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Peace Biography RAW novel - Chapter 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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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원소가 죽었다?”
청금은 따끈따끈한 부고를 내 앞에 대령했다. 유엽은 내 확인을 위한 물음에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렇습니다. 당장 후계를 두고 상황이 복잡해질 것입니다.”
그렇겠지. 원담을 서주로 축출하고 원상을 세자에 진즉 앉히기는 했지만 얽히고설킨 갈등의 뿌리가 그런 미봉책으로 해소될 리가 없으니까. 유엽은 전풍이 승상 겸 세자사에 올랐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세자가 곧 즉위할 터이니, 전풍은 이제 은왕의 스승이 될 터였다. 전풍의 힘은 강해지지만 그 반대급부로 고간의 불만도 높아질 터였다. 차라리 고간에게 권력을 줘버리는 편이 낫지 않겠느냐 하겠지만, 불장난을 꿈꾸는 조무래기에게 횃불을 쥐여 주면 집을 죄 태워버리고 마는 것이었다.
“영천의 진등 공에게 각별한 방비를 주문하십시오.”
그렇게 말해놓고 곧바로 취소했다.
“이미 다 해놨겠지.”
“그러지 마시고 영천, 여남, 수춘, 오군을 차례로 방문하시어 격려도 해주시고 군기를 한번 단속하시죠. 나쁘지 않은 행보입니다.”
“아, 그것도 좋겠습니다.”
나는 손을 깍지 끼고 턱을 올려놨다
.
“아무튼, 비상한 시국이야.”
익주에 다녀와서 좀 쉬어볼까 했더만은. 하나 마나한 말은 그대로 삼켜버렸다.
합비로 귀환해서 나는 무사히 궐위를 메워준 왕수와 염상에게 감사를 표했다. 이제는 합비에 앉아 북쪽으로 이목을 집중시켜야 할 때였다. 이런 비상시국에 유비가 무슨 장난질을 칠지 알 수가 없으니까.
그때 시영과 교가 온을 안고 들어왔다. 온은 나를 보고 까르르 웃었다. 나는 벌어지는 입가를 단속하지 못했다. 나는 종종걸음으로 다가가 온을 안아들었다. 온은 더욱 크게 웃었다. 둥글둥글한 것이 누굴 닮아 이렇게 귀여워?
“그새 머리가 검어졌구나!”
시영은 입을 가리고 웃었다.
“교 부인을 닮아서 그런지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정갈해요. 분명히 온이 때문에 애타는 사내들이 여럿 있겠습니다.”
“빈말이라도 날 닮아 그렇다고 해줄 수는 없소?”
“아, 네… 빈말이라도 그건 어렵겠어요.”
나는 콧방귀를 뀌었다.
유엽의 진언대로 나는 합비를 떠나 북쪽의 군단장들을 방문했다. 오랜만에 얼굴도 볼 겸. 익주에서 돌아와 여독이 덜 풀리기는 했지만 통치자의 명목으로 먹을 것 다 먹고 입힐 것 다 입는 까닭은 무엇이겠는가. 통치자에게 피로는 가족보다 가까운 벗이다. 피로를 저버리는 것은 소명을 저버리는 것이며 그런 자에게 가당한 처분은 짊어진 관(冠)을 벗거나 퀴퀴한 관(棺) 속으로 들어가는 것뿐이리니. 통치자의 푸념과 하소연은 듣는 아랫것들로 하여금 부아만 일으킨다. 나는 합비에서 가까운 수춘으로 먼저 갔다. 노구의 얼굴은 정말 오랜만이다.
원상은 은왕에 등극했다. 전풍은 원소의 장례가 끝나자마자 등극식을 서둘렀다. 부친의 무덤 앞에서 아이고, 아이고, 곡을 하던 원상은 사흘 후에 바로 면류관을 썼다. 원씨의 가신들은 좌우로 도열하여 천세를 외쳤지만 마음의 소리마저 천세인 치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몇몇은 난리가 터지지 않고 이대로 영원히 갔으면 좋겠다는 의중으로 천세를 외쳤고, 몇몇은 원씨의 천세가 아니라 고씨의 천세를 염원했다. 연소한 원상의 눈에 저 까마득한 끝까지 도열한 신하들이 보였다. 그들이 나 하나를 바라보고 있다. 저들은 나를 떠받치기도 하지만 나를 뒤집을 수도 있는 존재. 인중에 송골송골 땀이 맺혔다.
“고는 부족한 인물이다. 천자와 은의 흥성을 이루도록 경들이 적극 도와주도록 하시오.”
승상 전풍이 원상을 향해 홀(笏)을 들었다.
“신 전풍, 신명을 다하겠나이다.”
가신들이 일제히 따라했다.
“신명을 다하겠나이다.”
전풍은 원상을 향해 눈짓을 했다. 원상은 으음, 잠시 머뭇거리다가 고간을 바라봤다.
“병주자사 고간은 들으시오.”
저 항렬 낮은 먼 친척이 목소리를 착 깔고서는. 꾸벅꾸벅 고개를 조아리던 조무래기 주제에. 웃기지도 않는다. 고간은 입술을 씰룩이며 원상의 부름에 고개를 까딱거렸다.
