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Follicle Exhibition RAW novel - Chapter 624
623화 누구에게 항복하오리까?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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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씨군 병사들이 창칼을 들고 한수의 앞을 가로막았다. 한수의 말은 길을 잃고 제 자리를 맴돌며 뜨거운 콧김을 뿜어 댔다.
“마 장군, 진정하고 검을 거두시오!”
한수는 염행을 이런 곳에서 잃을 수는 없었다. 지금은 황보숭 휘하에 있지만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는 법. 훗날 천하를 도모하기 위해서라도 염행 같은 맹장은 반드시 필요했다.
“한 장군, 나를 말리려 할 게 아니라 염 장군을 말려야 하지 않겠소? 좋은 말로 타일러도 물러서질 않으니 부득불 힘을 쓸 수밖에······.”
마등의 말에 한수는 말에서 내렸다. 그는 황급히 걸음을 옮겨 염행의 곁으로 다가갔다.
“네 어쩌자고 마 장군의 군영에서 소란을 피우는 것이냐?”
“주군, 마 씨 놈들이 꾸무적거리며 시간을 끄는 것이 괘씸하여······.”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한수는 그제야 바닥에 쓰러져 미동조차 하지 않고 있는 방덕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에 한수는 다시 염행을 다그쳤다.
“네 녀석이 또 마 씨군 장수를 두들겨 팬 것이냐?”
“정당하게 겨룬 것이니 소장이 잘못한 건 없습니다.”
“그래도 따박따박 말대답이냐!”
“물으시니 답을 한 것인데 그것도 잘못입니까?”
염행은 자신의 잘못을 조금도 인정할 생각이 없었다. 상대가 자신의 주인인 한수라고 해도 이는 마찬가지였다.
한수는 고개를 기울이며 긴 한 숨을 내쉬었다. 그 사이 마등은 수하들을 향해 턱짓을 했다. 방덕이 들것에 실려 장내를 벗어나는 모습을 보자 한수는 마등에게 두 손을 모아들었다.
“마 장군, 이거 염치가 없게 되었소. 어떤 말로 위로를 해야 할지······.”
한수는 염행이 친 사고에 대해 사과의 뜻을 전했다. 하지만 마등은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일부러 염 장군을 보내서 분탕질을 친 건 아니고?”
“에이! 무슨 말을 해도 그리 섭섭하게 하시오? 일부러 보내서 분탕질을 치게 했다니······.”
한수는 억울하다는 듯 손사래를 쳤다. 하지만 마등은 쉽게 의심을 거둘 수 없었다.
“큰놈을 돌려받고 나면 내 두 말 하지 않고 물러나겠다고 약조를 했소이다. 그런데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 이런 일이 일어났으니 내가 어찌 생각해야겠소?”
마등이 따지고 들자 한수는 손바닥을 펴 보이며 그를 진정시키려 했다.
“염행은 야생마 같은 놈이라 어디로 튈지 모른다오. 마 장군도 잘 알고 있는 얘기잖소? 좀 이해를 해주구려. 나도 깝깝해 죽겠소. 이 녀석이 허구한 날 사고를 치고 다니는 통에 내 얼마나 빌러 다녔소?”
한수가 잇따라 아쉬운 소리를 한 후에야 마등은 조금 화를 누그러뜨렸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입은 피해를 얘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 상장 방덕이 피떡이 되었소.”
“방금 실려나간 자가 방 장군이었단 말이오?”
한수는 깜짝 놀랐다. 도저히 그가 방덕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긴 그 몰골이 된 방덕을 알아본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기는 했다.
‘마초에 방덕까지 박살을 내놓았으니 마등이 가만히 있지는 않겠구나. 선수를 쳐야겠다.’
한수는 염행을 벌하지 않으면서 이 상황을 벗어날 궁리를 했다. 염행은 그것도 모르고 잘난 척을 해댔다.
“주군! 소장이 방덕, 그 놈을 열 합도 안 되어 박살을 내놓았습니다. 허락만 해 주시면 마 장군과도 겨뤄 보고 싶습니다.”
“이런 미친······!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느냐? 같은 편끼리 싸울 생각을 하지 말고 적과 싸울 생각을 하란 말이다!”
