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Peace Biography RAW novel - Chapter 336
“주환! 네놈의 소임이 대체 무엇이냐! 태위가 저 지경이 되도록 방관하는 것이었느냐!”
주환은 몸을 떨면서 나에게 아뢨다.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전하!”
제갈량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주환을 변호했다.
“파로장군 주환은 현명한 선택을 한 것입니다. 태위께서 관우의 도발에 넘어가 단기필마로 뛰쳐나갔고, 태위의 군단이 구출하기 위해 출진하였으나 주환은 전군을 동원하지는 않았습니다. 만일 주환이 전군을 몰아 관우를 쳤다면 반드시 대패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또한 전군을 동원한다 한들 이미 적군에 둘러싸인 태위를 온전히 구출하기란 어려웠을 것입니다. 전하, 주환의 판단이 옳았습니다.”
나는 제갈량을 노려보며 그의 진언을 일축했다.
“듣기 싫다!”
제갈량은 숨을 내쉬며 살짝 몸을 틀었다. 전선에서 복귀한 고순도 주환을 지지했다.
“전하, 파로장군 주환은 아군을 확실히 정비한 후에 나아가 궤멸 위기에 처한 태위의 병력을 구해냈습니다. 그의 공이 아예 없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누구보다 여포에 대한 충심이 깊은 고순임을 알았기에, 나는 그에게까지 폭언을 가할 수 없었다. 나는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군의가 다급히 다가와 피칠 갑이 된 여포를 진찰했다. 나는 그 모습을 한참 바라봤다.
이 싸움으로 여포의 직할 병력 칠천이 목숨을 잃고, 일만이 전투불능이 되었다. 관우의 피해도 적지는 않았으나, 질서가 없이 순전한 분노로 덤벼든 여포의 병력보다는 상태가 나았다. 관우는 이전과 마찬가지로 굳건한 방비태세를 유지했다.
청주에서는 가후가 전령을 보내 청주 남부를 지탱할 병력을 제외하고는 해산할 것을 권유했다. 또한 하내에서도 소식이 당도했는데, 조조가 하내를 과감히 기습하여 곽원과 곽준을 크게 이겼다고 했다. 물론 조조는 하내를 수복시키지는 못했지만, 곽원과 곽준으로 하여금 진격의 의지를 상실시키는 데는 성공했다. 특히 곽준은 나의 장군이 아닌 송경의 장군이었으므로 더욱 전의가 흐렸다. 곽원 역시 나의 제안에 응하고 낙양 공략에 선봉을 자임하여 전공을 세웠기에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상태였다. 이 이상 더 피를 흘려봤자 그에게는 이로울 것이 없었다. 그의 목적은 전후에도 홍농과 하동 일대에 영향력을 유지하고 싶을 터였다. 항장 출신인 곽원이 신왕부에서 유력가로 남으려면 반드시 그리해야만 했다. 그러려면 지닌 병력을 보존하는 것이 중요했다.
노숙 역시 병주의 중심까지 진군하는 것에는 회의적이었으므로, 병주와 청주 전선은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조조가 하내에서 반격에 돌입해 승리를 거두고, 관우가 여포의 병력을 섬멸시키면서 조군은 어느 정도 전열을 가다듬고 반격의 기회를 엿보게 되었다.
이 상태에서 더 전선을 유지하는 것은 그에게 유리하고 나에게 불리했다. 나는 이미 홍농, 낙양, 하내, 하동, 평양, 상당을 얻었고 청주의 남쪽을 얻었으니 이 원정의 일차적인 목표는 달성된 것이었다.
“퇴군하시지요, 전하.”
제갈량이 권유했고, 나는 받아들였다.
“전군, 개가를 울려라. 합비로 개선하겠다.”
나의 명령에 모든 장군들이 절을 올렸다.
“승전을 감축 드리나이다, 전하!”
나는 억지웃음으로 그들의 축하에 화답했다.
병주, 연주, 청주의 병력이 일제히 물러났다. 나는 궐위가 된 예주부도독을 새로 선임하고 손바닥만 한 땅이지만 개척한 청주의 남부에 청주자사부를 설치하고 청주자사를 파견했다. 병주에도 그리하였으며, 낙양과 하내에도 그리했다.
홍농과 하동은 곽원에게 맡겼다. 가장 이상적인 포석이라면 그를 상찬한다는 명목으로 중앙에 소환해 붙들어놓고, 홍농과 하동을 친히 다스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럴 수는 없었다. 홍농은 오랫동안 곽원의 기반이었으므로 민심이 그에게 우호적이었고, 특히 하동은 곽원의 고향이었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다. 이제 갓 개척한 땅이다. 민심을 다잡아야 하는 지역에서 곽원을 중앙으로 소환해버리면 민심과 유력가의 불만을 수습하기 어려울 터였다. 곽원은 홍농도독이 되어 홍농과 하동을 다스렸다.
장안의 장합 역시 송경 천자의 벼슬을 받기로 결정했다. 장합은 유총으로부터 장안태수가 제수되었다. 그러나 이는 불가침의 제휴일 따름이지, 장합이 내 밑으로 들어왔다는 의미는 될 수 없었다. 량왕 마등이 송경의 작위를 받은 것과 같은 이치였다.
