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Shrine RAW novel - Chapter 1235
농사는 천하지대본이라 하여 천하의 근본이 되는 일이다.
아무리 사람이 날고 긴다고 하더라도 결국 그 기본은 농업에 두고 있고, 농사를 통해 얻는 작물로 살아간다.
그런만큼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시기가 되었다는 것을 알리는 춘절은 다른 어떤 길일보다 복이 많다고 여겨지는 날이었다.
“오늘 결혼은 나만 하는 것은 아니겠지?”
“그렇습니다.”
그런 춘절을 기다려 결혼을 하고자 하는 이들은 많았다.
당장 업에서만해도 중직에 있는 관리의 아들 딸들이 혼인식을 치룬다고 한다.
그래도 참가하는 손님들을 배려하기 위해서 적당히 순서 정도는 조정을 했다.
나는 관대한 남자.
그런만큼 내가 혼인식을 치루는 시간은 다른 고관의 자식들이 혼례를 치루고 난 이후인 오시에 치루기로 했다.
“그나마 올해는 춘절을 기념하는 제사가 없으니… 혼잡스럽지는 않겠군요.”
“폐하께서 황제의 자리를 넘겨준다고 하는 것 때문에 전하가 계속 피하고 있으니. 어찌보면 우리에게는 좋은거지.”
조앙도 이번 춘절때는 따로 제사를 지내거나 왕부에서 나서서 행사를 하지 않겠다고 선포했다.
그 뒤를 이어 내 결혼식을 오시에 한다고 알리니 결혼을 앞둔 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이른 아침을 노렸다.
“거 일찍하면 손님들만 피곤해지지. 백귀대는 어떻게 됐나?”
“정예들만 모아서 보 부인이 기거하는 곳과 신혼방을 지키고 있습니다.”
“음. 그거 고맙군. 나중에 백귀대원들에게 내가 사례한다고 해줘.”
“하하. 예.”
장합이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답한다.
감사할 일이지.
내 결혼식 때 호위를 맡아주겠다며 나나 서황, 장합과 친한 장교들이 자발적으로 나서줬으니.
위국의 정예인 그들이 지켜준다면 암살자도 함부로 움직이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늦게 하셔도 괜찮습니까?”
“괜찮아. 괜찮아.”
시기에 따르면 해가 떠오를 때 하는 예식이 가장 좋다고 하지만.
나야 뭐 그런 것은 크게 신경을 쓰지 않으니까.
“피로연 준비는 잘 됐겠지?”
“예.”
혼인식이 치뤄지고 나면 피로연은 진가에서 하고, 그리고 첫날밤은 보가에서 지내야 한다.
예전에 내가 마련해 준 장원이 아닌 보즐은 더 큰 장원을 마련했다.
나도 실제로 보는 것은 처음이다.
그간 보즐이 집이 아닌 다른 곳에서 계속 만나자고해서 말이지.
장원 여기저기를 둘러보고 있을 때 보즐은 나를 잡고 떨떠름한 표정으로 물었다.
“왜 여기 계십니까?”
“처가 구경 좀 하는 겁니다.”
“…그냥 좀 얌전히 계시면 안됩니까?”
“거 장인께선 제가 마음에 드시지 않으신가봅니다?”
“그 이야기는 나중에 하지요.”
하후상이 사마사를 부담스러워하고.
내가 순선을 어색해하는 것처럼.
보즐 역시 나를 내켜하지 않는 것 같았다.
어쩔 수 없다.
이게 남일이면 그냥 때려치라고 하겠지만 어쩌겠나.
내 일인데.
보즐은 씁쓸한 표정으로 한숨을 쉰 후 휙 걸어가버렸다.
내 옆에 서 있던 하후상은 그를 지그시 응시하다 싸늘히 말했다.
“아무리 주군의 장인이 된다지만. 저런 태도는 너무한 것 아닙니까?”
