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Follicle Exhibition RAW novel - Chapter 94
93화 지장(智將) 여포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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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포와 적토가 보여준 엄청난 신위 앞에 정원군의 병졸들은 입이 떡 벌어졌다. 하지만 여포가 그대로 호련관을 향해 달려가버리자 병사들 중 몇몇이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소리쳤다.
“여포가 도망간다!”
“우리가 이겼다!”
그 무시무시한 여포가 등을 보였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장졸들은 사기 백배. 호련관 안으로 쏙 들어 가버리자 신이 난 장졸들이 함성을 지르며 여포의 뒤를 쫓아 호련관으로 치달렸다.
정원의 군대는 아무도 없는 호련관을 손쉽게 점거했다. 정원은 자신의 깃발이 망루에 내걸렸지만 호련관을 얻은 것은 조금도 기쁘지 않았다.
그의 관심사는 온통 여포를 향해 있었다.
호련관 너머를 보니 여포가 수백의 병력을 앞세워 북쪽으로 달리는 모습이 보였다.
‘놈의 말이 힘은 좋으나 빨리 달리지는 못하는 모양이군. 저 정도면 따라잡을 수 있을 것이다.’
정원은 적토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했기 때문에 쉽게 따라잡을 수 있겠다 여겼다. 하지만 이는 큰 오산이었다. 여포는 일부러 천천히 달려 정원을 유인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를 따르라! 여포 놈의 수급을 얻겠다!”
정원은 여포가 도망가는 모습에 보고 호탕한 말투로 명을 내리고는 몸소 선봉에 서는 자신감을 보였다.
“전군, 급속 전진하라!”
정원군은 철기를 앞세우고 그 뒤를 따라 수천의 기병, 후미에는 보병들이 뒤따라 길게 늘어져 여포를 뒤쫓기 시작했다.
산지를 지나 평원에 접어들자 기병들이 슬슬 속력을 내기 시작했다. 튼튼한 두 다리를 믿을 수밖에 없는 보병들은 조금씩 후미로 쳐졌다.
시간이 지날수록 기병과 보병들간의 거리는 더욱 더 벌어지게 될 터였다.
높은 산, 절벽 위에서 이 모습을 내려다보는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여포군의 군사 가후였다.
‘허리가 길어지는 것은 진행의 도에 어긋나는 것이지. 이로서 아군의 승리는 더 가까워졌다. 다음 전략에도 차질이 없어야 할 텐데······.’
가후의 곁으로 용치가 다가와 두 손을 모아들었다.
“군사 선생, 척후로부터 보고입니다. 선비병이 후가 인근까지 당도했다합니다.”
후가(侯家)는 이름처럼 권세 있는 자의 집이라는 뜻인데 안문 마읍 일대에는 호족가의 큰 저택이 있는 곳을 후가라 불렀다. 수해나 흉년으로 기아에 허덕일 때 구휼미를 푼 부잣집이 있으면 또 그곳을 ‘진가(?家)’라고 불렀다.
하지만 마읍 일대는 그런 지명이 흔하지 않았다.
병주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풍요로움을 주는 땅이었으나 그 탓에 예부터 북적의 침탈이 잦아 재물이 있는 자는 마읍을 떠나버렸다.
수수 두 되박만 있어도 병주에는 살지 않는다는 말이 이래서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역사를 지닌 마읍에도 ‘후가’나 ‘진가’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곳이 있었으니 바로 장료의 가문인 섭 씨 일족의 저택이었다.
흉노의 보복을 피해 성 씨를 바꾸어 지금은 장 씨로 살고 있으나 섭 씨야 말로 마읍에서 후가와 진가의 이름이 아깝지 않았다.
“장료 장군은 달리 말이 없었소?”
“이미 폐가이니 선생께서 걱정하실 필요 없다했습니다.”
장료의 몇 안 되는 가솔들은 이미 여포가 삭방현령이 되었을 때 장료를 따라 그곳으로 이주했기 때문에 후가에 남은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북적을 물리치기 위해 모든 것을 바쳤던 섭 씨 일족의 저택에 선비병의 발길을 허락하는 것이 장료의 입장에선 썩 달갑지 않을 터였다.
“그럼 됐군. 이제 우리도 슬슬 그곳으로 갑시다. 좋은 구경을 놓쳐서야 되겠소?”
