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Follicle Exhibition RAW novel - Chapter 606
605화 여 장군을 위해 일로정진하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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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포는 배잠의 말에 흥미를 보였다. 이 내용은 미리 들은 바가 없으니까.
“그래? 그거 좋군. 내가 원하는 곳, 원하는 시간에 관서군을 끌어들일 수만 있다면 손쉽게 섬멸할 수 있을 터.”
“그렇습니다. 모든 것은 장군의 뜻대로 될 것입니다.”
“더 자세히 말해 보오. 어떻게 해서 관서군을 끌어들일 수 있단 말이오?”
“관서군의 세작이 분명 하동에서 암약하고 있을 겁니다. 그들의 눈을 속이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하동 호족들을 살려 주셔야 합니다. 그들이 거짓으로 봉기하면······.”
배잠은 말을 하다 말고 하동과 그 주위를 표시해 놓은 지도 앞으로 갔다. 그는 가 씨 가문의 근거지인 양릉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양릉에서 하동 호족들이 거짓 봉기를 하게 되면 관서군은 하동을 북쪽에서 칠 길을 얻게 되었다 여길 겁니다.”
그러자 곽가가 냉큼 지도 앞으로 가서는 말을 보태었다.
“관서군이 하동을 치자면 황하를 건너야 하는데 우리가 나루터를 지키고 있으니 이 길은 무용지물입니다. 그렇다면 양산을 통해 북로를 이용하여 하동의 북쪽으로 치고 들어오는 것이 상책이겠지요.”
곽가가 후선군의 근거지인 양산부터 서하 남쪽을 지나 양릉까지 손가락으로 선을 그으며 말하자 여포는 가후에게로 잠깐 시선을 주었다. 그의 의중을 알고 싶어서였다.
이에 가후는 여포에게 두 손을 모아들었다.
“장군, 곽 선생의 말이 참으로 지당합니다. 하지만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그게 무엇이오?”
“관서군이 하동 호족들의 봉기를 어떻게 이용하려 했을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음······!”
여포는 침음성을 터뜨렸다. 그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말문을 열었다.
“혹시 성동격서의 수법으로 다른 곳을 치려 할 수도 있다는 얘기요?”
“그렇습니다. 관서군의 지존은 황보숭 중랑장입니다. 하동 호족군의 세가 크지 않음을 모를 리 없습니다.”
“그렇겠지. 동한의 삼신장 중 한 사람인 그가 그 정도도 모를 리 없을 테지.”
“그렇다면 애초에 호족군이 하동 북쪽에서 소란을 일으키는 것 정도만을 원했을 지도 모를 일이지요. 어차피 그에게 하동의 호족 따위는 버리는 패에 지나지 않잖습니까?”
여포와 가후의 대화에 배잠이 끼어들었다.
“소신이 한 가지 책략을 더한다면 관서군이 오지 않고는 못 버틸 겁니다.”
배잠이 자신감을 드러내자 가후가 물었다.
“문행 선생은 너무 자신하지 마시오. 황보숭은 그리 호락호락한 인물이 아니오. 휘하의 책사들 또한 마찬가지일 테지. 상대를 과소평가하면 반드시 화가 따르게 되는 것이외다.”
“그렇기에 드리는 말씀입니다. 관서군을 얕잡아 보았다면 결코 내지 않았을 꾀이니 한 번 들어주십시오.”
“좋소. 들어 보리다.”
어디 한 번 해볼 테면 해보라는 듯한 말투였다.
오히려 가후가 배잠을 얕잡아 보고 있었던 모양이다. 배잠은 병법이 아니라 잡가의 학문을 익힌 자였다. 그러니 배잠이 자신을 놀라게 할 군략을 내놓지는 못할 거라 여길 만도 하지 않은가.
하지만 배잠은 가후의 예상을 벗어나는 군략을 내놓았다.
“하동 호족군이 봉기하면 황하 유역을 수비하고 있는 서 종사의 병력을 동원한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겁니다. 중요한 것은 실제로 병력이 줄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계속 해보오.”
