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Shrine RAW novel - Chapter 1202
시간이 되자 관평은 조운과 함께 움직였다.
손겸이 준 지도를 확인하며 인적이 드문 곳을 이용해서 성문 쪽으로 향한다.
감시를 하는 병사들을 피해가며 겨우 위치로 간 그들은 어둠 속에서 성벽을 살폈다.
더 이상 숨을 곳은 없다.
성벽 위에는 화살과 노를 든 수많은 병사들이 있었고 성문 밑에는 성문이 뚫렸을 때를 대비한 병사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 수는 약 천여명정도.
하나같이 강해보이는 이들 뿐이다.
‘손겸이 제대로 해주었군.’
도대체 무슨 방법을 쓴 것인지 모르겠지만 병사들의 얼굴에는 불만이 가득해보였다.
바람을 통해 들어오는 소리를 들어보면 다른 일 때문에 성문의 병사 절반이 이동했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무슨 수를 쓴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대단하다.’
손겸이 약속대로 절반의 병력을 빼주었다.
그도 필사적으로 움직이는 만큼 자신들도 여유를 가질 수는 없었다.
관평이 가볍게 손을 들자 그를 따르던 병사들은 작은 방패를 들었다.
철제 갑옷을 입고 있지만 이것이 목숨을 완전히 지켜주는 것은 아니었다.
대방패가 없는 것이 아쉽지만 어쩌겠는가.
없는 것을 가지고 떠들 수는 없다.
부하들 사이에서 긴장감이 솟아나온다.
이제 곧 전투가 시작될 것임을 알고 본능적으로 위기를 감지하고 있는 것이다.
“적이 움직인다!!”
“다들 위치로 가!!”
‘시작됐다.’
아군이 움직인 것일까?
성벽에 있던 익주병들이 화살을 쏘기 시작했다.
“더 쏴!! 화살 아끼지 말고 계속 쏴라! 쏴!! 너는 빨리 가서 정 별가에게 이곳으로 오라고 전해라!! 어서!”
“화살 더 가져와! 기름 준비해!! 적이 성문을 뚫지 못하게 해야 한다!!”
“정란은 한대 뿐이다!! 쏴!!”
지휘관들이 거칠게 외치는 소리가 들리자 관평은 검을 꽉 잡았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자신이 쓸 만한 무기를 구하는 것이다.
다행히 참마도나 대검을 든 이들은 성문 근처에 많았다.
관평이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생각하고 있을 때 성벽 위의 병사들이 외쳤다.
“불이다!!”
“뭐야!?”
“빨리 가봐!!”
그들의 외침에 관평은 입술을 깨물었다.
손겸이 파성에 불을 지르면 그때가 자신들이 움직일 때다.
다행히 아직 성문 근처에 강한 자는 없어보였다.
관평이 안도했을 때 성벽 위에서 묵직한 외침이 들렸다.
“성문에서 함부로 이탈하지 마라!!”
“진 도위님!!”
진도.
자신과 비교해서 전혀 밀리지 않는 익주의 맹장.
냉정한 판단을 내리고 병사들에도 신임을 받는 강한 장수다.
그가 왜 내려 온 것이지?
다른 쪽 성벽에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관평은 뭔가 일이 잘못되어간다 생각했다.
힐끔 조운을 보았지만 조운은 무덤덤했다.
그저 말없이 검을 뽑을 뿐.
관평은 품 속에 손을 넣었다.
손에 꽉 잡히는 손상향의 부적.
그것을 잡은 손에 힘을 푼 그는 무기를 잡았다.
조운이 수신호로 작전 시작을 알린다.
그렇다면 자신 역시 나가야 한다.
셋.
둘.
하나.
수신호가 끝나자마자 반대쪽에 있던 조운과 이백여명의 정병들이 뛰쳐나갔다.
그들의 움직임에 맞춰 관평 역시 몸을 날렸다.
그렇게 오백의 병사들이 나타나자 진도는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역시 잠입했구나! 쥐새끼 같은 놈들!!”
진도는 고작 오백의 병사만을 데리고 온 관평과 조운을 비웃으며 손을 들었다.
