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Shrine RAW novel - Chapter 39
00039 다섯 동물과 강 =========================
“이걸로 된 것이냐.”
“…네.”
아버지의 어깨를 보며 난 한숨을 내쉬었다.
발진과 농포가 어깨에 난 것이 다행이다.
“다시는 이러지 말아주세요.”
“하하하… 말하지 않았느냐. 난 무슨 일이 있어도 널 지킬 것이라고.”
내 머리를 쓰다듬는 아버지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종두법의 안전성은 믿으실 수 있는 건가요?”
“일단은 그렇게 생각하자꾸나.”
딱지가 떨어지며 생긴 흉터는 장연의 흉터와 비슷해보였다.
차이가 있다면 그 크기가 작다는 것과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다.
다행히 어깨에 난 것이라 옷을 입고 있으면 흉터자국도 볼 수 없었다.
“그래. 농사는 잘 되어가고 있다고?”
고름이 나기 시작해면서부터 아버지는 헛간에서 생활을 하며 장연 외에는 아무도 만나지 않았다.
그동안 내가 아버지의 일을 대신할 수 밖에 없었는데 다행히 겨울이라 농사 외에는 신경 쓸 일이 없었다.
모르는 것은 헛간 밖에서 아버지에게 물어 어찌어찌 해결하는 수 밖에 없었고 그것도 오늘로 끝이다.
“네.”
철제 농기구와 오줌액비를 뿌리고 골뿌림법을 시행한 곳과 다른 곳을 비교했을 때 확실한 차이를 알 수 있었다.
일단 말라버리거나 얼어죽어버린 수에서 확 차이가 난다.
고랑을 만들어 놓은 덕분에 한기에 꽤 버틸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철제 농기구를 써서 땅을 뒤집어 엎은 것 때문인지 농작물이 좀 더 빠르고 크게 자라고 있었다.
“만약 네 말대로 그것이 잘 된다면 봄이 되면 그 방법을 시행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구나.”
“그렇긴 하지만 좀 힘들 것 같아요.”
“왜?”
“비가 많아 오면 골뿌림법은 쓸 수 없으니까요.”
여름에 비가 많이 오는 곳인 만큼 오히려 농사를 더 망칠 수 있었다.
그것을 생각하며 내가 말하자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이고 물었다.
“그럼 어떤 방법을 쓰는게 좋겠느냐?”
“제일 효과가 좋은 것은 모내기를 하는 건데…”
“모내기? 그건 뭐냐?”
“아. 그게요.”
강가의 물을 끌어와 논을 만들고 이앙법을 이용하는 것에 대해서 설명했다.
이유하의 기억을 이용한 농법을 적용하여 어느정도 성과가 나오니 아버지도 욕심이 생긴 모양이다.
“논이라…”
“쉽지는 않아요. 일단 가뭄이 들면 그냥 망했다고 생각을 해야 하는 거니까요. 그리고 이 방법은 잘못하면 오히려 백성들의 삶이 더 힘들어 질 수 있어요.”
“왜? 생산량이 늘어나면 더 좋은 것 아니냐?”
“그렇긴 하지만요… 일단 문제가 꽤 많아요. 일을 해야 할 사람이 더 많은데다가 수로를 만드는 것도 시간과 예산이 많이 들어가는 일이라구요. 그것 뿐만 아니라 논농사가 성공하면 서로 논농사를 짓겠다고 할텐데 물의 사용에 대한 분쟁도 많이 일어날거에요. 거기에 생산량이 증대하니까 많은 것을 가진 이들은…”
“더욱 많이 가지기 위해서 백성들의 땅을 빼앗고 자신의 하인이나 노예들을 부려 직접 농사를 지을 수도 있다?”
“네.”
“그렇다면 쉽게 생각할 일은 아니구나.”
“그렇죠.”
농법은 기술이다.
즉 누구든지 훔쳐 따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종두법이나 비누를 만드는 법이야 숨어서 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이앙법 같은 것을 함부로 했다간 성과를 보고 아무나 따라 할 것이다.
“그럼 그 이앙법이라는 것을 하려면 어느정도 규제를 할 수 있는 정도의 힘을 가진 후에나 해야겠구나.”
“뭐 그렇겠죠.”
이유하가 알고 있는 이앙법의 최대 단점이라는 것도 바로 이것이다.
