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Follicle Exhibition RAW novel - Chapter 517
516화 사람구실을 하려고 하면 그 길이 스스로 나타난다(我欲仁, 斯仁至矣)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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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전투의 피로에서 벗어나지도 못했건만 서황은 가후와 독대하고 있었다.
“서 장군, 잠은 편히 주무셨소?”
“군사 선생 때문에 그러지 못했습니다.”
“소생이 뭘 어쨌다고 소생을 탓하시오?”
“그야 당연한 일 아닙니까? 하동 호족들을 쓸어버리고 난 후에 염방의 사람을 만날 줄 알았는데······.”
서황은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비록 여포 휘하에서 군리 일을 맡고 있지만 그는 뼛속부터 무장이었다.
그러자 가후가 빙그레 미소 지으며 위로했다.
“서 장군이 전장을 오래 떠나 있어 전공에 목말라 있음을 내 잘 아오.”
“아는 분이 이러시면 어쩝니까? 소생에게도 기회를 주셔야지요. 유주 자사부에 너무 오래 있었습니다.”
“시간적으로 여유가 없기 때문이오.”
“누가 쫓아오는 것도 아닌데 여유가 없다니요?”
서황이 퉁명스럽게 투덜거렸다. 이에 가후는 빈 죽간 하나를 그에게 내밀었다.
“이게 뭡니까? 군령서라면 뭐라도 쓰여 있어야 하는 게 아닙니까?”
“이 죽간을 채워 넣는 일은 서 장군의 몫이외다.”
“소장이 말입니까? 대체 뭘 채워 넣는단 말입니까?”
서황은 가후가 건넨 빈 죽간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자 가후가 죽간의 용도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이 죽간은 생사첩(살생부)이요. 내 장담하건대 영채를 세워 그곳에서 농성하는 호족들은 모두 죽을 것이오. 하지만 그곳에 하동 호족 전부가 있는 건 아니잖소?”
‘생사첩’라는 말만 들어도 서황은 섬뜩한 느낌을 지우지 못했다.
“그러니까 하동의 호족들 중에 쓸 만한 자들의 이름을 써 넣으라 이거로군요.”
“역시 서 장군은 지모를 갖추고 있어 얘기가 빠르오.”
“칭찬은 고맙습니다만 소장이 그럴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자격이라면 충분하지요. 하동의 일은 하동 출신인 서 장군이 적격이오.”
가후는 서황이 하동 출신이기 때문에 하동의 일에 밝을 거라고 여겼다. 뿐만 아니라 고향을 생각하는 마음 때문이라도 일을 허술하게 처리하지 않으리라 판단했다.
“서 장군, 잘 들으시오. 여 장군께서 하동 호족군을 쓸어버리고 나면 하동을 좌지우지할 새로운 호족들이 필요하오.”
“여 장군께 호의적인 호족이 필요한 것이겠지요.”
“너무 고깝게 듣지 마시오. 아첨만 일삼는 자들을 호족으로 세우려는 것이 아니외다. 여 장군의 성정을 잘 아시잖소?”
“그럼 어떤 자들을······.”
서황이 말끝을 흐렸다. 그러자 가후는 죽간을 툭툭 건들며 답했다.
“하동의 미래를 맡길 수 있는 현명한 자. 제 배만 불리려 백성들을 수탈하는 자들에게 하동의 미래를 맡길 수는 없소.”
“그거면 됩니까? 나중에 여 장군에게 반기를 들 수도 있을 텐데요?”
“대신 조건이 있소. 몰락한 가문 출신이 좋겠소. 그게 아니더라도 기존의 호족들에게 배척을 받던 가문이라든지, 아니면 그들과 뜻을 달리하는 가문도 좋소.”
가후의 말에 서황은 무릎을 쳤다.
“은혜를 베풀겠다 이거로군요. 하기야 중니 선생께서도 ‘참으로 인에 뜻을 두면(苟志於仁矣), 나쁜 일은 못한다(無惡也).’라 하셨지요.”
서황은 논어의 한 구절을 읊으며 지모를 뽐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부담감을 느꼈다. 자신에게 맡겨진 일이 얼마나 중대한 일인지를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우선은 자신이 올바른 사람을 선별해야만 했다. 그래야만 하동의 몰락한 가문에 여포가 은혜를 베풀면 은혜 입은 자들이 보은을 하려 들 테니까.
“역시 경학을 익힌 유장답소.”
“소장이 우리 군 유일의 군리 아니겠습니까? 이 정도야 기본이지요.”
