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Shrine RAW novel - Chapter 27
00027 계란을 세우는 방법 =========================
“도련님.”
“으…”
평소보다 부드럽고 따뜻한 방이라 그런지 일어나기 싫다.
침상에서 밍기적거리는 날 흔들어 깨우는 장연을 치워내고 다시 이불 속으로 들어가자 그녀는 이불을 확 뺏어버렸다.
“도련님! 일어나셔야 한다구요! 아침에 목욕을 하셔야 한다고 하셨잖아요!”
“으… 아침은 힘들어.”
장연에게 이불을 빼앗기고 나니 정신이 좀 든다.
내 방보다 훨씬 좋고 화려한 방이 보인다.
“아. 여긴 온현이었지.”
“뜨거운 물을 준비해 놓았습니다.”
어제 내가 말한 것이 떠올랐다.
이럴 때가 아니지.
짐에서 비누와 박하, 그리고 따로 챙겨 놓은 귤 향료, 버드나무 가지. 거기에 유 의원에게 받은 창포와 박하를 꺼내었다.
바구니 하나 가득 이것저것 챙겨가는 날 보며 장연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건 뭐에요?”
“씻는 건 씻는거고 때빼고 광 내야 하니까.”
“으음…?”
이해하지 못한 듯 하지만 굳이 이해시킬 필요는 없겠지.
장연을 따라 건물 뒷쪽으로 향했다.
“목욕 시중을 들어드리겠습니다.”
“……”
목욕 시중이라니.
이래서 돈이 있고 볼 일이구나.
전에 관아에서 목욕할 때는 유모가 씻겨주는게 다였는데.
약간 나이 들어보이지만 아름다운 얼굴의 시녀 하나가 차분한 어조로 말하자 난 히죽 웃었다.
“부탁할게.”
이럴 떄 이런 거 받아보지 언제 받아보겠나.
내가 옷을 벗고 안으로 들어가자 그녀는 천천히 따라 들어왔다.
“그런데 이건 뭡니까?”
“경조윤 어르신과 사마가의 사람들과 제대로 인사를 나누는 날인데 나름 꾸며야 할 것 같아서 말이지.”
내가 챙겨 온 목욕도구들을 보며 의아해하던 시녀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으아! 뜨거운 물이다!”
커다란 나무통에 가득 담겨져 있는 뜨거운 물에서 열기가 나는 것을 보며 난 환하게 웃었다.
이정도의 뜨거운 물을 만들 수 있다니.
역시 부잣집이구나.
내가 감탄하며 뜨거운 물을 바가지로 퍼 담으려 하자 시녀는 황급히 날 말렸다.
“제가 해드리겠습니다.”
“응? 그래? 그럼 부탁할게. 아, 이것 좀 끓여서 삶은 물 좀 가져오고.”
이정도로 물을 덥힐 수 있다면 따로 창포물 챙기는 것도 어렵지 않을 것이다.
창포를 받은 그녀가 밖으로 나갔다가 얇은 옷으로 갈아입고 들어오자 난 그녀를 위 아래로 살폈다.
오오… 성숙한 여인의 매력이 느껴진다.
“시작하겠습니다. 여기 앉아주세요.”
그러고보니 저 시녀는 목욕 시중을 들러 온 거지.
난 그냥 받기만 하면 되는 건가?
나는 머리를 묶고 있던 머리끈을 풀어 탁자 위에 놓은 후 의자에 앉았다.
“물은 좀 괜찮으십니까.”
“으으… 좋다.”
탕에 담궜으면 좋겠지만 그 정도 사치는 힘들겠지.
머리부터 발끝까지 따뜻한 물이 부어지자 홀딱 젖은 쥐 꼴이 된 나는 시녀가 팥가루를 꺼내려 하자 그녀를 말렸다.
“잠깐! 이걸로 해줘!”
“이게 뭡니까?”
“씻는거지. 천 있지? 천에 비벼서 해.”
“알겠습니다…”
이해하지 못한 듯 했지만 그녀는 내가 시키는대로 비누를 천에 마구 비빈 후 뜨거운 물에 담궈 비누거품을 만들어냈다.
그것에 신기해했지만 더 이상 나에게 묻는 대신 비눗물이 잔뜩 묻은 천으로 내 몸을 닦았다.
“으하하! 간지러워!”
“죄송합니다.”
“아, 아니 뭐.”
뭐랄까.
즐겁지가 않다.
