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Follicle Exhibition RAW novel - Chapter 89
88화 정원, 불의한 자가 되다! (2)
————– 88/753 ————–
병주 최남단, 천정관.
수만의 정병들이 출정을 기다리고 있던 그 때, 정원은 학소와 독대를 하고 있었다.
“이리 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구나.”
“주군, 저를 죽이지 않는다면 동탁의 서량병은 결코 천정관을 얻지 못할 것입니다.”
아직 동탁이 움직이지는 않았으나 정원, 자신이 북부로 원정을 떠난 후에 쳐들어오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었다. 그래서 병력 일부를 이곳 천정관에 남겨 동탁을 대비하려고 했다.
문제는 장수들 중 누구를 이곳 천정관 수비 책임자로 남길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정원에게는 쉽게 답을 낼 수 없는 난제였다.
병주병은 용맹에 있어서는 서량병과 쌍벽을 이룰 정도지만 북대영의 장양을 치기 위해 출병해야만 했다. 정원은 아직 이곳에 얼마의 병력을 남길지를 결정하지 못했지만 확실한 것은 많이는 남겨둘 수가 없다는 점이었다.
“소점을 지키겠느냐? 네가 원한다면 송익에게 이곳을 지키게 하겠다.”
“아닙니다, 주군. 천정관을 지킬 수비전략은 모두 준비되어 있습니다.”
“얼마의 병력을 남기길 원하느냐?”
정원이 묻자 학소는 엄지, 검지, 중지를 차례대로 펴보였다. 그러자 정원은 살짝 인상을 구겼다.
“삼만? 오만 정병 중 삼만을 남기라니······. 대체 무슨······.”
“삼천. 삼천이면 됩니다.”
“삼천?”
정원은 삼만을 남기라고 말하는 것보다 더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학소는 확신에 차있었다.
“삼천이면 족합니다. 삼천 병력으로 천정관을 한 달을 지켜보이겠습니다.”
“자신 있으렷다?”
“십만 대군이 와도 천정관에서라면 막을 수 있습니다.”
“어찌 그리 자신하는 것이냐? 네 그 자신감이 오히려 나를 불안하게 하는구나. 여포를 치러 갈 때도 넌 지금처럼 자신감을 보였지.”
정원이 여포의 이름을 입에 담자 학소의 표정이 구겨졌다. 하지만 언제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학소의 표정이 평소처럼 변했다.
“이번에는 여포가 와도 천정관을 얻지 못할 겁니다.”
“떨쳐냈더냐?”
정원은 그가 여포에게 좌절을 맛보고 한동안 실의에 빠져 있었던 것을 알고 있었다.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니 모든 것이 해결되었습니다.”
“어떤 사실?”
“육전으로는 여포를 상대할 자가 없다는 것 말입니다. 주군께서도 부디 조심하십시오. 저와 학맹 형님은 물론 수백의 철기까지 합심해서 달려들었지만 그자 하나를 당해낼 수 없었습니다.”
학소가 걱정 어린 눈으로 보자 정원은 빙그레 미소 지었다.
“여포, 그 녀석은 너보다 내가 더 잘 안다. 그 녀석의 용맹은 병주에선 당할 자가 없지. 하지만 그것 뿐이다. 하늘은 녀석에게 용맹만 주고 이걸 주지 않았지.”
정원은 손가락으로 자신의 이마를 톡톡 건들었다. 여포가 무식하고 아둔하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리라.
“그래서 저는 이걸 사용하기로 했습니다.”
학소도 자신의 이마를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 그러자 정원의 입고리가 호를 그렸다.
“여포를 힘으로 어쩔 수 없다는 걸 이제 우리 둘 다 알고 있구나. 여포를 치기 전에 먼저 북대영을 칠 것이다. 장양의 도움이 없다면 여포 같은 무식한 놈 따위는 간단한 지략으로도 잡을 수 있지.”
정원은 학소에게 천정관을 맡기며 고작 삼천의 병력만을 남겼다.
* * *
정원의 군세는 수만에 달해 병력의 수에서 오는 자신감 때문인지 움직임을 숨기지 않고 북진을 개시했다.
병주 최남단 천정관에서부터 장양이 있는 북대영까지의 거리는 이천여 리에 달했다. 수만의 군세를 이끌고 북진하며 정원은 자신의 존재감을 병주 전역에 떨쳤다.
