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Peace Biography RAW novel - Chapter 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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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공융은 천자의 소환명령을 받고 즉각 응했다. 글 읽는 머리와는 별개로 눈치는 그다지 좋지 않은 공융이었지만, 그 역시 맛을 느끼는 혓바닥이 있는 탓으로 천자의 의중을 단박에 깨달았다. 간이 전혀 되지 않은 풋나물을 마지못해 먹고 난 직후였다. 공융이 천자의 앞에 나서 절을 올리자 천자는 알은체를 하고 바로 공융에게 칙명을 내렸다.
“태부가 그놈이랑 안 지 얼마나 되었지?”
공융은 몸을 숙이며 조심스레 물었다.
“그놈이라 하시면……”
천자는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대꾸했다.
“제갈찬 말일세!”
“아아, 합비공과는 알고 지낸 지 오래 되었지요… 십 년이 다 되어가니까요.”
“기실 경이 앉아있는 태부란 자리도 제갈찬이 녀석이 꽂아준 것 아닌가.”
틀린 말은 아니어서 공융은 손을 모으고 얌전히 허리를 숙였다. 유총은 관자놀이를 벅벅 긁다가 정말 하기 싫었던 말을 억지로 입술까지 끌어올렸다.
“대사마의 탄핵을 받아들이고 면밀하게 정사를 돌보지 못한 짐에게도 책임이 있으니, 앞으로는 더욱 사려 깊게 만조백관을 통찰하겠노라 전하시게.”
대장군이 대사마를 논핵하자 천자가 이를 받아들이고, 더 나아가 스스로 대장군에게 죄를 청한다는 뜻이었다. 그 억센 기질의 천자가 전향적인 반응을 보이자 공융은 퍽 놀랐다. 이것은 기실 왕랑의 건에 대한 사죄가 아니라, 유비를 방생한 것을 처절히 반성하고 이 계책을 입안한 낙준을 앞으로는 잘 다스리겠다는 다짐과 다름없었다. 유총은 제가 내뱉은 말이 너무나도 부끄러워 얼굴이 홍시처럼 붉어졌다.
“그러니 대장군은 채비가 되는 대로 조공을 재개하라고 전하도록 하시게.”
유총은 말을 다 쏟아놓고는 손가락을 쫙 펴서 바닥을 긁었다. 공융은 멀건 눈으로 그것을 바라보다가 그를 향해 절을 올렸다.
“신, 명을 받들겠습니다.”
공융이 칙서를 받들고 종종걸음으로 물러나려는데, 유총은 이마를 탁 짚으면서 그를 붙들었다. 공융이 그 까닭을 물으니 유총은 합비공에게 한 가지 당부사항을 추가로 덧붙였다.
“그리고 그 빌어먹을 낙타노래 좀 어떻게 해보라고 해.”
공융은 순한 눈으로 허리를 굽힌 뒤, 칙서를 받들고 그 길로 합비공부를 향했다. 공융으로서는 모쪼록 천자와 합비공 사이가 화목하기를 바랐다. 그것이 중간자로서의 유일한 희구였다. 그것뿐이지 더 바라는 것이 없었다.
나는 공융을 반갑게 맞이했다. 천자로부터 무어라 반응이 오기는 올 터인데, 그 칙사로서 공융이 임명된다는 것만으로도 천자가 고개를 숙이겠다는 의지가 잘 느껴졌다.
“오랜만입니다, 태부.”
공융은 그에 맞춰 답례를 하고 내게 귀엣말을 속삭였다.
“대체 무슨 일이기에 천자께서 비 맞은 강아지 눈을 하고 꼬리를 안으로 말아 넣으시는 겁니까?”
나는 웃기만 했다.
“태부께서 아셔봤자 이로움이 하나도 없을 것 같군요.”
“뭐, 그러면 말지요.”
“그래, 천자께서는 뭐라 하시던가요.”
“대사마의 탄핵안을 받아들이고 앞으로 각별히 주의하여 만조백관을 통찰하겠다고 하셨습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간의 사정을 들어 알고 있는 합비공부의 제신도 그 괄괄한 유총이 부드러운 말씨로 사과와 성찰을 입에 담으니 고소하다는 반응이었다. 나는 양주자사 염상으로 하여금 조공을 재개하되 본래 계획하던 것의 절반만 보내도록 했다. 사과를 한다고 해서 다시 퍼주는 것은 온당하지 않았다. 염상은 그 처분을 따랐고, 나는 칙사 공융을 융숭히 대접하였다. 공융과 술잔을 주거니 받거니 서너 차례 하고, 나는 은근하게 웃으며 이번엔 잔 대신 말을 건넸다.
