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Follicle Exhibition RAW novel - Chapter 645
644화 세상이 바뀌면 도리도 바뀌어야 하는 법(世變道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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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포의 말에 양소는 크게 기겁했다. 설마 이런 반응이 나올 거라고는 예상치 못했기 때문이다.
양소는 목숨이 경각에 달리자 알 수 없는 용기가 샘솟았다.
“여 장군! 지금 크게 실수하시는 거요! 왜 굳이 쉬운 길을 놔두고 어려운 길을 가려 하시오?”
“뭣들 하느냐! 어서 이자를 끌어내 목을 치라 하지 않느냐!”
이때, 곽가가 나서서 여포를 만류했다.
“장군, 잠시 진정하시고 소신의 말을 들어주십시오. 지금 이자를 베시면 안됩니다.”
그러자 여포는 거짓말처럼 노기를 가라앉혔다.
“좋소. 군사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는 군주가 되고 싶지는 않구려.”
여포가 말해 보라는 듯 손짓을 하자 곽가는 여포에게 깊이 읍했다.
“먼저 장군의 명을 막은 소신이 죄를 청합니다.”
“우리 사이에 그런 말은 필요치 않으니 어서 본론부터 말해 보오. 어째서 저자를 베지 말라는 거요?”
“첫째, 사자로 온 자를 베는 것은 도리에 어긋납니다. 둘째, 항복을 하려는 자를 베는 것은 도리에 어긋납니다. 셋째, 양추의 귀부를 받아들여 함께 중천을 공격한다면 관서군을 쉽게 도모할 수 있습니다.”
곽가의 말이 끝나자 양소가 기다렸다는 듯 말했다.
“일군의 군사라 그런지 머리를 쓰는 게 다르긴 다르구먼. 소장이 하고 싶은 얘기가 바로 그거였습니다. 여 장군께서는 부디 제 주인의 귀부를 받아들여 대업을 논하십시오.”
하지만 여포는 영 탐탁지 않은 듯한 표정이었다. 여포는 곽가의 말에 반론을 펼쳤다.
“내가 저자를 베라 한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오. 첫째, 관서군의 병력이 많은데 투항하는 것은 사항계를 의심할 수밖에 없소. 둘째, 양추는 황보숭의 장수인데 특별한 이유 없이 배신하려 하고 있소. 한 번 배신한 자는 두 번은 우습지.”
여포는 제법 논지를 갖춰 공세를 펼쳤다. 이에 곽가는 여포의 약점을 공략했다.
“위앙이 상군서에 이르기를······.”
서두를 읊는 것만으로도 여포는 미간을 찌푸렸다. 곽가가 분명 옛 성현의 말을 읊으려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곽가는 개의치 않고 말을 이었다.
“세상이 바뀌면 지켜야 할 도리도 따라 바뀐다 했습니다. 이를 ‘세변도이(世變道異)’라 하지요.”
“그게 지금의 일과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이오?”
“지금은 난세. 어제의 적이 오늘의 벗이 되고, 다시 내일 적으로 만난다고 해도 하등 이상한 것이 없는 시절입니다.”
“주인과 수하 간에는 반드시 지켜야 할 의리가 있소.”
여포는 자신이 이런 얘기를 하게 될 줄 몰랐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수하들이 자신을 배신하지 않기를 바란다는 점이었다.
황보숭을 배신하고 여포의 휘하에 들기를 바란다고 해도 어떤 명분이 있어야만 했다.
하지만 양추는 배신해야만 하는 사정을 말하지 않았다. 그것은 오직 부귀영화를 위해서 황보숭을 배신한다는 말이 된다.
그러니 여포의 입장에서는 양추를 받아들일 수가 없는 것이다.
반대로 곽가는 여포와 입장이 달랐다.
곽가는 가후와 죽이 잘 맞았다. 생각의 방향이 두 사람 모두 실리를 취하는 것을 향해 있으니 의기투합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양추가 귀부하려는 것도 실리를 따지자면 얼마든지 받아들일 수 있었다. 더욱이 곽가의 주장에도 명분이 있었다.