뭐 이렇게 사무적이야.
좀 부끄러워하거나 아니면 고압적이든가.
그것도 아니면 반응이라도 보이든가.
무반응이다보니 오히려 기운이 쫙 빠진다.
“에잇.”
내 앞으로 와 가슴과 다리, 작은 고추를 씻어주는 그녀에게 손을 뻗었다.
물기에 젖은 터라 가슴에 달라붙은 옷 위로 그녀의 가슴을 만지작거렸지만 그녀는 놀랄 정도로 무반응이었다.
“왜 그러십니까?”
“….아냐. 됐어.”
이유하의 기억 속에 있던 야동이나 만화에선 이러면 시녀들이 당황했는데.
내가 가슴을 만지든 말든 관심없다는 듯 내 몸에 비누거품을 전부 뭍혀 때를 뺀 그녀는 뜨거운 물로 그것을 헹궈낸 후 감탄했다.
“굉장히 좋군요. 팥이나 콩보다 훨씬 깨끗해지는 것 같습니다.”
“그렇겠지… 그거 다 삶았으면 좀 가져와봐.”
“네.”
아까 창포를 삶아서 그 물을 가져오라고 했었다.
비누로 감아 빳빳해진 긴 머리에 창포물을 뭍혀 헹궈내었다.
머릿기름 냄새 대신 창포 냄새가 물씬 풍기는게 이정도면 나쁘지 않은 듯 싶다.
“돈이 없으니까 몸이 고생이군… 그래도 린스 만드는 법은 모르니 어쩔 수 없나.”
대충 몸은 씻었고.
남은 것은 양치질 뿐이다.
소금으로 하는게 좋겠지만 소금까지 달라고 하는 것은 너무 양심이 없어보이니 이렇게라도 하는 수 밖에.
버드나무가지를 짓이긴 후 그것으로 이를 닦았다.
“이제 닦아줘”
몸의 물기를 모두 닦아낸 후 귤 향료를 몸 여기저기에 발랐다.
상큼한 귤 향이 몸에 남는다.
그것에 시녀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난 빈 병을 그녀에게 휙 던졌다.
“이거 좀 버려줘.”
“아, 네.”
유 의원에게 받은 박하를 입에 넣고 씹기 시작했다.
마른 박하가 침으로 불어나며 향을 만들어내자 정신이 바짝 든다.
“으…”
참자. 오늘은 말을 많이 해야 할테니 이걸로 버티야 된다.
그나저나 목욕 시중. 무지하게 편하다.
뜨거운 물로 이렇게 느긋하게 씻을 수 있다니.
음…
집에 가서도 이런 식으로 하고 싶은데 방법이 없을까?
시녀가 옷을 입혀주는 가운데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뜨거운 물을 많이 쓸 수 없는 이유는 간단했다.
장작이 모잘라서다.
겨울의 산에서 나무를 하는 일은 쉽지 않다.
한다 치더라도 난방용으로 쓰는 것이 대부분이지 이렇게 물을 한번 끓이는데만 쓰지 않는다.
“…그럼 방법은 하나 뿐이군.”
거꾸로 두번 타는 보일러를 만들 수 없으니 최소한의 연료로 고효율을 내는 화덕을 만들어내면 된다.
“음…”
제일 좋은 것은 온돌을 만드는 것이다.
난방도 하면서 그 난방을 하며 물까지 끓일 수 있는.
온돌의 경우 대한민국의 전통 난방기구이다보니 여기서는 찾아 볼 수 없었다.
하지만 그걸 하기에는 손이 너무 많이 들어간다.
거기에 겨울에 공사?
시멘트를 만들어서 때운다고 하더라도 마르는 거 기다리는게 일이겠다.
온돌을 하려면 아무리 늦어도 가을까지다.
괜히 건드렸다가 죽도 밥도 안되느니 그냥 간단하게 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찾는게 나을 것이다.
“일단은 빨리 만들 수 있는 화덕이 낫겠군.”
지금의 화덕은 상당히 비효율적인 방식이다.
그렇다면 그것을 개량하는 수 밖에.
몇가지 쓸만한 방식을 생각하며 걷던 도중 어느새 식당 앞에 도착했다.
“들어가시지요.”
“응? 아. 응.”
언제 여기까지 온거지?
정신 바짝 차리자.
기껏 어제 점수 다 따놓고 오늘 망할지도 모르니까 말야.