그렇게 합비로 귀환했다. 분명 많은 것을 얻은 원정이었지만, 마음이 개운하지 않았다.
합비로 회군하는 속도는 최대한으로 낮췄다. 마차는 떨림이 심하여 여포의 상처가 덧날 위험이 있으니, 사람이 드는 가마에 태웠다. 그 가마꾼들의 걸음에 맞춰 회군이 이뤄졌다.
도중에 청주의 가후가 합류했다. 나는 가후의 공을 크게 상찬했다. 기대하지 않았던 청주 전선에서 몇 개의 고을을 얻었다. 그것도 명장 하후연을 상대로. 그러니 상찬할 수밖에.
가후는 말에서 내려 제갈량의 마차를 얻어 탔다. 그들은 내가 사마보다 한참 뒤처져서 갔다.
“시도는 좋았네, 공명.”
가후는 먼 곳을 바라보며 뜬금없는 말로 운을 뗐다. 제갈량은 그의 말을 짐작했으나 구태여 바로 알아듣는 모양새를 취하지 않았다.
“무슨 말씀이신지.”
가후는 가만히 웃었다.
“잔혹과 냉정은 군주에게는 독약이나 참모에게는 미덕이지. 조금씩 공명이 나라를 붙들 참모가 되는 듯하군. 좋은 일일세. 태위께 사감은 없지만 나라를 위한 쓰임은 이미 다하셨지.”
제갈찬을 향한 여포의 마음은 한 점 의심 없었지만, 그를 추종하는 자들이 위험했다. 서촉의 장료와 예주의 고순은 요지를 직접 다스리며 막강한 병력을 거느리고 있다. 이들은 중앙의 정치에는 큰 관심이 없으나 잠재적 위협이 될 소지가 있었다. 삼왕후 춘군이 원자를 생산하고, 내사령 종요가 춘군과 가까워지는 판국이었다. 여씨는 외척이고, 고래로 외척이 강해서 나라가 잘 되는 일은 없었다. 춘군이 종요의 당으로 조정을 장악하고 장료와 고순을 포섭하여 바깥의 창칼로 둔다면 나라에 해악이 되리라 가후, 그리고 제갈량은 확신했다. 또한 이번에 곽원이 신왕부에 귀순했다. 종요와 인척간인 그가 새로이 편입하면서 합비궁의 정치가 점점 첨예해질 터였다. 가후, 그리고 제갈량은 위험수위에 도달했다고 판단했다. 전초제근 할 필요가 있었다. 화살을 여러 개 묶어놓은 다발은 부러뜨리기 힘든 법이니, 그 다발을 흩뜨리는 것이 중요했다. 화살을 묶은 끈은 태위 여포였다.
제갈량은 여포를 전면에 내세우고, 최전선에 있던 고순을 주환으로 교체했다. 이미 주령이 우익을 타격하기 위해 출정했다는 정보를 제갈량은 입수한 상태였다. 고순을 우익으로 보내 주령과 겨루게 하여 여포가 있는 전선에는 신경을 쓰지 못하도록 했다.
그는 여포를 내세우면 관우가 반드시 도발의 병법을 쓰리란 걸 알았다. 그리고 주위에서 만류할수록 도발에 쉽게 넘어간다는 사실 또한 알았다. 만류가 주환의 임무였다. 여포가 수렁에 빠지면 그의 병력을 보내어 구하도록 했다. 그리고 한참 뒤, 주환이 직접 병력을 이끌고 구하도록 했다. 그 사이에, 제갈량은 여포가 죽기를 바랐다. 그러나 주환은 인정에 흔들렸고, 예상보다 빨리 여포를 구해내면서 여포의 목숨이 여전히 붙어있게 되었다.
제갈량은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주환이 일을 그르쳤습니다……”
가후는 제갈량의 말을 들었지만, 구태여 반응하지 않았다. 그는 신왕 제갈찬이 올라탄 사마를 흘끗 바라보며 말했다.
“전하께서는 그대의 생각을 알고 계셨을까?”
가후의 물음에 제갈량은 확신에 찬 대답을 내놓지 못했다. 다만 느낌에 의존하여 추측할 뿐이었다.
“아마,”
제갈량은 어두운 표정으로 운을 뗐다.
“모르시진 않았을 겁니다.”
개선군은 합비로 천천히 나아갔다.
합비궁에 당도하니, 조정의 대신들과 왕후들이 멀리 마중 나와 나를 맞이했다. 시영이 살짝 허리를 숙이며 예를 표했다.
“승전을 감축 드립니다, 전하.”
시영이 말하자 모든 대신들이 엎드려 외쳤다.
“감축 드립니다! 전하!”
나는 웃으며 답했다.
“고맙소. 그간 무탈하셨소?”
시영도 웃었다.
“예, 전하께서 무사히 돌아오시기만을 기다렸습니다.”
나는 사마에서 내려 시영의 손을 한번 꼭 잡고, 이어 춘군에게 다가갔다. 춘군의 표정은 결코 밝지 않았다. 여포의 소식이 춘군의 귀에 이미 들어가 있었다.
