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Follicle Exhibition RAW novel - Chapter 53
53화 여포, 천하 대의를 얻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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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포가 잠시 손속을 멈추긴 했으나 여기서 한 마디라도 더 했다간 채옹도 살아남지 못할 듯했다. 하지만 채옹은 위협이 두려워 할 말을 못할 자가 아니었다.
“장군, 기어이 그 자를 죽일 작정이오? 어서 정신을 차리시오!”
채옹의 일갈에 여포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하지만 아직 몸은 식지 않았다. 서황의 피로 물든 주먹이 아직도 더 피를 갈망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성과 본능 사이에서 갈등하던 여포에게 가후도 나서서 타일렀다.
“장군, 그 자를 죽여선 아니됩니다. 어찌 되었건 정 자사가 보낸 사람이 아닙니까? 그를 죽이는 것은 정 자사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과 같습니다.”
가후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다. 군웅대회는 병주는 물론이고 예로부터 접경지역에서 무장을 선발하기 위해 흔히 열렸던 행사였다.
군웅대회의 우승자는 자사의 속관이나 아장으로 임명되는 것이 관례였다. 그렇다면 서황은 이미 병주 자사 정원의 속관으로 관직을 받았거나 아장으로 인정받았을 확률이 높았다.
자사의 속관이나 아장을 죽이는 것은 자사에게 정면으로 도전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장군, 때를 기다릴 줄 아는 자만이 진정한 영웅이 될 수 있습니다. 풍운이 일기 전에는 큰 비가 오지 않는 법임을 잊지 마십시오.”
가후가 거듭 타이르자 여포는 그제야 잔뜩 힘주어 말아 쥔 주먹을 풀었다. 여포는 일어서자마자 말없이 한 손을 번쩍 치켜들었다. 그러자 이 싸움을 지켜 본 백성들이 만세를 부르짖었다.
“여포 장군, 만세!”
“삭방 현령, 만세!”
이 잔인한 광경을 고스란히 보고서도 백성들이 만세를 부르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이곳은 접경지역이고, 오원군과도 이웃하고 있는 곳이다. 예로부터 이 땅은 이적들의 침입이 빈번했기 때문에 백성들은 항시 자신들을 지켜줄 영웅을 원했다.
하지만 동한 말에 이르러서는 매관매직이 성행하여 삭주의 군현에 부임한 벼슬아치들은 하나같이 재물을 치부하는 데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었다.
백성들의 안위는 살피지 않고 자신들이 머무는 치소에만 높은 성벽을 쌓고, 방비를 든든히 하니 죽어나는 건 백성들 뿐이었다.
장새위들은 하루가 멀다하고 북적과 싸우다 껍데기가 벗겨져 밖에 내걸리기 일쑤. 그나마 있던 군영도 병주 자사 정원이 호관 일대를 평정한다는 구실로 병사들을 죄다 데려가버려 텅텅 비어 있었다.
백성들로서는 이적들로부터 자신을 지켜줄 그 어떤 수단도 없는 상태였다. 그런 이곳에 병주의 무신으로 칭송받는 여포가 부임한 것이다.
게다가 병주 자사 정원의 이름으로 열린 군웅대회 우승자를 묵사발로 만들어 놓는 것을 두 눈으로 보기에 이르렀으니 어찌 환호하지 않을 수 있으랴.
* * *
서황이 묵사발나자 자사부 위병들은 여포가 자신들에게 해코지를 할까 두려워 달아나버렸다.
여포는 서황의 몸뚱이를 들쳐 업고 현부에 들어섰다. 여포는 아무 방이나 쳐들어가서는 서황을 눕히고 돌아섰다. 그러자 가후가 장수들에게 서황을 치료하도록 일러두고는 여포의 곁으로 왔다.
“잘 참으셨습니다.”
가후의 말에 여포는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누워 있는 서황에게 잠깐 눈길을 주었다.
‘조조놈의 휘하에 들기 전이니 내 휘하에 들일까? 조조군을 토벌할 때 이 녀석을 필두에 세운다면 그것 또한 볼만 할 테지.’