“태부, 천자께서 대사마의 탄핵을 수용하셨으니 아마 대사마는 궐석이겠군요?”
나른하게 취기가 오른 공융은 약한 홍조를 띤 얼굴을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조만간 인선에 들어갈 것입니다. 삼공의 일원이니 허투루 뽑을 수는 없으니까요.”
“그렇군요. 물망에 오르는 인물이 있습니까?”
공융은 짧게 숨을 토하며 대답했다.
“기실 조정 내 원로들이 거쳐왔던 자리라서 적임자를 찾기는 쉽지 않습니다. 좌장군 여대가 유력하게 거론되지만 앞서 대사마를 역임했던 분들보다는 아무래도 무게감이 떨어지지요. 또한 군부가 대사마의 자리마저 쥐는 것을 탐탁지 않게 보는 이들도 더러 있으니.”
“아무래도 그렇겠습니다.”
나는 그렇게 말하고, 퍽 공융에게 부담이 갈 만한 얘기를 꺼냈다.
“헌데 대사마의 자리가 필요한가요?”
공융은 만면에 의아한 빛을 띠었다.
“그것이 무슨 말씀이십니까, 합비공. 응당 있어야지요.”
“태위의 소임과 대사마의 소임이 다르지 않습니다. 구태여 태위와 대사마를 모두 존치할 까닭이 있을까요.”
공융은 곤란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여 태위는 외적을 정벌하는 일이 잦으므로… 조정의 안에서 군무를 돌볼 벼슬이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나는 수긍했다.
“그도 그렇군요. 허면 태부께서는 대사마의 자리에 누가 적합하다고 여기십니까?”
다시 편한 질문으로 돌아가자 공융은 팔짱을 낀 채로 고심했다. 이미 관녕과 왕랑이 대사마를 거쳤으니 그들은 다시 오를 수 없고, 그들과 비슷한 명성과 경력을 가진 화흠은 승상이었다. 낙준이 적합하기는 하나 상서령으로서 천자를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며 책략을 입안하는 것이 중했으므로 대사마에는 어울리지 않았다. 앞서 말했듯 좌장군 여대는 중압감이 떨어진다. 공융은 한참 고심했지만 적임자를 골라내지 못하는 눈치였다. 나는 그를 흘긋 바라보다가 내 가슴에 손을 얹었다.
“저는 어떨까요?”
내 목소리는 가벼웠으나 공융에게는 적잖은 충격이었나 보다. 공융은 엉덩이를 들썩거리며 눈을 깜빡거렸다.
“예에? 하, 합비공을요……?”
나는 입술을 쭉 내밀고 툴툴거렸다.
“왜, 영 아니올시다입니까?”
“아, 아니 그것이 아니오라……”
“저는 비록 나이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경력만큼은 숱한 조정의 대신들보다 낫다고 생각합니다. 태부도 아시질 않습니까? 천하에 내로라하는 제후들 중에 이 제갈찬과 칼을 섞어보지 않은 제후는 없습니다. 원소, 조조, 유비, 마등, 유장, 손책, 유기, 전부 다 샅바를 쥐었던 인물들입니다. 패배한 적도 더러 있지만 저는 대개 승리했습니다. 송경 조정에 이만 한 경력을 갖춘 제후가 있습니까?”
공융은 난처한지 땀을 삐질삐질 흘렸다. 먹은 술이 땀으로 다 배출되어 공융의 몸에서는 술 냄새가 진하게 났다.
“무, 물론 합비공의 말씀이 맞기야 맞습니다만……”
“맞습니다만, 뭐요?”
“저, 합비공께서는 송경과 멀리 떨어진 곳에 계시므로……”
나는 등을 편하게 펴며 소리 없이 웃었다.
“마음은 항상 천자께 가있는데요.”
“허, 이것 참, 천자께서 받아들이실는지……”
유비는 내 장인을 죽이고, 이 땅을 고스란히 삼키려고 했던 원수 중의 원수이다. 그리고 천자는 그를 몰래 빼돌려 방생해주었다. 사과 한 번에다가 왕랑인지 왕방울인지 하는 영감쟁이를 하나 해고했다고 용서될 만한 일이 아니었다. 천자께서 받아들이실는지……? 웃음이 나와서 웃었다.
