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Peace Biography RAW novel - Chapter 218
0222 / 0284 ———————————————-
23.
남양을 점령한 연합군은 더 나아가지 않고 머물렀다. 장안에 나가 있던 서서의 병력도 우선은 남양으로 소환했다. 조조의 상장 하후연과 오환의 답돈이 맞선 전장은 교착상태에 빠져 있었다. 유주 전역에 휘몰아친 북적(北狄)의 말발굽은 예상보다도 거칠고 억셌다. 게다가 유비는 여전히 패전의 후유증에 허덕이고 있었다. 그 틈을 타 원소는 저수에게 병력을 맡겨 우선 낙양을 점령하고 그곳에 주둔하게 했다. 또한 곽원에게는 기병 오천을 맡겨 홍농을 지나 장안의 장합을 돕도록 했다. 조조와 유비가 진창에 빠져있는 동안 원소는 삼보(三輔, 좌풍익·우부풍·경조윤을 한데 일컫는 말로, 후한의 수도권을 뜻한다)를 장악하고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다. 원소는 장합을 장안태수에, 곽원을 홍농태수에, 저수를 낙양태수에 임명하고 굳건한 방비를 주문했다.
가후는 남양에 주환과 이만의 병력을 남겨두고 합비로 철수했다. 장안으로 진군하는 것은 외통수에 몰릴 염려가 있었다. 방비가 두터워 얻기도 쉽지 않거니와 얻는다 한들 마등과 원소 사이에 끼어 협공을 당하기 십상일 터였다. 더군다나 장안을 점령해도 합비공의 손바닥 위가 아니라 천자의 손바닥 위에 떨어지는 꼴이니 가후로서는 위험을 감수할 까닭이 없었다. 그것에 더해 마등에게 간 장제와 장수가 동맹을 뒤흔들 만한 시간을 충분히 제공해야만 했다. 대군이 소모하는 병량이 적지 않은지라, 가후는 즉각 철수를 결정하고 합비로 물러났다. 이로써 장제의 세력은 공식적으로 와해되었고, 천자의 직할령은 송경, 강하군, 여남 서부, 남양군으로 확장되었다.
한중으로 퇴각한 장제는 마등으로부터 환대를 받았다. 장제 하나의 가치야 하잘 것 없는 늙은 사내의 몸뚱이일 따름이었지만, 그의 패잔병이 제법 짭짤한 숫자였고 더 중요한 것은 원소의 야심을 또렷이 확인하는 동시에 장안을 원소의 품에서 빼앗을 명분을 제공해주었다는 점이었다.
마등은 장제를 객관의 경치 좋은 방에 모시고 조석으로 진수성찬에 계집을 딸려 대접했다. 호강에 젖어 허튼 야심일랑 품지 말라는 뜻이었다.
“제 가문의 명성에 똥칠을 하는 놈이로세. 간악하기 짝이 없군.”
마등의 툴툴거림을 천만이 받았다.
“이것으로 익주의 유장과 병주의 원소 모두 신뢰할 만한 자들이 아닌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이거야 원……!”
마등은 원소와 유장, 그리고 합비공 사이에 완벽하게 끼어버린 신세가 되었다. 불안감에 탁자를 손가락으로 톡톡 건드리는데, 시종이 안으로 들어 아뢨다.
“량왕 전하! 남양왕의 질자인 장수가 병력 육천을 이끌고 찾아왔습니다!”
마등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뭐야? 장수까지 이곳으로 왔단 말인가……”
마등은 장수를 접견했다. 산 넘고 물 건너 온 장수의 꼴은 일군의 수장이라기보다는 거지 왕초에 근사했다. 마등은 그를 잘 씻기고 잘 먹인 후에, 좋은 옷으로 갈아입히고 마주앉았다.
“얼마나 고생이 많았소.”
마등은 장수의 손을 마주잡았다. 장수는 송구하여 고개를 푹 숙였다.
“량왕 전하께서 이렇듯 남양왕 전하와 소인을 환대해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환란에 빠진 그대를 원소의 병마가 돕기는커녕 도리어 그대의 기반을 빼앗았다고 들었소. 참으로 끔찍한 작자가 아니겠소?”
