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Shrine RAW novel - Chapter 1260
유장이 잡히고 처형당했다.
드디어 익주와의 전쟁이 끝난 것이다.
파성에서 머무르던 관평은 그 소식을 듣고 눈을 감았다.
비록 전쟁이 끝나는 곳에 자신이 없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전쟁이 끝났다니.
무거운 마음과 홀가분한 마음에 한숨이 나왔다.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 있을까.’
진유하가 말하길 천하를 통일한 후에도 해야 할 일은 많다고 들었다.
당장 북부의 일도 그렇다.
당장 서역의 일도 그렇다.
당장 동이족의 일도 그렇다.
당장 강남의 일도 그렇다.
허나 그것이 전부일까?
장수의, 그것도 자신과 같은 무관의 진가는 전장에서 빛을 발한다.
하지만 이제 자신의 효용가치가 있을 전장이 있을까?
관평이 무거운 침음성을 흘리며 한숨을 토해내는 사이 주변 병사들은 전쟁이 끝난 것에 환호성을 터트렸다.
그동안 고생한 것에 대한 대가를 받고 사랑하는 가족들의 곁으로 갈 수 있게 된 것이다.
당연히 좋을 수 밖에.
그들이 기뻐하는 것에 초를 칠 수 없었던 관평은 자리에서 일어나 대무장으로 나갔다.
‘내가 이렇게 우울해하는 이유는…’
전쟁이 끝난 것 때문에?
앞으로 무관의 일이 많이 줄어들지도 모른다는 것 때문일까?
아니다.
아무리 생각을 바꾸려 해도 그의 마음은 다른 것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대무장에 도착한 관평은 검을 잡았다.
자신의 몸이 낫고 난 이후부터 매일 대무를 하는 손상향이 기다리고 있었다.
검을 내려 놓은 채 그녀는 담담히 말했다.
“전쟁이 끝났다는군요.”
“들었습니다.”
“관 도위께서도 이제 업으로 복귀하시는 겁니까?”
“아마…”
“그렇습니까.”
손상향은 여전히 새침했다.
조금의 우울함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녀가 검을 들어 올리자 관평 역시 검을 들었다.
“그럼 가져갈 것은 가져가도록 하겠습니다.”
손상향이 가져가야 할 것은 무엇일까.
자신이 내어줘야 할 것은 무엇일까.
알 수 없다.
하지만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하압!!”
날카로운 검격을 막아내는 것 뿐.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손상향과의 대무가 시작되었다.
자신과 손상향이 대무를 할 때는 이상할 정도로 구경하는 사람들이 없었다.
원래라면 대무를 할 때 병사들이 모여서 내기판을 만들거나, 아니면 누군가를 응원하곤 한다.
하지만 이상할 정도로 둘이 대무를 할 때는 사람들이 자리를 피해주기까지 했다.
왜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관평도, 손상향도 그것을 따로 언급하지는 않았다.
그저 대무가 끝나면 서로 인사하고 각자 할 일을 하기 위해 떠날 뿐.
그렇게 여느때와 같은 대무를 했다.
이제 대무도 거의 끝자락에 달했다.
서로 땀으로 갑옷이 범벅이다.
숨을 가볍게 고른 관평은 손상향의 머리를 향해 목검을 내리쳤다.
그녀가 그것을 막아내자 관평은 힘을 주었다.
“크윽…!”
아무리 손상향이 강하다고 하더라도 여성이다.
거기에 용력을 지닌 관평의 힘까지 보태지니 힘싸움으로 들어가면 손상향이 이길 수 없는 것은 당연했다.
잠시간의 힘겨루기가 시작된다.
평소라면 그것을 흘려낸 후 반격을 취했을 손상향이지만 그녀는 흘려내는 대신 끝까지 버텨낸다.
이를 악물고.
자신을 노려보며.
어딘지 애달픈 표정을 짓는다.
그녀의 모습에 관평은 자기도 모르게 손에 힘이 풀렸다.
