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Shrine RAW novel - Chapter 1254
그가 바랬던 것은 적들의 절규.
그가 원했던 것은 적들의 절망.
책사로서 전장에 나가 적들을 농락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행복해하는 이들의 얼굴을 보는 것 따위가 아니었다.
곽혁의 표정이 굳어지자 노인은 당황했다.
“아, 아니 나으리. 괜찮으십니까? 혹시 떡이 상하기라도…”
“그런 것이 아니다.”
자리에서 일어난 곽혁은 품에서 금전 하나를 꺼내 던져주었다.
떡 몇개를 받은 것 치고는 상당한 대가다.
노인이 화들짝 놀라며 거절하려 했지만 곽혁은 무뚝뚝히 말했다.
“작은 선의는 반드시 보답받게 되어 있지. 하지만 관인이라 하더라도 경계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어차피 타지인이니까.”
“하지만 위국의 사람이잖습니까. 위국의 관인 나으리들이시잖습니까.”
노인은 머뭇거리다가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저희처럼 힘없는 백성들에게는 은인이나 다름없는 분들입니다.”
그의 말에 곽혁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
서주까지 가면서 많은 백성들과 만났다.
그리고 그들의 대부분은 관에 무척이나 호의적이었다.
위국에서 행한 정책에 처음에는 불만이 많았다.
대대로 내려오던 농법을 못하게 한 후 냄새나는 비료를 만들거나, 아니면 지렁이를 키우게 한다.
피곤해 죽겠는데 비누로 깨끗하게 씻고 자게 한다.
아침에 다 모여서 간단하게나마 체조를 하게 한다.
그리고.
또 그리고.
관에서 백성에게 개입하는 것은 상당히 많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이 관에 호의적인 것에 곽혁은 점점 기분이 나빠졌다.
어째서인가.
자신의 삶을 자신이 결정하지 못하는 것인데.
죽든 말든 그것은 자신이 결정해야 하는데 관은 강압적으로 그 삶을 결정하게 해준다.
그런데 왜 백성들은 관에 그토록 호의적인가.
복잡한 생각을 지우지 못한 채 서주에 들어 온 그는 곽가가 휴양하고 있는 곳으로 향했다.
동해군에 있는 산 좋고 물 맑은 곳까지 간다.
작은 장원의 앞에 도착한 곽혁은 머뭇거렸다.
아버지를 만나는 일이지만 마음이 내키지는 않았다.
그렇게 한참동안이나 고민하던 그는 결국 주먹을 쥐었다.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서 곽회에게 부담을 주고 온 것 아닌가.
여기서 물러날 수는 없다.
곽혁은 문을 잡고 밀었다.
“뉘십니까…? 대부 어르신께서는 손님을 받지 않겠다고 하셨는디?”
허름한 옷을 입은 하인이 의아해하며 묻자 곽혁은 뭐라 말해야 할지 고민했다.
아들이 왔다?
왜?
지금 곽혁이 전쟁에 참여하고 있는 것 쯤은 곽가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전장에서 물러나 서주까지 왔다는 것은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그가 고민하는 사이 안채의 문이 열렸다.
“…뭐냐? 너.”
실로 오래간만에 상봉하는 부자임에도 불구하고 그 분위기는 바닷바람처럼 차갑기 그지 없었다.
비쩍 마르고 얼굴에는 죽음의 향기가 짙은 곽가는 여전히 매서운 눈으로 곽혁을 흝어보았다.
그리고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명백한 비웃음이다.
자신의 아버지이기에 알 수 있는 그 비웃음에 곽혁은 고개를 숙였다.
“오래간만입니다. 아버지.”
“듣자하니 한중 공략전에 참가했다고 하더니. 왜 네가 여기 있나? 전쟁이 벌써 끝난 건가?”
“그건… 아닙니다만.”
“아니 대부님! 아드님이셨습니까? 어이쿠. 어서 들어오십시요. 간단하게 차라도 내오겠습니다.”
