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Shrine RAW novel - Chapter 459
00459 나아갈 길 =========================
“움직이게 하는 사람이라…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순욱은 작게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
그도 모르는 걸까?
조조 역시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걸 알면 내가 이러고 있겠나? 벌써 조사를 해두겠지.”
원소라는 거대한 적을 쓰러트리고 나니 벌써부터 내부에서 싸움이 시작된다.
이래서 사람들은 웃긴다.
당장 외부의 적이 있다면 힙을 합치지만 그 적이 쓰러지자마자 벌써부터 이권다툼을 시작하니 말이다.
“꽤나 대단한 사람이 뒤에 숨어 있는 모양이군.”
“외부 세력의 작전이라고 생각치는 않으십니까?”
원소를 잡았지만 아직 적은 많았다.
당장 마등이 있고 유표, 유장이 있었다.
심배와 봉기는 아직 살아 있는데다가 아직까지 두각을 드러내지 않은 인물들은 많았다.
내 질문에 조조는 쓴웃음을 지었다.
“글쎄. 자네의 말대로일 수도 있겠군.”
“그렇군요.”
뭐가 이렇게 고난과 역경이 많은건지.
내가 한숨을 내쉬자 순욱은 웃으며 내 어깨를 두드렸다.
“너무 그리 침울해하지 말게나. 그 원소도 잡았는데 이제 걱정할 일은 없겠지.”
“그랬으면 좋겠군요. 그런데 이거 말씀하러 오셨습니까?”
“아아. 내 정신 좀 보게.”
조조는 씩 웃은 후 순욱을 보았다.
“여기 있는 상서령은 내가 황건적과 싸울 때부터 나와 함께 해 온… 말 그대로 나의 자방과 같은 사람이지.”
“네.”
그게 뭐 어쨌다고?
“하하… 조공께서 이리 신임을 해주시니 몸둘바를 모르겠습니다.”
“당연한 거야.”
순욱과 친분 과시하려고 온건가?
내가 빤히 바라보자 조조는 크게 웃었다.
“하하하!! 사실 내가 이리 온 것은. 자네에게 한가지 주고 싶은게 있어서야.”
“그렇습니까?”
뭐 받을게 있나?
준다면 감사히 받아야지.
조조는 품에서 작은 비단을 꺼내었다.
고작 비단 하나 주려고 직접 여기까지 온 것일까?
내가 그것을 바라보자 조조는 천천히 뭉쳐져 있는 비단을 풀었다.
그 안에 있는 하얀색 때깔 좋은 백옥.
척봐도 귀한 것이다.
“이게… 뭡니까?”
그 옥에는 두개의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표(豹)와 하(河)라…”
“표하.”
“표범같은 강이라는 겁니까? 이게 무슨…”
“내 생각해봤지.”
조조는 진지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았다.
“요새들어 옛날의 일을 자주 떠올린단 말이야…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이 떠오르는 것은 내가 연주목이 될 수 있는 계기가 되던 일이지.”
그러고보니 그랬지.
온현에서 나는 서문표 흉내를 내며 온현의 현령의 비리를 밝혀냈었다.
그때 도움을 준 사람이 바로 저 조조였다.
조조는 그 장부를 이용해서 사마방과 자신의 세력과 적대되는 세력을 끝장냈었다.
“그때 사마 공께 듣기로 자네가 이리 말했다면서?”
“서문표가 되어 볼 생각입니다… 라고 했지요.”
“그래. 서문표. 훌륭한 사람이지.”
“네…”
이 얘기를 왜?
내가 말없이 바라보자 조조는 웃음기를 유지한 채 말을 이어나갔다.
“여기 내 자방이 있네.”
“네.”
“그리고 서주를 크게 발전시켜 원소와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데 지대한 기여를 한 자네.”
“네.”
“이렇게 보니 장량과 소하가 내 옆에 있는 것 같다고 생각이 들더군. 장량은 유방을 위한 책략을 만들어 주었고 소하는 유방을 위해 내정을 담당해주었지.”
“…..”
불길하다.
난 떨떠름히 옥패를 보았다.
서문표의 표와 소하의 하.
합쳐서 표하.
“설마 이거.”
“이제 자네는 어른이라고 할 수 있어. 그런 어른이 자가 없다는 것도 이상한 일이지. 어떤가? 표하. 자네의 자로 제안하고 싶구만.”