노병들이 준비한 노를 자신들에게 겨누자 관평과 조운은 강하게 외쳤다.
“방패를 들어라!!”
병사들이 방패를 들기 무섭게 노가 쏘아진다.
날카로운 화살들이 방패에 의해 막혔다.
하지만 화살 공격은 계속되었고 뒤따르던 병사들 중 몇몇이 화살비를 이기지 못하고 낙오했다.
하지만 조운과 관평은 멈추지 않았다.
“하아아아!!”
크게 기합성을 내뿜으며 관평은 선두에 있던 거구의 장교를 향해 검을 뻗었다.
묵직한 대검을 잡고 있던 장교를 일격에 죽이고 그의 대검을 빼앗는다.
꼬챙이같은 검을 그대로 버린 채 대검으로 장비를 바꾼다.
“흥!! 애송이가!!”
“죽어라!!”
관평의 힘이 실린 공격을 진도는 어렵지 않게 막아냈다.
조운 역시 진도를 쳐내기 위해 그에게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진도는 그것마저도 어렵지 않게 피해냈다.
관평과 조운의 놀란 얼굴을 비웃으며 진도는 검을 잡은 손에 힘을 넣어 관평을 밀어내고 외쳤다.
“막아라!! 일 다경만 막으면 법 군사께서 움직이실 것이다!”
‘법정이?’
정보에 의하면 법정은 혼수상태라고 했었는데?
관평의 표정이 딱딱히 굳자 진도는 웃었다.
“네놈들이 어떻게 들어 온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법 군사께서는 모든 것을 예측하셨다.”
“…그런가.”
‘비밀통로가 걸린 것은 아니었군.’
조운은 눈쌀을 찌푸리며 검을 움직였다.
자신에게 쏘아지는 화살을 어렵지 않게 막아낸 후 관평에게 외쳤다.
“관 도위!! 성문을 여십시요! 이자는 제가 잡겠습니다!”
성문 쪽에는 이미 자리를 잡은 병사들이 있었다.
두터운 갑주와 장병으로 진형을 만든 적 정예병들.
성벽 위에서 화살을 쏘는 이들.
거기에 성문까지 열어야 한다.
관평은 잠시 고민을 한 후 말했다.
“이자는 제가 맡겠습니다.”
“관 도위!”
“성문을 여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관평의 공격 뿐만 아니라 자신의 공격까지 피해낸 자다.
결코 약한 자가 아니다.
관평이 이 자를 상대할 수 있을까?
그것도 수적으로 불리한 상황 속에서?
하지만 관평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조금이라도 더 강한 조운이 움직여서 한시라도 빨리 성문을 여는 것이 중요했다.
성문이 열리지 않는다면 자신들의 죽음은 둘째치고 지금 공성전을 치루고 있는 위군이 큰 피해를 입는다.
조운은 결국 관평에게 진도를 맡겼다.
그와 그를 따르는 오백의 병사들이 성문을 지키는 정예병들과 전투를 시작하자 관평은 대검을 양손으로 꽉 잡았다.
“하… 너 혼자서 나를 상대할 수 있을 것 같나?”
진도는 입술을 비틀어 웃었다.
관평과는 몇차례 검을 섞은 적이 있었다.
그가 강하다는 것은 안다.
만만히 볼 만한 상대가 아니라는 것도 안다.
하지만.
“적어도 오년… 아니 삼년 후에 만났다면 네놈이 나를 이겼겠지.”
아직은 멀었다.
진도가 날카로운 검을 비틀어 잡자 관평은 말없이 검을 중단으로 내려 놓았다.
익숙치 않은 검이다.
하지만 여기서 그런 불만을 표현할 수는 없다.
“얘들아! 쳐라!!”
성문을 지키기 위한 병력들을 제외한 나머지가 병사들 중 열댓명이 움직인다.
관평은 자신에게 달려드는 적병을 향해 대검을 휘둘렀다.
무게의 중심, 검의 감각.
그리고 검의 범위까지.
짧은 전투를 통해 검에 익숙해진 관평은 대검에 맺힌 피를 흩뿌린 후 진도에게 겨눴다.
“와라.”
“애송이가!!”
