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Shrine RAW novel - Chapter 1262
정신을 차리니 침상이었다.
힘겹게 눈을 뜨니 주변이 밝았다.
분명히 정신을 잃었을 때는 낮이었는데.
바깥이 어둡다.
그리고 바깥에서 빛이 비춰지고 있었다.
창문을 통해 들려오는 소리를 들으며 진궁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조부님! 제가 누군지 아시겠습니까!? 조부님!”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얼굴로 진성이 다급히 외치자 진궁은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그의 얼굴을 상냥히 쓰다듬었다.
“우리 손주 아니냐…”
진성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진궁도 결코 적은 나이가 아니다.
병에 걸리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언제 죽을지 모르는 것이다.
그간 열정적으로 일하고, 또 활동했기에 애써 모른 척을 했을 뿐이다.
진궁은 자신의 손을 꽉 잡은 진성의 손이 부들부들 떨리는 것을 느꼈다.
희미하게 웃은 그는 차분히 말했다.
“나는 이제 괜찮다. 피로가 쌓였을 뿐이야.”
“…조부님. 이제 산양공의 직위를 내려 놓으시지요.”
“왜? 산양공이 되고 싶으냐?”
“조부님!”
그따위 산양공의 직위.
진궁이 건강히 몇년간 더 살 수 있다면 그딴 것 받지 않아도 상관없다.
진성이 화를 내자 진궁은 가볍게 손사레를 치며 몸을 일으켰다.
“좀 잤더니 몸이 좀 낫구나. 네가 가져다 준 약도 괜찮았고.”
“정말… 이십니까?”
“그래. 그나저나 현이가 많이 놀랐겠구나. 잘 달래주렴. 자고로 진가는 부인들을 중시 여긴 가문이다. 네 아비가 그런 것처럼 너 역시 네 아내를 아끼고, 숭상하며 돌봐야 한다.”
마지막 기억은 손주며느리인 현이가 식사를 준비했다는 것 까지였다.
진궁이 조심스레 말하자 진성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겨우 자신의 기억이 멀쩡하다는 것을 파악한 진궁은 손을 쥐었다 펴 보고 다리를 움직여보았다.
‘아직 움직여주는구나.’
약해빠진 몸뚱아리에 그나마 생기가 남아 있다.
이것도 다 며느리들 덕분일 것이다.
바쁜 아들놈 대신 며느리들은 지극정성으로 자신을 모셨다.
몸에 귀하다는 약은 전부 구해오고 건강에 좋다는 침도 많이 놔주었다.
덕분에 아직까지 생기가 남아 있다는 것에 만족한다.
진궁이 몸을 일으키려 하자 진성은 놀라며 그를 잡았다.
“더 누워계시지요.”
“어차피 죽으면 오랫동안 누워 있을텐데… 그보다 바깥이 왜 이리 환하냐?”
“그게…”
“…내가 쓰러진지 얼마나 지났지?”
“하루가 꼬박 지났습니다.”
“음…”
진궁은 작게 침음성을 흘렸다.
창 바깥에 보이는 횃불을 보니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 같았다.
그가 침상에서 일어나 지팡이를 집고 비틀거리며 나가려 하자 진성은 진궁을 잡았다.
“조부님께서 건재하시다는 것은 제가 알리겠습니다.”
“아서라. 내가 가는 것이 낫다.”
진성을 가볍게 밀치고 진궁은 천천히 걸었다.
쓰러졌던 사람이 움직이는 것 치고는 무척이나 잘 움직이고 있다.
입술이 하얗게 될 정도로 강하게 깨물면서도 진성은 그를 말릴 수 없었다.
아니, 애초에 진궁을 말릴 수 있는 사람은 진가에 아무도 없었다.
진성의 아버지인 진유하조차도 진궁을 함부로 대할 수 없으니 말이다.
고민하던 진성은 극약처방을 두었다.
“어머님께 알리겠습니다!”
“허… 녀석아. 네 나이가 몇인데 네 어미에게 이른다고 하는 것이냐?”
“조부님께서 이렇게 움직이시는 것을 어머님들께서 아신다면 얼마나 슬퍼하시겠습니까.”