“예.”
“병주자사 고간을 대장군에 명하여 뭇 무관의 으뜸으로 삼으니, 경은 신명을 다해 군부를 이끌어 고를 돕도록 하시오.”
허울만 좋은 대장군이라니. 고간은 짧게 대답했다.
“예.”
차가운 태도에 원상은 두려움을 느꼈다. 다른 벼슬도 아니고 장군 중의 으뜸인 대장군에 앉히면 넙죽 절이라도 하며 충성서약을 하지 않을까 은근히 기대하던 원상이었다. 권좌에 올라 하는 첫 번째 궁리가 요행의 소원이니 첫 단추는 단단히 잘못 꿰었다.
봉기와 곽도는 고간과 밀회했다. 곽도는 씩 웃으며 고간을 축하했다.
“대장군이라니, 감축 드립니다.”
고간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지금 날 놀리는 겐가.”
“그럴 리가요.”
봉기가 나서서 진언했다.
“삼왕자(三王子, 원상)가 등극하였으니 지금 당장은 양순하게 따라주는 게 좋겠습니다.”
봉기는 원상을 은왕도 아니요, 세자도 아니요, 한사코 삼왕자라는 호칭을 고집했다. 정통성을 부정하는 것이었다. 봉기의 진언에 고간도 동감했다. 아무리 물렁한 권력이라고 해도 막 출범한 것은 퍽 강고한 면이 있는 것이다. 원상이 구상유취의 어린애라고 해도 선왕 원소가 한참 전에 세자로 봉하고 그를 후계자로 직접 지목했다. 아직 원소의 그림자가 진하게 드리운 은왕부에서, 그 유지를 쉽게 거스를 인물은 없었다.
“맹수는 먹이의 목덜미를 무는 법입니다. 가냘픈 사슴일지라도 정면에서 덮치지 않습니다.”
봉기는 저가 흡사 사슴의 연한 목덜미를 물어뜯는 맹수가 된 듯이 입맛을 다셨다.
“목덜미가 보일 때까지… 기다리시지요.”
수춘은 덤덤하게 나를 맞이했다. 노구의 성격대로였다. 다른 고을엘 가면 울긋불긋한 깃발을 휘날리고 미동(美童)들이 꽃을 막 흔들고 지랄발광을 하던데, 수춘은 그런 것이 없었다. 덕분에 편한 마음으로 수춘에 입성할 수 있었다. 노구는 갑옷을 입은 채로 수춘의 남문에서 나를 기다렸다. 유비와의 직접적인 교전이 벌어지지 않았음에도 경계를 게을리 하지 않겠다는 의지였다.
“오랜만에 뵙는군요, 합비공.”
그는 나에게 손을 뻗었다. 나는 그 손을 잡고 말에서 내렸다. 나는 씩 웃으며 노구에게 말했다.
“대장, 잘 지냈어?”
노구는 나만 들릴 정도로 작은 목소리로 속닥거렸다.
“화평자, 체면 차려라.”
“체면은 개나 줘버려.”
나는 노구와 어깨를 걸고 수춘에 입성했다. 어깨가 하도 넓어서 저 끝까지 내 팔이 닿질 않았다. 좨주로서 나를 따라온 량이가 거듭 뒤에서 제발 제후의 체면을 생각하라고 타박을 줬지만 나는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대장, 유비 쪽에서 별 다른 동향은 없어?”
“그 대장 소리 좀 어떻게 안 됩니까?”
나는 짐짓 목소리를 깔았다.
“알겠소, 좌장군.”
노구는 한심스럽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나에게 설명했다.
“연주도독으로 부임했던 조운이 다시 관우와 교체되었습니다. 대조(對趙) 전선은 다시 관우가 총괄할 것으로 보입니다. 유비는 진등 공과 마주한 영천의 전선에는 옛 손책의 숙장인 정보를 안원장군(安遠將軍)에 임명하여 진등 공을 대적하게 하고 한당, 황개를 함께 붙여놨습니다. 이곳 수춘 전선에는 조운을 양주제군사(揚州諸軍事)에 임명하여 지키게 했습니다.”
나는 조운의 벼슬을 깎아내렸다.
“양주에는 땅 한 줌도 없는 주제에.”
“자룡과는 한때 동지였는데 적으로 마주하려니 마음이 이상하더군요.”
“그건 그렇지……”
씩 웃던 조자룡의 얼굴이 생각나서 나도 마음이 이상했다. 노구는 서둘러 말을 이었다.
“고순 공의 여남전선에는 위연(魏延)이라는 인물을 배치했다고 하는데, 가진 정보가 없어서 드릴 말씀이 없군요.”
나는 몸에 전류가 흐르는 듯 짜릿한 감정을 느꼈다. 위연은 촉의 상장대우를 받던 역전의 용장이다. 성질은 다소 더러웠다고 전하지만 실력만큼은 진짜배기라고 한다. 장비를 제치고 촉의 최고 요충지인 한중의 태수를 역임한 사실은 그의 능력을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는 가문의 배경이 없이 일개 사졸로 시작하여 촉한의 제일용장 반열에까지 스스로의 힘으로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 노구가 그에 대한 정보가 없는 것은 당연했다. 무수한 사졸 중에서 그러한 걸물을 발탁해내는 유비도 영걸은 영걸이다. 등애를 면도병으로 발탁한 제갈찬에 비교해줄 만하군.