그리고 손상향은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내리누르는 힘을 옆으로 흘려내고 손상향이 안으로 파고든다.
그녀의 빠른 움직임에 놀란 관평이 검을 움직이려고 했지만 손상향은 빠르게 관평의 다리를 공격했다.
정강이가 걷어차인 충격에 한쪽 무릎이 풀린다..
“쳇…!”
고통을 신음할 새도 없이 물 흐르듯 손상향의 공격은 이어졌다.
머리, 어깨.
그리고 몸통까지.
치명상을 입을 수 있는 머리의 공격만은 막아내었지만 다른 부위에 쳐지는 검격은 막을 수 없었다.
고스란히 그녀가 휘두르는 목검에 맞아버린 관평이 뒤로 주춤 물러났을 때 손상향은 빙글 몸을 돌려 그의 복부를 걷어찼다.
“흐읍!!”
어떻게든 버텨내며 뒤로 두걸음 물러난다.
거리를 벌리려는 관평.
조금이라도 거리를 좁히려는 손상향.
자세를 제대로 갖추고 충격을 회복할 때까지는 피하는 것이 상책이다.
관평이 보법을 밟으며 뒤로 물러나는 것을 보던 손상향은 날카롭게 외쳤다.
“언제까지 도망치려는 겁니까!!”
“큭.”
도망?
이것이 도망인가.
그녀의 일그러진 얼굴을 마주한 관평의 발걸음이 멈춰졌다.
그것을 본 손상향의 일그러진 얼굴이 조금이나마 펴진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뿐.
손상향은 크게 포효하며 검을 당겼다.
강력한 찌르기의 예비자세다.
피하거나, 막아내지 못한다면 맞을 수 밖에 없다.
‘도망치지 않는다.’
평소라면 피해냈을 것이다.
하지만 관평은 피하는 대신 한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손상향의 기세와 그대로 맞부딪히며 오히려 그녀의 안으로 파고든 관평은 손상향의 허리를 잡아 안아 올렸다.
“꺄악!?”
찌르기를 하기도 전에 자세가 무너져버린 손상향이 당황하는 사이 그녀를 들어 바닥에 내리꽂는다.
고통에 신음하는 그녀의 위에 올라탄 관평은 자신의 몸을 잡고 뒤집으려는 손상향의 양 팔을 잡았다.
자연스레 그녀를 덥치는 자세가 되어버린 관평은 뚝뚝 떨어지는 땀방울을 닦을 생각도 하지 않은 채 손을 내렸다.
그의 손을 피하며 손상향은 양 다리를 움직였다.
관평의 무릎을 밀어내며 균형을 무너트린다.
그리고 그 틈을 노려 그대로 자세를 바꾼다.
“이건…!!”
이런 기술이 있다니.
관평은 크게 놀랐지만 손상향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빠르게 자세를 바꿔 그의 위에 올라탄 손상향은 자신의 목검을 들어 관평의 목에 겨눴다.
“…이제 가져갈 수 있게 되었군요.”
관평과 손상향의 대무.
둘의 실력차는 확실했다.
그렇기에 관평은 매번 손상향과의 대무에서 승리했었고 그녀는 그것에 분통을 터트렸었다.
하지만 결국 마지막이 되어서야 손상향이 한번의 승리를 따내버렸다.
관평의 위에 앉은 채 손상향이 작게 말하자 관평은 고개를 끄덕였다.
패배한 것에 대한 분노와 짜증따위는 없었다.
그저 내어줘야 할 것을 내어줬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았다.
관평은 손상향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비켜주시겠습니까?”
“싫다면?”
내려다보는 손상향의 얼굴은 그림자 때문에 제대로 읽을 수 없었다.
그녀의 답에 관평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
“비켜주십시요.”
“거절하겠습니다.”
“왜 이러시는 겁니까?”
“몰라서 묻는 겁니까?”
안다.