방금 전까지 마당을 쓸던 하인은 허둥거리며 곽혁을 안으로 들여보냈다.
곽가보다 훨씬 더 반가워하는 그의 안내를 받아 응접실로 들어간다.
곽혁이 앉아 있는 사이 하인은 웃으며 차를 내왔다.
“드십시요. 어르신께서는 금방 들어오실 것입니다.”
“감사하오.”
“별 말씀을. 아. 저는 곽 대부 어르신께 도움을 받아 어르신을 평생 모시기로 한 한정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요. 도련님.”
“으음…”
작게 고개를 끄덕인 곽혁이 차를 홀짝이는 사이 문이 열렸다.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곽가가 안으로 들어오자 한정은 고개숙여 인사한 후 나갔다.
부자만이 방에 남았다.
곽가는 서랍을 뒤져 약재를 꺼내 그것을 뜨거운 물에 넣었다.
한참동안 말없이 약재에서 약물을 우려낸 후 그것을 찻잔에 따른 곽가는 곽혁의 앞에 앉았다.
그리고 무척이나 싸늘한 어조로 말했다.
“다시 한번 묻지. 왜 왔나? ”
“그건…”
곽혁이 입술을 깨물자 곽가는 약차를 다시 홀짝거렸다.
“도망쳤군.”
“…그렇습니다.”
“네 녀석이 도망쳤다는 것은 스스로 깨달았을 때 정도겠지. 눈치챘나?”
“예. 아버지.”
곽혁은 절망감이 가득 담긴 어조로 물었다.
“정말… 저에게는 책사의 자질이 없는 것입니까…?”
좌절.
그리고 절망.
모든 것을 잃은 듯한 곽혁의 간절한 어조에도 곽가는 냉정할 뿐 이었다.
“나는 단 한번도 너에게 책사의 재능이 있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그릇도 작을 뿐더러 가진 것도 없지.”
“어째서입니까!!”
“어째서? 없는 것을 있다고 말하고, 한도 끝도 없이 헛된 희망만을 잡게 해주길 바라는 것이냐? 그렇다면 해주마. 책사로서 재능이 없으면 노력해라.”
빈정거리는 듯한 그의 말에 곽혁은 눈을 질끈 감았다.
곽가는 매번 그랬다
그는 항상 직설적이었다.
단 한번도 자신에게 돌려말한 적이 없었다.
어설픈 위로따위보다 항상 현실을 직시하게 해주었다.
“재능이 없는 자가 위에 올라가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두가지. 막대한 인맥, 또는 하늘의 가호. 허나 지금까지 그것을 이룬 이를 본 것은 단 한번 뿐이다.”
“그게 누굽니까?”
“진유하. 그에게는 재능이 없다. 하지만 그는 올라갈 수 있는 곳까지 올라갔지.”
무뚝뚝한 말에 곽혁은 입술을 깨물었다.
위국 정치가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다.
그에게도 재능 따위는 없단 말인가?
곽혁의 표정에 생기가 돌자 곽가는 가소롭다는 듯 비웃었다.
“너도 그정도는 될 것이라 생각하는 거냐?”
“저라고 되지 못할 것이 뭐 있겠습니까?”
“하하하하!!”
자신의 아버지가 보내는 거친 웃음에 곽혁은 입술을 깨물었다.
곽가는 처음으로 상냥히 웃었다.
“할 수 있다면 해보려무나.”
상냥한 웃음 뒤에 섞여 있는 조롱.
안타까운 것을 보는 듯한 그 시선에 곽혁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신을 내려다보는 곽혁의 시선을 마주하며 곽가는 약차를 홀짝거렸다.
“애초에 너에게는 책사의 재능따위 조금도 없다. 너 스스로도 알텐데? 하지만 노력한다면 적어도 이류 책사까지는 될 수 있겠지. 그래. 한번 해보려무나. 천운이 따른다면 일류의 근처까지는 구경이나 할 수 있을테니까.”