“귀부하는 자를 받아들이는 것이 곧 덕입니다. 덕망 없이 어찌 이 넓은 천하를 손바닥 위에 올려 두려 하십니까?”
“물론 귀부하려는 자를 친다면 앞으로 양추와 같은 무리들이 내게 귀부하려 들지 않겠지. 아아! 하지만 그렇다고 공명을 탐해 의리를 헌신짝처럼 저버리는 자를 받아들일 수도 없는 거 아니오?”
“세상만사가 다 그렇습니다. 수많은 가치들이 서로 충돌하지요. 좋은 것들이라고 해서 반드시 양립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여포는 곽가의 말을 전부 이해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의 땅이 넓어지고 많은 싸움을 거칠수록 이렇게 모순된 두 가지 가치를 두고 하나를 택해야 하는 일이 늘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
여포가 말문을 닫아 버리자 곽가는 여포를 채근했다.
“자, 이제 결정하실 때입니다. 이자를 참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양추의 귀부를 받아들이시겠습니까?”
* * *
“이자를 참하면 어찌 되오?”
여포는 두 가지 선택지의 이해득실을 따져 보기로 했다. 물론 자신의 지모를 스스로가 믿지 못하니 곽가에게 계산을 맡겼다.
“참하시면 장군의 기분이 좋을 겁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하시는 것이니까요. 그리고 불의한 자를 치는 것이니 장군은 의로운 사람으로 여겨지게 될 겁니다.”
“그러면 나쁜 게 없잖소?”
그러자 곽가는 빙그레 미소 지어 보였다.
“없을 리가 있겠습니까?”
“그렇지. 없을 리가 없지. 어디 한번 들어 봅시다.”
여포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곽가를 향해 턱짓했다.
“예, 장군. 장군께서 저자를 지금 참하시면 중천을 쉽게 도모할 좋은 기회를 놓치게 됩니다. 그것은 곧 장군의 수하 장졸들이 더 많이 상할 거라는 걸 의미하는 것이지요.”
“계속해 보오.”
“이제 우리 군도 몸집을 불릴 때가 되었습니다. 지금껏 병력의 우위를 점해 적과 싸운 적이 없었지요. 하지만 전선은 길어졌고, 장군의 땅은 넓어졌습니다.”
여포가 고개를 끄덕이자 곽가는 그가 다른 선택지를 택했을 때에 대한 이해득실을 논했다.
“만약 장군께서 양추의 귀부를 받아들이신다면 생각보다 많은 것을 얻게 되실 겁니다.”
“양추가 선봉이 되어 중천을 칠지도 의심스럽소.”
“당연히 그렇겠지요.”
곽가의 시선이 양소에게로 향했다.
“양 장군이 한 말씀 해 보시오. 여 장군께서 양추 장군의 귀부를 받아들이면 무슨 이득이 있소? 선봉에 설 것이오?”
양소에게 발언권이 넘어오자 그는 기다렸다는 듯 말했다.
“여포 장군께서 제 주인의 귀부를 받아 주신다면 두 가지 이득이 있습니다.”
양소가 엄지와 검지를 펴 보이자 여포도 관심을 보였다.
“두 가지라······.”
“예, 장군. 두 가지나 됩니다. 하나는 중천 군영의 진채와 목책을 쉽게 넘을 수 있습니다.”
“어떻게······?”
“우선 제 주인이신 양추 장군께서는 여 장군의 군세와 맞설 겁니다. 황보숭 중랑장이 내준 노병들이 희생양이 되겠지요.”
곽가의 한쪽 입고리가 호를 그렸다. 그는 미소를 머금으며 말했다.
“거짓으로 패퇴하는 척 중천의 군영으로 들어가겠다 이 얘긴데······. 장군, 그리 나쁘지 않은 듯합니다. 진채와 씨름하며 힘을 뺄 필요가 없겠지요.”
“다른 하나를 마저 들어 보겠다. 말해 보라.”
