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Follicle Exhibition RAW novel - Chapter 574
573화 하동의 신성(新星)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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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조산맥 깊은 곳에 자리 잡은 초라한 집 한 채.
인근에 마을은커녕 길도 제대로 나있지 않은 깊은 산 속. 우두커니 허름한 집 한 채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어울리지 않을 것 같지만 묘한 조화를 보이고 있는 것 또한 사실.
밥 짓는 연기는 올라오지 않았지만 해가 지자 희미한 불빛이 새어나왔다.
관우의 정처, 호금정은 콩이 잔뜩 든 부대자루와 면포 몇 필을 앞에 놓고 두 아들과 마주 앉아 있었다.
관우의 아들들은 장성했다고 하기에도 뭣하고 그렇다고 어리다고 하기에도 애매한 나이. 하나 범부 밑에 견자가 나지 않는다했으니 관우의 두 아들들 또한 풍체가 남달랐다.
호금정은 남편 없이 자식들을 홀로 키우며 고생을 많이 해서 그런지 그 나이에 벌써 회백발이 되어버린 모습이었다.
하기야 관우가 웅호의 가문을 멸절시키고 도망친 후로 호금정과 두 아들은 도망자의 신세를 면치 못했다.
웅 씨와 친분이 있는 호족들이 사병을 일으켜 관우를 쫓았으나 잡지 못했다. 그래서 관우의 집안에 화풀이를 했기 때문이다.
이 일로 인해 관우의 부모는 목숨을 잃었고, 하동의 풍 씨들이 큰 수난을 겪어야만 했다.
다행히 호금정과 두 아들들은 백성들의 도움을 받아 중조산맥까지 도망쳐와 이렇게 숨어살고 있는 것이다.
세상이 바뀌었다고는 하나 관우의 죄가 사라진 것이 아니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리라.
“벌써 이게 몇 번째란 말이냐?”
누군가가 가져다 놓은 콩과 면포는 호금정의 마음을 심란하게 했다. 그러자 관우의 장남 ‘풍평‘이 대답했다.
“세 번째입니다, 어머니.”
“누가 보낸 건지는 모르고?”
“꼭 집이 비었을 때만 놓고 갑니다.”
콩과 면포는 서황의 명으로 고죽 용사가 놓고 간 것이다.
수 삼일마다 몰래 찾아와 이들이 필요할 법한 것들을 두고 갔다. 양곡과 면포는 물론이고 때때로 산짐승을 잡아다 놓고 가기도 했다.
누가 이런 일을 하는가 싶어 지키고 있으면 귀신같이 알고 나타나지 않았다.
하기야 산지에서 최강이라는 연산병도 어린아이처럼 가지고 놀았던 자들이 아닌가. 아직은 애송이에 불과한 풍 씨 형제들에게 기척을 들킬 리 없었다.
풍평은 차분하게 어미의 물음에 대답을 하고 있었지만 동생 풍흥은 그렇지 못했다.
“어머니, 먹으라고 준 양곡을 어찌 먹지 않고 그냥 쌓아만 둔단 말입니까? 콩죽 한 그릇 배불리 먹으면 소원이 없겠네.”
풍흥이 투덜거리듯 말하자 호금정이 호통쳤다.
“잡아다 놓은 노루를 몰래 가져가 먹은 것을 내 모르는 줄 아느냐? 그리고 누가 어떤 의도로 준 것인지도 모르는데 어찌 이 양곡을 우리가 함부로 취하겠느냐? 명심해라! 우리는 거지가 아니다! 네 부친께선······.”
풍흥은 호금정의 말을 끊었다.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사람입니다. 처자식이 이토록 어려운데 대체 가장이라는 사람은 어디서 뭘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싸질러 놓으면 끝인가?”
이에 풍평이 그를 크게 나무랐다.
“아버지가 없었다면 네 어찌 세상 빛을 보았겠느냐?”
“형님, 내가 틀린 말 했소? 아무리 의와 협이 가치 있다지만 혼자서 사람을 천 명도 넘게 죽였소. 그러고 또 우리를 내버리고 혼자 살겠다고 도망쳤소. 우리는 어찌 살라고?”
“이 콩과 면포를 아버지께서 두고 가신 건지도 모른다.”