“관서군은 가 양도의 일을 아직 알지 못합니다. 이를 십분 활용해야 합니다. 관서군은 분명 움직이기 전에 가 양도에게서 우리 군의 움직임을 확인하려 들 겁니다. 가 양도가 서신을 보내 알려오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을 거라는 얘깁니다.”
배잠은 가구에게 잠깐 시선을 주었다. 그리고는 여포를 향해 두 손을 모아 들었다.
“장군께서 가 양도에게 과오를 씻을 기회를 주십시오. 그가 관서군에 서신 한 통만 써서 보내 준다면 황보숭 중랑장은 반드시 병마를 내보낼 것입니다.”
호족군이 봉기한다면 하동에서 암약하는 관서군의 간자들이 이를 보고할 것이다. 그러면 관서군은 가구를 통해 그 진위를 가리려 들 터.
관서군에 있어 가구의 가치는 바로 이런 것이다. 그는 하동 종사 서황의 휘하에 있으니 여포군의 움직임에 밝기 때문이다.
* * *
여포의 학문이 짧다지만 이렇게 분명한 일을 제대로 판단하지 못할 만큼 어리석은 인사는 아니었다. 게다가 가구와 호족들을 살려두기로 한 이상 그들을 요긴하게 써야만 했다.
여포는 못 이기는 척 호족들에게 말했다.
“죄인 가구가 개심하여 나를 돕겠다 말한다면 지금 이 자리에서 연판장을 불태울 것은 물론이고 이 일을 일체 불문에 붙일 것이오.”
공은 가구에게로 넘어갔다.
호족들은 계산이 빨랐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가구를 배신자 정도로 여기고 있었던 그들이 아닌가. 하지만 지금은 자신들의 목숨을 구명해줄 구원자로 여기며 매달렸다.
“하동 호족들은 대부분 혼연으로 맺어져 있소. 우리 중 몇 사람이나 연판장에 수결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가 공자가 나서지 않는다면 우리 모두는 죽음을 면치 못할 거요.”
“가 공자, 공자의 손에 우리의 목숨이 걸렸소이다.”
“여 장군께 귀부하여 충성을 맹세해주시오. 이 은혜는 결코 잊지 않으리다.”
호족들은 저마다 가구에게 애원했다.
졸지에 배신자에서 구원자로 처지가 역전된 가구는 이 상황에 어리둥절했다. 하지만 이내 여포가 자신에게 기회를 주고 있음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여포는 연판장을 입수하게 된 경위를 밝혀 가구의 탓이 아님을 알렸다.
뿐만 아니라 채찍질을 하기는 했지만 그 상처를 이용해 호족들이 가구에게 측은지심을 가지게 했다.
게다가 이제는 호족들의 목숨이 가구의 말 한 마디에 달렸다. 길지 않은 인생이었지만 가구는 가장 비참해졌다가 가장 존귀해진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여포에 의해 정해졌으니 가구는 더 이상 여포에게 각을 세울 생각을 버렸다.
“너는 답을 할 준비가 되어 있느냐?”
여포가 묻자 가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여포는 슬쩍 턱짓을 했고, 병사들이 가구의 입에 물린 재갈을 풀어 주었다.
“소생 가구 양도는 여 장군께 진심으로 감복했습니다. 몸과 마음을 다해 항복합니다.”
모든 것을 놓아 버린 목소리가 이럴까? 황보숭이 최고라고 여겼던 가구는 여포라는 큰 벽을 만나 좌절했다. 아마도 스스로를 날개 꺾인 새라고 여겼으리라.
“어찌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고?”
“관서의 지존인 황보숭 중랑장도 여 장군의 상대가 되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그는 본좌보다 병마도 많고, 지배하는 땅도 넓다. 그런데 어째서 내 상대가 되지 못한다 하느냐?”
“암중에서 칼을 겨눈 자들에게 다시 한 번 기회를 줄 수 있는 배포를 지닌 자가 여 장군 말고 하늘 아래 또 누가 있겠습니까? 장군께선 사람을 소모품으로 여기는 황보숭 중랑장과는 그 그릇부터가 다른 분입니다.”