“아버지!!”
“소리지르지 마라.”
“제가 왜 안된다는 겁니까?”
“너에게는 독심(毒心)이 없다.”
“…그 말씀은.”
“너는 측은지심을 가지고 있으며 타인을 아낄 줄 아는 자다. 그렇기에 안된다는 것이다. 너는 아니라고 하겠지. 하지만 관의 일을 하면서 너도 깨달았을텐데?”
곽가의 매서운 시선에 곽혁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독심.
모든 것을 이용하고, 책략을 진행함에 있어서 동료마저도 이용해야 하는 그 악랄한 마음.
그것을 가지지 못한다는 것이다.
곽혁이 주먹을 꽉 쥐며 부들부들 떨자 곽가는 여유로운 어조로 말했다.
“할 수 있나? 너의 친우를 죽음이 가득 찬 곳으로 보낼 수 있나? 너를 따르는 부하들이 몰살하는 것을 각오할 수 있나? 너를 믿는 백성들이 절망에 빠지는 것을 감당할 수 있나?”
“…그건.”
“책사라 함은 승리를 위해서 뭐든 버릴 수 있어야 한다. 거기에는 동료도, 친구도, 부하도, 그리고 백성도 없어. 패배하는 것이 이득이라 할지라도 책사는 이겨야 한다. 그것이 일류 책사가 될 수 있는 기본 자질이다. 하지만 너는 그게 없잖아?”
“있습니다.”
“정말? 나에게 거짓을 말하는 것은 상관없다. 하지만 너는 너 자신을 속일 수 있나?”
“….”
곽혁은 눈을 질끈 감았다.
이득이 되지 않는 일을 오로지 승리를 위해 선택하는 것.
곽혁으로서는 무리였다.
그렇기에 강경을 받아들이고 그를 이용하고자 하는 서복과 곽회의 책략을 곽혁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
곽가는 마치 곽혁의 속을 꿰뚫어 보기라도 한 것처럼 그가 가지고 있는 갈등을 언급했다.
“네 반응을 보아하니 한중에서 뭔가 일이 있었나보군.”
“…아버지.”
결국 곽혁은 무릎을 꿇었다.
어디에 도움을 요청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렇기에 곽혁은 결국 자신의 아버지, 곽혁이 무척이나 닮고 싶었던 자신의 이상을 향해 간절히 애원했다.
“어찌해야 합니까… 저는 아버지처럼 되고 싶습니다. 아버지처럼 뛰어난 책사가…”
“왜? 왜 나처럼 되고 싶다는 것이지? 혁아. 너는 무언가 착각을 하고 있구나.”
자리에서 일어난 곽가는 곽혁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마르고 말라 앙상한 나뭇가지 같은 손가락이 머리를 쓰다듬자 곽혁은 눈물로 젖은 눈을 들어 올렸다.
“책사가 된다는 것은 모든 것을 버릴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 끔찍하고, 절망 밖에 없는 것에 왜 관심을 가지는 것이냐?”
“아버지…”
“이제 천하는 바뀐다. 난세는 가라앉았고 치세가 찾아온다. 그리 되면 책사가, 장군이 설 자리는 점점 사라져간다.”
곽가의 눈에 담겨 있는 작은 호의를 곽혁은 눈치챘다.
진심이다.
처음으로 곽가는 진심으로 조언을 해주고 있었다.
“책사에게 있어서 측은지심은 더할나위 없는 독이다. 타인의 관계를 신경써야 하고, 안타까운 이들을 돌봐야 하지. 모든 것을 희생시킬 수 있어야 하는 책사에게는 쓸모없는 것. 허나.”
천천히 그의 머리에서 손을 뗀 곽가는 자리에 앉았다.
“일류 정치가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정치가… 입니까.”
