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Shrine RAW novel - Chapter 457
00457 나아갈 길 =========================
유비의 장례에 대한 식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 온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관우를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한번 쯤 당신과도 제대로 이야기하고 싶었지.”
황궁에서의 흥분은 가라앉은 듯한 그를 보며 말했다.
내 말에도 그는 대꾸보다는 말없이 나를 바라보기만 할 뿐 이었다.
“그래도 내 집에 깽판을 치지는 않았군.”
“…당신에게 원한이 있을 뿐이지 당신의 가족들에게 원한이 있는 것은 아니니까.”
“그래. 그럼 술이라도 한잔 할텐가?”
“아니.”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은 관우는 나를 향해 천천히 말했다.
“지금까지 그랬지만 앞으로도… 당신과 술을 나누는 일은 없을거요.”
“그래서? 왜 찾아왔지?”
“묻고 싶은 말이 있을 뿐이요.”
“얼마든지 물어보도록.”
“당신이 아는 형님은… 어떤 사람이었소?”
유비가 어떤 사람이었냐라.
마지막 순간까지 그는 포기하지 않던 자였다.
그리고 끝까지 나와 대적하는 자였지.
잠시 생각하던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무서운 사람이다.”
“…하. 그렇소?”
“그래. 천하의 그 누구도 내가 그토록 경계하고 두려워하며… 제거해야겠다라는 마음을 가진 적이 없던 자다. 실로 대단한 사람이었지.”
“….”
“되었나?”
“되었소. 그거면.”
관우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얼굴에 담겨 있던 분노는 거의 사라져 있었다.
아무것도 찾아 볼 수 없다.
그저 빈껍데기만 남아 있는 듯한 그를 향해 난 천천히 말했다.
“유비의 뜻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는 것 같은데… 꼭 그것을 따라야 하나? 당신이 나를 따른다면, 나는 당신에게 많은 것을 줄 수 있다.”
“무엇을 줄 수 있다는 거요?”
“백성들의 기쁨, 행복, 그리고 그들의 더 나은 삶. 다른 것은 몰라도 그것만큼은 제시할 자신이 있다. 그것이면 되는 것 아닌가?”
내 말에 관우는 피식,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미안하지만 이제는 관심없소. 당신이 백성들을 개돼지로 만들든, 천하를 무너트리려 하든… 당분간은 모든 것을 잊고 싶소. 그저 아무것도 없이 한번 살아보고 싶소.”
관우는 천천히 두 손을 들어 올렸다.
늘 그의 손에 들려 있던 청룡언월도는 없었다.
그저 남아 있는 것은 빈 손 뿐.
그것만을 보며 관우는 천천히 말했다.
“나에게 남은 것은… 이제 아무것도 없소. 이젠 무엇을 해야할지 모르겠소.”
“그래?”
난 뒤통수를 긁적거렸다.
“마음이 바뀌면 언제든지 돌아와. 그리고 내 나름대로의 충고를 하자면…”
“….”
“천하를 한번 돌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네 눈으로 봐. 네가 말하는 그 개돼지같은 삶을 사는 백성들과, 한이라는 나라에 묶여서 비참한 인간의 삶을 사는 백성들. 어느것이 더 나은 삶인지 네 눈으로, 네가 직접 확인해봐.”
그가 대꾸하기 전에 난 서황에게 손을 내밀었다.
청룡언월도.
관우의 상징과도 같은 언월도를 그에게 던져주었다.
그것을 받은 관우가 날 말없이 바라보았을 때 난 어깨를 으쓱이고 옥패 하나를 그에게 던져주었다.
“이게 뭐요?”
“빈 손으로 천하를 돌기는 힘들겠지. 그게 있다면 적어도 어디가서 굶어죽지는 않을거다. 문추를 처치한 것에 대한 보상이라고 생각하도록. 물론 만족할지는 모르겠지만.”
그에게 준 것은 내 휘하 편장군의 직위를 나타내는 패였다.
그것이 있다면 내가 실각하지 않는 이상 어느 관청을 가든 제대로 대우를 받을 것이다.
관우 스스로 천하를 보다보면, 그의 꼬장꼬장한 성격상 가만히 있지 못할 만한 일은 얼마든지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때 도움이 되겠지.
만약 도움이 되지 않더라도 상관없었다.
이제 나는 관우를 거의 반쯤 놓아버린 상태였으니까.
“가라. 잡지 않겠다.”
