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Peace Biography RAW novel - Chapter 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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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칠천의 병력은 산기슭까지 내려오면서 오천으로 줄었다. 그나마 남은 이들도 숨이 턱 끝까지 차올라 호흡기가 곤란한 환자처럼 쌕쌕거렸다. 문빙은 숨을 한 번 크게 들이쉬고 그 숨과 함께 고함을 질렀다.
“가자! 백수를 점령하자!”
병사들이 호응했다.
“북해국 탕녀 이야기의 결말을 듣자!”
등애도 창을 꽉 쥐고 결의를 다졌다. 문빙의 명령에 오천의 병력은 산기슭 아래로 달려 나갔다. 개중 다리가 풀린 이가 고꾸라져 데굴데굴 굴렀다. 병사들은 앞만 보고 달렸다. 함성을 지르며 육박하는 그들의 앞에 수풀에 숨어있던 부금이 긴장한 표정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엄마야, 진짜 왔잖아! 중달은 귀신인가…… 부금은 그렇게 잔뜩 위축된 표정으로 칼을 양손으로 받쳐 들었다.
“내 목을 치기 전까지 백수를 넘볼 수 없다!”
급작스런 저지에도 문빙은 당황하지 않았다.
“오냐! 네놈의 목을 치고 백수도 쳐주마!”
“다, 당황하는 척이라도 해줘……”
부금의 일천 병력이 문빙의 오천을 막아섰다. 체력적으로는 한참 기다리기만 하던 부금의 쪽이 우세했지만, 문빙에게는 그것을 위압하는 깡다구가 있었다. 문빙은 속력을 줄이지 않은 채 무소처럼 부금의 병사들을 들이받았다. 비탈을 내려오느라 속력을 줄이지 못한 문빙의 병사들도 그대로 적병에 달려들어 육탄전을 벌였다. 산기슭에서 벌어진 소란이 메아리가 되어 퍼졌다.
“결국 기어코……”
사마의는 쯧, 혀를 차며 전투를 지휘하느라 바쁜 상존을 붙들었다.
“도독, 백수를 버리십시오.”
상존은 멍청한 표정으로 물었다.
“뭐어?”
“적이 험산을 넘어 백수의 뒤를 치려고 합니다.”
상존의 작은 담과 비대하고 둔한 몸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전언이었다. 저 험하디 험한 산을 어떻게 넘어? 그러나 그도 곧 기슭에서 메아리치는 소리를 듣고 사태를 파악했다.
“그러나 죽기 살기로 항전하면……”
“그러면 죽기밖에 더합니까. 도독께서는 악에 받친 적장 문빙을 상대하여 이기실 수 있습니까? 이 지형에 의지하지 않고.”
상존은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당당히 대답했다.
“아니.”
“그러면 제 말대로 백수를 버리십시오.”
“아아……”
상존은 결국 사마의의 조언에 따라 전군에 명령했다.
“퇴각! 퇴각한다! 가맹관으로 퇴각한다!”
“질서 있게 퇴각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적들은 크게 지쳐 아마 우리의 뒤를 쫓지 않을 것입니다. 조금은 느려도 좋습니다. 질서 있게 퇴각을……”
상존은 이를 딱딱 부딪치며 주저했다.
“그러나 부금이 적들과 교전 중이다. 놓고 갈 수는 없어!”
사마의는 신경질적으로 바아쳤다.
“말도 안 되는 말씀은 관두십시오! 도호를 살리자고 아군을 전몰시킬 순 없습니다.”
“으으……”
상존은 불안한 눈빛으로 허둥거리다가 다시 말했다.
“그, 그러면 갑옷을 갈아입을 시간이라도 주시게!”
사마의의 인내심이 슬슬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미 입고 있으시잖습니까!”
“가, 갈아입어야 돼……”
지끈지끈 오르는 두통에 사마의는 이마를 짚었다.
“얼른 다녀오십시오.”
상존은 복장이 절로 터지는 걸음으로 뒤뚱뒤뚱 제 거처로 들어갔다. 그 사이에 사마의는 전투를 침착하게 지휘하며 후방의 병력을 뒤로 빼고 곧장 철수할 수 있도록 했다.
한참 시간이 지나고서야 상존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갈아입겠다던 갑옷은 화려하기 그지없었다. 백 리 밖에서 봐도 누구나 대장인 줄 알 만한 붉은 투구와 금빛 미늘이 번쩍이는 화려한 갑주였다. 결국 그 화려한 투구와 갑주를 지키자고 이 아까운 시간을 버린 것인가! 그 빌어먹을 허영심으로! 사마의는 결국 참지 못하고 상존을 잡아먹을 듯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대체 도독께서는 정신이 있으십니까! 이런 입성으로 철수하시면 놈들의 화살촉이 도독의 그 빌어먹을 빨간 투구만을 향할 것입니다! 군의 주장이 고꾸라지면 아군이 살겠습니까!”
상존은 사마의의 분노에 고개를 푹 숙였다. 순식간에 턱이 세 겹이 되었다. 그러면서도 제 할 말은 실컷 지껄였다.
