으려 할까봐 쉴 새 없이 입을 놀려댔다. 그는 군주가 허언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여포에게 알려주려 했다.
사실 채옹이 사필소세라는 네 글자를 후문에게 남겨 여포를 변화시키려 했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대중이 알 수 있는 말은 반드시 실행에 옮길 수 있는 것만 말해야 백성들이 군주를 믿고 따를 겁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군주의 말을 의심부터 하겠지요.”
“이제야 무슨 말인지 알겠소. 하지만 처음부터 너무 과한 거 아니오?”
“무슨 말씀을······. 이미 조정 안에 장군을 지지하는 세력이 이루어졌습니다. 게다가 장군께선 이미 사슴을 좇는 군웅들 중에선 원소와 함께 수좌를 다투는 자리에 이르렀습니다. 뿐만 아니라 경사의 주인인 동 상국과 막역한 사이이니 적들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나를 시기하는 자들이 내 언사를 가지고 물고 늘어질거다?”
그러자 가후는 여포에게 두 손을 모아 들었다.
“여 장군, 총명! 옛 일들을 살펴보면 어진 선비도 시구 하나 잘못 썼다가 역적으로 몰려 참형을 면치 못하고, 농담 한 번 잘못 했다가 무고를 당한 자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야 역적으로 모는 것이 정적을 제거하는 가장 빠르고 쉬운 수단이니까 그런 거 아니오?”
“장군과 무력으로 다투는 것을 두려워하는 자들은 장군의 언사를 문제 삼아 정치적 공세를 펼칠 겁니다. 이를 사전에 차단하는 것이야 말로 가장 현명한 대응방법이 아니겠습니까?”
“골치 아픈 얘기로군. 나는 사인이 아니라 그런지 정치 싸움은 가능하면 피하고 싶소. 어차피 천하를 노리는 이상 그건 불가능한 얘기겠지만······.”
여포의 자조 섞인 말에 가후가 빙그레 미소 지었다.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당분간은 경사에 나가 계신 백개 선생과 노 장군께서 장군 대신 정치 싸움을 해주실 테니까요.”
* * *
“위험하지는 않겠소? 두 분을 허망하게 잃고 싶지 않소. 호위라도 보내야 하는 거 아닌지······.”
여포는 변방 출신이기 때문에 경사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 싸우면 이길 수야 있다지만 언제 암습을 당할지 모르는 곳이 경사가 아닌가. 마음 편히 두 발 뻗고 잘 수 없는 곳이니 그런 곳에 채옹과 노식을 보내놓은 것을 걱정할 수밖에······.
“오히려 호위를 보내는 것이 위험을 자초하게 만드는 일이 될 겁니다.”
“어째서 그렇소?”
“원 가를 지지하는 명문 출신 고관들은 그 분들이 장군과 어떤 관계인지 정확하게 알지 못합니다. 호위를 보낸다면 깊은 관계임을 시인하는 것이나 다름없으니 지금은 차라리 보내지 않는 게 좋습니다.”
“음······!”
여포가 침음성을 터뜨렸다. 가후는 자신의 말에도 불구하고 여포가 안심하지 못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정 그러시면 어서 빨리 하동을 평정하시고, 두 분의 호위를 맡을 자들을 추려서 보내시지요.”
“그리합시다. 그런데 하동 호족들을 어찌 공략하기로 했다 했소? 평정이 끝날 무렵에는 사실 아무 얘기도 귀에 들어오지 않아서······.”
“내일 서 군리가 염방의 사람들을 만나러 가기로 했습니다. 하동 호족들의 치부를 제대로 들춰내겠다고 열의가 대단합니다.”
하지만 여포는 가후의 말이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다. 그는 고개를 설레설레 가로저었다.
“어느 세월에 명분 다 찾아가면서 하동을 평정할 수 있겠소? 소금은 분명 매력적인 자원이지만 하동에서 오래 지체할 순 없소이다.”
“그럼 어찌 하실 요량이십니까?”
“양동작전으로 가야지. 어차피 하동의 호족들이 항복할 마음이 없는 것 같소. 그렇다면 나는 병마를 이끌고 그들의 영채를 칠 생각이오.”
“그 사이 서 군리가 명분을 취하면 되겠군요. 좋습니다.”
가후는 턱을 매만지더니 이내 한쪽 입꼬리를 치켜들었다. 보나마나 또 그 사이를 못 참고 귀계를 만들어낸 것이리라.
“가 선생, 또 무슨 계략을 생각해내었소?”
“장군께서 하동 호족들의 씨를 말려버릴 것은 기정사실이 아닙니까?”
“그들의 가산을 취하는 걸 생각하셨소?”
“그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소신은 그 다음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가후는 백우선으로 부채질을 하며 묘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 다음이라······. 그게 대체 무엇이오?”
“영채에서 농성하고 있는 하동 호족들을 쓸어버리고 나면 빈자리가 남지 않겠습니까?”
“빈자리라니 그건 또 무슨 말이오? 내게는 좀 쉽게 얘기해주오. 설마 나를 저 선생이나 곽 선생으로 착각하는 것은 아닐 테고······.”
“하동에 새로운 명문 호족을 만들어 세우는 것이지요.”
가후는 역시 고단수였다. 조정에서 임명하는 지방관의 임기는 그리 길지 않았다. 매관매직의 문제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고인 물은 썩게 마련이다. 그러니 비리와 부정부패로 탐관이 되기 전에 임지를 바꾸게 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특히나 하동은 소금이라는 귀중한 자원을 생산하는 땅이니 만큼 지방관의 임기가 더욱 짧을 터였다.
물론 하동의 관리를 여포가 원하는 사람으로 세우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하동의 호족이 여포의 사람들로 채워지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할 것이다.
“호족을 만들 수 있소?”
“안 될 게 무엇입니까? 어차피 몰락한 명문가라면 차고 넘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