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Shrine RAW novel - Chapter 26
00026 계란을 세우는 방법 =========================
한순간에 화기애애하던 분위기가 싸해졌다.
설마 얘가?
내가 살짝 손가락을 들어 가리키자 사마랑은 쓰게 웃었다.
“아까 말한 귀염성 없는 내 동생일세. 의. 인사드려라.”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잡기 하나 가지고 이런 연회를 뻔뻔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의 얼굴이 궁금해서 왔을 뿐입니다. 통성명이 뭐 필요하겠습니까.”
“어허! 녀석이!”
소년의 말이 이어질 수록 분위기가 싸해진다.
그래! 내가 이런 거 보기 싫어서 아까 그렇게 한거다.
잘한다. 더 해라.
네가 그렇게 나올 수록 내 평가가 올라갈테니까.
“반갑습니다. 진유하라고 합니다.”
이왕이면 내 얼굴에 침이라도 뱉어줬으면 좋겠다.
그럼 동정표를 얻어서 더 이름이 높아질테니까.
날 모욕하는 상대에게 더욱 예의를 갖춰야 한다.
한신이 동네 양아치 다리 사이를 기었던 것도 큰 뜻을 품었기 때문이지 기개가 모잘라서 그런 것이 아니다.
까짓거 날 위해서라면 다리 사이 정도는 얼마든지 기어주마.
“….흥.”
하지만 내 기대와는 다르게 소년은 날 한차례 쏘아보며 콧방귀만 꼈을 뿐이다.
“미안하네. 내 저 녀석을 혼쭐을 내줄테니 대신 사과를 받아주게나.”
“아닙니다. 형님. 형님의 동생이라면 제… 그런데 나이가 어떻게 되나요?”
“올해로 일곱살이 되네.”
“그럼 제 동생이나 마찬가지네요.”
“누가 당신같은 사람의 동생입니까! 누가!”
바락바락 대드는 소년.
사마의는 안그래도 날카로운 눈을 더욱 날카롭게 뜨며 날 노려보았다.
“자자. 의야. 진정하거라.”
“흥!”
“어쨌든 너도 연회에 참석할 것이라면 자리를 찾아 앉도록 하거라.”
“…형님의 말씀을 따르겠습니다.”
사마의는 여전히 날 노려보다가 사마랑의 옆으로 가서 앉았다.
그가 앉고 나자 사마방은 가라앉은 분위기를 띄우려는 듯 악사들에게 연주를 지시했고 다시 연회장의 분위기는 밝아졌다.
흠.
뭔가 이상한데.
원래 이런건가?
분위기가 금방 밝아져서 사람들이 떠드는 것을 말없이 바라보던 나는 사마의와 눈이 마주치자 씩 웃었다.
그런 나를 향해 사마의는 이를 드러내었다.
짜식. 귀엽긴.
저게 다 나중에 날 위하는 밑바닥이 되어준다고 생각하니 오히려 뿌듯하다.
“그런데 동생. 자네는 그 비법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예?”
“그 비법 말일세. 진가에 대대로 내려오던 비법.”
“그거야 뭐…”
“가슴을 누르는 것으로 사람이 살아나다니… 그거 정말 대단한 것 아닌가?”
그야 대단하겠지.
지금 시대에는 신체에 대해서 모르니까.
나도 이유하의 기억이 아니었다면 그냥 손가락만 빨고 있었을 것이다.
“몰랐다면 민이가 그냥 황천을 갈 뻔 했겠어! 자네가 알고 있어서 다행이군. 그야말로 우리 가문의 은인이야!”
“맞아! 맞아! 유하가 아니었으면 어쩔 뻔했어!”
“유하 자네 덕분에 민이가 살았어!”
“하하하하하하!!”
싸해진 분위기를 다시 띄우려는 듯 사마랑이 웃으며 내 칭찬을 했다.
그것에 맞추어 다른 사람들도 날 추켜세웠고 난 그 분위기에 웃으며 뒤통수를 긁적거렸다.
“하하하… 형님. 너무 그렇게 추켜세우지 말아주세요. 부끄럽습니다.”
“흥. 고작해야 가슴을 누르는 것 뿐이잖아. 그게 무슨 비법이야. 방법만 알면 누구나 할 수 있겠네.”
