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Shrine RAW novel - Chapter 1036
“망할.”
해가 저무는 것을 보며 난 이를 갈았고 저수는 씩 웃었다.
“이틀이 지났지만 저들은 아직 미동도 없군요.”
“아, 아냐! 아직 안끝났어!”
나는 저 밖에 있는 탁발부의 군세가 이틀 안에 항복을 할 것에 걸었고 저수는 사흘에 걸었다.
해가 질 때까지 미동도 없다니.
하다못해 반란이라도 일어났으면 싶었지만 그런 것도 없다.
그저 폭풍 전의 고요처럼 저들은 조용하고 얌전할 뿐 이었다.
손톱까지 씹어가며 기다렸는데 별 반응이 없다.
난 불안감에 발을 동동 굴렀다.
“하… 미치겠네.”
해가 저물고 있었지만 탁발부에서는 여전히 변화가 없었다.
“이제 몇시진 남지 않았군요.”
“큭. 혹시 모르는 거라고. 오늘은 보름달이 뜨는 날이니까. 밤에 움직여서 항복할 수도 있지.”
라고 애써 말했지만 난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또 졌다!
아니 난 왜 내기만하면 이렇게 지지?
이제는 다른 이들과 내기도박을 하면 안될 것 같다.
하면 지냐. 어째.
중재자로 나와 저수의 금을 가지고 있던 하후상은 탁발부의 군세가 있는 쪽을 보다가 망루 위로 손짓했다.
망루에서 깃발이 흔들린다.
“적들은 아직 큰 움직임이 없다고 합니다.”
“…아는 얘기 하지 말아줄래? 그건 나도 보이거든?”
“하하. 예.”
저수가 자신만만한 웃음을 짓는 것을 보니 짜증이 치밀었다.
“기분 나쁘니까 다들 좀 꺼져줄래? 응? 옆에서 웃지 말고.”
다들 훈훈하게 웃는다.
아니 내가 지는게 좋냐?
“에잉!”
내가 궁시렁거리자 저수는 작게 웃었다.
“승상부주께서는 앞으로 내기도박은 하지 말아주셨으면 하는군요.”
“큿. 이런 굴욕이. 승부사로서의 자질은 없는건가!?”
“오랫동안 승상부주를 모셔왔지만… 그런 것 같습니다.”
옆에 있던 하후상이 한마디 거든다.
그리고 다른 흑귀대원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망할.
“아니 가주님은 맨날 내기만 하면 지잖수. 내기 안하면 이기고. 어떻게 보면 그것도 재주여.”
저수 뿐만이 아니다.
옛날에도 다른 이들과 내기도박을 많이 했었다.
종목도 다양했다.
바둑, 장기, 골패, 그 외에 다른 것들까지.
“오죽했으면 패배의 표하라고 불리겠습니까.”
하후상이 실실 웃으며 말하자 난 고개를 숙였다.
진짜 환장하겠다.
더 열받는건 사실이라서 항변할 수가 없다는 거다.
돈 걸고 내기하면 맨날 지니 이거 오기가 생겨서 더 하게 된다.
“이틀 전에 저와 한 장기도 패배하셨지요.”
세상에.
저수 뿐만 아니라 장료에게까지 질 줄이야.
장료가 진짜 장기 잘두더라.
그래도 무관이니까 좀 못하겠지 싶었는데.
차와 포를 떼고 해도 내가 졌다.
내가 원한을 담아 노려보자 장료는 빙긋 웃었다.
“북방에 있을 때 사마도련님… 경조윤과 자주 뒀습니다.”
“큭… 사기꾼.”
“아니 그걸 사기라고 하셔도… 다른 분들과의 내기에서도 항상 지셨던 것 같은데.”
“끙…”
이상하게 난 아군과 내기도박을 하면 승리하는 경우가 드물었다.
아주 가끔씩 한두번 이기기는 하지만 전적을 생각한다면 그야말로 끔찍한 수준
가끔씩은 내가 사실 호구가 된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아무튼 내일 아침 해가 뜰 때까지 적들의 반응이 없으면 승상부주는 패배하신 것으로 알겠습니다.”
“워. 너도 모르는거야. 내일 쟤들이 항복 안하면 무승부니까.”
저수는 사흘에 걸었다.
그렇다면 사흘째에도 별 일이 없으면 이 승부 자체가 의미가 없어진다
저수는 쓰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래.
어차피 항복할거면 이틀 정도만 더 버텨주라.
난 조용하기 그지 없는 탁발부의 군세를 보며 기원했다.
*******
이틀.
이틀동안 식량의 지원이 없었다는 것만으로도 많은 것이 무너져내렸다.
유목민들은 원래 하나의 거대한 세력을 만들지 않는다.