“그래. 정치가. 혁아. 정치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
“그건…”
“정치는 아주 간단한 것이다. 나눔받고 그것을 재분배하는 것을 말한다. 천하에 있는 수많은 백성들의 것을 나눔받기 위해서는 백성들의 호감을 살 필요가 있다. 그 나눔받은 막대한 힘을 재분배 하기 위해서는 타인의 욕심을 조절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바로 측은지심이다.”
“그렇…습니까?”
“타인을 안타깝게 여기는 마음. 그리고 그것을 헤아릴 수 있는 머리. 그것을 가지고 있지 않는다면 일류 정치가가 될 수 없다.”
“…승상부주는. 그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까?”
“하하하하하!! 그놈에게? 없어. 그가 가지고 있는 것은 오로지 소의 뿐이지. 아주 운이 좋은 경우다. 그 녀석은 다른 이들과 궤를 달리한다. 비교를 하려면 종요와 비교를 하는 것이 맞지.”
한차례 크게 웃은 곽가는 곽회를 일으켜 앉혔다.
“소개장을 써주마. 종요에게 가르침을 받도록 하거라. 그렇다면 일류 책사는 아니더라도 일류 정치가가… 반드시 될 수 있을 것이다.”
“…아버지. 왜 저에게 말씀해주지 않으셨습니까?”
자신에게 정치가로서의 자질이 있다는 말을 그가 왜 하지 않았던 것일까.
곽혁의 의문에 곽가는 웃었다.
“네가 책사가 되기를 원했으니까. 너 스스로 자신의 목표를 바꾸지 않는 이상 결국 이도저도 아니게 되었을테니까.”
책사를 목표로 하지만 자질은 정치가의 자질이다.
그것이 주는 괴리감은 결국 곽혁을 망쳤을 것이다.
그렇기에 곽혁이 스스로 깨달을 때까지 말하지 않았던 것에 불과했다.
곽혁은 곽가를 말없이 바라보았다
그저 냉정하고, 자신을 비웃는 것 뿐이라 생각했던 아버지에게 이런 생각이 있었을 줄이야.
곽혁이 입술을 꽉 깨물자 곽가는 종이에 빠르게 소개장을 적었다.
그것을 곱게 접어 봉투에 넣은 곽가는 마른 손을 내밀었다.
“이것을 가지고 종요에게 가라. 너에게 기본 정도는 가르쳐 줄 것이다.”
“…아버지.”
“그리고 앞으로는 이런 식으로 도망치지 마라. 자신의 일을 두고 도망치는 자는 어떤 식으로든 일류가 될 수 없으니까.”
그의 냉정한 한마디에 곽혁은 고개를 숙여버렸다.
곽혁이 떠나자 앉아 있던 곽가는 작게 웃었다.
자신의 아들이 알을 깨고 나왔다.
항상 지켜보던 자신이 아닌, 스스로의 길을 걷기로 했다
어찌 기쁘지 않을 수 있겠나.
“…이제 미련은 없군.”
고구려의 일을 처리했고 서주에서도 신철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대부로서 해야 할 모든 일은 이미 다른 이들이 하고 있었다.
이제 더 이상 자신이 있을 필요는 없다.
공손히 앉아 있던 곽가는 희미하게 웃으며 중얼거렸다.
“…아들아. 이제 네 세상이 올 것이다.”
천하의 혼란은 끝났다.
이제 책사, 군사의 시대는 역사의 뒤안길로 흘러갈 것이다.
남은 것은 정치가의 시대.
과연 그 시대에서 자신의 아들이 잘 할 수 있을까?
곽가는 희미하게 웃었다.
그리고 작게 기침을 토해내었다.
검은 피가 섞인 기침을 천으로 닦아낸 곽가는 천장을 보며 얼마 전 자신을 검진한 장중경의 말을 떠올렸다.
“…앞으로 일년… 남짓인가.”
작게 중얼거린 그는 한숨을 쉬었다.
“보지 못하고 가버리겠군. 하지만 내가 없더라도.”
곽가는 결심을 마친 자신의 아들의 표정을 떠올리며 희미하게 웃었다.
“그 녀석은 잘 해나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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