“이, 일부러 그런 것이다……”
“뭐라고요!”
“나, 나는 전장에서 제일로 쓸모없는 놈이다. 아무 잡부나 데려와서 도독에 앉혀도 나보다는 잘할 것이다. 나는 언제 죽어도 아쉽지 않은 쓰레기다. 그러니까, 그러니까 일부러 이런 투구와 이런 갑주를 항상 갖고 다녔다. 내가 죽는 게 모두에게 이익이다. 중달, 내가, 멍청한 내가 죽으면 도독은 너다.”
사마의는 기가 막히다는 표정이었다.
“나는 언제든지 죽어도 좋다. 이 빌어먹을 쓰레기를 내 병사들은 좋다고 따라다니지 않았나? 그놈들 중 하나가 죽느니 차라리 내가 죽는 게 낫다. 그것이 내 유일한, 유일한 신념이다. 중달, 내 한심한 꼴을 비웃어도 좋다. 그러나 이 비웃을 만한 꼴이 내 유일한 신념이라구……”
“……”
“사설이 길었다. 가자, 중달.”
상존은 축 늘어진 어깨로 말 위에 올랐다. 그는 있는 힘껏 전 병력에게 외쳤다.
“가자! 가맹관으로 철수한다!”
사마의는 멍하니 상존의 지나치게 화려해서 도리어 천박한 차림을 지켜보다가 그의 뒤를 따랐다. 상존은 도망치면서도 질질 눈물을 짜냈다. 내 친구 부금아, 내 친구 부금아, 살아라, 꼭 다시 만나서 술 먹자! 사마의는 미간을 좁히며 상존을 다그쳤다.
“어깨 펴십시오! 어째서 패군지장처럼 스스로를 초라하게 하십니까!”
“…패군지장이 맞으니까. 백수도독이 백수를 지키지 못했다.”
사마의는 한숨을 푹 쉬었다.
“도독의 사졸들이 패군입니까? 왜 도독의 사졸들을 처참하게 만드십니까. 도독의 사졸은 패군이 아닙니다. 당당한 개선군입니다. 도독께서는… 그들의 수장, 당당한 개선장군이십니다……”
“중달……”
“그러니까 그 빌어먹을 자아비판은 관두시라고요.”
상존은 침을 꿀꺽 삼키고 부러 힘을 주어 어깨를 폈다.
나는 드디어 백수관에 대장군부의 깃발을 꽂았다. 좌자가 있는 힘을 짜내 만세를 불러봤지만 목구멍에 걸려 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병사들은 승전의 기쁨보다는 승전을 위해 지불된 무수한 목숨들과 제 피로감을 이기지 못하고 여기저기에 널브러졌다.
이제야 백수를 손에 넣었다. 첫 번째 관문을 얻은 것이었다. 이 다음으로는 백수보다 크고 유장의 세자가 친히 수문장을 맡고 있는 가맹관이 있었고, 그 남쪽에는 지옥 같은 험준함을 자랑하는 검각이 있었다. 그리고 그 남쪽에는 촉의 사령부가 있는 부성이 있었고, 그것까지 넘어야만 비로소 촉의 심장, 성도였다. 눈 주위가 뻑뻑하게 아파왔다. 문빙이 이끄는 별동대가 어기적거리는 걸음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문빙은 지친 표정으로 군례를 올렸다.
“승전을, 감축 드립니다.”
나는 어쩐지 뭉클해졌다.
“생존을, 감축 드리오……”
멋쩍은 축하를 그에게 건네자 문빙도 멋쩍게 받았다.
“돼지 같은 적장 부금은 달아났습니다. 그의 용렬한 수하들도 뿔뿔이 달아나 전투는 수월했습니다. 그러나 산을 오르고 내려오는 와중에 많은 수가 죽고 다쳤습니다.”
“시신은 거두어 정중히 장례하고, 낙오자는 속히 백수관으로 데려오도록 하시오. 수고, 많으셨소.”
“예……”
내 명을 받잡고 물러나려는 그를 나는 붙잡았다.
“저, 등애라는 소년병……”
문빙은 내 말뜻을 짐작하고 빠른 대답을 내놓았다.
“살았습니다.”
“아……”
“털끝 하나 다치지 않고, 아주 건강히……”
“아……”
나는 어쩔 수 없이 웃음을 숨기지 못했다. 그날 밤, 병사들을 모닥불의 주위에 옹기종기 둘러앉혀놓고 북해국 탕녀 이야기의 결말까지 풀어냈다. 본디 북해국 탕녀는 청주의 거상인 왕씨를 유혹하려다가 이것을 질투한 왕씨의 조강지처에 의해 오체분시 되어 그 온전치 못한 시신이 저자거리에 흩뿌려지고 마는 비극적 최후를 맞는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말하지 못했다. 탕녀는 왕씨의 잘생긴 아들을 만나 영영 행복하게 살았노라고, 다분히 동화적이고 천진난만한 결말로 끝을 맺었다. 끝까지 다 들은 병사들은 다소 싱겁다는 반응이었으나, 그들은 돌아가면서 저들끼리 숙덕거렸다.