“말이 되는 소리를 좀 하오. 그리고 이제와 무슨 낯짝으로······.”
밖에서 인기척이 나지 않았다면 두 형제는 어미 앞에서 주먹다짐을 했을 지도 몰랐다.
* * *
두 사내가 중조산을 오르고 있었다.
이들은 서황과 묵태팔. 드디어 관우의 식솔들을 만나러 가는 길이다.
원래는 서황만 혼자 가려고 했다. 하지만 지주산 치수 일을 회피하기 위해 묵태팔도 따라왔다. 돌덩어리며 나무토막을 나르는 것보다는 이 편이 나을 테니까.
서황의 요구에 따라 묵태팔은 대낮임에도 귀면탈을 벗어야만 했다.
“몇 번이나 내 수하를 시켜 양곡과 면포를 가져다 주었다 들었다. 왜 이제야 직접 찾아가 만나는 거지?”
“고죽왕은 한인이 아니니 한인의 예법을 몰라서 그런 말을 하는 거요.”
“선물을 하는 것은 너희나 고죽 사람들이나 다를 바가 없다.”
“좋은 것을 들고 간다고 해서 모두가 다 환영받는 건 아니라오. 게다가 이번 일은 여 장군에게도 중요한 일이지. 실패해선 안 되오.”
묵태팔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서황의 말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는 묻지 않았다. 여포가 뜻을 이루고 나면 고향 고죽부로 돌아갈 생각이었으니 한인의 예법 따위는 깊이 알 필요가 없었다.
이들은 말없이 산길을 걸었다.
산에서는 고석이나 고죽 사람들의 걸음을 따를 수 없는 법. 묵태팔은 자꾸만 뒤처지는 서황을 기다리며 이따금 걸음을 멈추었다.
그렇게 한참을 걸어서야 호금정의 집 앞에 당도한 두 사람. 인기척을 내기 위해 서황은 일부러 헛기침을 했다.
“흠흠! 안에 계시오?”
서황의 목소리가 안에 전해지자마자 풍평과 풍흥이 뛰쳐나왔다.
풍평은 허리춤에 패용한 짧은 비수의 손잡이를 움켜쥐며 적의를 드러냈다. 풍흥 역시 몽둥이를 쥐고 이빨을 드러내 보였다.
하지만 서황이나 묵태팔의 눈에 비친 이들의 모습은 마치 어미를 잃은 새끼 살쾡이들이 하악질을 하는 것처럼 보일 뿐이었다.
그리고 뒤늦게 호금정이 나오며 물었다.
“뉘시오?”
호금정의 말에 묵태팔이 비아냥댔다.
“아무리 청한 적 없는 객이라지만 그간 보낸 양곡과 면포를 생각하면 이런 푸대접은 좀 아니지 않나?”
한어에 많이 익숙해지기는 했어도 아직은 어설픈 말투였다. 그래서 호금정과 두 아들은 묵태팔이 한인이 아님을 즉시 알아차렸다.
“호인(胡人) 따위가 어찌 이곳까지 와서······.”
“어서 썩 물러나지 못할까!”
풍평은 여차하면 칼을 뽑아들 참이었다. 동생 풍흥 역시 몽둥이를 휘둘러 쫓아내겠다는 분위기를 풍겼다.
장남 풍평도 아직 관례조차 치르지 못한 나이였고, 풍흥의 나이는 그보다 더 어리지만 이런 소년들도 호인들에 대한 적개심을 가지고 있었다.
하기야 이곳은 하동. 소금이 좋은 것은 한인들 뿐만이 아니었다. 호인들 역시 소금을 노리기는 매한가지. 하동은 항시 노략질의 목적지가 되었다.
북적들이 장성을 넘어와 병주가 뚫리면 그 다음은 하동이니 병주와 하동의 운명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니 호인들에 대한 적개심은 병주 사람이든 하동 사람이든 마찬가지리라.
실제로 한조의 국정이 성할 때에는 하동의 호족들이 흉노, 오환, 선비, 선령강, 의거 등의 이적들을 토벌하기 위한 전비(戰費)를 자진해서 부담했을 정도였다.
“소협들은 오해하지 마시오. 이분은 고죽왕으로 백이, 숙제의 후손이올시다. 이곳 중조산에서 멀지 않은 곳에 수양산이 있음은 다들 아실 터. 게다가 여포 장군을 돕는 분이시오.”