“…..”
이야. 너 능력 대단하다.
어떻게 한마디만으로 이 분위기를 싸하게 만드냐.
내가 한 일을 정말 대수롭지 않은 것처럼 치부해버리는 그의 말에 사마랑은 무언가 말하려다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동생. 너무 신경쓰지 말게.”
“네. 하하. 당연한 이야기를 한 것인데요. 뭐. 비법이라고 하기도 너무한 것이지요.”
싸해진 분위기때문일까.
아니면 동생의 막말 때문일까.
사마랑은 벌겋게 달아 오른 얼굴로 내게 고개를 숙여 사과했고 난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니까 말야. 참 별 것 아닌 것 가지고 잘도 떠들어대네.”
“…..”
이, 이자식이.
자꾸 분위기 망칠래?
먹다 체하겄다.
사람들이 불편해하는 것이 보이자 난 한숨을 내쉬었다.
“여보게. 동생.”
“누가 당신 동생입니까. 누가! 그리고 저는 당신에게 하대를 받을 사람이 아닙니다.”
“그럼 뭐라고 부를까?”
“중달이라고 불러주십쇼.”
“그럼 중달. 혹시 계란을 세울 줄 압니까?”
존대를 하는 건 사마의를 존중해주기 위해서다.
속으로 어떻게 생각하든 겉으로 정중하고 예의바른 모습을 보이면 그 상대적인 모습 때문에 내 평가가 올라가기 마련이다.
결코 사마의의 시선에 쫄아서 그런게 아니다.
“뭐요?”
“계란 말입니다. 계란.”
“흥! 그깟 것… 이봐! 계란 좀 가져와!”
사마의가 외치자 시녀는 금방 달걀 하나를 가지고 왔다.
역시 부잣집인가보다.
저 비싼 달걀이 이렇게 금방 나오다니.
“이까짓거 세우는게 뭐가 어렵겠어.”
달걀을 받은 사마의는 자신만만한 얼굴로 날 쳐다보더니 달걀을 세우는데 집중하기 시작했다.
세워질리가 있나.
이유하의 기억 속에 있는 역사 에피소드 중에 콜롬버스의 달걀이 있다.
사마의가 달걀을 세우다가 실패하면 내가 달걀을 세우고 이렇게 말할 것이다.
‘고작해야 가슴을 누르는 것이지만 저는 그것을 알고 행했을 뿐입니다. 하지만 당신은 그것을 몰랐겠지요. 저와 당신의 차이는 그것 뿐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저기 있는 학식있는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그리고 사마 가문 사람들도 생각이 있는 사람들이니 내 말에 불만을 표하지 않겠지.
좋아. 완벽해.
머릿 속에서 해야 할 일을 전부 생각하고 흐뭇하게 웃었을 때 달걀을 세우던 것에 자꾸 실패하던 사마의는 인상을 구기며 외쳤다
“에라이!”
“헉!”
“…….”
뭐야!?
사마의는 달걀의 끝을 깨버리고 그냥 달걀을 세워버렸다.
그것을 보며주며 그는 씩 웃었다.
“어때요? 세웠는데.”
“……”
“달걀을 깨지 않고 세우라는 말은 하지 않았잖아요.”
“…자, 장난하냐!? 그렇게 하면 누가 못해!”
“무슨 소립니까. 전 이런 방법으로도 세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 것 뿐입니다. 그렇게 말하는 당신은 이 방법 말고 세울 수 있나요?”
“…..”
사마의의 말에 난 등줄기에서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아…
이렇게 되면 완전 나가린데.
어쩌지?
어쩌지?
괜히 이 이야기를 꺼냈네.
으…
내가 고민하자 사마의는 씨익 웃었다.
“계란 세울 수 있냐는 얘기는 왜 꺼낸거야? 참나. 이래서 모자란 사람이란… 쯧.”
“계란 가져와! 나도 세울 수 있어! 너처럼 다 부수지 않고 완벽하게 세울 수 있다고!”
“흥! 가져와봐!”
잽싸게 시녀가 달걀을 가지러 가자 난 내 뒤에 있는 시녀에게 말해 내 짐을 가져다 달라고 말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달걀과 내 짐이 오자 난 짐에서 향초를 꺼내었다.