자신이 물러나고 있다는 것을 손상향은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왜 도망치는 겁니까?”
“…전에도 말씀드렸던 것으로 압니다. 저는 손 도위님과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 문제에 대해서는 이미 이야기가 끝난 것으로 압니다만. 관 도위께서 그리 생각하든 말든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제가 당신을 마음에 들어하고, 갖고 싶어한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
“손 도위님.”
관평은 자신의 목을 잡고 있는 손상향의 손을 잡았다.
그의 손길에 그녀는 흠칫 놀랬다.
“이제 전쟁이 끝났습니다.”
“그래서요?”
“손가는 분명 예전의 지위를 찾게 되겠지요. 그렇게 된다면 분명 손 도위께 어울리는 신랑감은 얼마든지 있을 것입니다.”
“당신이 어울린다는 생각은 하지 않으십니까?”
“제가… 진정으로 손가와 어울릴 것이라 생각하십니까?”
자조적인 미소를 마주하며 손상향은 이를 드러내었다.
“저에게 있는 것은 단 한자루의 검과 주군에 대한 충성심 뿐. 다른 감정 따위는 없습니다.”
“이상하군요.”
손상향의 입가에 미소가 걸린다.
하지만 그 미소는 즐거워서 짓는 미소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저 비웃음.
상대의 주장을 같잖다고 생각하는 싸늘함만이 가득 차 있었다.
“관 도위께서 파성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저 때문이라고 들었습니다만.”
“그건…”
“거짓말도 적당히, 그리고 도망치는 것도 적당히 하십시요. 천하의 관평이 뭐가 그리 무섭습니까?”
“…무섭다라. 예. 무섭습니다.”
관평은 손상향의 팔목을 잡아 비틀었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손상향의 자세가 풀어지자 관평은 빠르게 그녀의 몸을 돌렸다.
바닥에 널부러진 그녀의 위에 자리잡은 관평은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두렵습니다. 당신의 옆에 서 있을 제 자신이. 손가와 어울리지 않는 자를 옆에 둔 것 때문에 당신에게 쏟아질 비난이 두렵습니다.”
“하. 고작 그것이?”
“고작이라고 생각치 마십시요. 저는 주군의 밑에서 많은 것을 보았습니다. 어울리지 않는 이들이 어울렸을 때 나오는 비난… 그것은… 여자인 당신이 받을 뿐입니다. 작금의 천하는 모든 잘못이 여자에게 있다고 말해지는 천하이니…”
차라리 자신이 만인에게 욕을 먹는다면 상관없다.
하지만 그렇지 않을 것이다.
명가의 여식이 명가와 어울리지도 않는 이와 혼인을 한다.
주변 명가에서 어찌 생각하겠는가?
어쩌면 손상향이 손가를 위해서 진유하의 부하인 관평을 일부러 꼬드겼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것만큼은 싫었다.
“그럴 수도 있겠지요. 어쩌면 제가 손가를 위해서 당신을 일부러 유혹했다는 소리를 들을지도 모르지요.”
“잘 아시는군요.”
손상향은 손을 뻗었다.
그 손이 자신의 볼을 쓰다듬자 관평은 흠칫 놀랬다.
“허나 제가 그런 것을 두려워 할 사람으로 보이십니까?”
볼을 쓰다듬던 손이 멱살을 잡는다.
그리고 강하게 끌어당긴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관평은 반응하지 못했다.
“읍.”
거칠고, 또 거칠면서.
무척이나 애달픈 입맞춤.
손상향에게 당하는 두번째 입맞춤에 관평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서로 눈을 뜬 채 바라본다.
시선이 고정되어 있다.
가끔씩 방통이나 진유하, 하후상이 말하는 것처럼 분홍빛 연정같은 것은 전혀 없는 분위기 속에서 손상향은 천천히 손을 놓았다.