“……”
그것을 받은 관우는 잠시 나를 힐끔 보았다.
그리고 몸을 돌려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관우가 멀어지는 것을 말없이 바라보던 장합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잘하면 적으로 만날 수도 있겠군요.”
“말했지? 너희들은 이제부터 죽었다고 생각하고 굴러야 할거야.”
이제 정말 개처럼 굴려주지.
전투부터 훈련까지.
쓴 입맛을 다시며 말하자 장합과 서황은 오히려 기대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호표기든, 흑귀대든, 아니면 어떤 훈련이든 달게 받겠습니다.”
“지금까지 꾸준히 죽었다고 생각하고 달려왔는데… 뭐 여기서 나빠질 데가 더 있겠습니까?”
말했겠다?
난 히죽 웃었다.
“화타 어르신께 말씀드려서 입에 쓰고 몸에 좋은 약들만 꾸준히 먹여가면서 키워주지.”
“하하… 그래도 좀 봐주십쇼.”
황족에 대한 예우를 갖춘 장례식이 끝났다.
비록 내 적이었지만 그는 황족.
유비는 결국 현공후에 봉해졌다.
원래는 후고 나발이고 그냥 넘겨버리고 싶었지만 황제가 울고불고 질질 짜는 통에 어쩔 수 없이 조조가 승낙해줬다고 한다.
“하. 출세했네.”
“그러게 말일세. 하지만 이렇게 함으로써 체면치레는 해준 셈이니 너무 그러지는 말게나.”
여유롭게 웃으며 순욱은 나에게 천천히 말했다.
유비를 후의 자리에 올리고 그에게 황실의 묘역을 내어주자고 말한 것이 바로 순욱이었다.
죽은 유비를 추대함으로써 황실에 충성하는 신하들을 조조의 곁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는 명분.
그것을 제시하는 탓에 나도 말릴 수는 없었다.
“뭐 아무튼 그 일은 이제 끝난 일이니 그만 이야기하지.”
“그러지요.”
순욱이 내 집에 찾아 온 이유.
그건 바로 성이와 휘 때문이었다.
전에 순욱은 아직 혼처를 정하지 않은 자신의 아들과 휘가 어려서부터 정혼을 하기를 바랬다.
딱히 나쁠 것은 없었다.
“자네 안사람은 뭐라 하던가?”
“제 의사를 따른다고 했습니다.”
순욱과 사돈관계가 되는 것에 대해서는 이익도 있지만 불익도 있었다.
어쨌든 지금 나는 조조의 휘하 장수들 중에서도 주목받을 만한 인물이었다.
그런 내가 순욱과 사돈관계가 된다는 것은 결국 다른 이들의 공격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만큼 이득도 많았다.
순욱은 많은 이들에게 존경을 받는 학자이기도 하며 그와 동시에 조조의 신뢰를 듬뿍 받는 이였다.
그런 그와 가족관계가 됨으로써 내 움직임은 좀 더 여유로워질 수 있다.
“내가 권하기는 했지만 이리 쉽게 받아들일 줄은 몰랐네.”
“너무 기뻐하지는 마십시요. 만약 휘가 커서 상서령의 자제분이 싫다고 한다면 저는 파혼을 할 생각이니까.”
“거 사람. 냉정하게 그러지 말게나. 하하. 내 아들이 어디가서 못나다는 소리는 듣지 않으니까 말이야.”
“몇살이라고 했지요?”
“이제 아홉살이 되었지.”
“그렇습니까…”
8살 차이라.
조금 심하기는 하지만 그렇다 하여 책을 잡을 정도로 큰 문제가 될 만한 나이차이는 아니었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순욱은 싱글벙글 웃었다.
“이름은 우라고 하네. 워낙 똑똑한 아이가 아니야. 이제 아홉살이지만…”
“아, 아뇨. 자식 자랑은 나중에 또. 상서령께서 그리 말씀하시면 저도 해야 할 것 같거든요.”
“하하하! 뭐 그렇겠지. 내 차후 아들을 데리고 오겠네. 자네의 마음에 든다면 좋겠구만.”
“순 상서령께서 가르치신 아이라면 괜찮겠지요. 둘째 아이입니까?”
“그래. 첫째는 이미 혼사가 정해져 있어서 말이야. 조공의 딸과 장래를 약속했다네.”
“그렇군요…”
조조의 부인 중 하나인 윤부인이 낳은 딸인가.