“그게 뭔가?”
“선물로 가져 온 것입니다만. 좀 써야겠군요.”
“흐음?”
사마방과 사마랑이 신기한 듯 바라보고 있는 향초에 불을 붙였다.
그 순간 은은한 벌꿀향이 주변으로 퍼지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그 향기를 맡고 신기한 얼굴이 되었다.
“이건…?”
“벌꿀 냄새 아니야?”
“저기서 나는 건가? 유하. 그게 뭔가?”
“제가 만든 향초입니다.”
대충 답해주며 밀랍이 녹기를 기다렸다.
대나무통 안의 밀랍이 녹아 액체가 되자 그것을 바닥에 똑똑 뿌렸고 어느정도 굳었을 때 그 위에 달걀을 올렸다.
“…사, 사기야!”
“사기? 달걀을 깨서 세우는 것이 가능한데 이런 방법으로 세우는 것이 뭐가 잘못된 것입니까?”
“그건…!”
“중달. 달걀을 세우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그 방법 중에 당신은 달걀을 부수는 것을 택한 것이고 저는 달걀의 원형을 유지하는 것을 택한 것이지요.”
“으으…”
“결국 어떤 방법을 택하느냐의 차이이지요. 당신이라면 형이 물에 빠져 그리 되었을 때 어떻게 했겠습니까? 만약 당신의 방법이 있다면 당신은 당신의 방법대로 했을 것이지만 저는 제가 아는 방법으로, 최대한 형이 다치지 않고 무사할 수 있는 방법을 썼을 뿐입니다.”
“큭.”
사마의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분한 듯 신음하며 입을 다물었을 뿐.
그의 얼굴이 붉어진 것을 보며 난 향초의 불을 끄고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앞으로 다가갔다.
원하던 결말은 아니지만 이정도면 나름 괜찮겠지?
난 힐끔 사마방과 사마랑의 눈치를 살폈다.
다행히 그들의 표정에 노한 기색은 없었다.
“….”
분해서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사마의의 얼굴을 보며 마지막 일격을 날리고 싶었다.
하지만 사마의도 내가 점수를 따야 할 사람.
이만큼 했으면 됐겠지.
난 불이 꺼진 향초를 사마의의 앞에 놓아주며 빙긋 웃었다.
“당신도 이런 식으로 파괴를 하지 않은 채 다른 사람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을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
“중달. 이것은 향초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목소리에 물기가 젖어 있다.
분해서 울 것 같은 그를 향해 난 내가 지을 수 있는 최대한의 밝은 웃음을 지었다.
“초는 자신의 몸을 태워 빛을 만들어내는 물건입니다. 자신의 몸이 녹더라도 세상을 밝게 하려고 하지요. 그 빛과 향은 사람들을 이롭게 한답니다.”
“…..”
“저는 당신이 이런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딱히 사마의가 어떤 사람이 되든 그건 내가 알바가 아니었지만 주변 사람들의 좋은 반응을 얻어내려면 이정도는 해야된다.
그리고 향초도 뭐 원래 선물로 주려고 가져온 것이니까 아깝지도 않았다.
“당신에게 선물로 드리겠습니다. 받아주시겠어요?”
눈물을 그렁그렁 맺은 채 사마의는 나를 노려보다가 내가 내민 향초를 잡아채듯 받아 밖으로 나가버렸다.
휴… 이정도면 됐겠지?
내가 자리로 돌아오자 사마랑은 키득거리더니 내 어깨를 팡팡 쳐 주었다.
“잘했어! 아주 찍소리도 못하더구만!”
“이 일로 중달이 마음이 상하지 않았나 걱정됩니다.”
“아냐. 아냐. 잘했어. 사람들이 너무 오냐오냐 해줘서 버르장머리가 없거든.”
“…그, 그런가요?”
그러고보니 사마의의 행동은 무척이나 무례한 것이었다.
사마의 정도로 똑똑한 아이가 그걸 몰랐을까?
아무리 사마의가 사마방의 아들이라고 하나 이정도 무례는 진짜 실례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사마의의 무례에 대해 말하는 이가 없었다.
“유하.”
“네.”
“아까 그 물건은 무엇이더냐?”
“어… 그거요? 향촌데요.”