“예, 군사 선생. 제가 모시겠습니다.”
구병들은 여포에게는 말을 편하게 했으나 가후에게는 깍듯이 존대했다. 여포군은 두 가지 절대적인 믿음이 있었는데 그 중 하나는 하늘에 닿은 여포의 용맹이며, 다른 하나는 가후의 신산귀모였다.
가후가 보여준 군략의 대단함은 구병들을 감복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용치를 앞세워 가후는 말을 달렸다. 그가 향하는 방향은 적토의 머리가 향하고 있는 곳과 같았다.
무릇 군사라 함은 대국을 보아야 하기 때문에 전장에는 가까이 다가가지 않는 법이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가후는 여포와의 거리를 좁히고 있었다.
* * *
여포는 적토에 올라 맞바람을 만끽하고 있었다. 적토가 전력을 다해 달리는 것은 아니나 수만 군세가 뒤를 쫓아오고 있다는 생각이 그를 흥분하게 했다.
하지만 지금은 싸울 때가 아니었다. 그는 슬쩍 뒤를 돌아보며 쫓아오는 정원군의 철기들을 보았다. 거리가 좀 멀어졌기 때문일까? 여포는 적토에게 말했다.
“적토야, 네가 너무 빨라 따라오질 못하지 않느냐? 쉬엄쉬엄 가자.”
그러자 적토는 고개를 흔들며 짜증을 냈다. 타고난 질주본능을 억눌러야 하는 지금의 상황이 불만스러웠던 모양이다.
여포는 적토의 목덜미를 두드리며 위로했다.
“조금만 더 있으면 신나게 달릴 일이 있을 게다.”
그 말과 함께 여포는 평지를 벗어나 숲으로 접어들었다.
여포가 숲길로 들어서는 모습을 멀리서 보며 정원의 입고리가 호를 그렸다.
‘네놈의 실수는 이 들판을 포기한 것이다! 믿을 건 돌파력 하나 뿐인 무장 따위가 감히 자신의 이점을 포기하고도 나와 싸워 이기려 하느냐?’
정원은 자신의 승리를 확신했다.
이 근방의 지형은 훤하기 때문이다. 여포가 들어간 숲은 평지나 다름없는 곳이니 낙석이나 나무를 굴려 떨어뜨리는 방법을 쓰기가 힘들었다.
매복이 염려스럽기는 했으나 어떤 싸움이든 총사가 스러지면 사기가 떨어지는 법. 여포가 직접 미끼가 되어 자신을 유인했을 리 없다 생각했다.
얼마쯤 달렸을까? 갑자기 진동하는 기름 냄새에 여포의 표정이 구겨졌다.
‘큰일이다! 이리 냄새가 진동을 하면 화공을 준비하고 있는 걸 들키고 말 텐데······. 이를 어쩐다?’
북방에서 기병들을 상대로 화공을 펼치는 바보 같은 짓을 준비하고 있었던 모양이지만 기름 냄새가 진동하는 통에 그마저도 여의치 않을 듯했다.
이 같은 문제는 가후도 알아차렸다. 여포와 같은 곳을 향해 말을 달리던 가후는 갑자기 밀려드는 기름 냄새에 미간을 찌푸렸다.
‘아직 기름을 뿌릴 때가 아닌데 어째서 기름 냄새가 난단 말이냐?’
기름을 뿌리기로 한 병사가 작전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먼저 부어버렸거나, 기름항아리를 들고 가다가 넘어져 쏟았거나······ 여러 가지 이유를 추측해볼 수는 있으나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군략을 바꿔야 하나?’
가후는 온갖 생각이 다 들었지만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곧 있으면 정원군의 철기를 비롯한 기병들이 이곳에 들이닥칠 텐데 무슨 수로 새로운 군략을 짠단 말인가.
가후의 얼굴이 흑빛으로 물들어갈 때쯤 적토가 돌연 길을 벗어나 숲 속으로 뛰어들었다. 아무래도 본능적으로 기름 냄새를 피해가려 한 것인 듯했다.
“적토야, 이 길이 아니다.”
나뭇가지가 여포의 얼굴과 목덜미를 긁으며 생채기를 냈다. 하지만 여포는 화 한 번 내지 않고 적토를 달랬다.