각 부족마다 자신들의 방식과 전통이 있고, 그것에 따라 살아간다.
초지를 얻기 위해서 어제까지만 해도 거래했던 부족을 습격하는 일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모두가 힘을 합치는 것은 한 사람의 강력한 군주가 나왔을 때.
그것이 아니면 공공의 적이 있을 때 뿐 이었다.
“…차라리 인간 사냥꾼들이 있을 때가 나았군”
인간 사냥꾼들은 한족 뿐만 아니라 유목민들을 공격해서 그들을 잡아 노예로 팔았다.
그런만큼 그들은 모든 유목민들의 공통의 적이었다.
하나의 악질적인 적이 있다는 것은 힘을 합치게 만든다.
하지만 그들이 궤멸되고 인간사냥꾼들의 수가 줄어들게 되자 유목민들은 원래의 방식대로 살아갔다.
자신, 그리고 자신의 부족들만 생각하게 된 것이다.
“필요악이라는 것이 이렇게 절실하게 느껴질 때라니…”
만약 인간사냥꾼이 있었을 때.
탁발인이 했던 것처럼 많은 이들을 소집하고 그들을 지휘할 수 있었던 때라면 이렇게 되었을 까?
“내놔!! 숨겨 둔 거 알어!!”
“닥쳐!!”
파오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들으며 탁발정은 얼굴을 감싸쥐었다.
이번 원정은 실패다.
그것도 완벽한 실패.
실패의 원인은 볼 것도 없었다.
결집이 불가능했다는 것.
그리고 보급이 약했다는 것.
개개인의 무력만 따진다면 저 위국의 정예병들과 비교해서 삭주의 전사들은 결코 약하지 않았다.
하지만 저들은 가지고 있고 자신들은 가지지 못한 것이 있었다.
하나의 중심이 없다는 것.
“…강한 놈이구나.”
인정할 수 밖에 없다.
저들은 탁발힐분과 자신을 손아귀에 쥐고 가지고 놀아버렸다.
“결국 우리는 그들의 손바닥 위에서 움직인 것에 불과했군…”
탁발정이 작게 중얼거렸을 때 비명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무기들이 부딪히는 끔찍한 소리가 퍼졌다.
간신히 유지되던 가는 거미줄만하던 결집의 끈이 결국 끊어져버린 것이다.
“개자식들!!”
“죽여버리겠어!!”
“전부터 마음에 안들던 새끼들이야!! 쳐!!”
창칼이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싸움이 시작된다.
자신이 나가서 말려야 하지만.
과연 자신이 말릴 수 있을까?
탁발정이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을 때 파오가 열렸다.
“…그래. 이럴 수 밖에 없었겠지.”
원정이 시작하고나서부터 불만이 많던 젊은 전사들이 독기서린 눈으로 들어온다.
그리고 그들 중 선두에 서 있던 청년을 보며 탁발정은 입맛을 다셨다.
막족의 차기 족장이다.
탁발힐분과 자신을 전부터 싫어했던 그가 증오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자 탁발정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당신을 지킬 자는 당신 뿐.”
막족의 부족장은 자신이 들고 있던 머리를 던졌다.
탁발부를 따르는 다른 부족장의 머리다.
그것을 던져버린 전사는 이를 갈았다.
“탁발정.”
“그래. 누군가 나선다면 자네가 나설 것 같았지.”
탁발정은 희미하게 웃었다.
자신에게 겨눠진 검과 도끼를 마주하며 탁발정은 천천히 말했다.
“날 죽이기라도 할 생각인가?”
“흥. 당신을 죽여봤자 어차피 이대로는 우리 모두가 죽는다.”
“그럼? 이렇게 해서 어쩔 생각인데?”
내부에서 일어난 반란.
차별에 분노한 이들이 일으킨 반란은 점점 거세어져가고 있었다.
열린 파오의 너머에서 불이 피어오른다.
그것을 힐끔 본 탁발정은 검을 들었다.
“저들의 개가 될 생각인가? 자랑스러운 삭주의 늑대가 위국의, 한의 개가 될 생각인가?”
“하하하하하!!! 개!? 자랑스러운 늑대?”
사내는 이를 갈았다.
“굶어 죽는 늑대보다는 배부른 개가 낫지.”
“….”
“애초에 탁발부에서 약속한 것은 우리가 배부르게 먹고 살 수 있게 해준다는 것 아니었나? 황충에게 당한 우리를 보살피겠다는 것 아니었나? 그것으로 족장들을 포섭한 것 아닌가?”
탁발인은 불가능하니 버려야 한다고 했었다.
하지만 탁발힐분과 자신은 그것이 싫다고 했었다.
결국 탁발인을 잡아 가두고 탁발부의 대인이 되었다.
그리고 나서 많은 이를 끌어들였다.