그를 두려워해 그가 가는 길목에 자리한 호족과 군벌들은 앞다투어 병력을 보내고, 군량을 보태었다.
정원의 북진이 이어지자 여포는 정원과의 일전을 위해 운중으로 군영을 옮겼다. 장양이 이끄는 북대영의 일만 군사와 연수를 맺어 정원에게 대적하기 위해서였다.
여포는 군영을 순시하고는 자신의 군막에 들어와 잠깐 쉬고 있었다. 그는 간이 침상에 걸터앉아 있다가 품속에 손을 넣었다.
차갑고 딱딱한 촉감이 느껴진다. 여포는 품속에서 조심스레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두 개의 칠채비녀. 화려하기 짝이 없는 영롱한 빛깔을 뽐내는 비녀는 진대가 만들어 준 것이다.
물론 여포가 쓸 것은 아니다. 초선에게 주기 위한 것이나 아직 선물하지 못했다.
여포는 비녀를 만지작거리며 멍하니 생각에 빠졌다.
‘정 자사와의 전쟁이 끝나면······.’
여포는 돌연 고개를 털었다. 싸움을 앞두고 이런 감정들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초선에 대한 애틋한 마음은 잠시 접어둘 필요가 있었다.
그는 다시 비녀를 품속에 넣고는 활과 전통을 들고 군막을 나섰다. 상념을 씻어내는데 활쏘기만 한 것이 또 있으랴.
그의 손에 들린 활은 학소에게서 빼앗은 보요궁이었다. 보요궁은 다시 보기 힘든 좋은 활로 오환의 각궁보다도 낫다할 수 있었다.
여포의 힘을 싣기에는 오환각궁은 너무도 약했다.
과녁을 세워두고 백오십보 물러선 여포는 보요궁의 시위에 화살 하나를 걸었다. 하지만 쏘기도 전에 훼방을 놓는 자가 있었으니, 바로 응조였다.
“장군, 정말 멋진 활입니다.”
응조는 여포에게 비할 바는 아니나 여포의 휘하 장수들 중에서는 궁술로 으뜸이었다. 그는 백오십보 밖에서도 주먹만한 크기의 과녁도 꿰뚫을 궁술을 지니고 있었다.
그의 적은 좀처럼 그에게 다가올 수 없기 때문에 보검이나 창보다는 활에 관심을 가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여포의 손에 들린 보요궁을 보는 응조의 눈빛은 욕망으로 번들거렸다. 좋은 것을 보면 가지고 싶은 것은 인간의 원초적인 본능이었다.
“한번 보겠느냐?”
여포는 거리낌 없이 보요궁을 내밀었다. 그러자 응조의 낯빛이 환해진다.
“그래도 됩니까?”
여포가 살짝 고개를 끄덕이자 응조는 잽싸게 보요궁을 낚아챘다. 활 치고는 과하다 싶을 만큼의 묵직함이 그대로 전해졌다.
“한번 쏴봐도 되겠습니까?”
과녁까지의 거리는 백오십보. 이 정도 거리라면 과녁을 맞추는 일이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여포는 응조의 청을 흥쾌히 허락했다.
여포는 손에 든 화살을 건네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응조는 여포에게서 받아든 화살을 시위에 걸고 당겼다. 아니, 당기려 했다. 하지만 보요궁의 활대는 그리 휘지 않았다.
응조는 얼굴이 시뻘게 져서는 안간힘을 다해 시위를 당겼지만 화살을 제대로 쏠만큼 당기지는 못했다.
결국 응조는 백기를 들었다. 가슴이 찢어질 것만 같은 고통에 항복하며 시위와 화살을 붙잡은 손을 놓아버리고 말았다.
핑!
채 반도 당기지 못했거늘 화살은 시위를 떠나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지고 말았다. 응조는 혀를 내두르며 불평했다.
“도저히 쏠 수가 없습니다. 장군, 이거 정말 사람 쓰라고 만든 활입니까?”
“그럼 짐승이 활을 쏠 수 있더냐?”
“그건 아니지만 사람 힘으로는 도저히 활을 당길 수 없을 것 같아서 그럽니다.”
“그럼 어찌 쓰라고 만들었단 말이냐?”
“배노처럼 발을 걸고 두 손으로 당기면 될 거 같기도 하고······. 아니면 강노처럼 두 사람이······. 오! 세상에······!”
