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Peace Biography RAW novel - Chapter 24
0024 / 0284 ———————————————-
7. 상산 조자룡
기왕 받기로 한 원군을 다시 물릴 수는 없었다. 나는 후군을 자처하고 상비군 일천으로 본영을 지켰다. 첨병의 전갈에 따르면 임치를 지키는 병력은 대략 5천이라고 했다. 삼국지를 읽어본 이라면 알겠지만 공손찬의 세는 강성하나 그 강성한 세를 불릴 만한 인재가 많지 않다. 그 누구 하나 커다란 족적을 남긴 이가 없지 않은가.
우리가 조심할 만한 이라고 해봐야 전해의 부관으로 서주에 출병한 유비와 그의 무시무시한 의동생들뿐이다. 그렇게 형편없는 인재풀에다가 주력이 전해의 병력까지 빠졌으니 임치는 동치미 국물 마시듯이 죽 들이키면 그만이었다.
나는 노구와 암노를 군의 선봉에 배치하고 유헌 등 공융의 원군은 후방에 배치했다. 그리고 내가 그들의 뒤에서 전국을 들여다봤다. 그들이 일정한 전공을 세워 임치에 대한 지분을 요구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나는 도저히 그 자들을 신뢰할 수가 없었고, 그 때문에 내가 그들의 배후를 도사렸다.
“임치를 지키는 게 누구라고? 조 뭐?”
분명히 첨병한테 이름을 들었는데 나는 그때 영자와 과일을 두고 다투느라 제대로 듣지 못했다. 나는 나와 나란히 후군을 맡은 영자에게 물었다. 영자는 어깨를 으쓱했다.
“조씨래?”
내가 너랑 무슨 말은 하겠니. 어제부터 마음에 안 든다. 나는 팔짱을 낀 채 고개를 내저었다. 조씨든 김씨든 이씨든 다 관계없다. 노구에게 필적할 공손찬 휘하의 장수는 없다. 그것도 알짜배기는 다 서주로 빠져나간 청주라면 더더욱. 나는 전황을 낙관했다. 사마구와 서화를 너끈히 꺾기도 했거니와 부상자의 공백을 황건의 정예로 메웠다. 더불어 공융의 원군까지 얻었으니.
나는 고도가 높은 곳으로 가서 손차양을 하고 막 개시된 전장을 지켜보았다. 화살이 어지러이 오갔고 그 화살의 수만큼 비명소리가 임치를 울렸다. 듣기 힘들었지만 나는 입술을 깨물고 전장을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머리로는 이해한 난세의 숙명을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작업은 고되었다. 낙승을 예상했기에 비상한 전략은 세우지 않았다. 사실 내가 전략을 세워봐야 비상하기까지는 하지 않을 테지만. 수효와 기량에서 앞선다면 섣부른 계략은 도리어 독이 되기에 나는 안전한 정공법이 옳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예상보다 임치의 저항은 거셌다. 분명 정예병은 전해가 이끌고 갔을 텐데 어디서 저런 용력이 나온단 말이야. 나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밀고 당기는 전장을 바라봤다. 너무 출혈이 큰데.
그렇잖아도 영 맘에 들지 않던 전황이 더 악화되었다. 임치의 거대한 성문이 열리더니 일단의 기병들이 열린 성문으로 쏟아져 나왔다. 예상치 못한 요격에 우리군은 크게 휘청거렸다. 나와 마찬가지로 우리 군사들도 연이은 호재에 나름대로 자신감이 충만했던 모양이다. 그런데 불의의 일격을 당하니 당황망조하여 군기가 크게 휘청거렸다. 군의 중심에서 사령하던 노구도 당혹스러운지 거세게 받아치지 못하고 임치의 기병에 크게 위축되었다.
“워, 뭐야! 만만치 않잖아.”
영자도 뜻밖의 저항에 당황했는지 머리를 긁적였다. 나는 급히 전령을 띄워 전장에서 한 발짝 멀어져있던 유헌과 왕자법, 유공자를 투입했다. 공융의 북해병은 그제야 둔하게 움직였는데, 그다지 숙련된 전력이 아닌지 도리어 걸림돌만 되었다. 얘네가 왜 단독으로 임치를 공략하지 않았는지 대강 알 것 같았다. 차라리 군을 돌려서 북해를 먹어버릴까 생각이 들 정도로 이들은 못난이였다.
“영자, 네가 가서 좀 휘저어줘야겠는데?”
영자는 장도를 꺼내들었다. 얘가 칼 들 때마다 목덜미가 움찔움찔 한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화평자.”
그는 직속 병력을 재촉해 급히 임치의 병력을 향해 질주했다. 나도 용기를 내서 전장에 바짝 다가갔다. 왕왕거리는 전장의 잡음이 점점 크게 들렸다. 임치의 적군은 아군을 제멋대로 들쑤시고 있었다. 특히 군의 선두에서 아군을 사정없이 도륙하는 자의 무용은 유독 돋보였다. 아무리 전법이 정교하게 다듬어지지 않은 고대라고는 해도 전장의 장수는 결코 개전 후 진의 선두에 서지 않는다. 여러 겹의 호위를 받으며 전체 전장을 지휘한다. 선두에 섰다가는 눈 먼 화살에 개죽음을 당하는 수도 있고 적군의 집중 공격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법 빼어난 무용을 지닌 노구와 영자도 적진의 한가운데 뛰어들지는 않는다. 직접 창칼을 휘둘러도 휘하의 원호를 받기 마련. 그런데 적의 대장은 그렇지 않았다. 진의 꼭짓점이 되어 그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전장을 독무대로 삼았다. 날아오는 화살을 쳐내고 말발굽으로 졸개를 짓이기고 동시에 창을 휘둘러 아군 하급 장교의 목을 베었다.