황충에 의해 피해를 입은 이들을 모아 그들이 살아갈 수 있게 한다 했었다.
결과만 놓고 말한다면 자신들은 거짓말쟁이가 되어버렸다.
“그토록 명예로운 늑대를 자부하는 당신이 말해보시지. 그 약속은 지켜졌나?”
“그래서…?”
“책임을 져야겠지? 최소한 자랑스러운 늑대를 자부하려면?”
“책임이라.”
사내가 손을 들자 파오에 있던 이들이 움직였다.
천천히 검을 겨눈 탁발정의 주변을 포위한다.
십수명의 건장한 남자들이 무기를 들이대는 것을 보며 탁발정은 이를 드러내었다.
“내가 어떻게 책임을 져야 하지?”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게 해줘야겠다!! 쳐랏!!”
저 남자가 무슨 속셈인지 알 것 같았다.
자신을.
그리고 탁발부에 충실한 부족장들을 넘기고 위국이 주는 먹이를 먹겠다는 것이다.
스스로 개로 전락해버리겠다는 저들을 보며 탁발정은 포효했다.
“이 탁발정!! 죽을지언정 개가 되지는 않겠다!! 와라!! 더러운 개새끼들아!! 늑대는 개에게 죽지 않는다!!”
“걱정마라. 널 죽일 자는 우리가 아니니까.”
사내는 검을 휘두르며 외쳤다.
“호랑이가 늑대를 물어죽일테니까!!”
탁발정을 자신들이 죽여서는 안되었다.
그렇기에 생포를 하려고 했다.
자신의 생각을 읽은 탁발정은 거세게 저항했다.
그를 잡는 과정에서 꽤 많은 피해를 입기는 했지만 그래도 살릴 수 있었다.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동료를 내려다보던 청년은 이를 드러내며 중얼거렸다.
“이제 남은 것은…”
“어이. 막호발.”
“뭐.”
“어쩔 생각이야?”
처음부터 탁발부가 위국을 친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었다.
막호발은 젊은 전사이며 막족의 차기 족장으로서 많은 것을 보고 배울 수 밖에 없었다.
예전에 인간 사냥꾼과 싸울 때 만났던 위대한 무신을 떠올렸다.
검은 수염을 흩날리며 창 한자루를 휘둘러 무시무시한 인간사냥꾼들을 쓰러트린 자.
인간사냥꾼들의 중심이라 불리는 진홍곡을 무너트린 무신.
그는 한족이며 위국과 꽤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듯 보였다.
그와 함께 있는 며칠간 많은 것을 배웠다.
삭주 전사들의 동경어린 시선과 존경에도 그는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했었다.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한계가 있다.
하지만 한 나라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한계가 없다.
그것을 말해주며 그는 위국의 강대함에 대해서 말해주었다.
물론 그때는 위국이 아니었지만.
위국의 전신이었던 조조군에 대해서 떠올리며 막호발은 이를 악물었다.
위국은 함부로 적대할 만한 곳이 아니다.
사상만이 문제가 아니다.
그들이 가진 힘은 결코 약하지 않으며 그 무력은 삭주따위는 가볍게 지워버릴 수 있었다.
그렇기에 탁발인의 방식이 현명하다고 생각했었다.
강한 이들에게 고개를 숙이고, 그들에게 배우며 많은 것을 얻어야 한다.
그래야 삭주가 살아갈 수 있다.
그런데 탁발힐분이 반란을 일으켜 탁발인을 감금했다.
거기에 위국을 대하는 방침 자체를 바꿔버렸다.
잘못되었다고 족장에게 몇번이나 말했지만 족장은 그저 무시할 뿐 이었다.
결국 족장의 명령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전장에 참가했던 막호발은 증오를 담아 탁발정을 노려보았다.
“네놈들이 하고자 한 것은 전쟁이 아니다. 그리고 삭주를 살리고자 한 것도 아니다. 그저 네놈들의 자기만족에 불과한 것이지.”
자신이 생각했던 대로 위국은 감히 대적할 만한 나라가 아니었다.
그들을 공격해봤자 온 대응은 뭔가.
농락에 불과했다.
그도 그랬다.
진정한 강함은 무력이 아니라고.
‘확실히 그렇지…’
싸움에 있어서는 둘째가라면 서럽다고 자부하는 전사들을 이렇게까지 어린애처럼 다룰 수 있는 것.
그것을 보면 저곳에 있는 적 사령관은 결코 만만하게 볼 수 있는 이가 아니었다.
“긍지 높은 늑대라고…? 하… 웃기는 소리.”
이미 자신들은 고고한 늑대따위가 아니다.
거칠고, 또 굶주려 먹이를 주는 이에게 꼬리를 흔들어야 하는 개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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