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Peace Biography RAW novel - Chapter 322
정욱은 입술을 악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합니다.”
이번에는 주유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광록훈의 생각도 승상과 같은가?”
주유는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신의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조조는 주유의 말을 교정했다.
“많이 다를 것이다.”
“기실 그렇습니다.”
“말하라.”
주유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입을 열었다.
“필시 제갈찬이 애지중지할 코끼리를 제아무리 오수의 일원이라지만 일개 상인이 빼돌리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조조는 고개를 끄덕여 공감했다.
“그렇지.”
“그것은 저자의 머저리 같은 백성들도 짐작할 만한 내용입니다.”
전위는 주유를 흘겨보면서 새초롬한 표정을 지었다.
“제갈 씨의 여우들이 이렇게 얕은 거짓항복을 구사할 리가 없지요. 허면 이것은 우리에게 일부러 보여주는 함정인 것입니다. 왜 일부러 함정을 보여줄까요?”
정욱은 무언가를 깨닫고 말했다.
“또 다른 함정을 파놨다는 것인가!”
주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대체 어떤 함정이……”
“그것이야 차차 두고 보면 됩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놈들의 의중을 파악했다는 것이지요.”
조조는 주유의 말에 한 마디도 보태지 않았다. 전적으로 동의한다는 뜻이었다.
전장군 육의와 화평장군 황충, 파로장군 엄안, 백각경 가후, 백각대부 우번이 나의 소환에 응해 접견했다. 개중 가장 품계와 위신이 높은 가후가 대표하여 물었다.
“모인 면면을 보아하니 범사(凡事)에 관한 것은 아니겠지요. 전하께 까닭을 여쭤도 되겠습니까.”
그가 묻자 모인 사람들의 시선이 내 입으로 쏠렸다. 나는 웃음을 지었다.
“뭐가 그리 급하시오? 차나 한잔들 하시오.”
내가 그리 말하자 눈치 좋은 시녀들이 차와 간식이 담긴 상을 사람마다 하나씩 놓았다. 나는 시시한 얘기들을 건넸다.
“우 대부(우번), 할 만하시오?”
내 물음에 우번은 긴장한 표정으로 머리를 숙였다.
“예, 백각경에게 배우면서 조금이라도 나라에 보탬이 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백각경에게 너무 많이 배우지 마시오. 고는 빨리 죽고 싶지 않소이다.”
우번은 당황했다.
“네?”
“저 여우가 고를 손바닥에서 놀려먹을 때마다 고의 수명이 족히 몇 달씩은 깎이는 것 같거든.”
가후는 시시하게 웃으면서 반박했다.
“신의 충절을 놀려먹는다고 말씀하시다니, 섭섭합니다.”
나는 눈을 흘겼다.
“저것 봐. 여우.”
우번은 어색하게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전하의 말씀대로 하겠나이다.”
가후는 별로 관심이 없는 눈치였다. 말린 과일만 넙죽넙죽 주워 먹고 있었다. 나는 속으로 콧방귀를 뀌고 본론으로 들어갔다.
“경들은 서주 동해국의 구현(朐縣)으로 가도록 하시오.”
내 명령에 그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전장군 육의가 의문이 가득한 표정으로 물었다.
“전하, 동해국 구현은 북비와 인접한 전선도 아니거니와 어떤 사업을 벌일 만큼 번화하지도 않았습니다. 다만 바다와 인접했다는 것을 빼고는 전혀 쓸모가……”
육의는 그렇게 말하다가 무언가 깨달은 표정으로 입을 벌렸다.
“아……”
가후도 감을 잡았다는 표정이었다.
“전장군이 답을 말했소. 동해의 구는 대규모 항구를 갖추기에 적절한 땅이오.”
가후는 눈을 빛내며 자신의 생각을 확인하고자 했다.
“함선을 건조하실 요량이십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여 확인해주었다.
“그렇소.”
“북비를 정벌하기 위한 함선이십니까?”
“그렇소.”
나는 구체적인 분부를 내렸다.
