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Peace Biography RAW novel - Chapter 305
량이는 이 물음에 대해서는 주저했다.
“그것은 확실하지 않습니다. 이미 서량에서 쫓겨난 신세입니다. 한중이 아니면 어디를 노리겠습니까. 서량으로 다시 돌아갈 수도 없고, 장안은 장합이 굳게 지키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러니까 마등은 개중에 나은 선택을 한 것뿐이지, 한중을 꼭 얻어야 한다는 생각은 아니라는 것이지.”
“그거야 맞기는 맞습니다만 상황이……”
나는 입가를 올렸다.
“이 상황에서는 네 말이 맞겠다. 천하에 불가능한 일은 없지. 상황이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는 거야.”
“무슨……”
“행궁을 한중으로 옮긴다.”
“한중은 곧 전화에 휩싸일 것입니다. 형님, 아니 전하께서 한중에 계신다면 아군의 전의를 북돋는 일이 되겠지만 언제 어디서 변고가 닥칠지 알 수 없는 일입니다.”
“한중이 전화에 휩싸일 일은 없어.”
량이는 옷깃을 매만지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모를 말씀을 오늘 유난히 많이 하시는군요.”
“이번 싸움은 창칼을 내려놔도 괜찮을지도 모르겠어.”
“으음……”
량이는 내 말을 곱씹다가 생각이 닿았는지 내 것과 닮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나는 그 다음날 곧장 한중으로 행궁을 옮겼다. 나는 다시 신의•신탐 형제에게 상용을 맡겼다. 상용으로 가는 길목에서, 나는 참군으로 나를 보좌하는 백각령 장송을 한 수레에 나란히 앉혔다.
“고향으로 가는 기분이 꼭 좋지만은 않을 것 같소이다.”
내 말에 장송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살짝 숙였다.
“죄인이 아닙니까. 처자식과 일가친척을 다 죽이고 저만 살았습니다. 죄인의 심정으로 고향에 가는 기분은 정말이지……”
장송은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봤다.
“최악이군요.”
자업자득이라는 말은 그의 죄를 정당화시킬 수는 있어도 그의 슬픔을 정당화시킬 수는 없었다. 나는 잠깐 그를 동정했다.
“백각령.”
내 부름에 장송이 각성된 표정으로 대꾸했다.
“예? 아, 예. 송구하옵니다. 신이 지나치게 감상적으로……”
나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런 것이야 얼마든지 용납하오. 신하의 감상을 받아들이는 것이 군신의 의리 아니겠소? 고는 도리어 그것이 고맙소이다. 다만 고가 경에게 물은 까닭은, 경의 그 마음이 조금이라도 나아질 방법을 고가 강구하였기에……”
장송의 좁쌀눈이 크게 떠졌다.
“그러한 방법이 있습니까?”
장송이 혹할 만도 했다. 내가 한중으로 나아간 까닭이 비단 방통을 처단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아예 익주를 병탄할 생각이라는 것을 그도 알았을 터였다. 그러나 다분히 장송 개인적인 입장에서 보자면 익주의 병탄은 마냥 달가운 일이 아니었다. 익주가 신왕부의 강역이 된다고 한들 그가 촉왕을 등진 변절자이고, 촉을 팔아버리려고 했던 매국노라는 점은 변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차에 내가 그 죄책감을 감쇄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였다고 하니, 혹할 밖에.
“그렇소. 고는 경에게 그 소임을 맡기고자 하오.”
“무슨 일이든 맡겨만 주십시오, 신이 해내겠습니다.”
나는 싱긋 웃었다.
“경의 마음이 그러하다면, 경은 한중까지 동행할 필요가 없겠소이다.”
“예?”
나는 그에게서 시선을 거두어 다시 정면을 바라봤다. 나에게서 몇 마디 말을 들은 장송은 내 수레에서 내려, 바로 마필을 갈아타고 다른 곳으로 향했다. 나 홀로 올라탄 수레는 부단히 한중으로 향했다.