시간을 거슬러 돌아오기 전의 역사에선 서황이 조조군의 선봉이 되어 여포군을 토벌했었다. 때문에 여포는 이번엔 반대로 서황으로 하여금 자신의 군대를 이끌게 해서 조조군을 토벌하려는 생각을 한 것이다.
“잘 치료해주도록 해라.”
여포는 장수들에게 재차 일러두고는 그대로 밖으로 나왔다. 너른 마당에 서서 현부를 쓱 쓸어보니 제법 기분이 괜찮아졌다.
‘이 여포가 현령 노릇을 다 해보는구나.’
예전의 생애에선 온현의 땅을 식읍으로 받아 후에 오르며 온후라 불렸던 그였다. 소패성과 하비성의 주인으로 있기도 했다. 하지만 실제로 백성들을 다스린 기억은 없었다.
“여 장군, 어떻습니까?”
가후가 곁에서 묻자 여포는 현부의 첫 인상을 가감 없이 말했다.
“마치 작은 성에 온 듯하오.”
여포의 감상처럼 삭방현의 현부는 흡사 작은 성과 같았다. 성벽을 방불케 하는 높고 두터운 담과 망루는 전임 현령이 얼마나 자신의 안위를 생각했는지를 알 수 있게 했다.
“그렇습니다. 삭방현의 현부는 작은 성이지요. 하지만 이곳에야말로 장군의 기반을 다질 발판이 되어줄 곳이기도 합니다. 군마를 조련하고, 군량을 쌓아 대업을 준비해야겠지요.”
가후가 말을 맺자마자 이번에는 채옹이 나섰다.
“허나 그 전에 해야 할 일이 있소.”
채옹의 말에 가후는 그를 향해 두 손을 모아 들었다.
“선생의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
제아무리 가후가 자신의 머릿속에 가득한 지혜와 책략을 믿는다지만 상대는 채옹이었다. 당대의 명사 앞에서 그는 겸손을 잊지 않았다.
“고견이라 할 것까지는 없소. 다만 기본을 튼튼히 하자는 것이오.”
“기본이라 하심은······.”
“맹자께서 말씀하시길 천하의 근본은 백성이라 하셨소.”
채옹의 말에 가후는 뭔가 생각난 모양인지 무릎을 치고는 여포에게 두 손을 모아 들었다.
“여 장군께 청하오니 현부를 백성들의 은신처로 쓰십시오.”
“선생, 설마 이적들이 장성을 넘어오면 백성들을 이곳으로 대피할 수 있도록 하란 말씀이오?”
“예, 장군. 백개 선생께서 방금 말씀하신대로 백성은 천하의 근본입니다. 또한 장군의 기반을 이루는 가장 중요한 존재들이지요.”
여포는 이제 간신히 글을 읽고 쓸 정도일 뿐 일학무식이었다. 하지만 가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었다.
‘천하 군웅들 중에 오직 유비만이 아무도 거들 떠 보지 않던 백성들을 품에 안았다. 그래서 서주 백성들이 그토록 그를 따랐던 것이겠지.’
유비를 생각하면 화가 끌어오르지만 또 다른 한편으론 그의 대의가 얼마나 큰 것인지를 이제는 알고 있었다. 미래를 안다는 것. 그것은 여포에게 큰 도움으로 다가왔다.
“소장이 백개 선생께 여쭙소. 백성을 천하의 근간으로 여기는 대의보다 더 크고 높은 대의를 제게 주십시오.”
여포가 읍을 하며 묻자 채옹이 몸을 돌려 그와 마주섰다.
“장군께서 몸소 이 늙은 몸을 찾아와 천명을 물은 그 때부터 장군이 얼마나 크고 높은 대의를 원하는지는 짐작하고 있었소.”
여포에게 맞읍을 하며 채옹은 말을 이었다.
“하지만 민본의 대의보다 더 크고 높은 대의를 원할 줄은 몰랐소. 장군의 배포에 이 채 모는 거듭 경의를 표하는 바요.”
”일학무식의 이 여포가 선생께 너무 무리한 청을 한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확실히 어려운 일이외다. 허나 이 채 모가 밥값을 하려면 그 정도는 해야 하지 않겠소?”
“생각하신 바가 있으신지요?”
여포가 묻자 채옹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돌연 손바닥을 펴보였다.