가후는 서황의 손을 덥석 잡고 당부를 아끼지 않았다.
“서 장군, 하동 사람들은 그 기질이 병주와도 다르고, 옹주와도 다르며, 그렇다고 경사 사람들과도 같지 않소.”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소장이 했던 말을 잊지 않으셨군요.”
“그래서 하는 말이오. 하동 사람을 움직일 수 있는 건 하동 사람 뿐이라는 걸 재차 귀띔해주지 않았소? 여 장군이 하동의 호족들을 쓸어버리는 건 어렵지 않소. 하지만 하동을 온전히 지배할 수 있냐 없냐는 서 장군에게 달렸소이다.”
“군사 선생, 걱정 마십시오. 소장이 바람처럼 다녀와서 좋은 선물을 드리겠습니다.”
* * *
서황이 염방이 있는 의씨현으로 출발했다. 그리고 이틀 후. 여포군은 꿀맛 같은 휴식을 마치고 안읍으로 출전했다.
하동군 안읍에는 하동 호족들이 영채를 세우고 그곳에서 농성하고 있었다.
여포가 저 멀리 우뚝 선 영채를 화극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가 선생, 저기 저 영채에서 농성하는 병력이 얼마나 되오? 말이 영채지 거의 성이나 다름없구려.”
“삼사천은 되는 듯 하다는 보고를 들었습니다. 저 정도 규모라면 오천이 넘어도 무리는 아니겠지요.”
“오천이 된다 해도 내 병마에 비하면 하잘 것 없소.”
하지만 가후는 백우선을 흔들어댔다.
“장군이 자랑하는 당예기도 그렇고, 호복기사도 모두 기병입니다. 그들을 저 영채를 공격하는데 쓰시겠습니까?”
“그건 좀······.”
“그렇다면 결국 한 장군이 이끄는 하내 호족군 수천이 전부인데 그래도 쉽게 생각이 되십니까?”
가후의 말에 여포는 잠시 생각에 빠졌다. 하지만 가후는 그런 여포를 가만히 두지 않았다.
“우리 군은 공성의 경험이 없습니다. 저 영채는 공성의 경험을 얻게 해줄 보고나 마찬가지지요.”
“사람 마음이 참으로 간사하다더니······.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가벼워지오.”
“장군, 저 영채를 보십시오.”
가후는 백우선으로 영채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공성을 할 때에 가장 먼저 봐야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당연히 적병의 수요.”
“틀렸습니다. 성의 크기와 성벽의 높이입니다. 그 다음은 무엇입니까?”
“크기와 높이를 봤으면 당연히 어찌 성문을 깰 건지, 성벽을 오를 방도는 있는지를 살펴야겠지. 내 말이 틀렸소?”
가후는 흡족한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하지만 우리 군에는 지금 사다리도 운제도 없습니다.”
“그럼 성문을 깰 방도를 찾아보겠소.”
여포는 가후의 말을 들으며 머릿속에서 모의전을 펼쳤다.
‘지금 준비할 수 있는 것은 성문을 깰 당목(撞木) 뿐이다. 다행히 영채의 문은 성문만큼 튼튼해 보이지는 않는구나.’
당목은 쉽게 말하자면 굵고 단단한 목재다. 당목은 쇠종을 치는 것부터 성문을 깨는 공성무기에까지 용도가 다양했다.
여포군 병사들이 당목을 들고 달려가 성문을 두들겨 깨는 모습이 그려졌다.
‘백파적이 그 정도 수의 쇠뇌를 썼다면 저들 역시 쇠뇌로 무장했으리라.’
여포는 이제 제법 논리라는 것을 가지고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장군, 영채의 문을 깰 방도를 찾으셨습니까?”
“물론이오. 듣고 한 번 평해보시오.”
“좋습니다. 소신이 한 번 들어보겠습니다.”
“영채의 외곽은 나무와 진흙으로 이루어진 것이오. 그러니 화공만으로는 뜻하는 바를 이룰 수 없소.”
여포는 영채의 벽부터 시작해 공략 여부를 먼저 타진했다.
“그렇다면 화공으로 벽을 태우는 것은 불가능하겠습니다.”
“사다리도 없고, 운제도 없소. 그러니 기어오르는 것도 불가능하오.”
“벽을 공략하는 것은 버려야겠습니다.”
“남은 곳은 영채의 문이오. 영채의 문 치고는 제법 단단해보이오. 하지만 지금껏 보아온 성문들과 비교해보면 허술하지.”