본디 군왕을 대우하는 예법에 따르면, 나의 수레가 한중에 닿기도 전에 떠들썩한 환영인파가 있어야 옳았다. 그러나 한중의 동문을 통과할 때까지 무덤길처럼 고요했다. 나를 따라온 전장군 조운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말했다.
“어째서 익북도독(감녕)은 전하를 영접하지 않는 것입니까?”
나는 말없이 웃기만 했다. 량이가 대신 말했다.
“그것이 신왕부의 예법입니다.”
조운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그것이 어찌 예법이란 말이오? 군주가 친히 전선까지 거둥하였거늘 변방의 장수가 마중도 나오지 않는단 말이오?”
“사소한 의전을 고려하면 전장에 소홀할 것이고, 전장에 소홀하면 승산이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장수가 전장에 나서 패배하는 것이 가장 큰 불충이 아닐는지요.”
“그건 그렇소만.”
“본분을 망각한 의전은 예의가 아니라 아첨입니다. 전하께서는 아첨꾼을 미워하십니다.”
량이의 말에 조운이 웃음을 터트렸다.
“이거, 정청령께 한 가지 빚을 지고 말았소이다. 오늘 이 말을 듣지 못했으면 훗날 아첨꾼이 될 뻔했소.”
그는 내 쪽을 바라보며 읍을 올렸다.
“전하, 신의 어리석음을 해량해주십시오.”
나는 지나치게 고요한 주변을 두리번거리고는 조운에게 속닥거렸다.
“아첨 조금 부리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방금 들었습니다.”
한중의 성루에 올라서야 감녕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감녕은 나를 보자 장읍을 올렸다.
“전하의 거둥하심을 듣고도 마중을 나가지 못하였으니 신의 불충을 용서해주소서.”
나는 손을 내저었다.
“도독 스스로도 불충이라고 생각 안 하고 있잖소? 우리 그런 시시껄렁한 예법 타령은 관둡시다.”
감녕은 슬그머니 웃으며 모은 손을 바로 했다. 나는 그에게 차를 한 잔 얻어 마시며 간단한 전황을 들었다. 큰 변동은 없었다. 서량의 한수와 장안의 장합은 움직이지 않았고, 마등 역시 양천만이 이끄는 저강의 병력과 합친 후 움직일 요량이었다. 상방법사의 병력은 한중으로 진입하기 위해 백수관을 열심히 두드리는 중이었다.
“백수관이 단단한 관문이기는 하지만 적의 병력이 과히 많고 치밀한 재산들이 많아 언제 뚫릴지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말씀 올리는 것이온데, 차라리 상존과 마등의 군세가 합쳐지기 전에 적을 요격함은 어떠할는지요.”
이에 내군경 손관이 동조했다.
“익북도독의 말씀이 옳습니다. 한중의 지세만 믿고 적이 뭉칠 때까지 기다린다는 것은 지나치게 안일한 병법입니다.”
나도 그것이 나쁘지 않은 생각이란 것에 찬성했다.
“고 또한 이의는 없소이다.”
량이가 거들고 나섰다.
“전하께서 백각령 장송에게 따로 맡긴 소임에도 지장이 없으니, 따르지 않을 까닭이 없습니다.”
전원의 의견이 일치된 까닭으로 나는 마등에 대한 요격을 최종적으로 승인했다.
“좋소이다.”
나는 감녕을 바라봤다.
“허약하기 짝이 없는 고가 전장에 나서봤자 억센 서량 촌놈들의 비웃음만 살 뿐이오. 경이 친히 나서 놈들에게 규규무부의 솜씨를 제대로 보여주도록 하시오.”
감녕은 주먹으로 씩씩하게 가슴을 두드렸다.
“맡겨만 주십시오!”
내군경 영자가 아주 당연하게도 항의했다.
“전하! 익북도독은 마땅히 이 방면의 책임자로서 한중을 수비해야 합니다. 소장을 보내주십시오.”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장수들의 선봉다툼이 시작되었다. 영자의 항의를 감녕이 다시 항의했다.