“태위의 일은 고가 참으로 미안하게 생각하오.”
춘군은 눈물을 훔치며 고개를 저었다. 그녀에게도 눈물이 있었다.
“어찌 그리 말씀하십니까. 도리어 신첩의 아비가 적군에 패퇴하였으니 신첩이 대신 사죄 올리나이다.”
종요를 가까이 둔 일로 그녀에게 모진 마음을 품었던 차였다. 그 모진 마음이 그녀의 눈물에 천천히 녹아 없어졌다.
“원자를 대리하여 청정하느라 고생이 많았소. 태위의 일로도 마음이 크게 상하였을 터이니 당분간 쉬시구려.”
“하해와 같은 배려가 지극히 황망하나이다……”
나는 종요를 돌아보며 묘한 웃음기를 머금었다.
“내사령, 수고가 많았소.”
종요는 허리를 숙였다.
“더 잘 보필하지 못해 송구한 마음일 뿐입니다, 전하.”
나는 입술을 한번 씰룩이고 말했다.
“경이 여비에게 권하여 월주의 의원을 궁내에 들였다 들었소. 사실이오?”
종요는 나를 한번 올려다보고는 다시 허리를 숙였다.
“그러하나이다.”
“적절한 일은 아니었다고 생각하오. 왕실의 인사는 전적으로 고에게 그 권한이 있소.”
“…다만 삼왕후의 주치의를 들이는 일이라 크게 고민하지 않았사옵니다. 전하의 어심을 어지럽게 했다면 진정으로 사죄드리나이다.”
“태위께서 위중하게 되셨으니 그 의원을 태위의 주치의로 삼는 게 좋겠소. 합비의 의원들보다 확실히 실력이 나을 테니까. 당장 출궁시킨 후, 오원왕부(여포의 봉작은 오원왕)에 배속시키도록 하시오. 내사령이 친히 황궁에 들이려던 의원이니, 반드시 태위가 쾌차하도록 할 수 있겠지?”
종요는 눈을 깜빡이면서 허리를 더욱 깊이 숙였다.
“그, 그것은 장담할 수가 없는……”
“장담할 수 없는 의원을 궁내에 들이려 했단 말인가.”
나의 목소리가 약간 높아졌다. 종요가 뭐라 말하려는 것을 내가 막고 내 말을 그의 귀에 욱여넣었다.
“태위께서 잘못되신다면 의원은 물론 내사령에게도 그 책임이 있음을 분명히 인지하셔야 할 것이오.”
종요는 침을 꿀꺽 삼키며 더욱, 더욱 깊이 허리를 숙였다.
합비궁 전체에 하얀 천이 나부꼈다. 모든 관리들과 모든 궁인들이 하얀 상복을 입었다. 이따금 곡소리가 들렸다. 합비궁 정청에 빈소가 마련되었다. 조문하러 온 이들로 장사진을 이뤘다. 빈소에 피운 향의 냄새가 그 장사진을 따라 하얗고 긴 선을 그리며 날아갔다. 나도 상복을 입고 빈소로 나아갔다. 왕후들과 아직 죽음을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어린 나의 자식들이 내 뒤를 따랐다.
빈소를 지키는 고인의 유족이 눈물을 찍어내면서 나에게 절을 올렸다. 나는 만류했다. 그들의 슬픔 위에 예의를 갖추는 수고까지 강요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고인의 위패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향을 피웠다.
“고생이 참으로 많으셨습니다……”
나는 대답할 수 없는 이에게 위로의 말을 건넸다. 마음이 스산했다. 유족들은 나에게 머리를 조아렸다. 나는 그들의 등을 토닥이고는 몸을 일으켰다. 나는 신왕부에서 가장 지체 높은 이다. 그런 주제에 빈소에 오래 뭉개고 있으면 크나큰 실례다. 나는 천천히 빈소의 밖으로 나왔다.
의전을 담당하는 제축대부 두습이 내 옆으로 바짝 붙었다.
“전하, 응당 시호를 올려야 할 것입니다.”
나는 두습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오. 이는 제축대부가 휘하와 협의한 후 품신하도록 하시오. 악시(惡諡, 뜻이 나쁜 시호)만 피하면 되오.”
“어찌 악시를 올리겠습니까. 허면, 전하의 분부대로 하겠나이다.”
“시호를 올리는 즉시 공신각에 배향하도록 하시오.”
두습은 허리를 숙였다.
“명을 받들겠나이다.”
이로써 신왕부의 공신각에 배향된 신하는 유복, 장송에 이어 세 명째가 되었다. 나는 하늘을 바라보며 숨을 뿜었다.
“하나 둘 떠나가는구나.”
바람이 몰아대는 까닭으로 빠르게 떠가는 구름이 원망스레 느껴졌다.
빈소는 사흘 만에 거둬졌고, 두습은 소(昭)라는 시호를 올렸다. 시법에 따르면 시호 소는, 견문이 뛰어나고 두루 통달한 이에게 올리는 시호라고 하였으니 참으로 온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