“아주 훌륭하십니다.”
어느 부분이 훌륭한건데?
제안이라고 하지만 이렇게 비싼 백옥에 멋드러지게 글자를 새겨서 온 것을 보니 제안이 아니라 그냥 넘겨버리는 듯 했다.
감탄하는 순욱과 뿌듯해하는 조조를 번갈아 보았다.
“어… 음.”
“마음에 드나?”
“….”
딱히 자를 만드는데 정해진 법도나 규칙은 없었다.
내 이름인 유하의 하와 표하의 하가 일치하는 것을 보면 통례도 어느정도는 맞는 듯 보이고.
거기에 좋은 의미지 않은가.
서문표는 내가 존경하는 정치가 중 하나다.
그런 사람의 이름을 자로 쓴다.
나쁘지 않다.
소하는 또 어떻고?
조조가 순욱을 자신의 장 자방이라고 부를 정도로 아끼는 것이니 이렇게 내 자를 조조가 만든 의미에 소하라는 이유가 들어 있다면 딱히 나쁠 것은 없었다.
“표하. 진표하라…”
“아주 좋군. 합쳐놓고 들어도 표범과 같은 강이라. 아주 강해보이는구만. 흐르는 강이라는 자네 이름과 비교해도 큰 문제가 없어보이네.”
“음…”
“뭐, 선택하는 것은 자네의 마음이야. 자네가 싫다면 거절해도 상관없다네.”
그렇게 말할거면 그냥 죽간에 적어오든가.
이 귀한 백옥에다가 이렇게 새겨가지고 온 것은 그냥 군소리 말고 쓰라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원래 자는 친우와 맞춰서 스스로 짓기도 하지만. 그래도 이런 것은 어른이 해주어야지. 사돈께서 해주었다면 내 군소리를 하지 않겠지만 사돈께서도 자네의 자에 대해서는 별다른 생각이 없는 듯 보이고.”
“그렇지요.”
“그러니 긍정적으로 생각해보길 바라네. 내가 자네를 생각하는 마음이 담겨 있는 것이니 말이야.”
내가 거절할 것이라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는 듯한 말이었다.
그의 말에 난 고개를 끄덕였다.
“긍정적으로 생각해보겠습니다.”
“아니 이 사람아. 긍정적이고 자시고가 뭐가 있나. 이리 좋은 자를 내려주셨으니…”
“그런 문제가 아닙니다. 다만… 잠시 자리를 비워도 되겠습니까?”
“음? 그러게나.”
조조의 허락을 받고 영이의 방으로 향했다.
방에서 견희와 함께 자수를 놓고 있던 영이는 내가 들어오자 밝게 웃었다.
“어서와요. 무슨 일인가요?”
“그거 어디있어?”
“그거라면…”
“내가 전에 보관해달라고 했던 상자.”
“아. 잠깐만요.”
서주에서 영이와 함께 놀러다닐때 샀던 잡동사니들을 모아 둔 상자다.
분명히 그 상자에 넣어놨는데.
상에서 고급진 상자를 꺼낸 영이는 상자를 열어주었다.
안에 있는 장난감들.
예전 야시장에서 샀던 작은 약병과 대나무로 만든 장식, 싸구려 옥가락지나 노리개 밑에 곱게 놓여져 있는 서찰을 꺼내었다.
예전에 사부님이 나에게 보냈던 서찰이다.
“그건 왜요?”
“조공께서 나에게 자를 지어줬거든.”
“잘 됐네요. 당신도 자가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그렇긴 한데. 사부님한테도 받은 것이 있어서. 잠깐만 있어줘.”
“그냥 갈거에요?”
영이는 눈을 감고 입술을 내밀었다.
어휴.
이럴때 보면 진짜 애기 같다니까.
그녀의 입술에 입맞춰 준 나는 견희가 날 지그시 바라보자 어깨를 으쓱였다.
“알았어. 알았어.”
“어, 저는 그냥.”
머뭇거리는 견희를 잡고 그녀에게도 입맞춰 주었다.
영이는 그저 싱글거릴 뿐 이었다.
“그럼 이따가 보자고! 오늘 저녁은 같이 먹자!”
“네에~”
“다녀오십시요.”