“으음…”
진궁의 유일한 약점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진성의 어머니, 사마영 이었다.
진가에 시집와 손이 귀한 가문에 떡두꺼비같은 아들과 아름다운 딸을 낳아준 며느리다.
그 때문인지 진궁은 아직도 사마영에게 빚을 진 기분이었다.
‘아니, 영이 뿐만이 아니지.’
청이, 완이, 희, 그리고 연사까지.
진가의 독자로 살아왔던 진궁에게 있어서 아들 진유하의 아내들은 정말 업고다녀도 모자랄 정도의 은인이었다.
그러니 진궁도 머뭇거릴 수 밖에.
진성이 화난 눈으로 바라보자 진궁은 어깨를 으쓱였다.
“허나 지금 백성들은 다들 걱정하고 있을 것이다. 자기 일조차도 하지 못하고 저리 나와 있는 것 아니더냐?”
“그렇긴 하지만…”
“그럼 성아. 네가 나를 좀 도와다오.”
“…예.”
“화야!! 밖에 있냐!!”
“예! 어르신!”
문이 열리며 요화가 들어왔다.
늘 편안하게 웃는 요화마저도 긴장과 두려움에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그정도로 진궁이 쓰러진 것은 큰일이었다.
“내 의자를 가져다 다오.”
“예에…”
“의자? 그게 뭡니까?”
“예전에 네 매형이 만들어 준 것이다.”
잠시 후 요화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의 손에 잡혀 있는 것은 커다란 바퀴가 달려 있는 의자였다.
앉는 이가 편하게 하려고 솜으로 방석을 깐 편안한 의자를 보이자 진궁은 거기에 앉았다.
“자. 밀어다오.”
“예. 어르신.”
지팡이를 잡은 진궁이 말하자 요화는 의자의 손잡이를 잡았다.
요화가 의자를 밀며 밖으로 나가자 진성은 허둥거리며 그의 뒤를 쫓았다.
바깥에 나온 진궁은 씁쓸한 입맛을 다셨다.
어느정도 왔을 것이라고는 생각했지만 이정도일 줄이야.
“산양공 나으리!!”
“나으리!!”
“아이고! 천지신명이시여! 산양공 나으리를 부디 굽어 살피시옵소서!”
“엉엉! 나으리! 나으리!”
치소 앞의 넓은 공터에는 많은 백성들이 나와서 기도를 하고 있었다.
수십년간 산양군을 다스린 진궁이다.
동아현의 현장에서 산양군수로 부임한 이후 진유하와 함께 산양군의 백성들이 잘 살아갈 수 있게 다스린 그가 쓰러졌다.
그 소문이 퍼지자마자 백성들은 만사를 제쳐두고 치소 앞으로 향했다.
정화수를 떠나놓고 기도를 드리는 사람도 있고 천축에서 들어 온 불교를 믿는 이들은 불상을 올려놓고 기도를 드린다.
또 어떤 이는 부적을 태우며 진궁이 죽지 않기를 바라는 이도 있었다.
어린 아이들도 제 부모를 따라 울면서 진궁의 건강을 기원했다.
치소 앞을 가득 메운 수많은 백성들이 간절히 비는 가운데 진궁은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외쳤다.
“난 무사하니 들어가서 각자의 일에 충실하라! 이 늦은 시간에 이게 무슨 짓들이냐!”
“나으리!!”
“아이고 나으리!!”
“무사하셨군요!”
“제발 건강을 신경 써주십시요!”
“나으리! 이것은 제가 장혼산에서 캐온 산삼입니다! 부디 이것을 드시고 좀 더 오래오래 살아주십시요! 나으리!!”
“산양공 어르신~!!”
“돌아가라!! 돌아가서 자기의 맡은 바에 충실하라!!”
그의 외침을 들은 백성들은 눈물을 훔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렇게 외치는 것을 보니 그래도 안심할 수 있지 않을까?
그들이 주섬주섬 자리에서 일어나 돌아가는 것을 본 진궁은 요화의 팔을 꽉 잡았다.
“들어가자꾸나.”
“예. 어르신.”
걱정이 산더미인 진성을 돌려보낸다.