진도가 달려든다.
전장에서 마주쳤을 때와는 다른 검격이다.
마치 빛과 같은 빠른 찌르기에 하마터면 얼굴이 찔릴 뻔 했다.
관평이 가까스로 그것을 피해내자 진도는 웃었다.
“실력을 숨겼구나.”
“그래. 법 군사께서는 너희가 성으로 무슨 수를 써서라도 침입할 것이라 생각하셨지. 그렇기에 실력을 숨겼다. 얘들아! 쳐라!”
법정이 혼수상태를 가장하고 난 이후부터 진도는 자신의 본실력을 최대한 숨겨나갔다.
그리고 전투를 하더라도 물러나기만 했고.
그럼으로써 위군이 안도하게 만들었다.
진유하의 성격상 위험한 일은 함부로 손을 대지 않는다.
만약 진도의 실력이 관평보다 강하다는 것을 안다면 그는 함부로 성 내에 적은 수의 병력만 데리고 잠입하게 하지 않을 것이었다.
그리 된다면 법정의 책략은 쓰지도 못하게 된다.
결국 법정의 책략에 낚여버린 것이다.
또 한번의 짧은 전투를 마친 관평이 볼에서 흐르는 피를 쓱 닦아내자 진도는 차분히 말했다.
“너 같은 무인은 좋아한다. 상대하기 편하거든.”
“…미안하지만 난 너 같은 영악한 놈은… 싫다. 치졸하기가 소인배스럽구나.”
관평은 다시 검을 휘둘렀다.
묵직한 대검이 내리쳐지자 진도는 그것을 막아내고 관평의 복부를 걷어찼다.
그가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났을 때 또다시 병사들이 달려들었다.
하나하나가 강한 정예병들이다.
그들을 간신히 쓰러트린 관평은 팔과 허벅지에서 흐르는 피를 힐끔 본 후 진도에게 검을 겨눴다.
전투를 치루면 치룰 수록 상처가 늘어난다.
치명상은 피하고 있지만.
이대로 차륜전이 된다면 살아남을 수 없다.
“인정한다. 넌 강해. 하지만… 그것 뿐이다. 두렵지 않아.”
진도는 힐끔 성문 쪽을 보았다.
조운의 부대를 아군 병사들이 어떻게든 막아내고 있지만 오래 가지 못할 것 같다.
병사들 앞에서도 호랑이처럼 날뛰는 조운을 누군가 잡아줘야 했다.
‘이놈을 빨리 잡아야겠군.’
냉정하기 그지 없는 목소리로 말한 진도가 달려들었다.
그렇게 그와 몇차례 싸우고, 병사들과 싸우는 것이 반복된다.
그럴 수록 관평의 몸에 상처는 늘어났고 그는 점점 지쳐갔다.
“내 체력을 깍아먹을 생각인가?”
“그걸 이제 알았나? 말했지. 너는 강하다. 그렇다면 상황을 최대한 이용하는 것이 맞지 않겠나? 지금은 친선전을 하는 것이 아니야.”
“…흥.”
서로 죽고 죽이기 위한 전쟁 중이다.
진도가 검을 잡고 달려들자 관평은 검을 잡은 손에 힘을 넣었다.
하지만 손을 들기 힘들다.
피를 많이 흘려서?
어깨에 부러진 창날이 꽂혀 있어서?
‘이유따위… 의미 없지.’
관평은 달려오는 진도를 보며 생각했다.
저 자는 뛰어난 무인이다.
하지만 그런 이가 이런 치졸한 싸움을 선택했다.
그 정도로 진도도 필사적이라는 거다.
관평은 검을 축 늘어트렸다.
자신보다 강한 이가 저토록 필사적으로 움직인다면.
역시 죽음을 각오할 수 밖에 없었다.
“포기한 거냐!!”
거칠게 외친 진도가 검을 치켜들었다.
그것을 물끄러미 응시하던 관평은 한숨을 쉬었다.
‘저것을 몸으로 받아낸다면… 어떻게든 동귀어진은 가능하겠군.’
상처입은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그정도 뿐이다.
어쩌면 이게 삶에서 마지막 순간일지도 모른다.