“마 씨군이 빨리 비켜 줘야 동관의 진장이라는 놈과 한 판 붙어 볼 게 아닙니까? 안 그래도 몸이 근질근질 합니다.”
한수는 질렸다는 듯 고개를 설레설레 가로저었다.
“너는 군영으로 돌아가 자숙하고 있거라. 내 돌아가는 대로 처분을 결정하겠다.”
한수는 염행을 돌려보내고선 마등에게 다시 두 손을 모아들었다.
“마 장군, 사과의 뜻으로 은병은 다시 돌려받지 않으리다.”
“내 상장을 그 꼴로 만들어 놓고 고작 재물 따위로 그냥 넘어갈 수 있을 거라 보시오?”
“왜 이러실까. 내 이리 사정을 하잖소? 내 얼굴을 봐서라도 이 정도로 그냥 넘어가 주시오.”
“내 군영에서 내 장졸들이 보는 앞에서 내 상장이 박살이 났소. 게다가 한 장군의 장수가 나마저 욕보이려 들었소. 무너진 내 자존심이 그까짓 은병으로 위로받을 수 있을까?”
마등이 물러설 기색을 보이지 않자 한수는 장탄성을 터뜨렸다.
“하~! 좋소. 이, 한수가 마 장군이 보는 앞에서 무릎이라도 꿇으리까?”
이건 또 나가도 너무 나갔다.
‘늙은 생강이 맵다더니······. 한수, 이 놈이 너무 크게 지르는구나. 슬슬 양보를 해 줘야겠다.’
마등은 한수가 그래도 염행보다는 얘기하기가 편했다. 그래도 말은 알아먹는 자였기 때문이다.
한수도 마등의 체면을 좀 세워 주고 이번 일을 매듭짓고 싶었다. 황보숭의 귀에까지 들어가서 꾸지람을 듣는 것만은 피해야하기 때문이다.
한수는 정말로 무릎을 꿇을 생각이 없음에도 무릎을 꿇는 시늉을 했다. 그러자 마등은 과장된 몸짓으로 그를 만류했다.
“이러지 마오. 설마하니 내가 한 장군이 무릎을 꿇는 것까지 원하겠소?”
“내 체면을 세워 주었으니 나도 가만히 있을 수 없구려. 은병은 안 돌려받는 걸로 하고, 거기에 준마 열 필을 더 드리리다. 부디 방 장군이 쾌차하기를 바라오.”
“그러십시다.”
* * *
염행이 마등의 군영에서 소란을 피워 방덕이 박살났다는 소식은 동관으로도 전해졌다. 은병을 돌려주러 갔던 풍평이 이를 보고 돌아왔기 때문이다.
“숙부님! 숙부님!”
풍평은 자신이 보고 온 것을 전하기 위해 장비를 찾아 나섰다. 장비는 순욱을 배웅하기 위해 동쪽 문을 나와 있었다.
“멀리 나올 거 없다 하지 않았소?”
“선생, 호위라도 더 데리고 가야 하는 거 아닌지 모르겠소. 저 산중에 도적들이라도 들끓으면 어쩌려고 고작 서너 명만 데려간다 하오?”
“새도 나무를 가려 둥지를 튼다고 했소. 오가는 사람이 있어야 도적질이라도 하지. 저런 산중에는 야인(野人) 말고는 없을 터. 그러니 걱정 말고 돌아가는 길에 복숭아나 따다 가오. 도림의 복숭아는 정말이지 천상의 맛이었소.”
복숭아 얘기에 장비의 표정이 구겨졌다.
“내 앞에선 복숭아 얘기는 꺼내지도 말라 하지 않았소? 틈만 나면 놀리는 거요? 빌어먹을 복숭아! 내 진짜 복숭아만 생각하면 오장육부가 뒤틀리는 것 같소.”
“놀리려는 게 아니라······. 됐소. 내 잘못했소.”
반쯤 말싸움이 되어 버린 이들의 작별인사가 끝날 무렵. 풍평이 동문 밖으로 달려오며 소리쳤다.
“숙부님! 급보입니다, 급보!”
풍평은 부리나케 달려와 장비와 순욱 앞에 섰다.
“급보? 적군이 오고 있느냐?”
장비가 묻자 풍평은 숨이 차서 바로 답은 못하고 손사래만 쳤다.