성공하면 그냥 밭에 씨를 뿌리는 직파법에 비해 엄청나다고 할 수 있을 정도의 생산량을 얻는 것이다.
그리 되면 너도 나도 이앙법을 하려고 할 것이고 그러다가 물이 부족해지기라도 한다면 누군가는 피박을 쓸 것이다.
그것 뿐인가?
논농사를 지어 성공하면 아버지의 말대로 땅과 힘을 가진 이들은 더욱 많은 것을 얻기 위해 백성들의 땅을 억지로 빼앗을 것이고 그로 인해 백성들은 더더욱 힘겨운 삶을 살지도 몰랐다.
“아니면 이앙법을 하는 것은 오로지 관농만 가능하게 하든가.”
“그것도 나쁘지 않네요.”
개인의 부가 아닌 관아의 부를 늘리면 백성들의 삶에 어느정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것이 완전한 해결책은 아니지만 자신의 부를 쌓는 것보다는 백성들의 삶이 나아지는 것을 원하는 아버지에게는 이 방법이 최선이겠지.
“어쨌든 지금 당장은 하기 힘들다는 것이구나.”
“네. 그 외에도 비료를 만들거나 하면 되겠지만…”
“오줌 액비같은 것을 말하는 것이냐?”
“음. 네. 그것 말고도 더 만들 수 있기는 하지만 실제로 만들어보지 않으면 몰라요.”
방법은 안다.
이유하의 기억은 여전히 생생하게 남아 있으니 말이다.
그가 농협에서 배웠던 천연 비료 만들기의 방법대로 따라한다면 가능할 것이다
문제는 이유하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그것을 만들어 본 적도 없고 써본적도 없다는 것이지.
“이번 겨울 농사가 성공한다면 다른 방법들을 강구해보자꾸나.”
“네. 그게 낫겠네요.”
“그리고 소도 잘 크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만.”
“아… 그거요.”
이번에 한 일 중에 가장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는게 바로 여물이었다.
기존에는 그냥 풀만 먹였기 때문에 소들이 제대로 소화를 못해 크지 못했지만 풀을 삶은 여물을 주기 시작하고부터 소들의 덩치가 점점 커지고 있었다.
잘 먹는 만큼 덩치가 커지고 힘도 잘 써서 이번에 농사를 지을 때 크게 도움을 받았다.
“네.”
“신기하구나. 그저 풀을 삶았서 줬을 뿐인데 그렇게 크다니.”
“사람도 그렇잖아요. 선식보다는 화식이 몸에 더 좋다구요.”
“하하하. 수련하는 도인들이 들으면 혼구녕을 낼 것이다.”
“그 사람들도 잘 구운 고기 먹이면 인정할걸요.”
사람이 어떻게 선식만 하면서 살 수 있지?
고기가 얼마나 맛있는데.
“음… 아무튼 그동안 고생 많았다.”
“네. 고생 많았죠. 몸 고생도 많았고 마음 고생도 많았고.”
행여나 잘못되지 않을까 얼마나 마음을 졸였는지.
잠도 제대로 못자고 헛간 밖에서 서성이기까지도 했다.
내 말에 아버지는 껄껄 웃으며 머리를 마구 쓰다듬었다.
“녀석. 좀 사양하는 말을 해봐라.”
“아버지한테까지 그러고 싶지는 않네요.”
“그럼 이제 네가 할거냐?”
“네.”
계란으로 우두 배양을 해보려 했지만 결국 실패해버렸다.
소들에게 몇번이나 우두를 옮기려고 해봤지만 소들은 날 비웃기라도 하듯 몇일 동안 꾸준히 건강한 모습을 보였다.
뭐가 문제였을까.
“그래. 조심하거라.”
입술을 삐쭉거리며 투덜거리자 아버지는 씩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흉터까지 남았으니 이제 큰 문제는 없겠지.
아버지가 밖으로 나가자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장연은 황급히 허리를 숙였다.
“네가 고생이 많았구나.”
“아, 아닙니다… 그래도 다행이네요. 현장님께서 큰 무리 없이 나으셔서…”
“그렇지… 그래. 많이 힘들었을테니 자. 이것으로 나가서 맛있는 것이라도 먹고 오거라.”
“예? 아, 아뇨!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는데요!”
“어허. 받으려무나.”