“여 장군께서 서량을 취하실 때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제 주인은 안정(安定)군의 지존입니다. 여 장군께서 제 주인의 귀부를 받아 주신다면 서량의 14군국 중 하나인 안정군을 거점으로 서량 평정을 행하실 수 있습니다.”
여포는 탐탁지 않았지만 곽가에게 시선을 주었다. 그러자 곽가는 살짝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여포에게 자신의 뜻을 전했다.
“좋다! 양추의 귀부를 받아들이겠다. 너는 지금 이 길로 돌아가 양추에게 전하라. 부절과 대장기를 가지고 직접 와서 머리를 조아리라 이 말이다.”
“소장 양소가 여포 장군의 명을 받듭니다.”
양소는 여포의 마음이 바뀔까 두려워 줄행랑을 놓다시피 돌아갔다.
양소의 모습이 멀어지자 여포는 불만 섞인 어조로 곽가에게 따져 물었다.
“대체 왜 하찮은 자의 귀부를 받아들이라 했소? 양추 같은 자가 없어도 중천을 취하는 것에 무리가 없소. 게다가 서량은 가 선생이 이끄는 정벌군이 출병했으니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 아니오?”
“장군, 소신이 이해득실을 따져 보니 저자를 이대로 살려 보내는 것이 여러모로 이득이 많았습니다.”
“내게 다 말하지 않은 것들이 무엇인지 한번 들어 봅시다.”
“예, 장군. 노병이라 하나 2만의 관서군을 줄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생겼습니다. 저들이 딴 마음을 품었다고 해도 이미 노병 2만은 사라진 후이니 우리로서는 손해 볼 게 없습니다.”
곽가는 치밀하게 이것까지 계산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기야 지금 같은 난세에 누구를 믿겠는가. 게다가 사항계라면 여포군도 동관에서 쓰고 있었다.
“그런 것까지 계산을 해 두고 있었구려.”
“어디 이것뿐이겠습니까?”
곽가는 백우선으로 입을 가렸다. 하지만 눈 주위만 봐도 그가 웃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 * *
양추군은 노병 2만을 앞세워 여포군을 바라보며 진세를 이루기 시작했다.
보통 노병이라 하면 전장에서 잔뼈가 굵은 자들을 말하는 것이겠지만 양추군의 노병은 달랐다. 그들은 대부분 옹주 출신이었다.
지난해에 관서, 특히 옹주는 명충으로 인해 큰 충해를 겪었다.
관서는 관동에 비해 농지가 적었다. 관서의 비옥한 농토는 관중 일대에 모여 있었는데 그곳에서 명충이 극성을 부렸으니 그 피해는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였다.
황충이 중원을 휩쓸고 지나갔을 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었던가. 여포가 그 많은 군량을 구휼미로 풀어서야 간신히 하내와 기주 일부 지역의 백성들을 구휼할 수 있었다.
하지만 관서에는 여포와 같은 자가 없었다. 황보숭은 군대의 규모를 키우기 위해 식량으로 사람들을 유인해 징집했던 것이다.
그들 중에서 이들 노병은 황보숭이 화살받이 정도로 쓸 자들에 불과했다. 그러니 보급을 제대로 해 줄 리 없었고, 그들에게 배당된 군량도 턱없이 부족했다.
“총사, 소장 양소가 돌아왔습니다.”
여포군 군영에서 양소가 살아 돌아왔다. 그러자 양추는 그를 크게 환대했다.
“오냐, 수고가 많았다. 그래, 얘기는 잘되었고?”
“여포군의 젊은 군사가 아니었으면 일이 틀어질 뻔했습니다.”
일단은 잘되었다는 얘기다. 양추는 양소에게 귀부에 관련된 얘기와는 다른 얘기를 꺼냈다.
“여포군 진영을 살펴보니 어떻더냐? 예상대로 다들 정병이더냐?”
“전군은 어중이떠중이만 모아 놓은 오합지졸이었습니다. 저들의 군세 중에 오직 오륙천의 보기(步騎)만이 정병이라 할 수 있을 뿐이었습니다.”
“오륙천? 정병이 그것밖에 안 된단 말이냐?”
