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Shrine RAW novel - Chapter 343
00343 안전한 일부, 위험한 전부 =========================
“하고 싶은 말은 그게 다요?”
간신히 화를 억누른 전풍을 향해 방통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아직 안끝났는데. 그럼 본론으로 들어갈까? 북해군에서 나간다… 당연하겠지만 난 인정할 수 없어.”
“그럼?”
“아까도 말했잖아. 추격은 안할테니까 병사들 데리고 동래군으로 가서 배 타고 북방으로 가. 그거면 되겠지?”
“장난하시오?”
“그럴리가. 진심인데? 나도 놀기만한 것은 아니라고. 동래군에 있는 배 정도라면 지금 당신이 데리고 있는 병력 정도는 충분히 옮길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렇다하더라도 물자는…!”
“그걸 다 가져가는건 도둑놈 심보지. 이봐. 전풍. 뭔가 착각하고 있는 모양인데 기존의 방침을 버린 순간 당신은 패배한거야. 지금 당신이 해야 할 일은 제발 공격하지 말아주십시요. 라고 무릎꿇고 비는게 아닐까?”
신랄한 방통의 비웃음에 전풍은 다시 한번 이를 갈았다.
그가 느끼는 굴욕감이 전달될 정도였다.
전풍의 뒤에 서 있던 안량마저도 이를 가는 것을 본 방통은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추격하지 않는 것만도 감사히 여겨.”
“……”
“할 말은 이게 단데. 자. 그럼 결정해. 여기서 죽을거야? 아니면… 어떻게든 구차한 목숨 살려서 다시 기회를 만들어 볼 생각이야?”
방통은 싱글거리며 전풍에게 말했다.
억울할만도 하겠지.
자신의 방식대로 계속 했다면 이딴 어린 놈에게 이런 굴욕을 당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자신의 도발에 저 방통이 이를 갈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 모든 것을 망친 것이 바로 심배였다.
‘제길…!’
심배에 대한 증오심을 무럭무럭 피어올리며 전풍은 한숨을 내쉬었다.
결국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만들어진 것이다.
“…좋소. 약속은 지키시오.”
“병력을 다 데려가지 않고 남기면 물자는 챙길 수 있을거야. 그렇지? 그리고 한가지 말해주겠는데 황하를 이용할 생각은 하지 말았으면 좋겠네. 임제항, 동구항, 고당항. 이 세개의 항구는 이미 우리의 손에 들어와 있어. 괜히 애꿎은 병사들 물귀신 만들지 말고 그냥 얌전히 북방의 항구를 이용하도록 해.”
“좋은 조언 고맙군.”
내용과 상반되는 어조로 씹어뱉듯 거칠게 말한 전풍은 분노한 얼굴로 방통을 노려보았다.
그의 시선을 즐겁게 받으며 방통은 여전히 여유있고 능글맞은 어조로 말했다.
“별 말씀을. 그럼 먼길 조심히 가시게나.”
자리에 있는 것 조차도 싫었는지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휙 자리에서 일어난 전풍이 성큼성큼 걸어가버리자 안량은 장합을 힐끔 본 후 방통을 노려보았다.
“어린놈이 혓바닥이 날카롭기 그지 없구나. 차후 이 검을 앞에 두고도 그렇게 잘 떠들 수 있을지 궁금하군.”
“구시화지문(口是禍之門)이요 설시참신도(舌是斬身刀)라. 입은 화를 부르는 문이고 혀는 몸을 베는 검인데… 지금 그렇게 자신만만하게 떠들어대고 나중에 나한테 잡히면 감옥에서 거적떼기를 얼마나 걷어 차시려고 그러시나?”
“빌어먹을 애송이가…!”
“그 빌어먹을 애송이가 눈 앞에 있는데 칼 한번 휘두르지 못하시네. 하북 제일검이라는 명성이 운다. 울어.”
안량은 씩씩거리며 방통을 노려보다가 몸을 휙 돌리고 전풍의 뒤를 따라 가버렸다.