아버지가 준 은전에 장연은 무척이나 송구스러워 했지만 결국 그것을 받고 헤죽 웃었다.
“감사합니다!”
은전을 받은 장연이 콧노래를 부르며 뛰어가는 뒷모습을 지켜보던 아버지는 몸을 몇번 풀고 곧장 집무실로 향했다.
벌써부터 일을 다시 시작하려는 모습에 혀를 내두르며 난 그릇에 담겨져 있는 우두 가루를 물에 적신 천에 찍었다.
“음… 나도 안전하겠지?”
설마 내가 재수없는 놈이라서 쇼크로 죽지는 않을거다.
일말의 불안감을 애써 잠재우며 천을 코에 쑤셔 넣고 비볐다.
몇차례 비비고 나서 천에 남은 가루가 완전히 코로 들어갔다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그럼 어찌 되려나…”
아직 우두 가루는 꽤 많이 남아 있었다.
이정도라면 나중에 요화와 유모에게는 우선적으로 해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남으면 그 가루를 이용해서 다시 배양을 시도해보자.
“아니지. 그냥 이 가루를 소에게 접종시켜볼까?”
내가 왜 이 생각을 못했을까.
그릇 안의 노란 가루를 바라보며 뒤통수를 긁적거렸다.
“머리가 나쁘면 역시 몸이 고생을 하네. 그럼 조금 빼놔야겠네.”
소에게 얼마나, 그리고 어떻게 접종을 시켜야 할지 난감하기는 하지만 사람보다 더 큰 소이니만큼 필요한 양은 더 많을 것 같았다.
남아 있는 가루를 절반빼 다른 병에 담은 후 그릇에 천을 덮어 봉인했다.
“어느정도 바쁜 시기만 끝나면 바로 해봐야겠네.”
*****
“스승님. 먼 거리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평소 괴팍하고 남 놀려먹기 좋아하며 동아현에서 현장에게도 존대를 받는 유의원이 의방 앞으로 나와 오체투지한 것에 사람들은 놀랬다.
그것도 그럴 것이 그의 앞에 서 있는 것은 깨끗하긴 하지만 여기저기 기운 자국이 많은 옷을 입은 중년인이었기 때문이다.
“네 얼굴은 여전히 탐욕으로 물들어 있구나. 그나저나 그 아이는 어디 있느냐?”
“아니… 오래간만에 제자를 보셨는데 어찌 그런 말씀을.”
“묻는 말에 대답이나 하거라. 이 녀석아.”
들고 있던 지팡이를 휘저으며 중년인이 말하자 유의원은 화들짝 놀라며 자리에서 일어나 뒤로 물러났다.
그런 그를 보며 중년인의 뒤에 지게를 지고 서 있던 청년은 키득거렸다.
“여전하시네요. 유 사형.”
“번 사제. 자네도 그렇네. 오래간만에 본 사형이 반갑지도 않은가?”
“에… 그렇지만 그걸 직접 봤다면 누구나 그럴 겁니다.”
“그거라면…”
“그래. 그 아이가 퍼트린 소생술. 참으로 신기하더구나.”
중년인이 쓰게 웃으며 말하자 유 의원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유하가 퍼트린 소생술로 살아난 이가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다.
물론 성공보다는 실패가 더욱 많았지만 어쨌든 죽어야 할 사람이 살아난 것이다.
의원으로서는 신기하기 그지 없는 방법이 아닐 수 없었다.
그저 가슴을 누른 것만으로 죽었다 생각한 사람이 살아나다니.
“하지만 스승님도 비슷한 소생술을 쓸 수 있지 않으십니까?”
“물론 그렇긴 하지만 그 아이의 것은 내 것보다 훨씬 나은 것 같더구나.”
“그렇습니까. 아무튼 안으로 드시지요.”
“아니. 바로 만나보고 싶구나. 확인하고 픈 것도 있고.”
“혹시 유하가 진월인의 후손이라 생각하시는 것입니까?”
“…..”
중년인이 입을 다물고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자 유의원은 난처한 얼굴로 한숨을 내쉬었다.
전민이 소생술로 살아난 것을 보았을 때는 자신도 진유하가 진월인의 후손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렇게 따지기에는 진궁이나 진유하가 가진 의술적 지식이 너무나도 부족했다.