“천자께서 받아들이지 않으시면 어찌하겠습니까?”
“아니, 어, 어찌하시겠다는 그런 건 아니지만……”
나는 오래 말을 타지 않아서 물러진 무릎을 주물거렸다.
“아, 물론 천자께서 윤허하실 때에 가능한 일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천자께 말씀을 올리는 것은 어찌 보면 신하된 자가 가지는 고유한 권한이 아니겠습니까? 그에 대한 처분을 얌전히 받아들이는 것은 신하의 의무이고 말입니다.”
내가 량이에게 눈짓을 하니, 량이는 둘둘 만 죽간 더미를 대령했다. 량이가 그것을 내 눈앞의 탁자를 내려놓았다. 나는 그 위에 손을 탁 얹고 공융을 향해 몸을 숙였다.
“이것은 저를 대사마에 천거하는 합비 신하들의 천거 상소입니다. 태부께서는 부디 이것을 천자께 전달해주십시오.”
량이에게 다시 눈짓을 하니 량이는 다시 그 아랫것에게 눈짓을 했다. 사환 여럿이 저마다 죽간 더미를 들고 바닥에 내려놨다. 말아놓은 죽간은 그 수효가 족히 오백을 헤아렸다.
“저것들은 양주, 형주, 익주, 예주의 선비들이 저를 대사마에 천거하는 글입니다. 저것들 또한 천자께 전달해주십시오.”
공융은 그 죽간더미들이 제 몸을 짓누르는 듯 호흡에 곤란을 겪었다. 그의 숨소리가 쌕쌕 내 귀에 잘 전달되었다.
“내일 날이 밝는 대로 돌아가시지요.”
공융은 얼떨떨한 눈빛을 나에게 보냈다.
“예… 그리하겠습니다. 배웅은 사양하겠습니다. 합비공의 공사가 지극히 다망하니……”
“그건 곤란합니다.”
공융은 세상에서 제일 멍청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에?”
“저도 내일 날이 밝는 대로 태부와 함께 갈 거거든요.”
“합비공께서도 송경에 가실 겁니까?”
“아뇨. 그 근처에 볼 일이 좀 있어요.”
나는 잘 모르겠다는 표정의 공융보다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먼저 들어가 잠자리에 들겠습니다. 태부께서도 안녕히 주무십시오.”
“아, 안녕히……”
나는 시영이 기다리고 있는 침소로 들어갔다. 꼴에 제후랍시고 부인 둘을 거느린 까닭에 침소를 찾는 일은 참으로 곤혹스러웠다. 차라리 오래 못 찾아 기분이 나쁘다면 나쁘다고 말이나 해주면 좋으련만, 이들은 기분이 상해도 도통 볼멘소리를 한번 하질 않았다. 결국 나는 침소를 찾는 날을 정확히 둘로 나누어 절반은 시영에게, 절반은 교에게로 갔다. 그러나 이날만큼은 그런 셈법이 없이 시영을 찾아야만 했다.
“부인, 천자가 유비를 빼돌린 까닭에 내가 으름장을 좀 놓았더니 오늘 사과의 말을 전하더이다.”
나에게 유비는 기반을 흔들어버린 정치적 적수의 의미가 더 컸지만, 시영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부친을 해치고 문중을 갈가리 찢어버린 불구대천의 원수였다. 시영은 나에게 괜한 부담감을 주지 않기 위해 얌전히 웃어보였다.
“그런가요. 그래도 잘 되었네요. 천자는 사과라든지 그런 것과는 거리가 있으신 분인데. 어지간히도 합비공이 무서웠나 봐요.”
“허나 이 정도로는 봐줄 수가 없소. 이것은 나의 복수이기도 하지만 부인의 복수이기도 하니까…… 천자만 아니었다면 지금쯤 유비는 다섯 갈래로 찢겨 죽었을 것이오.”
시영은 뜯어진 내 옷을 바느질하며 차분하게 말했다.
“복수심으로 정치하지 마세요. 그것은 하찮은 것입니다.”
시영은 말은 그렇게 했지만 답답한 심정을 감추지 못했다. 밤중에 바느질이라니, 그녀는 그것을 명분으로 하여 고개를 푹 숙이고 감춰지지 않는 제 표정을 어떻게든 가려보려고 하는 것이리라. 나는 바늘을 쥔 그녀의 손을 잡아 침대로 이끌었다. 그녀를 꼭 안고 잠자리에 들었다.