양추는 여포에게 귀부하기로 한 자신의 결정이 잘못된 것은 아닌가 돌아보게 되었다.
“그 오륙천이 실로 두려운 자들이었습니다. 특히나 기병들은 가히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장수를 보는 듯했습니다.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닙니다.”
“그래서 보고 오니 귀부하기로 한 내 결정이 잘한 일 같더냐?”
“여포는 탐탁지 않게 여기는 듯했으나 군사라는 자가 다행히도 소장의 편을 들어주어 화를 면했습니다. 여포가 말하기를 총사께서 병부 부절과 대장기를 가지고 직접 찾아와 고개를 조아리라 하더이다.”
“직접······? 여포가 명성은 있으나 세상을 품을 그릇은 아닌가 보구나. 병사들이 보는 앞에서 내게 망신을 주려 하다니 큰 실망이다.”
몸집을 불리려는 군벌들은 많았다. 다른 자였다면 양추의 귀부를 크게 환대하며 형제의 예로 받아들였을 터. 하지만 여포는 양추가 한없이 자신을 낮추기를 바라는 듯했다.
“어쨌든 우리가 먼저 고개를 숙이는 상황이니 어쩔 수 없습니다. 귀부를 하시려면 몸을 낮추시지요.”
양소의 조언에 양추는 마음을 고쳐먹었다.
“어차피 주공은 우리가 시간만 끌어 주면 족하다 생각할 것이다. 한편으로는 귀부 이후의 대우를 놓고 교섭으로 시간을 끌고, 다른 한편으로는 주공께 퇴각할 수 있도록 해 주십사 청을 넣어야겠다.”
양추는 이른바 ‘양다리’를 걸치려는 듯했다. 그는 지금 같은 난세에 남을 온전히 믿을 만큼 순진한 사람이 아니다.
“끝까지 줄다리기를 하실 셈이십니까?”
“못할 것은 무어냐? 양쪽 모두 그럴 듯한 명분으로 다리를 걸쳐 놓았다. 마지막에 유리한 자에게 고개를 숙이면 그뿐이다.”
양추에게 의리 같은 건 없었다. 오직 형국을 보고 유리한 쪽에 붙을 뿐이다.
하지만 양소가 적정을 살피고 돌아와 한 말을 듣고 보니 여포가 마냥 유리한 것은 아니라 판단된 것이다.
아무리 중천에 주력이 빠져나갔다고는 하나 여포가 고작 정병 수천으로 어찌해 볼 상대는 아니라 여기고 있었다.
‘노병을 던져 주고 패퇴하는 척한다면 황보숭도 의심치 않을 터. 그 다음이 문제다.’
양추의 계산은 이랬다.
황보숭이 준 노병 2만을 여포와 싸우게 하면 황보숭은 자신이 여포에게 붙을 것을 걱정하지 않을 것이다. 여포에게도 2만의 관서군을 던져 준 셈이니 나중에 할 말이 있었다.
그렇게 노병들이 여포군과 싸우는 사이 자신은 중천 군영으로 퇴각할 심산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황보숭과 여포의 싸움을 지켜보다가 유리한 쪽에 붙어 싸우겠다는 것이다.
‘사흘만 시간을 끌면 황보숭에게도 할 말이 있다. 그 다음은 내가 원하는 대로 이 싸움의 승패가 결정되리라.’
양추는 자신이 전장의 모든 변수를 손에 쥐고 휘두르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것은 오산이었다.
“여포군도 그다지 서두를 생각이 없는 듯합니다. 저기를 좀 보십시오.”
양소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에는 여포군 병사들이 식사를 준비하는 모습이 보였다. 지금 이 마장 거리를 두고 적군과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여포군 병사들이 태연스럽게 솥을 걸고 불을 지피고 있었다.
이런 모습에 곽가의 귀계가 숨겨져 있을 거라고는 조금도 예상치 못한 양추는 마음을 놓았다.
‘하긴 거듭해서 싸웠으니 병사들이 많이 지쳤을 것이다. 사흘은 어렵지 않게 버틸 수 있겠구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