특히 진궁 같은 경우는 그가 젊었을 때부터 연을 맺었는데 백성을 다스리는 것이나 경전에 대한 것이라면 모를까 의술적 지식은 거의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아닐 것이라고 생각됩니다만.”
“그건 모를 일이지. 어쩌면 놓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지 않느냐.”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그런 것이겠지요. 그럼 모시겠습니다.”
스승을 위해서 준비해 놓은 것이 많지만 싫다는데 어쩌겠는가.
유 의원이 앞장서 걷기 시작하자 중년인은 그의 뒤를 말없이 따랐다.
“뭐?”
“그… 유하 도련님이 지금 병중이라.”
분명히 다리의 상처는 나았을 텐데?
유 의원은 관병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허어. 병중이라고? 그런데 왜 날 찾지 않은 것이냐?”
“그건 저도 잘…”
“그래? 차라리 잘되었다. 나와 내 스승님, 그리고 나에 뒤지지 않는 의술 실력을 가진 내 사제가 왔으니 어서 안내하거라.”
“알겠습니다.”
이상한 일이다.
유하가 아프면 항상 진 현장은 자신을 찾았었다.
그런데도 왜 자신을 찾지 않은 것일까?
이해할 수 없는 일에 유 의원이 난감해 할 때 중년인은 피식 웃었다.
“네 실력을 믿지 못하나보지.”
“스승님! 너무하십니다!”
“하하하핫!”
놀리듯 그에게 말한 중년인이 휘적휘적 걸어 안으로 들어가자 유 의원은 부르르 몸을 떨고 스승의 뒤를 쫓았다.
병사들의 안내를 받아 도착한 곳은 유하의 방이 아닌 헛간이었다.
그것에 유의원이 난감해할 때 헛간의 문이 열렸다.
“어라? 유 의원님이 여긴 왠 일이세요?”
“그건 내가 묻고 싶은 말이다. 너는 왜 여기서 나오느냐?”
유하의 몸종인 장연이 헛간에서 나오는 것을 궁금해하며 유의원이 묻자 장연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러게 말이에요. 도련님이 아프신데 당분간은 여기서 머무시겠다고 고집을 부리시더라구요.”
“그래? 아무튼. 유하의 몸은 어떻더냐?”
“열이 조금 나고 수포가 생기기는 했지만 큰 문제는 없는 것 같아요. 처음에는 두창인 줄 알고 깜짝 놀랐다니까요.”
“뭐!? 두창!?”
“아이 참. 저도 두창에 걸렸던 몸이라구요. 두창이 어떤 것인지는 제가 더 잘 알아요. 두창은 아니니까 안심하셔도 좋아요.”
두창에 걸렸다 살아난 장연이 자신만만하게 말했지만 유 의원으로서는 놀라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다.
진궁은 사랑하는 아내를 두창으로 잃었다.
아들까지 두창으로 잃게 했다간 그 착한 사람이 미쳐버릴지도 몰랐다.
“스승님. 어찌합니까?”
“…거기 젊은 처자.”
“네? 네에…”
“한가지만 묻지. 혹시 수포가 몸 어디에 났는가? 전체에 난 건 아니겠지?”
“아니에요. 그냥 손등에 난 정도에 불과해요.”
“손등이라…”
“스승님. 아시는 병입니까?”
“음. 일단 너희들은 들어오지 말거라.”
무언가 아는 듯한 중년인의 행동에 유 의원은 자신의 사제와 함께 뒤로 물러났다.
그런 그들을 데리고 장연이 차를 대접하겠다며 멀어지자 중년인은 떨리는 손을 움직여 헛간의 문을 열었다.
“…뉘신지?”
침상에 누워있는 소년이 보인다.
고작해야 열살 정도에 불과한 소년.
소년에게 가타부타 말도 없이 다가간 그는 소년의 오른쪽 손등을 보았다.
몇개의 크고 작은 수포와 고름이 올라와 있는 것을 본 그는 딱딱히 굳은 얼굴로 말했다.
“우두에 걸렸구나.”
“…그걸 어떻게 아셨습니까?”
소년의 당황한 목소리를 들으며 중년인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화부라 한다. 나와 친한 사람은 나를…”
긴장으로 마른 목을 축이기 위해 침을 삼킨 그는 멍하니 자신을 바라보는 소년에게 말했다.
“화타라 부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