“대체 뭐야, 저놈……”
영자도 그에게 흥미가 동한 눈치였다. 그는 호기롭게 적장의 앞을 가로막았다. 나도 그쪽을 향해 더욱 근접했다. 어차피 적장이 적진의 선두였으니 그들에게 근접한다 해도 내 주위에는 아군뿐이었다. 영자는 장도를 적장에게 겨누었다.
“태산의 손관이다. 이름을 밝혀라.”
적장은 고개를 좌우로 까딱거렸다. 가까이서 보니 아직 수염도 제대로 자라지 않은 젊은이였다. 그는 영자의 부름에 응답했다.
“나는 공손백규의 객장인 상산의 조자룡(趙子龍)이다!”
엄마야! 내가 잘못 들었나? 나는 나도 모르게 큰 소리로 그를 향해 되물었다.
“누, 누구라고?”
내 반응에 영자와 조자룡 모두 황당하다는 얼굴이었다. 조자룡은 친절하게도 다시 한 번 자신의 이름을 말해주었다.
“상산의 조자룡이라고 했다.”
“악! 진짜 조자룡이야!”
나는 호들갑을 떨면서 말 위에 올라타 엉덩이를 들썩거렸다. 이 흥분을 뭐라고 표현할까. 전장의 와중에서 마주친 허섭스레기 장군 조씨가 조자룡이었어? 나는 몸이 달아올랐다. 그런 나를 보고 영자와 조자룡은 싸움도 잊은 채 헛웃음을 터트렸다. 내 기괴한 반응에 양측의 병사들도 싸우다 말고 병신 보듯 나를 쳐다봤다. 이 우매한 고대인들아! 비웃으려면 비웃으라고. 나는 말을 몰아 영자와 조자룡의 사이를 파고들었다.
“비, 비켜, 찬! 위험해!”
영자가 나를 급히 제지했지만 나는 영자를 무시하고 말에서 내려 조자룡을 향해 예의를 갖췄다. 사실 이건 나의 이성적인 판단이 아니라 단순한 호감, 아니 호감 이상인, 시쳇말로 팬심에 의한 것이었다.
“조 장군, 이렇게 만나게 되어 반갑기 그지없습니다!”
조자룡은 심히 당황한 기색이었다.
“나, 나를 아는가?”
“이름자로 구름 운 자를 쓰시지 않습니까. 평소 흠모하던 차였습니다, 장군.”
“어, 어떻게……”
“지금 형님의 상중이신지라 고향에 내려가신 걸로 아는데 임치에는 어인 일로……”
나는 삼국지를 매니악하게 독파하지는 않았지만 조자룡의 경우는 달랐다. 삼국지 조운전에 조운별전에 각종 야사 등등 온갖 기록들은 다 찾아보았다. 사내라면 한번 쯤 이 사내와 불경한 연애를 하곤 하지 않나? 나만 했나. 내 말대로 이 시점의 자룡은 형의 상을 핑계로 공손찬에게서 하야해 낙향하던 시기이다. 조자룡은 내가 지닌 지나친 정보가 부담스러운 모양이었다. 그는 몸을 배배 꼬았다.
“아니, 어떻게 아는 거야……”
“뵙고 싶었는데 이렇듯 적으로 마주하게 되어 심히 유감입니다, 장군.”
“나는 장군이 아니다. 제발 그 장군 소리 좀 어떻게……”
나는 감격에 젖어 자룡의 말을 듣지 못했다.
“이렇게 뵌 인연인데 잠시 휴전하시고 술 한 잔 하시겠습니까, 장군?”
“무슨……”
“제발! 청을 들어주십시오, 장군!”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전장에서 모든 소리가 멎었다. 오로지 호들갑스럽게 장군을 연호하는 내 목소리만 떠들썩했다. 어느새 노구도 다가와 갈피가 잡히지 않는 표정으로 나와 자룡을 번갈아 보았다. 얼떨결에 잠깐의 휴전이 성립되었는데, 조자룡은 얼떨떨한 감정을 고개를 저어 떨치고 내 목에 창을 겨누었다.
“삿된 혀로 나를 미혹하려느냐! 너의 목부터 이 창에 꿰어야겠다!”
말은 잘하네. 그러나 그럴 수 있을까. 공손찬군의 말석에서 인정을 못 받다가 이제 고향으로 내려가는 너를 내가 이렇게 열렬히 환호해주는데? 정도 없는 공손찬을 위해 너의 광팬을 푹 찔러 죽일 수 있을까? 너는 아직 어리지. 공명심이 넘치는 나이다. 너는 나를 못 찔러. 나는 고개를 뻣뻣이 들고 그 앞에 나섰다.
나는 순간적으로 무언가를 떠올렸다. 그의 마음을 확실하게 돌릴 만한 패를 준비했다.
“저는 서주로 출병하는 유현덕(玄德, 유비의 자)을 은밀히 만났습니다.”
내가 너에게 열광하듯이 너는 유비에게 열렬히 열광하지. 같은 침대까지 쓸 정도로 말이야. 옛다, 떡밥이다, 물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