문이 열리자 어제보다는 적은 사람들이 보였다.
어제 왔던 이들은 사마방과 친분이 있는 타인이었다면 지금은 진짜 사마가의 사람들만 모인 것이라고 볼 수 있었다.
“어서 와. 동생.”
“예. 형님. 경조윤 어르신. 지난 밤 격조하셨습니까.”
이 자리의 가장 큰 어른이라 할 수 있는 사마방에게 먼저 인사를 하고 주변을 둘러보며 가볍게 인사를 했다.
가장 상석은 사마방.
그리고 그 다음은 장자인 사마랑.
사마랑의 옆에는 빈자리 하나가 있었고 그 빈자리의 옆에 사마의 앉아 있었다.
나머지는 아내로 보이는 여인과 그녀보다 좀 더 젊어보이는 여인이 앉아 있었다.
“진유하. 사마가의 어른들께 인사올립니다.”
“어휴~ 예의바르기도 해라.”
“착하네.”
“어제 그 향초를 만든 사람이라면서? 대단해. 밀랍으로 그런 것을 만들 줄은 누가 알았겠어.”
이건 어째 기술자 취급 받는 것 같은데.
뭐 상관없나.
신분이 낮은 기술자라면 천시받지만 나름 현장의 아들이라는 신분이다보니 천시받지는 않겠지.
내가 빙긋 웃자 사마랑은 날 데리고 자신의 옆에 앉혔다.
자리상으로 보면 사마의보다 높은 자리다.
그 자리에 내가 앉는 것이 불만이었는지 사마의는 날 보자마자 휙 고개를 돌렸다.
짜식.
어제 좀 발렸다고 이렇게 나오는거냐?
“중달. 좋은 아침이네요.”
“어허. 중달은 너보다 어리다. 언제까지 존대할 생각이냐? 내 동생이 되려면 중달의 형이 되겠지.”
“하지만 중달이 절 형으로 바라보지 않는데…”
“하하하. 중달은 나도 형으로 취급하지 않는단다. 자. 괜찮으니 편하게 하거라.”
“그러시다네.”
“마음대로 하십쇼. 저도 당신을 형 취급할 생각은 없으니까. 그리고 반말하지 말라고 했을텐데.”
“그러시다네요.”
아이고… 진짜 까칠한게 장미의 줄기의 가시보다 더하네.
아무래도 사마의에게 점수를 따는 것은 무리인 듯 싶다.
내가 갈때까지 사마의가 이런 식이라면 어쩔 수 없지.
사마의 빼고 다른 사람들은 대부분 나에게 호의적인 것 같으니 그들의 점수라도 따놔야겠다.
여차하면 나중에 사마의를 파칭! 해버리는 수 밖에.
느긋하게 생각하자.
조급함은 오히려 일을 망친다.
사마의가 적대하는 분위기를 보이고 있지만 그래도 지가 어쩌겠어?
나중이라면 모르겠지만 지금은 사마의보다는 사마방이다.
사마의에 대한 대응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해줄거다.
“의야. 적당히 하려무나.”
것봐.
내가 뭐라고 안해도 말리잖아.
사마방의 부인으로 보이는 중년의 고운 미녀가 쓰게 웃으며 말하자 사마의는 날 한껏 쏘아 본 후 고개를 푹 숙였다.
꼴 좋다.
하지만 내 속내를 보일 필요는 없지.
작게 부인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유하라고 했니? 반갑구나. 난 랑이와 의아의 어미인 사마 진영이라고 한단다.”
“어? 사마…?”
“사마가에 들어온 이는 다들 사마씨를 쓰는게 규칙이니까.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라고.”
그렇구나.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사마방은 주변을 둘러보며 차분히 말했다.
“자. 유하도 배가 많이 고플터인데 어서 식사를 하도록 하세.”
“예.”
나물 몇가지가 찬의 전부인 집과 비교해서 사마가의 조식은 대단히 훌륭했다.
아침부터 고기반찬이라니.
“입에는 맞니?”
사마진영은 부드럽게 웃으며 물었다.
입에 맞냐고?
꿀맛이다.
진짜 맛있다. 이거.
“엄청 맛있네요! 숙수의 솜씨가 대단하네요!”
“어머? 숙수라니. 후후후… 사마가의 식사는 전부 내가 담당하고 있단다.”
“정말인가요? 굉장하시네요!”
귀부인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요리를 직접 만든단 말야?