“역시 끝은 행복해야해, 그렇지?”
채모를 잃은 영자의 별동대는 그로부터 사흘 후, 백수관에 당도했다. 그들의 얼굴에도 진한 피로가 묻어나왔다. 그들을 배불리 먹이고 백수에서 사흘 더 머물렀다.
“죄송합니다, 아니, 미안해, 찬……”
영자는 눈을 지그시 감으며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나에게 사죄했다. 기실 내가 나의 사졸들을 잡아먹은 주범이었기에 영자는 사죄의 대상을 잘못 고른 것이었다.
“미안해, 영자……”
우리 둘, 주범과 공범은 서로 받을 자격이 없는 사죄를 두세 차례 더 주고받았다. 백수의 밤은 깊고 어두웠고, 젠장맞을 험산의 까마귀는 밤늦도록 울어 나의 수면을 방해했다.
가맹관.
세자 유순은 패잔병도, 개선군도 아닌 어정쩡한 상존의 병력을 맞았다. 유순은 유장의 적장자였고, 그의 어미는 방희의 여식이었다. 그러므로 그는 생득적으로 익주의 토호를 경멸하고 군부를 흠모했다. 군부 중에서도 기질이 깐깐한 황권보다 성정이 넉넉한 상존을 더 기꺼워했다. 비록 백수관이 적에 의해 함락되었다고는 하지만 이미 백수의 낙성은 누구나 다 예상했던 일이었고, 보잘 것 없는 군재의 상존이 적을 일만 넘게 몰살한 전공까지 세웠으니 유순이 상존을 고깝게 볼 여지가 없었다.
“상 도독, 적의 수급을 숱하게 취하고 돌아오니 그대의 살진 몸이 오늘은 다부져보이는구려.”
상존은 제 절친한 벗 부금도 살아 돌아왔겠다, 기분이 한껏 들떠서 세자의 공치사를 넙죽 받았다.
“세자께서 그리 말씀해주시니 이 상 아무개의 마음이 참으로 훗훗합니다!”
상존은 홀로 공로를 독차지하는 속물은 아니었다. 그는 한사코 손길을 뿌리치는 사마의의 손목을 억지로 끌어다 유순의 앞에 대령했다.
“파서도위 사마의올시다. 자는 중달을 쓰는데, 이 중달이 아주 혁혁한 전과를 올렸습니다. 부디 상찬해주십시오.”
유순은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마 도위, 참으로 훌륭하오. 내 반드시 부왕께 장계를 올려 그대의 공로에 합당한 상을 내리도록 주청하겠소.”
사마의는 머리를 땅에 박았다.
“동궁의 말씀만으로도 이 중달, 이미 합당한 상찬을 받았나이다. 무릇 전공은 주장의 몫입니다. 소인은 이미 만족하였으니 백수도독의 공로를 더욱 빛내주소서.”
사마의의 말은 단지 겸양이 아니었다. 사마의는 자신이 중앙에서 거론되는 것이 불편했다. 모난 돌이 정 맞는 것이었다. 그것은 정치에서 그 어떤 격언보다도 주효했다. 그는 자신은 숨기고 자신의 동아줄인 상존을 한껏 높이기를 원했다. 그 속내를 모르는 유순은 더욱 사마의의 말을 어여삐 여겼다.
가맹관의 병력은 도합 이만을 헤아렸다. 누구나 백수에서 상존의 참패를 예상했고, 합비공의 병마가 온전한 채로 가맹관에 도달할 터이니 제 아무리 정병을 모으고 튼튼한 관문에 의지했다고 하나 가맹관 역시 머지않은 시일 내에 합비공의 손아귀에 떨어지리라 여겼다.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퍽 달라졌다. 상존이 불과 오천의 병력으로 합비공의 병마를 크게 억제한 데다가 탕거에서 적의 별동을 완벽하게 제어한 전적으로, 가맹관을 비롯한 촉의 사졸들은 조심스레 승리를 점쳤다. 게다가 적과 내통했던 익주의 토족들이 줄줄이 처단되면서 민심은 어느 때보다도 결사항전을 부르짖었다. 촉왕부에 대한 충심은 그만큼 붉어졌다.
“상존 따위가 적의 선봉을 일만이나……”
성도에서 장송의 내통을 낱낱이 고하고 관련자들을 일제히 숙청한 뒤 사령부인 부성으로 돌아온 황권은 뜻밖의 장계에 입맛을 다셨다.
“상존 따위가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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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인물열전
부금(?~214)
유비가 유장을 배신하고, 가맹관에 곽준을 배치하여 유장의 공세를 차단하고자 했다. 곽준에게는 고작 수백의 병력밖에 없었다. 유장은 상존에게 일만의 병력을 맡겼는데, 부금은 상존과 함께 가맹관으로 나아갔다. 1년 간 가맹관을 쳤으나 이기지 못하고, 도리어 곽준의 돌격에 전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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