창칼을 들고 싸우는 것은 전장에서 결판을 봐야 승패를 알 수 있을 터. 그러나 사람을 중히 여기는 것은 이미 가구의 일만 봐도 황보숭이 여포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할 것이다.
가구는 이를 새삼 깨달았기에 진심을 다해 고개를 조아렸다.
이제 여포가 화답할 차례였다.
“여봐라! 화로를 가져오너라!”
여포는 불을 피운 쇠솥을 가져오게 해서는 연판장을 불길 속에 던져버렸다. 타들어 가는 연판장을 보며 여포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가구가 비록 방향은 잘못 되었으나 끝까지 비밀을 지키려 하는 의리를 보였고, 배잠은 벗과 하동 호족들을 구명하기 위해 고금에 길이 남을 명문을 써가지고 왔소. 두 사람의 노력을 아는데 어찌 그대들을 참할 수 있겠소.”
여포는 연판장이 잘 탈 수 있도록 달궈진 숯불을 쇠집개로 들쑤셨다.
“연판장과 관련한 일체의 일은 불문에 붙일 것이오. 하나 무작정 그대들을 믿겠다는 어리석은 말은 하지 않겠소.”
호족들은 연신 마른침을 삼키며 여포가 더 무슨 말을 할까 촉각을 곤두세웠다.
“이, 여포 봉선. 천자께 태사록에 가문 열전을 추가할 것을 상주할 것이오. 내 휘하의 어사들이 각지의 명가들을 항시 조사하여 고한다면 그 선행과 악행이 모두 태사록에 남게 되겠지.”
역시 ‘태사록’이라는 이름이 가진 무게는 실로 대단했다. 가문의 위세는 명망에서 비롯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동 배 씨의 경우만 해도 그렇다.
재물과 권력을 잃고 빈한한 처지가 되었지만 그 명망으로 인해 다시 한 번 날아오를 기회를 얻게 되지 않았던가.
태사록에 선행이 기록되는 것은 만고의 광영일 것이다. 하지만 그 악행이 기록된다면 씻을 수 없는 치욕이 되는 것이다.
여포가 자신들을 감시해 그 행실을 기록한다고 하니 호족들은 흙 씹은 얼굴이 되었다. 여포가 두려워 당장 반발을 하지는 못해도 탐탁지 않아 하는 기색을 감출 수는 없었으리라.
* * *
호족들을 설득하는 일은 배잠이 나섰다.
“여 장군께서 여러 대인들에게 기회를 주고 계십니다. 기회란 결코 자주 찾아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하동의 호족들이 먼저 솔선수범합시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이 없는 법인데 자손들의 잘못이 모두 태사록에 남는다면 천하 만민이 그 가문을 어찌 보겠소?”
“나야 법 없이도 살 사람이지만 아무리 그래도 태사록에 그 기록을 남기는 것은 좀······.”
배잠은 조금 만만했던지 호족들이 불평불만을 쏟아냈다. 그러나 배잠도 강단이 있는 자였다.
“여 장군이 이 정도로 양보하셨는데도 양보를 더 얻어내려 하신다면 타협은 없습니다. 여 장군의 손짓 한 번에 대인들은 물론이고 삼족이 멸문지화를 면할 수 없음을 잊지 마십시오. 죽고 나면 아무것도 소용이 없는 법입니다.”
그러자 호족들은 다시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이에 배잠은 밀고 당기기를 시작했다.
“옛 과오를 소급해서 적용하겠다는 것도 아니잖습니까? 앞으로 그 행실을 조심하라는 겁니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태사록에 하찮은 일들이 기록 되겠습니까? 게다가 태사록에 오를 만큼의 죄를 지었다면 어디 그 가문이 온전할 수 있겠습니까?”
그제야 호족들은 너도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호족들도 뒷일을 염두해 확답을 받아 내야 할 것이 있었다.
호족들 중 하나가 나서서 물었다.