백이, 숙제의 이름과 함께 여포의 이름까지 들먹였지만 호금정과 두 아들들은 이들을 더욱 경계했다.
“우리를 잡아가려 오셨소?”
호금정은 서황이 관인이라 여기고는 자신들을 잡아들이려 왔다 생각했다. 하기야 연좌제는 진나라 때부터 확실히 자리를 잡았으니 가장의 죄는 곧 식솔들의 죄였다.
관우가 웅호의 일가를 도륙내고 도주했으니 그 처자식이 대신 벌을 받아야 하는 것이 지금의 법이다.
그러자 서황이 열심히 손사래를 쳤다.
“아니오, 아니오! 그런 것이 아니외다. 잡아가다니······. 그 말은 당치도 않소. 의인의 가솔들을 돌볼 수 있다면 이 또한 의로운 일. 소생은 여포 장군의 명을 받고 온 것이오.”
물론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다. 여포는 하내 치수에 열중하고 있었으니 이곳의 일을 알 수가 없었다.
“천녀, 호금정이 대인께 묻겠습니다. 대인께선 대체 뉘십니까?”
“소생은 여포 장군 휘하에서 하동 종사의 직분을 맡고 있는 서황 공명이라고 하외다.”
“우리를 찾아오신 진짜 연유는 무엇입니까?”
“소생 역시 하동 사람이올시다. 부군 되시는 분이 하동 백성들을 위해 의를 행하셨는데 가솔들이 산중에 숨어 궁핍하게 살고 있음을 알고도 어찌 보고만 있으리까?”
호금정은 서황의 말을 어찌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했다.
“나라에서 보면 우리는 죄인의 식솔입니다. 한데 관인이 우리의 행방을 알고도 잡아가지 않는다면 그것은 나라에 죄를 짓는 일이 아닙니까?”
“그 일이라면 걱정 마시오. 그대들은 이제 더 이상 숨어 살 필요가 없소. 아니, 오히려 세상에 당당히 나아가 하동 백성들의 추앙을 받아야 마땅하오.”
호금정은 고개를 기울였다. 이에 서황은 품속에서 두루마리 하나를 꺼내 내밀었다.
* * *
“종사 대인, 그것이 무엇입니까?”
“악행을 일삼으며 하동 백성들을 괴롭혔던 웅호를 죽였다하여 부인의 부군에게 수배령이 내려졌다 들었소. 여포 장군께서 진상을 아시고는 의인의 죄를 사하도록 하셨소. 이것은 사면장이오.”
서황의 말을 듣자마자 풍흥이 달려와 사면장을 낚아채 그 자리에서 풀어보았다.
“어머니, 정말 사면서입니다. 이제 우리도 떳떳이 하늘을 보고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풍흥은 뛸 듯이 기뻐하며 사면장을 어미에게 전했다. 호금정은 사면장을 읽고는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상공, 이제 되었습니다! 이제 되었습니다!”
호금정은 이제 더 이상 도망자로 숨어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보다 관우의 명예회복이 더욱 기뻤다.
그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자 서황이 한 마디 했다.
“이제 산을 내려가십시다. 해현에 기거하실 장원을 준비해두었으니 그곳에 새 터전을 잡으시오. 이 산중에 숨어 살고 있는 풍 씨 자손들 모두를 데려다 줄 것이오.”
그러자 호금정은 장남 풍평에게 물었다.
“평아, 너는 어찌 했으면 좋겠느냐? 그리하면 좋겠느냐?”
“어머니, 그리하시지요.”
“어찌 그리 하자는 게냐? 저들이 네 아비를 꾀어내려 이런 수를 쓰는 것인지도 모른다.”
“저들의 의중이 어떤지는 중요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어차피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을 알아냈고,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강제로 끌고 갈 수 있는데 우리에게 무슨 선택지가 있겠습니까?”
풍평은 지금의 상황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몰래 놓아두고 간 양곡과 면포를 보았을 때부터 이미 운명은 정해진 것인지도 모른다.
도망자들이 숨어 지내는 곳을 들켰을 때 이들에게는 이미 두 가지 선택지 밖에 없었다. 강제로 끌려가느냐, 아니면 제 발로 가느냐 뿐이었다.