전풍과 안량을 데리고 적군의 정예병이 부대로 돌아가자 장합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왜 그렇게 도발하셨습니까?”
“이거 미안하네.”
“예? 아, 아닙니다. 방 도독님을 지키기 위해서는 목숨도…”
“아니. 그게 아니라. 하북제일검을 쉽게 잡을 수 있는 기회를 날려먹게 한 것 같아서 말야.”
자리에서 일어난 방통은 떨떠름한 입맛을 다셨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안량은 지금 왼팔을 제대로 쓰지 못할거야.”
“예? 하지만…”
아까 전 안량은 왼손만으로 대검을 움직였었다.
그의 대검이 무엇인지는 자신도 안다.
실제로 부딪혀 본 적이 있으니 말이다.
그것을 움직일 수 있다면 멀쩡한 것이 아닐까?
자신이 보기에도 그의 움직임은 자연스러웠기에 경계했던 것이다.
장합이 궁금해하자 방통은 천천히 말했다.
“너도 알잖아. 화타 선생의 마취제. 화타 선생께서 고안하시긴 했지만 다른 의원들도 비전의 마취제나 진통제는 가지고 있을거라고. 아마 그것을 엄청나게 퍼먹었을지도 모르지. 아니면 초인적인 정신력으로 버텼을 수도 있고.”
“왜 그런짓을…?”
진통제나 마취제를 많이 복용하면 몸에 안좋다.
특히 무인들 같은 경우는 더욱 그랬다.
약효가 몸의 감각을 둔화시키기 때문이었다.
“널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없으니까. 최대한 자신의 몸 상태를 숨겨야했겠지.”
“허어…”
진짜로 한쪽 팔을 쓰지 못할 정도였단 말인가.
표정 한번 바뀌지 않았던 안량을 떠올린 장합은 한숨을 내쉬었고 방통은 씩 웃었다.
“기회는 얼마든지 있을거야. 우리가 만들어 준다. 하지만 그 기회를 얻는 것은 너니까 훈련 좀 해.”
“알겠습니다. 그보다… 괜찮으시겠습니까?”
“뭐가?”
장합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의 시선에 닿아 있는 것은 북해로 귀환하는 원소군이었다.
“삼만이 넘는 병력입니다. 그리고 방 도독님에게 이렇게까지 모욕을 당했습니다.”
“그래서?”
“그가 방 도독님을 원망하며 심배와 손을 잡을 가능성이 있지 않습니까.”
“하하하하핫!! 순진하네.”
“예?”
살면서 순진하단 소리를 들어 본 건 또 처음이다.
자신보다 훨씬 어린 방통에게 순진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장합은 멍청히 그를 바라보았고 방통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오히려 이를 갈았으면 갈았지 절대로 심배와 손을 잡지는 않을거야. 아니… 지금 전풍은 나보다는 오히려 심배를 더 죽이고 싶어 할걸? 이번 실책으로 목이 달아나게 생겼으니까.”
“…..”
“내가 지금까지 북해를 공략하지 못한 이유가 뭔지 알아? 전풍이 아예 장기전을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야. 그렇기에 그는 완벽하게 수비만을 하고 있었지. 만약 친다 하더라도 친 우리도 엄청나게 손해를 볼 정도로 완벽하게 말이야.”
“그건… 그렇지만.”
“그런 상황이 틀어지고 전풍이 이 꼴이 된 이유가 누구 때문이라고 생각해? 결국은 심배 때문이지. 나나 유하, 서복은 다음이야. 어차피 싸워야 할 적이니까. 하지만 지금 전풍은 나나 유하, 서복에 대한 증오보다 더욱 급한 것이 있어.”
“패배의 책임입니까?”
“그래.”
북해를 잃고 동래군까지 잃게 되었다.
그 실책에 대한 책임은 누군가가 져야했다.