잠시 숨을 고른 풍평이 적진의 소식을 전했다.
“숙부님, 은병을 돌려주러 마 씨군 군영에 갔는데······.”
“공격을 준비하고 있더냐?”
“그게 아니라 한수군 장수 ‘염행’이라는 자가 와서는 마 씨군 장수 방덕을 때려눕혔습니다.”
풍평의 말을 듣고서 순욱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한수군이 왔다는 말이 사실인가 보구나.’
사실 마 씨군에 한수군이 더해진다고 해도 전황이 달라질 것은 없었다. 마 씨군 본군만 들이닥친다고 해도 막을 수 없으니까.
하지만 순욱은 한수군 장수가 마 씨군 장수를 때려눕혔다는 것에 집중했다.
“풍 공자, 한수는 마등과 함께 황보숭 휘하에 있는 자가 아니오? 그런데 왜 같은 편끼리 주먹다짐을 했단 말이오?”
“거기까지는 알지 못합니다. 대신 한수가 직접 와서야 싸움이 끝났다는 것은 압니다.”
“하긴 우리는 적군이니 은병을 돌려주러 갔다고 해도 자세한 얘기는 들을 수가 없었을 테지. 풍 공자, 정말 수고가 많았소. 포로로 붙잡혀 있었던 적진에 다시 갈 수 있을 정도로 담대한 기백을 가졌으니 운장 형의 장자답소.”
“과찬이십니다. 어떤 일이든 맡겨만 주십시오. 소생, 섶을 짊어지고 불길에 뛰어들라고 해도 주저하지 않을 것입니다.”
장비는 풍평의 등을 토닥였다.
“내 설마 너를 사지로 몰아넣을 리가 있겠느냐? 수고 많았다. 돌아가 쉬어라.”
장비는 풍평을 먼저 돌려보내고는 나름의 책략을 제안했다.
“선생, 이거 잘만 하면 ‘쌍룡쟁주(雙龍爭珠)의 계’를 써 볼 수 있지 않겠소?”
“마등과 한수를 싸우게 하자는 얘기요? 분명 좋은 계책이기는 하나······.”
순욱은 마등과 한수가 무엇을 놓고 싸우게 할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이는 장비 역시 마찬가지였다.
“선생이 무엇을 걱정하는지 나도 알고 있소. 그건 좀 더 알아봅시다.”
“어떻게 말이오? 저들의 군대에 우리의 세작이 있는 것도 아니잖소?”
“세작은 없지만 정보를 얻을 수 있는 통로가 하나 있긴 있소.”
“마초······. 또 분풀이로 두들겨 패 가며 정보를 얻어 내면 안 되오.”
순욱의 말에 장비는 이빨을 드러내 보이며 웃었다.
“포로로 사로잡은 놈인데 좀 때리면 어떻소?”
“그러면 장 장군이 유비, 그 자와 다를 게 무어란 말이오?”
“하필 비교를 해도 그놈과 비교를 한단 말이오? 복숭아부터해서 내게 무슨 억하심정이라도 있소?”
“그게 아니라······. 어쨌든 마초는 내가 상대하겠소. 창칼을 들고 다투는 것은 내가 장 장군만 못해도 좋은 말로 다독이는 것은 내가 낫소.”
* * *
순욱은 술과 고기를 들고 성루 기둥에 묶여 있는 마초에게 갔다. 마초는 입에 재갈이 물려진 채 고개를 축 늘어뜨리고 있었다.
순욱은 미동조차 없는 마초를 깨우기 위해 가져온 술동이의 마개를 열어 그의 코앞으로 가져갔다. 그러자 죽은 듯 늘어져 있던 마초가 코를 벌름거리며 고개를 들었다.
순욱은 손으로 부채질을 해서 주향을 더욱 퍼뜨리자 마초가 노려보았다.
눈빛에 담긴 살기만으로 사람을 상하게 할 수만 있다면 순욱은 이미 죽은 목숨일 터. 마초의 눈빛은 십수 일을 묶여 있던 자의 것이라고는 믿기 힘들만큼 강렬했다.
아마도 마초는 순욱이 자신을 놀리고 있다고 여겼던 모양이다. 하지만 순욱은 그런 일을 즐기는 사람은 아니다. 그는 마초의 입에 물린 재갈을 풀어주며 말했다.