장수는 마등을 속으로 비난했다. 원소보다 추악하지는 않아도 네놈은 제갈찬의 병마가 두려워 한중에 웅크린 채 쌀알만 몇 톨 던져주고 말지 않았느냐? 그 치졸한 입으로 누구를 욕한단 말인가. 장수는 속의 생각이 겉으로 나오지 않도록 잘 단속한 뒤,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원소의 끔찍한 것이 하나 더 있습니다.”
“하나 더 있다니?”
“원소가 제갈찬과 비밀동맹을 맺고 있습니다.”
마등은 전율을 느꼈다.
“비밀동맹이라니!”
“원소의 밀사가 완성으로 향해 가후와 접촉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마등은 주먹으로 탁자를 쾅쾅 내리쳤다.
“이런 쳐 죽일!”
장수의 전언에 천만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이렇게 되면 우리가 제갈찬을 둘러싼 게 아니라 유장, 원소, 제갈찬에 우리가 둘러싸이게 된 꼴이 아닙니까?”
“음!”
마등의 속이 뒤틀렸다. 원소와 제갈찬이 뒤로 수작을 부리고 있는데, 유장이라고 그러지 않으리란 법이 없었다. 한중은 남으로는 익주, 동으로는 형주, 북으로는 장안을 맞대고 있어 만일 이 세 세력이 작정하고 달려든다면 이겨낼 길이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한중을 버리고 서량으로 되돌아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반란을 획책했던 이감, 양추, 정은, 양흥의 땅과 병력 일부를 빼앗은 한수가 서량의 힘만 따지자면 마등을 상회하게 되었다. 그러면 관중제장의 우두머리 자리를 한수에게 넘겨주는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한중은 죽어도 안고 죽어야 하는 땅이었다.
구더기들이 곰실거리듯 마등의 속이 근질거렸다.
나는 합비로 개선하는 좌자, 가후, 황충을 맞이했다. 가장 약체이기는 하지만 오왕동맹의 일각을 분쇄한 것은 퍽 혁혁한 공이었다. 장안이 원소의 손에 들어간 것은 굉장히 불편한 일이기는 했지만.
“병주의 전풍도 책략이 비상한 자라…… 하내와 장안 사이에는 낙양과 홍농이 있는데 그것을 곧장 건너뛰어 장안으로 직행할 줄은 몰랐습니다.”
가후의 말도 무리는 아니었다. 전풍의 머리에서 기안된 것으로 보이는 장안 점령 작전은 기발하기도 하거니와 여간 배짱으로는 해내지 못할 일이었다. 또한 충분한 기동력이 담보되지 않으면 허물어지기 쉬운 책략이니, 이를 수행한 장합의 재주도 높이 평가할 만했다.
장제와 장수를 살려 보내 마등으로 하여금 제 동맹을 믿지 못하게 만든 가후의 책략이야말로 최고의 수확이었다. 유복이 제 목숨을 던져 서량의 후방을 어수선하게 만들고, 가후가 원소와 마등 사이에 불화의 씨앗을 심고, 유엽이 사섭을 이쪽으로 끌어들여 유장의 뒤통수를 간지럽게 만드니 기실 이제 오왕동맹이란 것이 껍데기라도 온전히 남을까 하는 의문이 생길 정도였다.
“우선은 우리도 은인자중하는 편이 좋겠군요.”
나의 말에 좨주 량이가 답했다.
“맞습니다. 만일 우리가 유장, 원소, 마등 중 한 곳을 선제한다면 그들은 서로 믿지 못하면서도 우리에 대항하기 위해 힘을 합칠 것입니다.”
가후는 내 말에 동의하면서 덧붙였다.
“서쪽이 안정될 동안 임시로 본거를 옮기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본거를 옮기라?”
가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유비는 세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원소 또한 유비와 합세하지 못하는 동안 단독으로 영천을 향해 출병하지 못할 것입니다. 허면 그 사이에 마등, 유장을 정리하는 것이 옳습니다.”
나는 침묵을 지키며 가후가 충분한 설명을 하도록 했다.
“합비는 지나치게 동쪽에 있어 서쪽의 환란에 신속하게 대처하지 못합니다. 비록 노형주께서 그 일대를 맡고 계시다지만 합비공의 재가 없이는 권한의 범위가 아무래도 한정적입니다.”