“대선 오십 척과 중선 백 척, 소선 이백 척을 건조하도록 하시오. 중상(우번의 字)이 구현으로의 목재 운반을 총괄하시오.”
우번은 엎드려 내 명을 받들었다.
“알겠습니다, 전하.”
“백각경은 전장군 육의, 화평장군 황충, 파로장군 엄안을 부장으로 삼아 병력 일만을 이끌고 구현에 주둔하도록 하시오.”
육의는 퍽 놀란 표정을 지었다.
“겨우 일만이요……?”
사방장군 중 하나인 육의를 주장으로만 내세웠어도 족히 수만의 병력을 거느리는 것이 통례였다. 그런데 육의를 포함한 유수의 명장들을 부장으로 두고 명실 공히 문반의 으뜸인 가후를 주장으로 앉혔으면서 고작 일만의 병력만을 차출한다? 이치에 닿지 않았다. 나는 육의의 의문을 이해했다. 그러나 그가 잘못 들은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 일만이다.”
가후는 내 의중을 짐작한 듯, 수긍했다. 그러고는 바로 옆에서 나를 보좌하는 제갈량을 바라봤다.
“이것은 정청령 합비후의 복안인가?”
가후의 물음에 제갈량은 미소를 지었다.
“전하의 복안입니다.”
나는 턱을 괴고 툴툴거렸다.
“여우들끼리 대화를 나누고 있군.”
가후는 흐흐 웃으면서 나를 향해 절을 올렸다.
“당분간 못 뵙겠군요. 구현으로 바로 떠나겠습니다.”
“가서 톱밥이나 듬뿍 뿌리고 오시오.”
“명대로 합지요.”
가후는 육의, 황충, 엄안, 우번을 거느리고 편전에서 물러났다. 그들의 미더운 뒷모습을 끝까지 바라봤다. 그들이 온전히 빠져나가고도 여운은 길었다.
그들에 이어서 편전에 들어온 것은 태위 여포, 내군경 손관, 토역장군 주환이었다. 여포는 나에게 예를 갖추었으나, 나는 그가 국구(國舅)임을 수차례 강조하여 지극한 예의는 사양했다. 어느덧 노장의 풍모가 나는 그를 복잡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아, 가는 세월이여.
“어찌하여 찾으셨습니까, 전하.”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강단이 넘쳤다. 나는 그 목소리가 좋아서 웃었다.
“야수를 들판에 풀어놓을까 합니다.”
“오, 그 야수란 늙은 야수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나는 여포, 손관, 주환을 차례대로 바라보며 말했다.
“늙은 야수 하나, 젊은 야수 둘.”
여포는 흡족하게 웃었다.
“늙은 야수가 바라마지 않는 바입니다. 백각경을 동해국 구현으로 보냈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허면 이 여봉선이 백각경의 후발대로서 가면 되는 것입니까?”
나 대신 제갈량이 고개를 천천히 저으며 부정했다.
“아닙니다. 태위께서는 서주가 아니라 예주로 가주십시오.”
여포의 왼쪽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예주……?”
“그렇습니다, 예주로 가주십시오.”
여포는 나를 바라보며 그 까닭을 물었다.
“전하, 이 늙고 아둔한 머리로도 조조를 여러 방면으로 나아가 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여겨집니다. 조조를 얕보시면 안 됩니다. 놈은 하북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주는 무릇 연주를 견제하고 서주는 무릇 청주를 견제하지 않습니까? 전하께서는 지금 연주와 청주를 동시에 얻으시려는 생각이십니까……? 뱀이 사슴을 삼키려다가 턱이 찢어지고 마는 법입니다.”
여포답지 않게 사설이 길었다. 역시 늙으면 자연발생 되는 지혜가 있는 것인가. 나는 여포의 우려를 불식시켜주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고의 생각이 아니라 공명의 생각입니다. 모든 것을 염두에 두었으니 태위, 아니 장인께서는 믿고 따라주십시오.”
그 말에 여포도 안심이 되었는지 옅은 웃음을 머금었다.
“그렇게 말씀하신다면야 안심입니다. 하기야, 어련히 잘 하셨으려고. 늙으니까 주책이 늡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