“경조윤으로 있으며 많은 기물들을 보았지만 그런 것은 처음 보는구나. 네가 만든 것이니?”
“네.”
“호오… 나도 하나 있었으면 좋겠구만.”
역시 향초를 탐낸다.
글 읽는 사람이나 관직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이제부터 선물로 향초를 줘야겠구만.
아버지나 전 군승이나 사마방이나 다들 향초를 보면 갖고 싶어하는 걸 보니 다른 향의 초도 만들 방법을 생각해봐야겠다.
“보잘것 없지만 경조윤께 선물로 드리려고 챙겨 온 것입니다.”
짐에서 향초를 꺼내 사마방에게 주었다.
그것을 받은 사마방의 얼굴이 눈에 띄게 밝아지자 사마랑은 부러운 듯 그것을 바라보았고 남은 향초 하나를 들어 그에게 주었다.
“어? 내것도 있어?”
“형님을 만나게 된 기념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제가 없을때 저라 생각하고 아껴주십시요.”
“하하하하! 당연히 그래야지! 이거 좋은 걸 받았는데… 나는 선물을 준비하지 못해 아쉽네.”
“그저 오늘 좋은 연이 이어진 것만으로 기쁠 뿐입니다.”
“그렇구만! 아주 좋아! 하하하!!”
그, 그럭저럭 어떻게 잘 해결된 거겠지?
사마의가 나가버리기는 했지만 어쨌든 향초는 받아줬으니 나한테 큰 원한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사마방이나 사마랑도 날 무척 좋아하는 듯 하고.
이정도면 선방했다고 생각해도 될 것이다.
으… 피곤하다.
연회인데 이렇게 피곤하다니.
진짜 영업도 할 짓이 못되는 구만.
내가 피곤한 것과는 별개로 연회는 즐거운 분위기로 이어졌다.
그렇게 한참이 지나 연회가 끝났을 때는 어느새 저녁이 되어 있었다.
“동생. 피곤한 듯 하니 가서 쉬게. 방은 내가 준비해 뒀네. 자자. 오늘의 주역이 많이 피곤해보이니 오늘 연회는 여기까지 하기로 합시다!”
내가 힘든 기색을 보이자 사마랑은 자리에서 일어나 주변을 보며 외쳤다.
그것에 사마방은 느긋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 후 나에게 차분히 말했다.
“여독을 풀지도 못했는데 이렇게 연회를 마련해서 미안하다. 오늘은 푹 쉬고 내일 이야기나 좀 하자꾸나.”
“아닙니다. 경조윤께서 모자란 저를 위해 이렇게 마련해주신 연회를 모두 즐기지 못해 죄송스러울 따름입니다.”
“녀석. 랑아. 유하를 방에 데려다주거라.”
“네!”
사마방의 말에 사마랑은 날 데리고 연회장을 나갔다.
건물을 나와 조금 더 가서 동아현에 있는 내 방보다 훨씬 좋은 방에 날 넣어 준 사마랑은 부드럽게 웃으며 내게 손을 내밀었다
“앞으로 잘 지내자고. 동생.”
“네. 형님.”
“그럼 푹 쉬시게. 내일 보세.”
“알겠습니다. 좋은 밤 되십시요.”
사마랑에게 인사를 하고 난 곧장 침상에 누웠다.
푹신한 이불이 기분 좋다.
“으… 우시장은 내일 가야겠네.”
“도련님.”
“어? 너 있었냐?”
언제 들어온거지?
방 구석에 서 있던 장연이 다가오자 난 그녀에게 힘겹게 말했다.
“야. 내일 제대로 목욕재개해야하니까 아침에 일찍 깨우고 목욕물 준비 좀 해줘.”
“왜요?”
“내일은 제대로 인사를 드려야 하는 날이니까 그렇지.”
비록 여행 기간 동안 내가 한 일은 없지만 그래도 땀과 흙먼지로 지저분해져 있었다.
그렇다면 내일은 사마가의 사람들과 제대로 인사를 해야 할텐데 이 꼴로는 그렇지.
아무리 내면이 중요하다고 하더라도 외관 역시 중요하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렇다면 최대한 준비를 하는 수 밖에.
내가 떨떠름히 말하자 장연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등불을 껐다.
“그럼 편히 쉬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