“내군경! 내군경께서는 중앙군의 수장이 아닙니까? 내군경이야말로 몸을 조심하셔야 합니다. 말씀하신 대로 한중은 소장의 소관이니 마땅히 소장이 나서겠습니다.”
“도독, 그것은 틀린 말씀입니다. 중앙군의 수장은 엄연히 여 태위이시지 본관이 아니올시다.”
“아니 그래도 태위께서는 실무를 처리하신다기보다는 다만 내군의 상징적인 존재로서……”
나와 량이는 따분한 표정으로 쓸데없는 토론을 관전했다. 우리 같은 먹물들은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는 진정한 무부들의 토론이었다. 어휴, 땀 냄새. 스스로 자청해서 창칼이 번뜩이고 먼지가 풀풀 날리는 판에 나서겠다니 죽었다 깨나도 이해하지 못할 세계였다. 감녕이 가면 어떻고 영자가 가면 또 어떠한가. 나는 저 소란이 빨리 끝나기만을 소망했다.
“익북도독께서는 한중을 지키셔야 하고 내군경께서는 중앙군의 수장이시니……”
젠장! 나와 량이는 동시에 절망적인 한숨을 토했다. 전장군 조운이 저 멍청한 토론에 참전할 의사를 표명했다. 저 멍청이들! 감녕과 영자는 경계심이 가득 찬 눈빛으로 조운을 바라봤다.
“소장이 가지요. 소장은 그간 신왕 전하께 진 마음의 빚을 갚지 못하였는데 이번이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감녕과 영자는 입을 모아 한 목소리로 조운을 규탄했다.
“어허! 엄연히 군에는 지엄한 상하가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조 장군이 용맹하다지만 이 감녕은 이 방면의 수비를 책임지고 있고, 내군경께서는 내군의 으뜸이시니 조 장군이 끼어들 계제가 아니올시다!”
그래, 조자룡은 잠깐 빠져있지 그래…… 내가 지친 눈빛으로 애걸복걸했지만 감녕의 이 말이 조운을 제대로 자극한 모양이었다.
“도독! 어찌 그리 말씀하십니까! 군부의 상하가 명징한 것을 소장도 압니다만, 창칼을 다루고 병마를 다스리는 일에 있어서는 도독과 내군경께 절대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합니다!”
조운이 왈칵 소리를 지르자 감녕과 영자의 자존심이 부글부글 끓었다. 이제는 발음마저 또렷이 들리지 않을 정도로 완전히 저자거리 좌판이 되고 말았다. 이제는 내 인내심이 바닥나려고 했다.
“요격은 마땅히 소장이 해야 합니다! 본관이 익주에서 금범적이란 이름으로 해적질을 할 때 건너편의 도적놈 오십 여를 홀몸으로 싸워……”
“고작 오십 인 갖고 그러십니까? 이 손관으로 말할 것 같으면, 신왕 전하를 모시고 청주의 황건 잔당인 서화와 사마구를 칠 때의 얘긴데 홀로 나아가 이백의 적병을 상대로……”
“어흠, 과거 유비를 섬길 적에, 소장 자룡은 단기필마로 나서 조조의 병마를……”
“전장군은 유비를 섬긴 것을 지금 자랑스레 떠드는 것입니까?”
“지금 중요한 것은 유비가 아니라 소장이 단기필마로 나서서 모조리 적을 무찔렀다는 것이지요!”
“다들 무용을 자랑하시는데, 전장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지세를 잘 활용하는 것이올시다. 소장 감녕은 한중에 오래 있으면서 지세를 꿰뚫고……”
“무용을 먼저 자랑한 것은 익북도독이 아니십니까?”
“아, 그러니까 무용도 중요한데 더 중요한 것은 지세를 꿰뚫는 것이며……”
도저히 못 참겠다. 나는 양 손으로 탁자를 있는 힘껏 내리치면서 소리를 빽 질렀다.
“닥치시오!”
내 외침에 세 무장이 고래고래 빚어내던 소란이 뚝 그쳤다. 셋은 순한 눈망울을 깜빡이면서 내 쪽을 바라봤다. 나는 잦아든 소란에 그제야 분노를 잠재울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