그런데 마침 화공을 위해 준비해둔 기름 항아리들 몇 개가 쌓여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여포는 마치 낙마를 하는 듯한 아슬아슬한 마상곡예를 선보이며 기름 항아리 하나를 낚아챘다. 그리고는 여태껏 한번도 써먹지 않았던 고삐를 당겨 적토의 머리를 억지로 틀게 했다.
“햐아! 햐!”
여포는 다시 길로 접어들었을 때 무슨 생각인지 길 위에 기름을 있는대로 쏟아 부었다.
‘내게도 지략이 있다!’
일학무식의 여포에게 과연 어떤 지략이 있을지······.
가후는 계속 말을 달려 여포가 다시 길로 접어드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적토가 천하 명마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가후는 여포가 왜 아직까지 이곳에 있는지 의아하게 여겼다.
그것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여포가 돌연 길에 기름을 쏟아붓자 가후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대체 어쩌시려고······!’
가후는 여포가 군략을 완전히 망쳐버렸다고 생각했다. 냄새야 둘째치고 여포가 기름을 쏟아붓는 모습을 정원이 본 것이다.
* * *
선두에서 치달리던 정원은 갑자기 코를 찌르고 들어오는 기름 냄새에 당혹스러웠다. 하지만 이 기분은 오래가지 않았다. 저 멀리 여포가 길바닥에 기름을 쏟아붓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제법 쓸만한 책략이다만은 내가 이렇게 빨리 뒤쫓아 올 줄은 몰랐겠지. 봉선아, 네놈이 나, 정 건양을 그저 뒷방 늙은이로 보았던 것이 실착이다.’
정원은 여포군의 책략을 간파했다 판단하고 득의에 찬 미소를 지었다.
“주공, 화공입니다! 기름 냄새가 납니다!”
정원을 뒤따라 달리던 부장 하나가 기름 냄새를 맡자마자 놀라 소리쳤다. 하지만 선봉에서 달리던 정원은 여포가 길에 기름을 쏟아붓는 모습을 두 눈으로 보지 않았던가.
“놀라지 마라! 여포가 우리의 진군을 늦추려 화공을 위장해 기름을 뿌린 것이다! 내 눈으로 직접 보았으니 나를 믿고 따르라!”
여포가 백전 연마의 효장이라면 정원은 인생, 그 자체가 전쟁이었다. 병주 군소 군벌의 적자로 태어나 지금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전장을 겪었던가.
자제병들이 여포에게 도륙나는 바람에 정원의 명령이 제대로 먹히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여포를 향한 극도의 공포심 때문이지 정원의 판단을 믿지 못해서가 아니었다.
하지만 여포가 등을 보이고 도망치는 지금, 정원의 말은 예전의 권위를 되찾았다.
기름 냄새가 진동을 하는데도 기병들은 계속해서 정원을 따라 달리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여포는 정원군이 계속해서 쫓아오자 내심 쾌재를 불렀다.
‘내 지략이 먹히다니······! 일학무식의 내 지략에 당하다니······ 노인네도 이제 운이 다했나보오.’
여포를 태운 적토마가 어느 지점을 지나가자 돌연 여포군 병사 몇몇이 나와 길에 거마창을 세웠다. 거마창은 기병의 전진을 막기 위해 여러 자루의 창을 엮어 비스듬히 세운 것으로 목책과 모양이나 용도가 비슷했다.
숲길이 평원처럼 넓게 산개해서 달릴 만큼 넓지 않다고는 하나 거마창 몇 개로 수백의 철기를 앞세운 정원군의 수천 기병을 막기에는 부족해보였다.
정원은 멀리 거마창이 길을 가로막고 있는 걸 보자 슬쩍 뒤로 물러났다. 수백의 철기가 있으니 굳이 이런 일에 자신이 나설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의도야 어찌되었든 정원의 선택은 탁월했다.
* * *
저수는 총 지휘를 맡았지만 그의 활약은 여포가 정원을 유인해 약속된 곳까지 끌고 온 후에야 시작되었다.
여포를 태운 적토마가 지나가자 저수는 수신호를 보내 병사들을 부렸다. 준비해둔 거마창을 세워 길을 가로막게 하고 정원군이 몰려오는 모습을 보며 저수는 칼을 뽑아들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정원군의 철기가 삼십 보 앞까지 왔을 때쯤 저수가 칼을 높이 치켜들었다 크게 휘두르며 소리쳤다.