밝게 웃는 영이와 성실히 인사하는 견희.
둘을 방에 놓은 채 난 다시 내 방으로 향했다.
“뭔데 그러나?”
“사실 제가 사부님께 이미 자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왜 쓰지 않고 있나? 어디보자… 위성? 거짓을 이룬다?”
사부님이 보낸 서찰을 읽어 본 조조는 피식 웃었다.
“이거 참. 자기 제자에게 너무 심한 자를 보내주셨군. 내 수경 선생을 존경하기는 하지만 내 밑에 있는 이가 이러한 자를 쓴다면 웃음거리만 될걸세.”
“그래서 안쓰고 있었습니다만…”
“그럼 그냥 내가 지어 준 자를 쓰게나. 나중에 수경선생께서 나무라시면 내가 막아주지. 어떤가?”
그런 것이라면 괜찮겠지.
순욱은 선선히 웃으며 내 팔을 두드렸다.
“나도 나서서 막아주겠네. 자네는 이제 한의 진동장군이고 큰 일을 할 사람이야. 그런 사람에게 위성이라는 자라니. 다른 이들에게 책이 잡힐 수 밖에 없어.”
고작 자 하나가지고 책 잡힐일이 뭐가 있겠냐 싶지만.
순욱은 그냥 내가 조조가 지어 준 표하라는 자를 쓰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니…”
“그래야지. 그나저나 수경선생께서 왜 자네에게 이런 자를 내려주셨을까? 이해가 가질 않는군. 뭔가 깊은 뜻이라도 있는 걸까?”
“하하…”
어찌보면 사부님이 나에게 지어 준 위성이라는 자는 나와 가장 걸맞는 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정치가다.
정치가는 거짓을 말하는 사람이다.
아직 현실이 아닌 불투명한 미래를 제시하고, 그 미래를 완성시키는 자가 바로 정치가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거짓을 이루어낸다는 의미는 나에게 꼭 걸맞는 자일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표면적인 의미만 따지면 무척 좋지 않다만.
“하하하하!! 이로서 자방과 소하를 얻었으니… 이제 한신만 얻으면 되겠군! 삼걸 중 이걸을 얻었어!!”
“경하드립니다.”
“축하드립니다.”
저렇게 좋아하니 싫다고 할 수도 없고.
그냥 쓰자.
딱히 자를 무엇으로 해야겠다 라거나 방통, 서복과 연계되는 자를 짓겠다는 생각도 안했다.
지금까지 관심없이 살았으니 그냥 써야지.
조조는 무척이나 기분 좋게 웃은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 그럼 이제 볼 일은 다 보았으니 가봐야겠네.”
“아. 같이 가시지요. 조가로 돌아가시는 것이라면 저도 청이를 만나야 하니…”
“그래? 그리하세나. 산달이 얼마 남지 않은 것 때문에 조금 우울해하는 것 같은데. 그나마 자네가 매일 찾아와주어서 좀 나은 것 같군.”
“그런 것이라면 데려와 제 옆에 두는게 낫지 않겠습니까?”
“그래도 이 사람아. 원래 처가 임신을 하면 처가에 있는 것이 옳아. 군소리 말게나.”
하긴.
영이가 임신했을 때도 사마가에서 장모님이 사람들을 데리고 와 있었지.
원래라면 영이가 사마가로 가서 출산할 때까지 머물러야했지만 당시의 상황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알겠습니다.”
“그래도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인데 무슨 걱정이 있겠는가.”
“그렇지요.”
“그럼 이 문제는 그리 하도록 하세. 자. 갈 것이라면 같이 가지.”
자리에서 일어난 조조와 함께 조가로 향했다.
순욱에게 함께 가기를 청했지만 조조와 만나고 인사를 드린 이상 굳이 조가까지 갈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를 건넸다.
그가 가고 조조와 둘이 걷고 있을 때.
조조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제부터는 좀 바빠질걸세.”
“그러겠지요.”
“자.”
“이게 뭡니까?”
허리춤에서 조조는 금으로 만들어진 패를 아무렇지 않게 넘겼다.
이게 뭐지?
새겨져 있는 글자는 ‘영(領)’ 이었다.
“새롭게 기관을 하나 창설할 생각이네. 교사원이라고 하지. 그곳의 원주가 되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