‘주군. 죄송합니다. 먼저 갑니다.’
하지만 죽음을 각오한 순간 그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거의 평생을 함께 했던 주군이 아닌.
알게 된지 채 일년도 되지 않은 여인이었다.
약속따위는 하지 않았다.
그에 대한 답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왜일까?
그 말이 떠오른 것은.
관평은 이를 갈았다.
‘죽고 싶지 않다.’
방금 전까지 죽음을 각오했는데.
그것에 대한 강한 반동은 관평의 몸을 움직이게 만들었다.
번쩍 눈을 뜬 그는 살짝 몸을 비틀었다.
예전 조운이 보여줬던 움직임을 떠올렸다.
그는 최소한의 움직임만으로 자신의 공격을 모두 피해냈거나 흘려냈었다.
검이 아닌 갑옷으로 적의 공격을 흘려내며 공격을 이어가는 신묘한 기술.
그것을 관평은 그대로 재현해버렸다.
“뭐!?”
머리를 노리는 공격을 피해 어깨로 받아내며 검을 내리는 속도에 맞춰 움직인다.
그리고 살짝 어깨에 힘을 주어 방향을 바꿔버린다.
그 기예에 진도의 표정이 바뀐다.
“네놈!?”
“미안하지만… 난 살아야겠다.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아서 말이지.”
자신의 공격이 빗나가버린 것에 진도는 놀라며 빠르게 검의 방향을 바꾸려 했다.
하지만 관평이 더 빨랐다.
진도의 어깨를 팔꿈치로 쳐내고 허리에 걸려 있는 단검을 번개같이 뽑아 진도의 목에 꽂는다.
“컥…”
진도가 목을 잡고 비틀거리는 사이 관평은 대검을 차올려 잡은 후 그대로 진도의 몸을 베었다.
“…맙…소사.”
전투 내내 관평을 압도하던 진도다.
그런 진도가 이렇게 당해?
관평을 둘러싸고 있던 익주병들은 이 광경에 할 말을 잃었다.
진도가 이렇게 죽어버린 것에, 그리고 방금 전 관평이 보여 준 기예에 압도된 것이다.
금방 죽을 것 처럼 피투성이가 되어 있는 자가 보인 움직임.
그것은 결코 인간이 보일 만한 모습이 아니었다.
관평은 흐르는 피를 대충 닦아낸 후 절명한 진도의 머리를 베었다.
“와라.”
잔뜩 질려버린 익주병들이 어쩔 줄 몰라하는 것을 보며 관평은 담담히 말했다.
“나는 도망치지도, 숨지도 않는다. 하지만…”
관평은 이를 드러내었다.
“반드시 살아남을 것이다.”
“그것입니다.”
언제 온 것일까?
지친 기색이 역력한, 자신과 마찬가지로 온 몸에 피칠갑을 한 조운은 관평의 어깨를 잡았다.
“제가 강해진 이유, 강해지려 한 이유는 그것. 결국은 살아남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렇기에 무의 강함만을 추구할 수 없었습니다.”
“성문은?”
조운은 성문을 가리켰다.
어느새 성문은 열렸고, 성문에서 궁기병대가 들어와 익주병들과 싸우고 있었다.
그들을 본 관평은 몸에서 힘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하아아…”
“야!! 관평! 안 죽고 살아 있냐!?”
유쾌함이 가득한 목소리에 관평은 고개를 돌렸다.
방천화극을 가볍게 휘두르며 익주병들을 죽여나가던 감녕은 피칠갑을 한 관평을 향해 웃었다.
“용케 안 죽었네?”
“…살고 싶어서 살았습니다. 문제라도 있습니까?”
“하하하… 도련님이 좋아하시겠군. 조 도위!”
“예.”
“수고했어. 이제…”
감녕은 방천화극을 힘껏 던졌다.
그의 공격에 골목에서 달려오던 익주병들의 몸이 꿰뚫린다.
다른 창을 꺼내 잡은 감녕은 살벌한 어조로 말했다.
“이 전투는 우리가 가져간다.”
그의 말을 마지막으로 관평은 정신을 잃고 기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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