“그 책임을 원상이 질까? 그래도 자기 아들이다. 심배와 원담은 원상을 죽이길 바라겠지만 원소는 그렇게 할 수 없겠지. 어쨌든 자기 아들이니까. 그렇다면 그 패배는 순우경과 전풍이 질 수 밖에 없어.”
“하지만… 전풍은 유능한 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심배는 더욱 기를 쓰고 이번 기회에 전풍을 제거하려고 하겠지. 자신의 방침 때문에 전풍이 패배한 것을 알고 있으니까. 그냥 전풍을 내버려둔다면 그가 자신을 공격할 걸 모를 정도로 멍청하지 않을테니까.”
“…..”
“하지만 원상은 방패가 되기에는 너무 어리고 약해.”
“전공은 전공대로 챙기지만 패배의 책임은 져야 한다라…”
“화가 나겠지. 하지만 어쩔 수 없어. 책사라는게 원래 그런 것이거든.”
“그렇다고 하더라도 삼만이 넘는 병력입니다. 그 병력이 원소에게 들어가면 위험한 것 아닙니까?”
“전풍은 바보가 아니야. 그도 살아날 방법을 찾겠지. 동래군이라도 가지고 있다면 모를까 동래군까지 내어 줄 수 밖에 없다면 그가 할 수 있는 방법은 한가지 밖에 없을거야.”
“반란 입니까?”
장합은 눈을 빛냈다.
만약 전풍이 북방에서 반란을 일으켜 준다면 그것만큼 좋은 것은 없었다.
하지만 방통은 야속하게도 고개를 가로저었다.
“설마~ 전풍이 반란을 일으킨다고 해서 동조할 사람이 누가 있겠어? 당장 같이 있는 순우경을 제외하고는 다들 원소를 극진히 모시고 따르는 이들인데.”
“그럼 뭡니까?”
“전풍은 원소와 함께 북방을 정벌하는데 앞장섰지. 그렇기에 북방에서 전풍의 영향력은 꽤 높아. 그와 친분을 유지하고 있는 세력도 많고. 그들의 도움을 받을 것이 분명해.”
방통은 여유롭게 웃으며 힐끔 북해 쪽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것을 이용하려고 하겠지…”
“그렇군요… 아무튼 축하드립니다. 서 군수님과 방 도독님이 이번에 엄청난 공을 세우셨군요.”
“그게 문제야. 가뜩이나 지금도 공이 많아서 명가에서 결혼시키려고 난린데… 이번 일로 더 들어오겠군.”
“하하하… 어서 하십시요. 진 장군님도 그렇지만 서 군수님도 조만간 결혼을 하실 것 같은데… 나중에 서주목께서 결혼하실 때 같이 하시는 건 어떻습니까?”
방통에게 매일같이 날아드는 정혼장을 떠올리며 장합은 즐겁게 웃었지만 방통의 표정은 잔뜩 찌푸려져 있었다.
“거절이다. 이름이 너무 커졌어.”
“좋은 것입니다.”
“글쎄… 그게 과연 좋기만 할까…? 장합. 병사들을 시켜서 서복과 양 사형을 불러와줘. 할 얘기가 있으니까 말야.”
북해로 돌아 온 전풍은 곧장 원상이 있는 집무실로 향했다.
그가 돌아오기만을 눈이 빠져라 기다리던 원상은 다급히 그에게 다가갔다.
“어찌 되셨습니까?”
“반은 얻고 반은 실패했습니다만…”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궁금해하는 원상을 보며 전풍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과연 자신의 책략을 원상이 따라줄까?
아직 어린 원상이다.
기재라는 이야기를 수도 없이 듣고 있지만 자신이 보기에는 아직 애송이에 불과한 원상이었다.
그가 과연 자신의 책략을 인정할 것인가 라는 작은 두려움을 가진 채 전풍은 심각한 어조로 말했다.
“이제부터 제가 하는 말을 반드시 지켜주십시요. 그래야 군수님도 살고 저도 삽니다. 아니, 저희 모두와 원공을 위한 길이기도 합니다.”