대단한데.
다른 귀부인들 중에는 요리는 커녕 불을 어떻게 피우는지도 모르는 사람이 태반인데.
내가 감탄하자 사마랑은 피식 웃었다.
“이정도는 어머님의 솜씨로는 아주 기본적인 것이다.”
“그럼 더 맛있게 하실 수 있다는 건가요? 와… 정말 대단하세요!”
“후후후. 많이 있으니 더 먹으렴.”
“감사합니다!”
직접 음식을 만들어 준 사람의 호의를 얻으려면 어떻게 하느냐.
일단 잘 먹으면 된다.
그리고 그 음식을 계속해서 칭찬하면 된다.
만든 사람으로서의 보람이 그런 것이기 때문이다.
난 밥보다는 다른 반찬 위주로 빠르게 먹은 후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헤헤… 너무 맛있네요. 원래 조식은 잘 못 먹는데 어머님의 음식 솜씨가 대단해서 벌써 이렇게 먹어버렸군요.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어머? 어머님이라니~ 넉살도 좋구나. 벌써 다 먹었니? 후후후. 잘 먹어주어서 고맙구나. 우리 애들은 그리 많이 먹지 않거든. 남자 아이는 이래서 좋구나. 얼마든지 더 먹으렴.”
예상대로!
내가 잘 먹는 모습에 사마부인은 그것이 상당히 마음에 들었나보다.
못사는 집에 초대를 받아 눈치도 없이 꾸역꾸역 먹으면 개념없다는 소리를 듣지만 사마 가문은 부자다.
그렇다면 내가 밥 한끼를 더 먹는다고 해서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더욱 좋은 모습을 보인 것에 내가 만족하고 있을 때 사마의는 피식 웃으며 혼잣말 하듯 빈정거렸다.
“잘도 먹네. 어쩜 저렇게 탐욕스럽게 먹을까?”
“흠….”
“의야! 어찌 그런 말을 할 수 있느냐!”
사마의의 빈정거림을 들은 사마 부인이 발끈하며 외쳤지만 사마의는 신경도 쓰지 않고 날 지그시 노려보았다.
그 시선에 어떻게 대응할까.
그냥 무시?
그런데 왜 사마방과 사마랑이 웃으며 바라보지?
이거 어제부터 뭔가 되게 찝찝한데…
날 시험하려는 건가?
하지만 날 시험할 일이 뭐가 있는데?
“탐욕이라고 하셨습니까?”
“아. 들으셨나요? 들으시라고 한 말은 아닌데. 그래요. 탐욕. 먹는게 아주 돼지처럼…”
뻔히 들리게 말해놓고 들으시라고 한 말이 아니란다.
와… 이정도면 나 미워하는 거 맞지?
나 화내도 괜찮지?
굳어버린 표정을 관리하며 애써 웃었다.
웃는 얼굴에는 침 못뱉는다는데 어디 한번 두고보자.
“중달. 묻겠습니다. 당신은 농사를 지어 본 적이 있나요? 양이나 소를 길러 본 적이 있나요? 하다 못해 요리를 해 본 적이 있나요?”
“그런 것 따위…”
말했겠다!?
걸렸다. 요놈.
젓가락을 내려 놓은 후 난 몸가짐을 바로 했다.
“제가 이렇게 먹고 있는 음식은 그런 것 따위라 불릴 만한 가벼운 것이 아닙니다.”
시험을 하겠다고?
그럼 받아주지.
사마의가 저렇게 개념없이 나오는데도 사마방이나 사마랑이 주의를 주지 않는다는 것은 내가 어떻게 나올지가 궁금해서 그러는 것일지도 몰랐다.
그렇다면 해주면 되는 것이다.
적절하게 예의를 갖추며 논파하는 것이라면 사마방이나 사마랑이라고 하더라도 크게 뭐라고 하지는 않겠지.
“한알의 벼를 얻기 위해 농민들은 자신의 피와 땀을 대지에 바칩니다. 일년의 고행을 통해 그들은 그 결실을 얻지요. 또한 한마리의 돼지를 키우기 위해 그들은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그것에 몰두합니다.”
“……”
“그 뿐 아닙니다. 이 음식을 만들기 위해서 사마 부인께선 많은 고행과 노력을 하셨을 것입니다. 그것을 그런 것 따위라 치부하시면 안됩니다.”
“하찮은 일이잖습니까. 그것은.”