더 남겠다고 하지만 그도 상서랑.
자리를 오래 비우게 둘 수는 없었다.
진성이 떠나고 나서도 진궁은 한두차례 의식을 잃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괜찮다고 그는 자신했다.
그저 피로할 뿐이라고.
아직 버틸 수 있다고.
그리 생각하며 긴장한 몸을 유지해나갔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 수록 몸은 점점 좋지 않아진다.
잠드는 시간이 늘어갔고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힘들다.
그렇게 진성이 업으로 돌아가고 한달 후.
진궁은 뜻밖의 손님에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네가 왜 왔냐?”
“…그게 걱정되서 만사를 제쳐두고 달려 온 아들에게 하실 말씀이십니까? 건강이 안좋아지셨다 들었습니다.”
“내가 보기엔 나보다 네 건강이 더 문제 같다만…”
찾아 온 손님은 위 제국의 승상부주이며 아들인 진유하였다.
오래간만에 보는 아들의 얼굴에 진궁은 안타까운 듯 짧게 혀를 찼다.
요새 일이 많다고는 들었지만 이정도일 줄이야.
볼이 헬쑥해져 있는 아들을 향해 진궁은 손을 뻗었다.
“이렇게 와도 괜찮은 것이냐?”
“뭐… 양 사형이 고생을 좀 하겠지요.”
“너무 그렇게 부담을 주지 말거라. 그도 힘들텐데.”
“아들 힘든 것은 생각도 안하십니까?”
“네 녀석은 좀 힘들어야지. 매번 뺀질뺀질 놀러다니는 것 아니냐? 일도 제대로 하지 않고?”
진궁이 웃으며 농담을 건네자 진유하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래도 이렇게 놀리는 것을 보니 건강은 괜찮은 것 같다.
“그런데 왜 너 혼자 왔냐? 네 아내들은?”
“함께 오겠다고 했지만 오지 말라고 했습니다. 영이가 고뿔이 걸려서…”
“그럼 거기 가 있어야지 왜 여길 와? 이 녀석아!”
지팡이를 휘둘러 진유하의 등을 때린다.
하지만 힘이 들어가지는 않았다.
어찌 금쪽같은 아들을 힘줘서 때리겠는가.
진심으로 아들을 때린 것도 벌써 수십년 전의 일이다.
마마에 대한 일 때문에 그에게 회초리를 들었을 때 이후로 단 한번도 진궁은 진유하를 심하게 때린 적이 없었다.
“나랏일 하느라 바쁠텐데 어서 돌아가보거라.”
“멀리서 기껏 온 아들을 보자마자 돌려보내실 생각이십니까?”
“이 녀석아. 제국의 승상부주가 함부로 자리를 비우는 것 아니야.”
“아버지.”
타박하는 진궁을 향해 진유하는 진지한 어조로 말했다.
“…당지와 요화에게 들었습니다. 요새 건강이 많이 안좋아지셨다면서요?”
“그 녀석이 그런 소리를 하더냐? 걱정마라. 적어도 십년은 문제가 없으니까.”
퉁명스러운 진궁의 어조에 진유하는 말없이 바라보았다.
그 시선을 마주한 진궁은 한숨을 쉬었다.
“기억나느냐?”
“무슨…?”
“악희를 기억하느냐?”
“어… 분명.”
아주 예전의 일이다.
진유하가 나무를 타다가 떨어지고, 며칠간 기절해 있다가 정신을 차렸을 때.
이유하의 기억을 손에 넣고 심폐소생술로 전민을 살렸었다.
그리고 그것에 놀란 사람들이 아픈 이들을 살려달라며 찾아왔고 그 중 죽은 동생의 부활을 원하며 찾아왔던 여인이 바로 악희였다.
“예. 기억 나지요. 요새는 뭐합니까?”
“나의 첩이라도 되고 싶다며 붙길래 달래주었었지. 그리고 내가 후견인이 되어주었어. 동아현 인근에 있는 호족과 결혼을 하여 슬하에 이남을 두었다구나.”
“그렇습니까…”
“그때가 기억나느냐?”