응조는 여포가 가볍게 시위를 당기는 것을 보고 놀랐다.
팽!
화살이 걸리지 않은 시위가 제자리로 돌아가며 파공성을 뿌렸다.
철컥! 철컥!
갑주를 이루는 쇳조각들끼리 맞부딪히는 소리가 쉴 새 없이 들려오자 여포와 응조는 소리가 나는 곳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홍갑을 입은 젊은 사내가 성큼성큼 달려오고 있었다.
여포는 홍갑의 사내가 태사자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가 왜 화난 얼굴로 다가오는지는 알 수 없었다.
태사자는 하내의 군벌, 왕광에게서 일천의 강노수를 받아 이천 리 먼 길을 온 참이었다.
운중으로 군영을 옮겼다는 소식을 받고 이곳으로 바로 온 것인데 강노수를 얻어왔음을 단목영에게 알리러 가는 길에 난데없이 화살이 날아들어 이리 화가난 것이었다.
“태사 장군, 내게 할 말이 있소?”
“원래는 장군과 할 말이 없었으나 이제 할 말이 생겼소. 날 죽일뻔한 화살이 이곳에서 날아왔으니까.”
태사자는 화살을 흔들어보였다. 이곳에 와서 보아하니 여포의 손에는 활이 들려 있고, 전통에 꽂힌 화살과 태사자 자신이 들고 있는 화살은 같은 것이었다.
여포에게 사과를 받으려는 것이리라.
“고작 백오십보 밖의 과녁도 맞추지 못하는 궁술이라면 활을 잡지 않는 편이 좋소. 이건 진심으로 하는 충고요.”
태사자는 자신에게 날아든 화살을 쏜 사람이 여포라고 생각한 듯했다. 하긴 여러 가지 정황들이 여포를 의심스럽게 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건 사실······.”
응조가 자신의 짓이라고 실토를 하려하자 여포는 손을 펴보이며 그의 말을 막았다.
“이 여포의 궁술을 그리 비웃다니······. 태사 장군은 활을 좀 쏘시오?”
“물론이오. 이백보 밖의 과녁을 맞추는 것도 가능한데 한번 보시겠소?”
두 사내의 쓸데없는 자존심 싸움은 급기야 궁술대결로 번졌다.
“이백 보부터 열 보씩 물러서며 한발씩 쏘는 걸로 한번 붙어보겠소? 이 여포의 궁술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려드리리다. 아마 허술한 남부 출신 궁사는 서너발 못 쏘고 두 손을 들 것 같소이다.”
여포가 태사자의 부아를 긁자 태사자 역시 발끈하며 맞불을 놓았다.
“궁술 대결에 내기가 빠져서야 말이 안 되지. 뭐라도 걸어야 재미가 있지 않겠소?”
“그거 썩 좋은 생각이오. 난 이 보요궁을 걸 생각인데······ 어떻소?”
“내가 지면 장군께 삼고두를 하리다.”
천자에게 군신의 예를 갖추는 것을 구고두(이마를 바닥에 아홉 번 찧는 것)라 하고 스승을 새로 모시게 되었을 때 삼고두를 하는 것이 지금의 예법이다.
태사자가 자신이 지면 여포에게 삼고두를 하겠다는 것은 곧 여포를 스승으로 모시겠다는 뜻이었다.
“이거, 태사 장군께 삼고두를 받게 되겠구만.”
“보요궁을 돌려 달라 떼쓰지나 마시오.”
여포는 태사자와 눈싸움을 하며 응조에게 말했다.
“좋은 구경이 있으니 모두들 나오라 하라.”
그러자 태사자도 지지 않고 말했다.
“내 부하들에게도 보여줘야겠소. 그들도 활에 정통한 자들이니 승패를 명확하게 갈라줄 것이외다.”
“얼마든지······.”
결국 여포와 태사자는 수많은 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궁술대결을 시작했다.
원문사극의 고사를 만든 여포와 항우의 현신으로 여겨졌던 소패왕 손책마저도 결전을 치를 때 활을 쓸 수 없도록 거리를 두지 않으려 애썼다는 태사자가 궁술의 우위를 확인하기 위해 사로에 섰다.
거리는 주먹만한 과녁에서부터 이백 보. 여포는 태사자에게 선, 후공을 결정하게 했다.
“선후는 상관치 않으니 태사 장군이 정하시오. 내가 먼저 하리까?”