“아직은 생각일 뿐 장군께 내놓기는 어렵소. 이 늙은이에게 청이 하나 있는데 들어주시겠소?”
“말씀만 하십시오.”
“오늘부터 장군께선 이 몸과 함께 밤낮으로 많은 얘기를 나누어주셔야겠소.”
“소장은 일학무식인지라 선생과 말이 통하지 않을 것입니다.”
“걱정할 것 없소. 다만 장군과 다양한 주제를 놓고 얘기를 나누고 싶을 뿐이오.”
가후는 채옹의 의도를 눈치챘다.
‘이제 겨우 설문해자를 익히는 장군과 여러 주제를 놓고 얘기하겠다는 것은 장군이 세상을 보는 시각과 눈높이를 파악하겠다는 의도로군. 백개 선생······. 얼마나 대단한 대의를 내놓을지 기대하겠소.’
가후 역시 나름대로의 대의가 있었다. 만약 채옹이 내놓을 대의가 형편없다면 그는 자신의 대의를 여포에게 내놓을 계산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 * *
여포가 삭방현에 부임한 날부터 여포군의 변신이 시작되었다.
가후는 채옹의 의견을 수용해 현부를 개조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유사시 인근 마을의 백성들이 대피할 수 있는 공간으로 삼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요새화하여 적들과 싸울 준비를 하는 것이기도 했다.
저수는 가후와 상의 끝에 병력을 농사일에 투입하기로 했다. 그는 감군의 역할을 맡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엄청난 장악력을 보이며 군대를 움직였다.
현부에 딸린 농지에서 경작을 시작하고, 병사들 중 삭방현 출신들을 차출하여 여러 마을들을 돌며 백성들의 농사일을 돕도록 했다.
장수들은 나머지 병력들을 이용해 장성을 보수하거나 훈련을 하는 것으로 시간을 보냈다.
여포는 채옹과 침식을 같이 하며 온갖 것들에 대한 갖가지 의견을 나누었다. 이는 채옹이 여포에게 맞는 대의명분을 만들어주기 위한 사전작업의 일환이었다.
오늘은 장성을 보수하는 공사 현장을 돌며 여포와 채옹은 벌써 두 시진 째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저 멀리서 큰 바위덩어리 하나를 몇 사람이서 낑낑대는 모습을 본 여포가 나섰다.
“우웃! 으라차아!!!”
제법 힘 꽤나 쓴다는 자들 몇몇이서도 제대로 들 수 없었던 바위를 여포는 용 한 번 쓰고 덜렁 들어버렸다. 바위를 옮기느라 여포의 옷이 더러워졌다. 그러자 여포는 웃옷을 벗어재끼고 일을 돕기 시작했다.
여포마저 손을 거들고 나섰으나 장료의 불만을 막을 수는 없었다. 그는 큼지막한 돌덩이를 옮기다가 내동댕이치며 호만을 흘겼다.
“너희 흉노놈들 때문에 이게 무슨 짓이냐! 너, 혹시 흉노의 첩자가 아니냐?”
그러자 주위의 장졸들이 일을 멈추고 장료와 호만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바보 같은 소리! 흉노는 간자 따위는 두지 않는다. 너희 한족 놈들의 몸속에는 우리 흉노를 두려워하는 피가 흐르지. 그러지 말고 차라리 남흉노의 선우에게 재물과 여자를 바치고 보호를 청해보는 건 어떠냐?”
호만이 비아냥대자 장료가 발끈했다.
“흉노놈들 다 죽여 버릴 테다!”
“흥! 우습군. 호연 일족은 다른 씨족의 귀족들을 죄다 죽이려 해서 나도 죽이려 하고, 국인들은 한족의 피가 흐른다고 날 죽이려하고, 한족들은 흉노놈이라고 죽인다고 하고······ 어딜 가든 죽이려드니 호한잡종의 운명이란 왜 이리 고달픈가.”
호만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자신의 딱한 처지를 비관했다.
“애비든 애미든 둘 중 하나만 흉노놈이면 자식도 흉노놈 아니냐?”
“누가 그렇게 법이라도 정해주면 좋겠다.”