“노숙은 신중한 성품이니 아무래도 그렇겠지.”
“유비가 세력을 회복하면 동서로 골치가 아파집니다. 유비가 뻗어있는 사이에 서쪽을 정리하셔야지요.”
“일리가 있소. 허면 어디가 서쪽의 거점으로 옳겠소?”
가후는 지체 없이 대답했다.
“양양 만한 곳이 없습니다.”
“내가 합비에 없는 동안 누구에게 합비를 맡기면 좋겠소?”
나는 그렇게 묻고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의후(유복)가 살아있었다면 이런 고민은 안 했을 텐데……”
가후는 표정의 변화 없이 대답했다.
“합비의 북쪽에는 이미 쟁쟁한 군단장들이 포진하고 있습니다. 영천의 진등 공, 여남의 고순 공, 말릉의 장패 공, 오군의 오군공(제갈근). 때문에 합비 중앙에서는 이들의 군략을 조정하기만 하면 됩니다. 대신에 이들이 충분히 순응할 정도의 무게감이 있어야 하겠지요.”
가후는 여기까지만 대답하고 말을 멈추었다. 최종적인 결단은 나더러 내리란 소리였다. 나는 잠깐의 고민 끝에 대답했다.
“양주자사 염상에게 사지절을 내리고 자사부를 합비로 옮기도록 하겠다. 또한 북부교위 왕수로 하여금 합비태수를 겸하게 하여 염상과 협조하도록 하겠다.”
가후는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흠 잡을 곳 없는 인사이십니다.”
염상은 지금까지 내정에만 주력할 뿐, 대국적인 전략에는 의견을 내놓지 않았다. 그야말로 관리형 인사였다. 염상은 남들을 압도하는 뛰어난 재략은 없었지만, 내 선대인 구강공 원술을 보좌하던 원로였다. 원술을 따르던 신하들 중 대개는 원요와 원윤의 난리 때 숙청되었거나, 장훈과 교유처럼 모든 권한을 빼앗기고 하야한 터라 원술을 정통으로 삼는다면 염상 이상 가는 고참은 없었다. 그의 성품 또한 인자하고 너그러우니, 북쪽의 군단장들이 불만을 품을 까닭이 없었다. 또한 왕수는 내가 청주에 있을 적부터 인연을 맺은 인물로서 나를 정통으로 삼는다면 노구, 영자 등 무장들을 제외하고는 가장 오래 임관한 인물이었다. 또한 그들은 여포처럼 사사로운 부곡을 거느리지 않았으니, 만에 하나라도 모반을 염려할 까닭이 없었다. 염상과 왕수에게 동부의 조율을 맡긴다면 나도 안심할 수 있었다.
염상에게 사지절을 맡기고 왕수를 합비태수로 삼은 후에, 나는 서쪽의 양양을 임시 기반으로 삼아 옮겨갔다.
“어디 한번 안아보자!”
나는 떠나기 전에 내 딸 온을 높이 들어올렸다. 온은 그것이 즐거운지 까르르 웃었다.
“오호라, 이 녀석, 제법 무게가 나가는구나.”
내가 활짝 웃자 교도 손으로 입을 가리며 웃었다.
“먹성이 부쩍 좋아져서 나날이 살이 찌는 거 있죠.”
“내가 돌아올 때까지 두 배로 무겁게 만들어놔야 하오.”
“어머, 그러면 사내한테 인기가 없어요.”
“걱정 마시오. 합비공의 힘으로 천하 제일의 미남자를 배필로 삼아버릴 테니까.”
농담으로 던진 말에 교가 뾰로통한 표정을 지었다.
“그건 정말 여자 마음은 요만큼도 모르는 말씀이시네요. 그러면 온의 인생이 행복하겠어요?”
“아휴, 농담이오, 농담.”
내가 받아치자 어느새 다가온 시영이 내 야코를 죽였다.
“어찌 천하의 으뜸가는 제후가 되셔서 그런 가벼운 언사를 즐기십니까?”
나는 입을 쭉 내밀고 툴툴거렸다.
“천하의 으뜸가는 제후라면 내자(內子)들부터 그 만한 대우를 해주시구려.”