떨떠름해하는 진유하를 향해 진궁은 상냥히 말했다.
“그때 네가 말했었지. 죽은 사람을 살릴 수 없다고. 그것은 섭리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예.”
고개를 끄덕이는 진유하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옛날에는 한 손에 들어 올 만한 작은 머리도 이제는 완전히 굵었다.
언뜻언뜻 흰머리도 보이는 것이 이제는 같이 늙어가는 처지라고 생각된다.
그를 향해 희미하게 웃으며 진궁은 차분히 말했다.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날 수 없는 것이 섭리인 것 처럼, 산 사람은 언젠가 죽는다. 그것이 바로 섭리야.”
“아버지.”
“당지의 말대로다. 요새 몸이 많이 무겁다. 잠도 많아졌다. 일을 줄이고 선이에게 많은 것을 맡기고 있지만… 점점 안좋아진다는 것이 느껴지는구나.”
“아버지. 이러실 것이 아닙니다. 바로 서주로 가시지요. 서주에 가신다면…”
“서주에 간다하여 불로불사가 이루어지느냐?”
“그건… 아니지만.”
진유하의 간절한 표정을 응시하며 진궁은 상냥히 말했다.
“사람은 언젠가 죽는다. 그것은 거절할 수도 없고, 도망칠 수도 없는 것이야.”
“…그렇지만 늦출 수는 있을겁니다. 분명 화타의방이라면…”
“이미 당지도 고개를 저은 것이다. 번아나 다른 이가 본다고 하여 나아질 것 같으냐?”
“어떻게든 방법이 있을겁니다!”
그의 외침에 진궁은 부드럽게 웃었다.
그리고 진유하의 손을 잡았다.
“얼마나 사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어떻게 사는지가 중요한 것이지. 이미 나는 많이 살았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어떻게 살아가고, 마무리를 짓느냐지.”
“그게 무슨 소립니까. 얼마나 사는지도 중요합니다. 남는 이들은…”
“사람에게 헤어짐은 반드시 존재한다. 그것을 기억하려무나. 나는 이곳에서 산양공으로서 살아가고, 또 산양공으로서 죽을 것이다. 그것을 네가 방해하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위 제국의 승상부주의 권한으로 말한다면 산양공인 진궁이라 하더라도 바로 서주로 옮겨질 수 있을 것이다.
하물며 진유하는 진궁의 아들.
아들이 아버지의 건강을 위해 움직이려 한다면 누가 막을 것인가.
그렇기에 진궁은 진유하에게 솔직히 말할 수 밖에 없었다.
“내가 살아가는 것을 방해하지 말아다오.”
진궁의 답에 진유하는 눈을 질끈 감았다.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몰라하는 그를 향해 진궁은 차분히 말했다.
“나가다오. 좀 자야겠으니까.”
“…아버지. 한가지만 가르쳐주십시요.”
“말해보거라.”
“아버지가 살아온 것에… 살아 온 그 방식에, 그리고 살아갈 그 방식에 후회가 없을 것 같으십니까?”
진유하의 경고 아닌 경고다.
죽음을 앞에 두고 조금 더 살기 위한 발버둥을 치지 않은 것을 후회하지 않을 것이냐는 질문.
그 질문에 진궁은 지극히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나는 지금까지 단 한번도 내 삶에 후회한 적이 없다.”
“…알겠습니다. 아버지. 편히 쉬세요.”
꾸벅 고개를 숙인 진유하가 나간다.
천천히 몸을 일으켜 긴 의자에 누운 진궁은 창 밖을 보았다.
많은 이들이 바삐 움직인다.
이제 곧 죽엽청을 담구는 날이 올 것이다.
그것을 봐야지.
그리고 그것을 팔 준비를 해야지.
천천히 감기는 눈꺼풀을 이기지 못하며 진궁은 작게 미소지었다.
“그래… 단 한번도 후회하지 않았지. 너를 만난 것부터… 아니. 네 어미를 만난 것 부터… 내 삶은 오로지 옳은 선택의 연속이었다… 아들아.”
진궁은 눈을 감았다.
언제나 꿈꾸고, 그리워하는 아내를 떠올리며 천천히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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