“순선이 들으면 복장터질 소리는 관둬라. 아니면 돌려서 까는거냐?”
난 아예 협박까지 했는데 뭐.
한 대로 돌아오는 법이다.
하후상이 당황하자 난 그의 어깨를 잡았다.
“장인께 한소리 들었으니 얌전히 가서 기다리자고. 손님들이 올지 모르니까.”
나는 위국의 승상부주.
권력 서열로 따진다면 한손가락에 들어가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다.
당연히 먼곳에서도 손님들이 찾아 오게 된다.
가장 먼저 올 손님은 누굴까?
보가의 정문에 앉은 채 기다리고 있던 나는 예상치 못한 인물의 등장에 놀랬다.
“어라? 네가 왜?”
손책과 주유였다.
그리고 그 뒤에는 손상향이 서 있다.
얘들이 왜 왔지?
초대장은 따로 보내지 않았는데?
내가 의아해하자 손책은 초대장을 보여주었다.
“방 형주목께서 대신 가달라 요청하셨습니다.”
“걔는 뭐하고?”
“형주 쪽을 정리하는 것과 제자를 키우는 것 때문에 바쁘다고 합니다. 그리고…”
주변을 두리번거린 손책은 내 귓가에 속삭였다.
“다섯번째 결혼식까지 갈 필요 있냐고…”
“끙…”
망할 놈 같으니라고.
내가 신음하자 손책은 애써 웃은 후 뒤를 가리켰다.
“형주목, 그리고 방덕공, 순 대부와 다른 분들의 축하 선물을 가져왔습니다. 그리고…”
“스승님께서 보내신 선물도 있습니다. 부디 받아주십시요.”
손상향은 공손히 나에게 상자를 내밀었다.
그것을 열어본 나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이건 뭐냐? 운철… 은 아닌것 같고.”
그냥 돌멩이 아닌가?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손책은 품에서 단검을 꺼냈다.
그것을 돌에 붙이자 돌은 단검에 찰싹 달라붙었다.
“지남철입니다. 이정도 자성을 지닌 지남철은 구하는 것이 쉽지 않지요.”
“오…”
단검에서 떼어내려고 해보았지만 잘 떨어지지 않는다.
꽤 강한 자성이 있는 돌이다.
이정도 지남철은 구하기도 힘든데.
잘도 구했네.
내가 이리저리 살피자 손상향은 천천히 말했다.
“전에 유리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유리를 만들 때 모래에 섞여 있는 사철을 골라내는 일이 쉽지 않다 들었습니다.”
“그렇지.”
“이것이 있으면 좀 더 제대로 사철을 골라낼 수 있지 않을까 스승님께서는 생각하시고 이것을 선물로 보내셨습니다.”
“허어… 그거 감사드릴 일이구만.”
손상향의 말대로 더 이상 유리의 투명도에 대한 부분은 어떻게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물에 몇번이나 거르고, 우리가 구비한 지남철로 사철을 골라내고.
그래도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이정도의 지남철이 있다면 투명도를 더 높이는 것이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내가 상자를 닫고 옆에 놓자 주유는 빙긋 웃었다.
“채 가주께서도 선물을 전해달라 말씀하셨습니다.”
“빈손인데?”
“올해 말. 서역으로 첫 항해를 할 것이다… 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이 선물이라고 하시더군요.”
“오오오!! 진짜 좋은 선물이군. 원래 예정은 내년 정도 아니었던가?”
“조금 무리를 하셨다고 합니다.”
그거 기쁜 일이군.
지금 우리는 서역과 육로를 통해 은근히 거래를 하고 있었다.
비록 대량의 거래는 힘들지만 흑주차의 주문을 위해서 서역상인들과도 연을 맺고 있다.
그런만큼 서역으로의 항해가 가능해진다면 본격적으로 서역과의 대규모 교역이 가능해질 수 있었다.
“서역까지의 해로는 만들었나?”