이제 좀 마무리되어가고 있으니 조조도 내부의 단속을 위해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는 모양이다.
혈연을 통해 많은 이들과 관계를 돈독히 하려는 것을 보니 원소를 잡았다는 것이 조금은 실감이 난다.
“알고 있나? 윤부인이 낳은 아이 중 헌, 절, 화를 바쳐 귀인으로 승격되었다는 것을? 그녀들의 동생이 바로 내 며느리 될 사람이네.”
“아… 그렇군요. 축하드립니다. 그러고보니… 동귀인은 어떻게 한답니까? 아직 그녀에 대한 처분은 정해지지 않은 것 같은데.”
동승의 반란 이후로 황제와 연계되어 있는 많은 이들이 죽거나 고문을 당했다.
당연히 동승의 딸인 동귀인 역시 그에 걸맞게 죽음을 당할 처지에 빠졌었다.
그때 그녀는 회임을 한 상태였었고 황제는 출산이라도 하고 나서 죽이자며 조조에게 애걸복걸하고 빌었고 조조는 웃으면서 그녀를 살려주었다.
그 대신 황궁의 구석에 유폐를 되었는데 그 이후로 들은 소식이 없었다.
“딸을 낳았다더군.”
“그렇습니까… 그래서. 그녀에 대한 처분은 어찌한답니까? 그녀를 살려둔 이유가 회임을 했기 때문인데. 출산을 했으면 처형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속도 좋지.
조조가 왜 웃으면서 황제의 청을 들어 줬는지 난 아직도 이해가 가질 않았다.
“아직까지는 따로 말씀하시는 것이 없는 것을 보니… 용서를 해주려는 건가?”
“후환이 생길텐데요.”
“후환을 두려워해서 무슨 일을 하겠나. 그리 한다면 다 쳐죽이고 다녀야 할 걸세.”
“흠…”
“왜?”
“아뇨. 상서령께선 마음씨도 참 좋으셔서…”
내가 보기엔 그냥 호구같다만.
뭐 어쩌겠나.
어차피 딸 하나 낳은 것으로는 뭐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만약 사내아이였다면 그 아이를 내세우며 명분몰이라도 할 수 있겠지만 딸이니 명분을 이용하지도 못할테고.
“그래서. 계속 살려둔답니까?”
“글쎄…”
순욱은 턱의 수염을 쓰다듬었다.
그는 살려두고 싶은 것 같았다.
“너무 한 황실을 챙기시는 것 아니십니까? 이러다가 사람들이 오해하겠습니다.”
“허허. 이 사람아. 내가 한 황실만을 위해서 이러는 줄 아는가? 다 조공을 위해서 이리하는 것이야.”
“조공을 위해서라면…?”
순욱은 몸가짐을 바로 하며 천천히 말했다.
“지금의 조공은 아주 위대하신 분이지. 냉정함과 동시에 인덕을 갖추며 명분에 걸맞는 행동만을 하고 계신다네.”
“그렇죠.”
서주 대학살이 없었다..
그리고 원소를 이기고 사로잡은 포로들을 싸그리 학살하는 것이 아닌 그들을 오히려 아군으로 끌어들이기까지 했다.
거기에 지금 조조가 하고 있는 행보는 힘을 가지고 있지만 그 명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행동만 보이고 있었다.
그런만큼 많은 이들이 조조를 찬양하며 그가 훌륭한 사람이라 칭찬하고 있었다.
뭐. 물론 그것이 그저 표면적인 것일 수도 있지만.
실제로는 환관의 핏줄이라면 욕하고 멸시할 수도 있겠지.
순욱 역시 그것을 알고 있는 듯 보였다.
“그런 분이니… 차후 역사가 그 분을 뭐라 부르겠는가? 한을 부활시킨 희대의 영웅이며 충신이라 하지 않겠는가. 나는 조공을 그리 보고 있네. 세간에는 조공이 헛된 마음을 품었니 마니 떠들어대지만, 내가 보기엔 달라. 조공이야말로 영웅이며, 충신일세.”
“흐음…”
내가 보기에 조조가 마냥 단순한 영웅이고 충신이라고 보기는 좀 어려운데.
하지만 굳이 여기서 지적할 필요는 없겠지.
순욱은 차를 한모금 홀짝인 후 입을 열었다.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자네는 어찌 생각하는가?”
“예? 무엇을…?”