“마 맹기 장군, 소생이 정식으로 인사 올리겠소이다. 소생, 동관의 군사 순욱 문약이라 하오.”
“내게 무슨 볼 일이 있느냐? 날 더 욕보일 생각이라면 애초에 시작을 하지 말거라.”
“오해요, 오해. 소생은 정말로 이 술과 고기를 장군께 대접해드리러 왔소.”
그러자 마초의 한쪽 입꼬리가 호를 그렸다.
“그렇다면 우선 이 줄부터 풀어다오. 손을 쓰지 못하는데 술과 고기를 어찌 먹는단 말이냐?”
“에이! 그건 아니 되오. 그것도 없이 나 같은 범부(凡夫)가 범 같은 장수와 이렇게 마주한 채 대화를 나눌 수 있겠소? 술과 고기는 내가 먹여 드리리다.”
순욱은 손수 마초에게 술을 먹였다. 술동이를 기울여 마초의 입 안으로 술을 따라 넣으며 감칠맛 나는 추임새를 더했다.
“자! 자! 쭉쭉 들이키시오, 쭉쭉!”
한 번에 술 반 동이가 마초의 목구멍으로 빨려 들어갔다. 안주 삼아 닭다리 하나를 찢어 입에 물려주자 마초는 순식간에 뼈를 발라내어 뱉어 냈다.
“하아! 이제 좀 살 것 같구먼! 그래, 내게 이런 대접을 해 주는 저의가 무엇이냐?”
“그 얘기를 하기 전에 우선 마 맹기 장군의 부친께서 오늘 당한 치욕을 알려드리리다.”
“아버지께서는 나 때문에 아직 동관을 공략하지 않고 계시는데 치욕은 무슨 치욕?”
“은병을 돌려주러 동관의 군사들이 화음의 마 씨군 군영에 다녀왔소. 그곳에서 방덕 장군이 염행이라는 자에게 박살나는 모습을 보고 왔소이다.”
순욱이 ‘염행’의 이름을 들먹이는 순간부터 마초는 뽀드득거리며 이빨을 갈았다.
“염행······. 갈아 마셔도 시원치 않을 놈이 감히 내 장수를 두들겨 팼단 말이냐?”
마초의 말에 순욱은 그들 둘 사이에 깊은 원한이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아주 그냥 피떡을 만들어 놓았다 하오. 우리는 적으로 얼굴을 맞댄 사이라 방 장군의 생사는 어찌되었는지 모르오. 하지만 보고 온 병사가 말하기를 그 정도면 십중팔구는 목숨을 보존하지 못할 것 같다고 했소.”
“이런 쳐 죽일······! 그래서? 염행, 그 놈은 어찌 되었느냐?”
“마등 장군에게도 달려들었는데 한수 장군이 와서야 싸움이 끝났다고 하더구려.”
순욱의 말에 마초는 당장이라도 달려가겠다는 듯 몸부림을 쳐댔다. 그 힘이 어찌나 대단하던지 성루가 흔들거릴 정도였다.
“진정하시오! 줄을 풀려 하면 내 부득불 장 장군을 불러 올 수밖에 없소.”
매질에 장사가 없다더니 장비를 불러온다는 말에 마초의 몸부림이 멎었다.
“한수가 염행을 데려갔다더냐? 아버지께서 그 놈을 그냥 가게 했단 말이냐?”
“내게 물어본다 한들 무슨 답을 줄 수 있겠소? 잠깐 보고 온 병사의 말을 듣고 이를 전하는 것뿐이외다.”
“이 줄을 좀 풀어다오. 내 당장이라도 달려가 염행에게 당한 치욕에 아버지와 방덕이 당한 치욕까지 설욕을 하러 가야 한단 말이다!”
순욱은 마초가 정보를 줄줄 흘리자 내심 쾌재를 불렀다. 그는 몇 가지 단서만으로 수수께끼를 푸는 걸 즐기는 사람이었다. 마초의 말을 듣고 보니 대충의 윤곽이 나왔다. 마 씨군과 한수군의 사이가 어떤 사이인지를······.
‘옳거니! 책략이 섰다! 쌍룡쟁주의 계에 이도삼살사(二桃三殺死)의 계책을 더한다면 필시 주효시킬 수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