공융은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새벽과 아침의 경계였다. 그토록 이른 시간부터 무슨 일인지 사람들은 부산을 떨었다. 공융은 시비를 불러 송경으로 돌아갈 채비를 마치고, 객관을 나섰다. 객관을 지나 합비공부로 향하는 길에 공융은 예사롭지 않은 풍경을 보았다. 무수한 병사들이 무장한 채로 합비공부의 너른 마당에 도열해있었다. 영문을 모르는 공융은 발걸음을 질질 끌었다.
나는 외출 준비를 마치고 합비공부를 막 나서는 길이었다. 공융과 딱 마주쳤다. 공융은 내 인사를 받아주었지만 급하게 위 아래로 내 입성을 훑어보면서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나는 그의 당혹을 이해했다. 나는 가벼운 갑주로 무장을 하고 오른쪽 허리에는 칼을 묶었다. 왼쪽에는 어울리지 않게도 활과 전동(箭桐)을 매었다. 이마에는 비단으로 띠를 두르고 꼴에 아대까지 차고 있으니 놀랄 만도 하겠지.
“저, 전장에 나가십니까?”
공융의 눈이 심하게 흔들렸다. 어제는 대사마에 오르겠다고 큰 소리를 치고 송경 근처에 볼일이 있다더니, 이제는 아예 송경을 침략할 작정인가?
“뭐, 그 비슷한 건데요.”
내가 분명한 대답을 내놓지 않자 공융은 더욱 떨었다. 나는 장난기를 거두고 말했다.
“소일거리를 삼아서 서부교위(좌자)께 궁술(弓術)을 배웠는데, 그것을 시험해볼 겸 사냥을 나가려고 합니다. 그래도 제후가 사냥을 나가니까 이름은 대렵(大獵)으로 하고 어느 정도 인력을 동원하는 것입니다. 송경의 근처에 큰 사슴이 있다는 소문을 들어서요. 태부를 안전하게 모실 겸 해서 오늘 사냥을 나가기로 했습니다.”
“아, 사냥을요……”
“네. 유희로 생명을 해치는 것은 사실 내키지는 않지만 제후로서 위엄을 차리려면, 골방에 틀어박혀 있어서는 죽었다 깨어나도 안 된다고 누가 그래서요.”
나는 그러면서 자연스레 량이를 바라봤다. 량이는 그러든지 말든지 관심 없다는 표정이었다. 나는 량이에게 합비공부의 전권을 위임하고 송경의 남동쪽에 위치한 팽택(彭澤)으로 향했다. 공융과 내가 나란히 앞에 서고, 울긋불긋한 깃발들이 뒤를 이었다. 나는 좌자와 유엽을 거느리고 팽택으로 향했다. 이것은 순전히 유희를 위한 움직임인지라, 전쟁처럼 비장하지 않았다. 사치스럽고 화려하고 떠들썩했다. 기생들이 눈이 따가울 정도로 화려하게 치장을 하며 행렬의 중간중간에서 춤을 추면서 갔고, 악사들이 쉼 없이 음악을 연주하며 기생들을 독려했다. 병사들은 일만이 동원되었는데, 이들은 무거운 갑옷이 아니라 화려한 의복을 입고 풍성한 술이 달린 창을 받쳐 잡았다. 내가 올라탄 백마도 어지간히 떠들썩했는데, 목에는 금방울을 매달고 붉은 비단을 온몸에 둘렀다. 비단의 밑에는 자색 술이 찰랑거렸다. 꼬리는 뭉툭하게 잘라 상투를 틀 듯 금실로 묶고 이마부터 콧잔등까지는 금으로 삼고 옥으로 장식한 면렴(面簾)을 올리니, 내가 다 눈이 부셔서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하이고, 무슨 고삐에도 구슬을 박아놨어……”
요란도 하다! 대렵행렬은 량이의 주관 하에 구성되었는데, 하필 송경의 근방에서 이렇듯 대규모 사냥을 여는 것은 천자를 압박하기 위한 포석 중 하나였다. 전쟁이 아닌 사냥을 구실로 바로 송경의 턱밑에서 왁자지껄하게 사냥을 벌이면 송경도 마냥 강 건너 불구경으로 여기지 못할 터였다.
뿌우우― 요란하게 울리는 고둥소리에 나와 공융은 동시에 어깨를 움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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