“발사하라!”
저수의 명이 떨어지자 숲 덤불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강노수들이 일제히 철전을 쏘아냈다. 강노에 철전이 더해지자 믿을 수 없는 파괴력을 보였다.
투두두두!
길목 좌우로 늘어선 강노들이 교차사격으로 철기를 말 그대로 ‘쓸어’버렸다. 철전의 위력이야 수노로도 철갑을 꿰뚫을 수 있을 정도지만 강노가 쏘아낸 철전의 관통력은 가히 상상을 불허했다.
철전은 마갑까지 씌운 중갑의 기병, 즉 ‘철기’를 말과 함께 꿰뚫고 더 날아가 다음 궤도상에 있는 다른 철기마저 꿰뚫는 괴력을 보였다.
강노를 다루기 위해서는 일단 최소 두 명이 한 조가 되었는데 여포 휘하에 일천의 강노수가 있으니 강노는 오백 여 개가 있는 셈이었다.
오백 여 개의 강노가 일제히 철전을 쐈으니 남아난 철기가 과연 몇이나 되겠는가. 원래의 역사대로라면 원소에게 넘어 가서 공손찬이 자랑하는 백마의종을 박살내버렸을 터였다.
하지만 지금은 여포에게 넘어가 정원의 철기를 괴멸시키고 말았다.
“돌파하라!”
이 상황에서도 정원은 침착하게 돌파 명령을 내렸다. 노(弩)의 특성상 재장전에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공격하는 것이 정석이었다.
하지만 정원도 노에 관한 지식이 별로 없었다.
병주 땅에서 싸움이 난다면 십중팔구는 북적을 상대로 한 싸움일 것이고, 나머지 일이도 도적의 무리에 불과했으니 노(弩)병과 싸울 일이 있었을 리 없었다.
당연히 강노를 보는 것도 처음이었다. 강노에 대해 조금이라도 지식이 있었더라면 철기가 괴멸당한 후 곧장 퇴각명령을 내렸을 것이다.
강노는 그 파괴력만큼이나 반동이 세기 때문에 자리에 고정해야 하기 때문에 이동해서 다시 발사를 하는 것은 포기해야 하는 병기였다.
정원의 잘못된 판단으로 기병의 돌파가 이어졌다.
“궁수들은 활을 쏴라!”
저수의 명이 떨어지자 평범한 활을 든 수백의 궁병들이 활을 쏘며 기병들의 발목을 잡았다. 그 사이 강노수는 다시 철전을 쏘기 위해 재장전에 여념이 없었다.
여포군의 강노수는 숙련병이다.
활처럼 연사를 할 수는 없었으나 그들의 재장전 속도는 무척 빨랐다. 숙련병이 아니라면 돌진하고 있는 기병들을 보는 순간 혼비백산하여 도망칠 터였다.
하지만 여포군의 강노수들은 동요 없이 재장전을 마쳤다.
두 사람이 동시에 지렛대를 돌려 시위를 당긴 후에 한 사람은 화살을 장전하고, 나머지 한 사람은 목표물을 겨눠 사격하는 순서였다.
“준비된 노수부터 발사하라!”
저수는 대충 재장전이 끝났음을 보고 다시 한 번 사격 명령을 내렸다.
빗발치는 철전에 정원군의 기병들은 마치 실신하듯 픽픽 고꾸라지고 말았다.
“퇴각하라! 퇴각하라!”
정원은 왔던 길을 미친 듯이 말을 몰며 퇴각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정원의 목소리를 들은 기병들이 말머리를 돌려 도망치며 일대 혼란이 벌어졌다. 숲길은 폭이 그다지 넓지 않기 때문에 수천의 기병들이 뒤엉켜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강노와 활 공격에 정원군의 기병은 삼할을 잃고 말았다. 하지만 아직 기병만 해도 칠할이 건재하고 보병들은 아직 이곳에 도착하지도 않았으니 정원은 퇴각하여 재정비한 후 다시 싸울 생각이었다.
그러나 가후와 저수가 머리를 맞대 만든 책략은 그리 허술한 것이 아니었다.
숲의 초입에서 불길이 시작되며 매캐한 연기가 피어올랐다. 여포가 애써 감추려했던 화공이 시작된 것이다. 기름을 뿌려 키운 불이라 순식간에 크게 불길이 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