“과거 손가의 개망나니라 불렸고, 또한 승상부주의 아내이시며 위국의 공주께 덤볐던 저입니다. 고작 세간의 비난이나 욕설 따위에 눈 하나 깜짝할 것 같습니까? 관 도위님. 그딴 말도 안되는 핑계로 자신의 마음을 속이지 마십시요.”
싸늘한 어조에 관평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아직도 남아 있는 듯한 부드러운 감각의 여운을 느낄 새도 없다.
“아까의 대무에서 제가 이겼으니 승자로서 요구하겠습니다.”
“…예.”
“저를 좋아하십니까?”
“…그건.”
“도망치지 말고 똑바로 대답하십시요.”
강하다.
손상향은 늘 직설적이다.
사섭에게 배운 것처럼 예와 법으로 자신을 가렸지만 진정한 손상향은 언제나 날카로운 검처럼 관평의 두터운 경계심을 강력하게 찔러 부순다.
“저는.”
관평은 머뭇거렸다.
말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느낀다.
자신이 그것을 말해도 될까?
그것을 표현해도 괜찮은 것일까?
그의 답답한 모습에 손상향은 이를 갈았다.
“진짜 한심하군요. 자신의 속내조차 밝히지 못하는 자가 어찌 강함을 얻겠다는 겁니까?”
그녀의 날카로운 찌르기가 결국 바위를 부쉈다.
관평은 결국 자신의 드러낸 속내를 밝힐 수 밖에 없었다.
좋냐.
싫냐.
둘 중 하나를 고르라면.
아니 그런 것을 떠나서.
자신의 진심을 말하라면 한마디로 정의할 수 있었다.
“…좋아합니다. 당신을 좋아합니다. 당신이 저의 마음을 끌어내었을 때부터 당신에게 호감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거면 됐습니다.”
손상향은 관평의 팔을 치운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몸에 뭍어 있는 먼지를 툭툭 털어낸 후 그녀는 자리에 앉아 있는 관평에게 무덤덤히 말했다.
“업으로 돌아가 계십시요. 가문에는 제가 알릴테니. 당신은 그저 돌처럼 얌전히 계십시요. 그것을 부수고 가져가는 것은 제가 할 일이니까.”
종종걸음으로 그녀가 멀어지자 관평은 그녀가 말했던 것처럼 자신의 한심함에 몸을 떨었다.
“…백인이 이걸 알면 쌍욕을 하겠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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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상향이 대무장에서 걸어나오자 손가에서 함께 왔던 병사는 짐을 챙겼다.
“아가씨. 전쟁이 끝났으니 바로 교주로 복귀할 준비를 해야겠습니… 얼굴이 왜 그러십니까?”
“음?”
“고뿔이라도 걸리신 것 같습니다만.”
새빨갛게 물들어 있는 손상향의 얼굴에 그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손상향은 피식 웃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바로 돌아가지요.”
“예. 하하. 교주목께서도 기뻐하시겠군요. 이제 복귀하시면 바로 아가씨의 정혼 상대를 찾으셔야 할테니. 그럼…”
“아. 그거.”
“예?”
“찾을 필요 없을겁니다. 이미 찾았으니까.”
“…예에!? 하, 하지만 아가씨. 아가씨의 정혼 문제는 손 가주님이나 교주목께서 결정하시는 것인데.”
원래 명가의 정혼에 관한 문제는 가문의 어른이 결정하는 것이다.
그것을 여자인 손상향이 직접 결정했다는 것에 병사는 기겁했지만 손상향은 아무렇지 않았다.
“그 부분은 제가 알아서 합니다. 자. 복귀할 준비를 하지요.”
그녀의 말에 병사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가주님과 교주목께서 난리를 치시겠네… 설마 다시 손가의 망나니가…? 으으…”
과거 그녀가 벌였던 기행을 떠올리며 손가의 병사는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부디 아무런 일도 없기를…”
막사로 들어가는 손상향의 뒷모습을 보며 그는 두 손을 꼭 쥐고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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