가후는 여포가 성문을 깨려 한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방법이 문제였다.
“설마 화극으로 깨시려는 것은 아니겠지요? 아니면 몸으로 박치기를 한다든지······.”
“나도 누울 자리를 보고 발을 뻗는 사람이오.”
“다행입니다.”
“저 영채의 성문이 암만 다른 성문만 못하다 해도 그런 방법은 안 쓸 거요. 성문이 깨지기 전에 내 화극이 상하거나 내 뼈가 상하겠지.”
여포는 미소를 머금은 채 말을 이었다.
“저 영채를 공략하기 위해 나는 방패와 당목을 쓰기로 했소.”
“당목은 좋습니다.”
“그럼 방패를 쓰는 건 안 좋다는 얘기요?”
가후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자 여포는 방패를 반드시 써야 하는 당위성을 알리려했다.
“백파적을 상대할 때 놈들의 궁노부대에 애를 먹었소. 백파적이 스스로 재물을 써서 그 성능 좋은 쇠뇌로 무장을 했을 리 없소.”
“하동 호족들이 지원해주었겠지요.”
“그러면 저들 역시 쇠뇌로 무장하고 있을 것이오.”
“백파적과의 싸움에서처럼 피해를 보지 않으려면 방패를 써야 한다는 말씀입니까?”
그러자 여포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내 말이 그 말이오.”
여포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미봉이 달려와 두 손을 모아 들었다.
“군사 선생, 미봉입니다.”
“부탁한 일은 잘 되었는가?”
“당목을 준비해두었습니다.”
이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여포가 가후를 향해 손가락질을 했다.
“선생, 이미 준비해두고 있었으면서 물어볼 건 또 뭐요?”
“말씀드렸잖습니까? 저 영채는 공성의 경험을 쌓을 보고라고······.
* * *
해가 중천에 떴을 때 여포군은 영채를 향해 공격 준비를 끝냈다.
여포는 도열한 병마 앞에서 화극을 치켜들고 소리쳤다.
“저들은 소금산지를 점거하고 소금을 밀매해 부를 쌓은 자들이다. 조정의 관리들과 손잡고 백성들을 괴롭혀 왔으며, 백파적이라는 큰 도적들과도 한 편이 되어 우리 의군에게 대항했다.”
여포는 하동 호족들을 공격하는 명분을 병사들에게 알렸다.
사실상 여포가 하동을 평정해 소금의 힘을 얻기 위한 것이지만 나라의 것을 되찾는다는 명분도 있는 것이다.
하기야 여포 개인의 욕심 때문에 저들을 공격해야 한다면 병사들도 힘이 빠질 것이다.
그간 수많은 전장에서 여포의 장졸들이 힘내어 싸워온 것은 자신들이 의군이라는 자부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의군이다! 하동은 소금이 산처럼 쌓여 있는 곳인데 하동의 백성들이 어떻게 사는지 보았을 것이다. 이는 하동의 호족들이 하동 백성들에게 당연히 돌아가야 할 노동의 대가를 착취했기 때문이다.”
“죽여라!”
“죽여라!”
여포의 말은 병사들을 흥분시키기에 충분했다.
병사들은 대부분 하층민 출신이다. 당연히 고향의 호족들에게 시달린 경험이 분명 있으리라.
하내 호족가의 사병들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그들이 호족가의 사병이지 호족은 아니다. 먹고 살자고 호족들의 개노릇을 하고 있을 뿐이다.
평소 같으면 호족들의 그림자도 밟지 못했을 터. 하지만 오늘만큼은 적으로 만나게 되었다. 저들을 죽여도 죄가 아니다. 오히려 전공을 세운 게 된다.
“하동 호족들에겐 천자도 없고, 백성도 없다! 오늘 우리 의로운 군대가 흘리는 피는 핍박받는 백성들을 해방시킬 것이다! 나라를 부강하게 하고, 우리는 정당한 세금으로 부귀를 누리게 되리라!”
“오오!”
“오오!”
“방패병 앞으로!”
방패병들이 전열로 나섰다. 연미패는 그 수가 많지 않았지만 중앙에 자리를 잡았다. 나머지 방패병들은 원패(원형 방패)를 들고 좌우로 길게 늘어섰다.
“공격하라!”
여포의 공격 명령이 떨어졌다. 그런데 당예기도 함께 전진하는 게 아닌가. 명색이 공성이다. 기병인 그들이 달려가봐야 영채에서 농성하는 적들을 어찌할 수는 없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