“어째서 하찮습니까?”
“작은 일이니까. 농사를 짓고. 돼지를 치고 소를 기르고. 요리를 하고. 그것은 그저 작은 일에 불과합니다.”
“그것이 작은 일이라면 큰 일이라면 무엇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나라를 경영하는 것. 필부의 농사가 아닌 나라를 키워 만인에게 평안을 주는 것. 그것이 큰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게 큰일인가요?
“그런 것 조차 모르는 겁니까?”
사마의의 비웃음에도 화를 내는 대신 난 웃었다.
“모르겠습니다. 나라를 경영하는 일이 큰일이고 그것이 그리 중요한 일이라면 어째서 필부의 농사가 작고 하찮은 일입니까?”
“당연한 것 아닌가요?”
“모르겠습니다. 저는 그것이 당연한 것이라는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은 나는 사마의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당신의 당연함은 저의 당연함과 다르군요.”
“무슨 말입니까?”
“저에게 있어서 당연함은 수신입니다. 그리고 제가를 이루는 것입니다. 한 사람의 농부가 보리를 심어 그 보리가 풍작을 이루었을 때 그 사람은 자신의 가족을 행복케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모였을 때 나라가 평안해질 것이고 더 나아가 천하가 안정을 이루겠지요.”
“고작 천한 농부가 중요하다는 겁니까?”
“농부 뿐만 아닙니다. 돼지를 치는 자는 돼지를 기르는데 힘을 다하고 소를 기르는 자는 소를 기르는데 힘을 다해야 합니다. 그리고 다른 것들도 마찬가지지요.”
“그렇게 작은 것들에 연연해서 뭘 이룰 것입니까?”
사마의의 도발 섞인 말에도 나는 화를 내지 않았다.
어쩌면 그의 말이 맞을지도 몰랐다.
큰 이상을 가지고 있는 자는 그만큼 큰 것을 볼 것이다.
하지만 나는 달랐다.
나에게 큰 이상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내가 원하는 것은 그저 나와 내 가족,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행복과 편안이니까.
“작은 것이 모여 큰 것을 이룹니다. 수신하여 제가를 이루고, 그것이 모여 평안한 나라를 만들고. 그 이후 천하의 평안을 논하는 것이 맞다 생각합니다.”
“작은 것에 연연하다가 큰 것을 잃을 수도 있는데도?”
“작은 것을 놓침으로서 가져야 할 큰 것에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농민의 얼굴에 웃음이 사라지고 백성의 삶에 희망이 사라졌는데도 지켜야 할 큰 것이 무엇입니까?”
“…….”
“작은 것이라 하여 귀하지 않고 존귀하지 않다 어찌 말하겠습니까. 당신에게 있어서 농작물을 기르고 요리를 하는 것이 그저 가벼운 일일지도 모르지만 그들에게 있어서 그것이 과연 가벼운 일이겠습니까?”
이유하의 기억을 떠올렸다.
그의 시대는 왕이 없었다.
작은 사람들이 모여 작은 힘을 합쳐 나라의 대표를 뽑았다.
물론 그것이 무조건 옳다는 것은 아니다.
우민들의 선택으로 인해 현명한 이가 뜻을 잃을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난 그렇다하더라도 작은 것을 무시할 수 없다 생각한다.
이유하의 기억이 아니었다면 나 역시 사마의와 같은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지금의 시대에 백성의 안위를 걱정하는 자는 별로 없으니까.
백성보다는 황실.
실리보다는 명분.
공맹의 도리를 중히 여기지만 사람을 살리고 그들을 먹여살릴 기술은 천시한다.
그것이 지금이다.
난 사마의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의 눈은 의지와 독기로 불타고 있었다.
더 큰 것을.
더 중한 것을 논하며 그것을 시행하려 한다.
그렇기에 난 사마의의 의견에 정면으로 대항했다.
“당신은 어제 계란을 세울때 그것을 당신의 힘으로 파괴하여 세웠지요. 하지만 계란을 세우는 방법은 그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비록 시간이 더 걸리고 수고가 더 들기는 했지만 저는 밀랍의 도움을 받아 계란이 부서지지 않게 그것을 세웠습니다.”
“……”
“그것이 저와 당신의 차이입니다. 아. 물론 제가 맞고 당신이 틀렸다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몰고가서 사마의 개새끼! 라는 의견을 내세워 그와 척을 질 생각은 없다.
“그저 다를 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