“무슨 일이길래 그리…”
“책사로서 고하는 것입니다.”
“…말씀해보십시요.”
하대가 아닌 존대를 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챈 원상은 침을 꿀꺽 삼켰다.
그런 그를 보지도 않은 채 전풍은 차분히 말했다.
“저희들은 패배하여 북방으로 후퇴하던 도중 폭풍을 만나 병력과 물자를 상당수 잃었습니다.”
“…예?”
“그 와중에 겨우 몇천의 군사만을 데리고 복귀할 수 있었습니다. 그 죄를 청하기 위해서 당분간은 북방에서 자중하기로 했습니다.”
“전 군사님… 그게 무슨…”
“업에 가시면 이리 말씀하셔야 합니다.”
“전 군사님은 가시지 않으십니까?”
“저는 들어갈 수 없습니다. 저 역시 큰 부상을 입었기 때문이지요. 요양을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남피에서 계속 머물러야 합니다.”
“그 말씀은… 그건.”
삼만이 넘는 병력을 업으로 데려가지 않는 것도 모잘라 부상을 입었다는 거짓 이유로 업에도 가지 않겠다는 이야기다.
원상이 당황하자 전풍은 침착한 어조로 말을 이어나갔다.
“그래야 합니다.”
“무슨 생각을 하시는 겁니까!?”
업에 가지 않는 것은 그렇다고 치더라도 병사를 숨기겠다니.
혹여 반란이라도 일으키려는 것일까?
원상의 눈에 두려움과 의심이 차오르는 것을 눈치챈 전풍은 붕붕 고개를 가로저었다.
“절대 아닙니다. 제가 어찌 반란을 일으키겠습니까. 제가 하고자 하는 것은 단 한가지. 원공을 간신에게서 지키려는 것입니다.”
“간신… 이라니요?”
“원담과 그를 추종하는 심배 일당들입니다.”
“하지만 그런 것이라면 저희가 병력을 데리고 돌아가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만약 저희가 업에 돌아가게 된다면 심배는 기회를 잡았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북해와 동래군이 얼마나 중요한 곳인지는 도련님도 아실 것입니다.”
“그래도…”
“죽고 싶으신 것입니까? 원담 따위에게… 심배 따위에게 죽고 싶은 것입니까?”
하지만 아버지를 속이는 일이 된다.
원상이 머뭇거리자 전풍은 그의 손을 꽉 잡았다.
“원담 따위가 진유하를 이길 수 있는 것은 그것이 진유하의 책략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몇년동안 조조에게 잡혀 있었던 머저리 심배가 복귀하자마자 힘을 얻을 수 있었던 것도 조조와 진유하의 지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그게 정말입니까!?”
“예. 그것이 아니면 설명할 수 없습니다. 군수님을 따르던 이들이 원담에게 넘어간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그가 어디서 그리 돈이 나서 그들을 포섭하고 끌어 올 수 있었던 것이라 생각하십니까?”
“그건…”
“이대로 두었다간 원공께선 심배의 간악한 수와 감언에 넘어가 조조에게 당하고 말 것입니다. 그러니… 그것을 막아야 합니다. 그것이 원공을 위함이기도 하며 원 군사님을 위함이기도 하고. 천하 만민을 위한 일이기도 합니다.”
전풍의 간절한 말에 원상은 눈을 질끈 감았다.
“…어찌… 해야 합니까?”
“저를 믿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군수님은 순우 장군과 고 장군이 보좌할 것입니다. 그들이 함께 간다면 원공이나 심배라 하더라도 함부로 군수님께 손을 대지 못할 것입니다. 또한 유 부인 역시도 군수님을 지키려 할 것이니… 그러니 안심하시고 업에 다녀와주시기 바랍니다.”
원상의 힘없는 말에 전풍은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
‘이것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얻었다.’
============================ 작품 후기 ============================
어휴 한편 남았네요.
분노가 원동력이 되는구만요…
그럼 좋은 밤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