“그럴 거 뭐 있냐? 흉노놈들을 죄다 죽여 버리면 되는 것을······.”
“말을 그렇게 싹퉁머리 없게 하느냐? 주둥이를 확 꿰매어버릴라!”
“어디 한 번 해보든지! 한 주먹거리도 안 되는 흉노놈이 어디서 엉겨 붙느냐!”
또 둘이 서로 이마를 맞대며 으르렁거렸다. 그러자 여포가 나서서 그들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힘이 남아돌면 돌이라도 더 나르던가!”
여포는 결국 이들에게 들것을 들고 돌무더기를 나르도록 시켰다. 둘이 앙숙이긴 하지만 또 시키는 건 꾸역꾸역 했다. 물론 한 걸음 한 걸음 옮길 때마다 서로를 향해 입심을 자랑했다.
장료와 호만이 아웅다웅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여포의 머릿속에는 동탁의 모습이 떠올랐다.
‘적토마도 탐이 났지만 그보다는 호한잡종이라 멸시받는 우리가 정권을 잡으면 많은 일들을 할 수 있을 거라는 믿었었는데······.’
사예와 삼보 출신들은 변방 출신들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특히나 북삼주(병주, 서량, 유주) 출신들을 멸시했다.
서량은 강(羌), 저(?), 오손(烏孫), 포류(蒲類), 차미(且彌) 등의 호인들이, 병주와 유주에는 흉노(匈奴), 오환(烏桓), 선비(鮮卑) 등의 호인들이 한인들과 뒤섞여 살았다.
그래서 동한이 들어선 후로 중앙 출신들이 서량과 병주 출신자들을 호한잡종이라 멸시했고, 그곳 출신에게는 높은 벼슬을 주지 않으려 했다.
여포 역시 자신을 두고 흉노의 종자라는 말도 안 되는 소문이 돌았다. 그 뿐이 아니었다. 어미가 선비족이라느니 하는 소리와 함께 호한잡종이라는 말이 늘 꼬리표처럼 붙어 다녔다.
‘내가 병주의 주인이 되면 동 태사처럼 군대를 이끌고 낙양을 접수해버리면 될 텐데······. 호한잡종이라 부르며 멸시하던 놈들을 죄다 쓸어버릴 테다.’
동탁에게도 대의는 있었다. 비록 사치와 향락에 빠져 처음 내걸었던 대의가 빛이 바라기는 했어도 나름의 성과 역시 있었다. 환관일파에 농락당한 사인들을 우대하고 명사와 현인들을 조정에 등용했다.
특히나 억울하게 죽은 천하대장군 두무와 태부 진번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제를 올리는 것으로 선비들의 칭송을 얻어냈다. 변방으로 유배되었던 중신들을 대거 사면해 복귀시키기까지 했다.
물론 채옹 역시 그 때가 되어서야 다시 관직에 오를 수 있었다.
뿐만아니라 북삼주 출신에게도 조정 문호를 개방하여 능력에 따라 고위 관직에 오를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만일 동탁이 정권을 잡지 못했다면 어찌 병주 태원 출신인 왕윤이 사도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겠는가. 하지만 동탁이 발탁한 왕윤이 도리어 여포를 움직여 그를 처단했으니 정말이지 모순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를 두고 인생사 새옹지마라 할 밖에······.
‘동 태사의 천하대의! 정말 대단했지.’
여포는 마치 대의를 외치는 동탁의 목소리가 귓가를 맴도는 것만 같았다.
– 나라를 망치는 자들이야 말로 사예와 삼보의 사람들이 아닌가! 소외당했던 변방 사람들이 정권을 잡을 때가 왔다! 지금껏 사예와 삼보 놈들이 누려왔던 부귀와 영화가 이제는 우리에게 있을 것이다!
여포는 동탁의 대의보다도 더 크고 높은 대의를 얻길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동탁의 대의는 수십만의 서량 백성들의 마음을 단숨에 휘어잡을 것이고, 북삼주의 젊은 무장들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들겠지. 하지만 그의 대의는 천하를 품지 못했다!’
채옹은 여포에게 얼마나 크고 높은 천하대의를 줄 것인가. 여포는 채옹에게서 난세를 단숨에 갈라버릴 천하대의를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