“방비를 단단히 하도록 주문하는 게 좋겠어. 예사 인물이 아닐 거거든.”
“가끔 합비공께서는 누구도 모르는 인물에 대해 확신에 찬 인물평을 하십니다. 내일 식탁에 뭘 올릴지 종일 고민하는 성정이시면서 말입니다.”
“믿는 구석이 있거든.”
노구를 그러려니 하고서는 말을 이었다.
“오군의 전선에는 주유를 진동장군에 임명하여 오군공과 대치하도록 했습니다.”
“주유가 결국은 유비의 등에 올라타기로 결정했군.”
“아무튼, 그 면면이 쉽지만은 않습니다. 합비공의 말씀대로 그 위연인지 하는 녀석까지 준재라면 말이죠.”
나는 미소를 띠며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는 뭐 쉽다고 생각했나. 언제나 어려웠어, 언제나.”
노구는 내 눈을 슬쩍 보고는 그도 미소를 띠었다.
“그렇기는 하군요.”
이름만 볼모일 뿐이지 원담은 서주에서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 담성만 벗어나지 않으면 이동도 자유로웠고, 섭식도 훌륭했으며, 여인도 내키는 대로 취했다. 유비가 양자 유봉을 원소의 여식과 혼인시켜, 유비와 원담은 인척(姻戚)이었다. 그럼에도 유비는 원담의 비행(卑行)에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 그러나 유비는 그가 마냥 건달이 되도록 내버려두지 않았다. 그가 어째서 서주에 와있는지, 어째서 권좌에 오르지 못하고 건달로 시들어가는지 시시때때로 알려주었다. 하내에는 복사꽃이 만발하다 하더이다. 세자 원상이 북방의 도적을 토포했더이다. 하내에서 원씨 종중(宗中)이 모여 조상께 제례를 드렸더이다……
방통은 원담을 찾아갔다. 방통은 원담에게 꽤 많은 공을 들였다. 항상 병장기에 기름칠을 해두어야 급한 때에 곧장 쓸 수 있었다. 원담은 한낱 병장기였다.
“원자(元子), 부왕의 승하에 얼마나 가슴이 미어지십니까.”
방통은 원담을 원자라고 불렀다. 세자에 책봉되지 않은 임금의 맏아들을 일컫는 말이었다. 원자라는 부름에 원담의 속이 끌로 긁어내는 듯 쓰렸다.
“부왕의 승하도 그렇지만, 나는 부적합한 녀석이 권좌에 오른 것에 더 가슴이 미어지오.”
방통은 얘기가 쉽게 풀리겠다 싶어 속으로 웃었다.
“아무렴, 아무렴요. 삼왕자가 형을 제치고 권좌에 웃다니 고금에 이런 일이 또 있습니까?”
“술을 마셔야지 안 되겠소이다!”
“드십시오, 안 드시고 배기겠습니까, 어디.”
원담은 독주를 안주도 없이 벌컥벌컥 들이켰다. 술을 원체 못하는 방통도 조금씩은 홀짝거리며 장단을 맞춰주었다. 원담의 안주는 방통의 말이었다.
“담왕 전하께서도 이 일은 부당하다 여기고 계십니다. 원자께서 용의가 있으시다면 적극 협력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원담은 다소 풀린 눈으로 말했다.
“담왕께서도 어떻게든 원씨의 땅을 좀먹으시려고 그러는 것 아니오? 내가 아무리 어리석다 한들 그쯤은 알고 있소.”
술 먹은 두뇌가 제대로 말을 거르지 못해 원담의 말은 거칠고 솔직했다. 방통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라고는 못하겠군요. 허면, 원자께서는 담왕의 검은 속을 신뢰하지 못하여 이 기회를 걷어차실 겁니까? 그러시고는 내내 서주의 건달로 살다가 이름도 남기지 못하고 졸하시렵니까?”
원담은 입술을 우물거렸다.
“저희는 원자를 이용하고자 합니다. 한낱 보따리장수도 밑지고는 장사 안 하는 걸요. 하물며 천하를 다투는 제후임에야. 그것은 어떠한 허물도 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원자를 이용하는 동시에 도울 것입니다. 허면 원자께서는 받을 것은 받고, 물리칠 것은 물리칠 궁리를 하셔야지요. 해갈이 급하면 우선 물웅덩이에 머리를 박고 보는 겁니다. 그것이 독천(毒泉)이든 개돼지들의 오줌물이든 그것은 나중에 생각하십시오. 독천이면 어떻습니까. 나중에 해독할 방책을 쥐고 있으면 그만입니다. 이 만한 배짱 없이 권좌를 노리시려거든……”
방통은 쯧, 혀를 걷어차고 손을 내저었다.
“그러시려거든 그냥 관두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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