“예. 해로의 준비는 끝났다고 합니다. 문제는 중간중간 해적들이 있다는 것인데. 그것만 해결하고 기지를 건설하여 보급을 원할히 한다면 충분히 서역까지 항해가 가능할 것입니다.”
손책의 보고에 난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채모.
날 실망시키지 않는군.
몇년은 더 걸릴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정도라니.
“기지라…”
“몇몇 섬과 협로에 진을 설치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이것이 지도입니다.”
주유는 곱게 접은 종이를 펼쳤다.
지도를 보니 천축까지 가는 바닷길을 긴 땅이 막고 있었다.
해로를 통하려면 빙 돌아 올라가는 길을 선택해야 한다.
그것을 보던 나는 떨떠름히 말했다.
“이거 나중에 운하도 만들어야겠는데?”
“채 가주도 그리 말하더군요. 다행히 그곳에 살고 있는 원주민들과도 나쁜 관계가 아니니… 그들과 연을 맺고 , 또 혼응토를 이용한 수로를 만드는 것을 오년 안에 끝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음. 지원은 얼마든지 해줄테니 시도하라고 전해줘. 지금 채가주는 일남군에 있나?”
“예.”
“음… 수로 건설이라. 이정도면 수로 수준이 아니겠군. 강과 연결되는 만큼 운하라고 볼 수 있겠는데.
이유하의 지식에 의하면 그곳은 훗날 태국이라 불리는 곳이다.
그곳을 가로지르는 대운하를 만든다라…
나쁘지 않군.
비용은 엄청나게 들겠지만 서역과의 교역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수익을 쓴다면 그것도 불가능하지는 않을거다.
그리고 대규모 공사를 통해 그쪽 지역의 원주민들도 흡수한다면 영토는 더욱 넓어지겠지.
지도를 접어 장합에게 넘겼다.
그것을 받은 장합이 품에 넣자 난 손책에게 말했다.
“아무튼 고맙다. 들어가도록 해.”
“저… 승상부주.”
“왜? 뭐 할 일있나?”
“할일… 이라기보다는.”
손책은 볼을 긁적거렸다.
“이번에 개별적으로 익주 공략에 대한 공을 인정받는다고 들었는데…”
“아? 아아. 그렇지. 너도 받지 않았나?”
손책이 받은 것은 위국의 교위직을 하사받았다.
그정도라면 과거 손가가 가지고 있던 주목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꽤 높은 관직이다.
“주목의 자리를 원하는 것이라면 기다리도록 해. 익주의 정리가 끝나면 서복을 불러들일거니까. 그때 익주목의 자리를…”
“아, 아닙니다. 주목의 자리에는 딱히 관심이 없습니다. 제게 어울리지도 않고.”
“그럼? 손가의 것을 돌려달라는 건가?”
손책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그게 맞군.
그의 말에 난 웃었다.
“돌려주는 것은 어렵지 않아. 어차피 손가의 것에는 딱히 손댄 것도 없고. 언젠가 돌려줄 생각을 하고 있었어. 사람을 사서 관리 정도만 하고 있었으니까.”
“정말이십니까!?”
“그래. 손가에서 세운 공이 있으니 나 역시 그것을 인정해줘야겠지. 하지만… 그것 때문만은 아닌데. 한가지 제안을 하고 싶군.”
“관평이라는 사람 때문이십니까?”
“들었나?”
손상향은 새침한 표정으로 쓱 고개를 돌렸다.
쟤는 여기까지 와서도 저러네.
“상향이 관심을 보이는 그자가 궁금합니다. 그자의 후견인이 승상부주라 하시니. 결혼식이 끝난 후라도 좋으니 자리를 마련해주시겠습니까?”
“그러지. 하지만 후견인으로 될까? 아는지 모르겠지만…”
“관평의 아버지는 지금 천하를 돌고 있어 행방을 모른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승상부주께서 후견인이 되시는 것이 아닙니까?”