“한이라는 나라에 대해서 말이야.”
“딱히 별 생각은 없습니다만.”
“하핫! 농담하지 말게. 자네같은 사람이…”
“….”
“…진심인가?”
“예. 저는 대의가 아닌 소의를 가지고 있는 사람인지라… 제 사람을 챙기는 것만으로도 벅찹니다. 대의는 조공께 맡기지요.”
내 대답을 들은 순욱은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말을 꺼내기를 주저하던 그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거 내가 자네를 크게 오해할 뻔 했구만.”
“무슨…?”
“사실… 몇몇 무리들이 자네에게 이상한 말을 하더군. 그들이 말하길 진동장군 진유하에게는 충심따위는 없고, 오로지 자신 밖에 생각하지 않는 소인이라고. 그러면서 하는 말이 자네가 조공의 후계자가 되려고 많은 이들을 끌어들이려 한다더군. 내 아들과의 결혼 문제도 그렇고 말이야.”
“어떤 미친 놈들이 그따위 말을!?”
솔직히 충심따위 없고 나 밖에 생각하지 않는 소인이라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내가 미쳤냐.
후계자가 되다니.
그런 피곤한 짓을 할 정도로 난 멍청한 놈이 아니다.
내가 화를 내자 순욱은 화들짝 놀라며 손사레를 쳤다.
“아니아니! 그저 뜬소문에 불과하네. 그렇지만 자네도 지금의 상황은 염두해둬야 할거야. 원소가 패망하게 되었고 남은 잔당들은 금방 처리할 수 있게 되겠지. 그렇게 된다면… 이제 자네의 입지는 아주 커져. 당장 북방에 있는 방 도독과 서 군수만 해도 그렇네. 그들은 업성과 평원성을 보유하고 있어. 거기에 그들이 보유하고 있는 군사들. 그들을 생각한다면 그런 모리배들이 쓸데없는 생각을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거야.”
틀린 말은 아니다.
방통과 서복은 내 사람이다.
그런 그들이 흑귀대와 백귀대를 비롯하여 많은 병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에 지레 겁먹고 나를 공격하려는 이들이 없다고는 할 수 없었다.
만약 내가 이번 전쟁에서 큰 공훈을 받았다면 더 심했겠지.
순욱은 쓴웃음을 지었다.
“물론 그것이 전부 헛소문이라는 것은 나도 알고 있어. 다만 문제는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문제지.”
“그래서 하시고 싶은 말씀이 뭡니까? 원하신다면 당장 거기장군을 북방으로 보내시지요. 잘 됐군요. 그쪽에 있는 제 사람들도 내려오고 싶어하는데.”
아마 방통에게 일때려치고 내려오라고 하면 콧노래를 부르면서 내려올거다.
그것을 생각하며 내가 말하자 순욱은 쓴웃음을 지었다.
“지금 당장은 힘들어. 자네도 알겠지만… 이제부터는 내부의 단속을 시작해야 하거든. 그러기 위해서는 정말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이 필요하지.”
“그렇겠죠.”
“조공께서 자네에게 거는 기대가 아주 커. 진동장군이라는 직책이 해야 하는 일은 내부의 반란을 제압하는 것과 더불어 반란의 혐의가 있는 이를 잡아내는 것도 있지. 자네가 자네의 일을 하기 위한 병력은 추가적으로 지급되기 힘들거야. 그러니 자네에게 제안하지. 흑귀대를 부르게나. 그리고 그들을 자네의 일을 하는데 쓰도록 하게.”
“그러지요.”
“…응?”
“엥? 왜 그러십니까?”
“아니 너무 담담히 말하는데… 괜찮겠나? 추가적인 지원이 없다는거야. 흑귀대는 자네가 키워낸 자네의 사병과도 같은 이들인데… 공무를 하는데 쓰기 아깝지 않은가?”
“이런데 쓰라고 만들어 놓은 부대인데 뭐… 상관없습니다. 다만 북방에 대한 일이 걱정되니 그 부분은 잘 챙겨주십시요.”
어차피 백귀대는 정규병화 시키려고 했다.
그렇다면 상관없겠지.
내가 대수롭지 않게 말하자 순욱은 껄껄 웃었다.
“하하하하!! 이리 욕심이 없는 사람을 뭐 그리 경계하는지 모르겠군. 그래. 이미 봉효가 노병부대를 이끌고 북방으로 가기로 했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