“호족들은 대부분 혼연으로 묶여 있는 처지올시다. 사돈 가문이 죄를 지으면 그 화가 내게도 미치는 것인데 이것은 어찌 되는 것이오?”
“그 죄에 연관되어 있으면 당연히 화를 피할 수 없습니다. 알고도 모른 척 했다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다면 화를 피할 방도가 없지 않소? 사돈 가문을 내 가문처럼 다스릴 수 없는데 이는 너무 과한 처사가 아니오?”
“사돈이든 벗이든 상대의 죄를 알게 되었다면 먼저 고변하면 되는 겁니다. 그러면 화를 피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나라에 공을 세우는 것이 되겠지요.”
배잠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를 해주자 호족들은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썩 내키는 일은 아니지만 배잠의 말을 논리적으로 반박할 수단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 협상은 애초에 그 승패가 정해진 것이었다. 그럼에도 여포는 확실히 쐐기를 박으려 들었다.
“명심하시오. 내 눈과 귀가 언제나 그대들을 향해 있을 것이오. 그러니 자신 있으면 무슨 짓이든 한 번 해 보시오. 두 번 용서는 없을 것이외다.”
여포의 경고에 호족들은 고개를 숙인 채 아무런 대꾸도 할 수 없었다. 그러자 여포가 일갈했다.
“내 제안을 받아들이겠소, 말겠소?”
이에 호족들은 여포에게 읍했다.
“장군의 명을 따르겠습니다.”
“장군의 명을 따르겠습니다.”
* * *
호족들이 모두 돌아갔지만 가습만은 남아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가구는 여포 앞에 엎드려 절하며 굵은 눈물을 흘렸다.
“여 장군의 은혜가 하해와 같습니다. 소생을 다시 받아 주십시오. 소생은 장군을 위해 일로정진하겠습니다.”
가구가 청하자 가습 역시 노구를 끌고 와 여포 앞에 무릎을 꿇었다.
“본디 손자의 이름을 지을 때 아둔하게 한 길만 고집하다가 세상을 떠난 아비를 본받지 말라고 갈림길을 의미하는 ‘구(衢)’라고 지었습니다.”
가습은 연륜이라는 이름의 지혜로 여포에게 동정심을 구했다. 그리고는 이내 자신이 원하는 바를 얻어 내려 청했다.
“하지만 이제 손자놈이 정신을 차리고 일로정진하겠다고 하니 장군께서 이 아이를 거두시려면 새 이름을 주어 새 사람이 되게 해 주십시오.”
수하가 주인에게 새 이름을 받는다는 것은 그저 이름만 바뀐다는 의미가 아니다. 이름을 주는 것은 생명을 주는 것과 진배없으니 자식을 대하듯 중히 여기겠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가습은 여포에게 있어 손자 가구를 죄인에서 심복으로 올려 세우려 욕심을 부렸다.
가후, 곽가, 배잠 모두 가습의 의도를 알면서도 굳이 여포에게 알리지 않았다. 특히나 가후는 가구가 해주기를 바라고 있는 일이 있었기에 오히려 가습을 내심 응원하는 형편이었다.
“음······! 갑자기 이름을 달라니 난처하구먼. 뭐가 좋을까?”
여포는 가구에게 이름을 주긴 줄 모양인지 나름 고심을 거듭했다. 고심 끝에 나온 이름은 단순했다.
“이제 일로정진하겠다하니 이름을 주겠다. ‘구(衢)’에서 ‘규(逵)’로 그 이름을 바꾸도록 해라. 그리 하겠느냐?”
여포의 말에 가구는 즉답을 피하고 뜻풀이부터 청했다.
“어찌하여 그 같은 이름을 지으셨는지 알고 싶습니다.”
“이제는 갈림길에서 가시밭길 말고 크고 바른 길을 택해 걸으라는 뜻으로 ‘규(逵)’라 지었느니라.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냐?”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이제 소신 가규 양도는 장군의 발을 씻기고, 말부종을 한다고 해도 기쁘게 일하는 종복이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