시영은 입을 가리며 태연하게 눈동자를 동그랗게 떴다.
“어머, 모르셨어요? 으뜸가는 제후보다 지체 높은 게 제후의 정실부인들인데요?”
교가 시영의 말을 받았다.
“이 나라의 권력서열은 일위가 원 부인, 이위가 교 부인, 삼위가 합비공이라던데요?”
나는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한숨을 쉬었다.
“말을 말아야지.”
시영은 끝까지 지지 않았다.
“네, 마세요.”
나는 사소한 복수심으로 시영에게 대거리했다.
“교는 온의 양육을 위해 합비에 남고, 부인은 나와 함께 양양에 가주셔야겠소!”
“누가 싫다고 할까봐요? 합비공만 낮에 피곤하고 밤에도 피곤하실 뿐이지요.”
완전히 질려버려서 나는 손을 마구 내저었다.
“대낮부터 말씀을, 거참!”
시영은 내 말에 대꾸도 하지 않고 딴청만 피웠다.
양양으로 떠나기 전에 태위부에 들러 여포를 접견했다. 여포는 지난 출정 이후 내내 가벼운 감기 기운에 시달려 정청에도 잘 나서지 않았다.
“용태는 좀 어떠십니까?”
내가 묻자 여포는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냥 그렇습니다. 꼴 사납게 되었습니다.”
그는 주먹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쥐었다 폈다 했다.
“장비, 그 자식의 대가리가 얼마나 돌처럼 단단한지, 아직까지 얼얼하지 뭡니까.”
다시 시선을 나에게 향하며, 그는 씩 웃었다.
“나도 슬슬 은퇴할 나이가 되었나.”
“별 말씀을, 아직 하실 일이 많으십니다.”
“나라가 커질수록 일개 무부보다는 천리를 내다보는 문사가 더 긴요한 법이지. 이제 나쯤은 없어도 좋습니다.”
나는 손을 저으며 그 의견을 적극 반박했다.
“그럴 리가요. 전장에서 태위만큼의 웅력을 발휘하는 이가 대체 누가 있습니까? 제갈량이나 가후가 먹물을 잔뜩 먹어 수염이 검다지만 태위께 당하겠습니까?”
그는 흐흐 웃었다.
“실컷 공훈을 세우고 돌아온 가후가 들으면 섭섭할 말이로구먼.”
“그래도 어쩔 수 없죠. 사실이니까.”
“공치사는 그쯤 해두고. 양양으로 떠나신다 들었습니다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백각이 진언하여 임시로 서쪽을 거점으로 삼기로 했습니다.”
“음, 허면 이 몸도 동행하게 해주십시오.”
여포의 마음을 짐작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었다. 태위가 합비에 떡하니 버티고 있으면 아무래도 염상과 왕수의 빛이 다소간 흐려지니까. 그러나 용태가 그다지 좋지 않은 그를 무리시키고 싶지는 않았다. 내가 한번 만류했지만 여포는 한사코 양양행을 고집했다.
“그러시면 말에는 오르지 마시고 가마로 가십시오.”
“알겠습니다. 또한 이번 전쟁에 나의 부곡 오천을 이끌고 가도록 하지요.”
“태위께서 부곡을 이끄시기에는 아직 시기상조입니다.”
내 말에 여포는 눈을 치뜨며 말했다.
“내가 이끈다고는 말하지 않았어요.”
“네?”
“춘군아, 나와 보거라.”
여포의 말에 내당에 그림자가 드리워지더니, 한 장군이 안으로 들어왔다. 나는 눈을 깜빡거리면서 그를 바라봤다. 떡 벌어진 어깨에 길쭉한 다리, 온몸을 철 미늘로 두르고 머리에는 사자머리 모양의 투구를 썼다. 저 사람이 말로만 듣던 여포의 여식이란 말인가? 여포는 춘군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이 아이가 내 부곡을 이끌 거예요.”
“태위의 여식, 여춘군이 합비공 합하를 뵙습니다!”
쩌렁쩌렁한 사자후에 나는 압도되었다. 와, 쎄다. 이 누나……
============================ 작품 후기 ============================
뉴스보다 재미없는 소설이라니 너무나 부끄럽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