이제 그나마도 험한 꼴을 당하기 싫으면 이들을 따라 나서는 게 옳았다.
서황이 호의를 보이고 있으니 다행한 일이 아닌가.
풍흥도 형의 편을 들고 나섰다.
“예, 맞습니다. 차라리 내려가서 집 같은 집에서 좀 편히 삽시다. 아버지는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사람이고 또 이곳에 우리가 있는 것도 모르시잖습니까?”
“어머니, 흥이의 말에도 일리가 있습니다. 아버지께서 돌아오시면 우리를 찾기 쉽도록 해현에 머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게다가 어머니······.”
호금정은 두 눈을 지그시 감고 고개를 끄덕여 풍평의 말을 끊었다. 자신의 병세를 낯선 자들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린 나이에 시집와서 지금껏 모진 풍상을 겪어왔다. 드디어 그녀에게도 호시절이 오는 것이다.
서황은 이들을 재촉했다.
“머지않아 큰 비가 내려 수해가 난다고 했소. 산사태라도 일어나면 이곳은 흔적도 없이 쓸려나갈 터. 어차피 이곳에서는 더는 살지 못하오. 어서 짐을 챙기시오.”
산에 살고 있는 이들에게 서황의 말은 큰 영향을 주지 못했다. 하지만 결국 그를 따라 중조산을 내려가기로 했다.
* * *
하동 해현에 큰 경사가 났다.
의와 협을 행하여 도탄에 빠진 하동 백성들을 구한 관우. 그러니까 풍현의 일을 여포가 다시 헤아려 그의 명예를 회복시켜 주었다.
더불어 화를 피해 달아난 풍가의 자손들을 모두 모아 작은 마을을 이루며 살게 했다.
그 중에서도 풍현의 처자식을 위해 큰 장원을 얻어주었다.
피리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지며 온 고을의 백성들이 모여 있었다. 해현의 백성들은 말할 것도 없고, 염지에서 일하는 염방의 일꾼들도 축하를 하러 모였다.
오늘이 바로 호금정과 두 아들들이 풍가장 입주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백파적과 손을 잡고 여포에게 대항하다 망한 호족들 중 하나의 장원을 다시 손본 장원이기에 백성들이 보기에는 대궐 같았다.
호금정이 장원 안으로 첫발을 내딛기 전에 서황이 백성들 앞에 섰다.
그는 여포의 이름으로 백성들에게 고했다.
“삼공에 준하는 어사대부이시며, 병주와 유주, 하내와 하동을 관장하는 여포 장군의 말씀을 나, 하동 종사 서황이 대신하여 백성들에게 고한다!”
서황의 우렁찬 목소리가 울려퍼지자 백성들의 시선이 그에게로 향했다.
“하동의 호족들 중에 사사로이 소금을 밀매하여 큰 부를 쌓고, 하동의 백성들을 핍박하던 무리가 있었다. 이에 풍 가의 호걸 풍현이 결연히 나서 의를 행하였도다. 나, 여포는 풍현에게 내려진 수배령을 거두고, 그의 협행을 오래도록 기리려 한다.”
이미 소문이 퍼져 해현의 백성들은 모두가 아는 사실. 하지만 굳이 서황은 사면령의 내용을 백성들 앞에서 읊었다.
여포가 여기까지 알 리는 없지만 어쨌든 서황은 여포를 위해 풍 씨 일족을 이용할 계획을 시작하고 있었다.
“풍 씨 일족이야말로 천하와 하동 백성들을 위해 많은 희생을 치른 의로운 가문이다. 이에 나, 여포는 풍 씨 일족에게 장원과 장원에 딸린 농지, 소 열 마리, 콩 일백 석, 면포 일백 필을 하사하고, 하동 종사로 하여금 살피게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논의를 거쳐 풍 씨의 자손들 중 하나를 선발하여 염방을 관리하게 할 것이다.”
서황의 말이 끝나자마자 백성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만세를 불렀다.
“여포 장군, 만세!”
“만세!”
백성들이 여포를 칭송하는 목소리가 하늘을 찔렀다. 그리고 호금정과 두 아들이 장원에 들어설 때 그들을 축복했다.
이는 하동 백성들에게는 좋은 일이었지만 화를 피한 하동의 호족들에게는 결코 곱게 보이지 않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