“그렇긴 하지.”
내가 대답하자 손책은 어색하게 웃었다.
손상향은?
그녀는 가볍게 주먹을 틀어쥐며 기뻐하고 있었다.
참나.
저러면서 안좋아한다고?
난 그녀를 향해 피식 웃은 후 하후상에게 말했다.
“결혼식이 끝나고 며칠 안에 서로 만날 수 있는 자리를 준비하도록 하지. 하후상. 안내해줘라.”
“예.”
하후상이 손책과 주유, 손상향을 데리고 안으로 들어간다.
손책을 시작으로 다른 지방에 있는 이들이 하나 둘 씩 찾아왔다.
육손, 장온.
그리고 진군까지.
그들 외에도 꽤 유력한 가문들에서도 하나둘씩 찾아온다.
그들과 인사를 하는 것도 일이다.
고위 관직, 그리고 지방에서도 유력한 이들이 찾아왔고 그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인사를 하고 있자 호위준비를 마친 서황과 관평이 흑귀대원들과 찾아왔다.
“준비는 마쳤습니다.”
“절대 별 일 일어나지 못할겁니다.”
“그래야지. 어째 나는 결혼식때마다 일이 터졌으니까.”
설마 오늘도 뭔 일이 터지지는 않겠지?
이제는 전쟁을 걸 놈들도 없고 난리를 칠 놈들도 없었다.
황제의 일로 문제를 일으킬 만한 이들은 교사원의 요원들이 모두 감시를 하고 있다.
거기에 병영의 병사들도 풀어 주변 순찰까지 강화했으니 됐다.
내부에 손님이나 하인으로 가장한 호표기나 창기대, 그리고 백귀대원들까지 있다.
이정도면 진짜 무슨 일 안생길거다.
내가 안도하자 관평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쟤는 또 왜 입이 한댓발 나와 있냐?”
“요화와 붙었다가 또 졌답니다. 쯧쯧.”
서황이 한심하다는 듯 말하자 내 옆에 있던 장합은 킬킬 웃었다.
이제는 엄청나게 성장해서 어지간한 전투에서는 패배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왜 졌냐?”
“하아… 그게…”
“등신같이 요화의 도발에 족족 걸려들더군요. 요화가 언변이 엄청나게 늘었습니다. 아니, 원래 그랬던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다음에는 안 집니다.”
“다음에 어떻게 해야 요화와 싸울 수 있을지부터 생각해봐라. 그 녀석도 나랑 비슷해서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 없으면 결코 싸우지 않을테니까.”
수경원의 동문들보다 더 오래 전부터 나와 함께 지냈고, 또 아버지를 평생 모신 요화다.
그는 강하지만 영악하며, 승리를 바라는 자다.
그러니 당연히 힘으로만 싸우려는 관평이 이길 수 없겠지.
난 관평의 어깨를 가볍게 쳐주었다.
“조 사제에게 들었을 것 아니냐. 그 녀석은 진정한 강함에 대해서 알기 위해 사부님의 제자가 되었다. 사부님은 문 무에 능하신 분. 무 만으로 강해지려는 것이 아니려면 너도 이제부터 제대로 공부해야 할거다.”
“으음… 하지만 저는 문재가 없어서…”
“그래. 그래. 그 문재 살려 줄 사람들 많으니까 걱정말고.”
난 그를 향해 웃은 후 시간을 확인했다.
슬슬 식이 진행될 시간이다.
“그럼 잘 부탁한다.”
“예. 안심하십시요.”
서황과 장합의 배웅을 받으며 난 안으로 들어갔다.
혼례식을 위해 준비된 자리에는 많은 이들이 벌써 앉아 있었다.
“시간 되었습니다.”
“음. 그래. 가야겠군.”
난 붉은 휘장이 쳐진 식장을 향해 걸었다.
자.
어쩌면 이게 내 마지막 결혼식일지도 모르겠네.
부디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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