먼저 쏘는 사람은 쫓기는 기분이 들기 때문에 궁술 대결에선 먼저 쏘는 사람이 불리하다는 것이 궁사 사이에서의 정설이었다. 여포 역시 이를 잘 알고 있으면서도 선공을 자처했다.
태사자로서는 여포가 선공을 취하면 좋은 일이었다. 그는 여포에게 먼저 쏘라는 듯 손짓했다.
여포는 뜸을 들이지도 않고 눈 깜짝할 사이에 활을 쏘았다.
“명중이오!”
과녁 근처에 선 병사 하나가 붉은 깃발을 크게 흔들었다. 그러자 태사자의 차례가 돌아왔다. 그 역시 이백 보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호흡을 가다듬지도 않고 곧장 시위를 당겼다.
“명중이오!”
둘다 명중하였으니 이제 열 보 뒤로 물러서서 다시 궁술을 겨루었다.
그렇게 삼백 보 거리에 섰을 때였다.
이들의 대결을 지켜보던 자들은 입이 떡 벌어졌다. 누가 삼백 보 밖에서 활을 쏴 주먹만한 과녁을 명중시킬 수 있단 말인가.
“이제 그만 삼고두를 받을 때가 되었군.”
여포는 의미심장한 미소와 함께 화살을 쏘아 날렸다. 삼백보의 거리건만 곡사가 아닌 직사로 쏘아낸 화살은 정확하게 과녁의 중심에 틀어박혔다.
태사자는 자신의 차례가 오자 화살을 시위에 걸었다. 하지만 시위를 당기기도 전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여포가 마지막으로 쏜 화살이 박힌 곳을 중심으로 거미줄처럼 금이 가더니 망치로 후려친 듯 과녁이 박살나버리고 말았다.
“이제 쏘고 싶어도 맞출 과녁이 없으니 내가 이긴 것 같은데······ 태사 장군의 생각은 어떻소?”
여포가 능글맞은 미소와 함께 태사자의 속을 긁었다. 그는 미간에 주름을 만들며 등에 지고 있던 단극에 손을 가져갔다.
무인의 자존심이란 한번 꺾이면 좀처럼 다시 세울 수 없는 것이니 여포와 일전을 불사하더라도 삼고두는 하지 않겠다는 마음이리라.
여포는 태사자가 단극으로 손을 가져가자 비웃음을 머금은 채 말했다.
“설마 한 입으로 두 말을 할 생각은 아니겠지?”
서황을 거둔 이후로 한 동안 잠잠했다.
여포는 태사자와 같은 뛰어난 무장을 휘하에 두고 싶었다. 여포의 휘하에는 고순부터 화웅에 이르기까지 용맹한 무장들이 즐비했지만 역시 사람의 욕심이란 끝이 없는 것. 여포는 태사자를 제압해 휘하에 두려는 마음을 먹었다.
하지만 상황은 여포의 뜻대로 되지 않았다.
“여 장군, 그만 두시오.”
“태사 장군, 물러서시오.”
채옹과 단목영이 나타나 이들 사이를 가로막았다. 구경꾼들은 여포의 무예를 견식할 생각에 들떠 있었지만 그들의 등장에 발걸음을 돌리려 했다.
태사자는 궁술대결에서 패배했다는 생각에 씩씩거리며 먼저 자리를 떠버렸다. 하지만 구경 나온 장졸들은 그러지 못했다.
새로운 구경거리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모두들 잠깐 기다리시오. 여 장군도 잠깐 기다리시지요.”
채옹이 두 손을 번쩍 들고 외치자 모두들 자리를 지켰다.
그리고 단목영의 딸, 단목예가 몇몇 사람들을 데리고 나왔다. 그들은 두 사람이 한 조가 되어 뭔가를 조립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그들이 완성한 물건은 노(弩)였다.
하지만 일반적인 노에 비해 그 크기가 배는 됨직해 보였다.
“이게 무엇입니까?”
여포는 공성병기도 아니고, 그렇다고 들고 다닐 수 있는 크기의 수노도 아닌 이 물건을 보며 채옹에게 물었다. 그러자 채옹의 입고리가 호를 그렸다.
“여 장군에게 드리는 선물이외다. 강노라고 들어보셨소?”
“이······ 이것이 바로 그 말로만 듣던 강노?!!!”
여포는 ‘강노’라는 말을 입에 담으며 전율을 금치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