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Shrine RAW novel - Chapter 471
00471 외전 – 미망을 없애기 위해서라면 =========================
제갈량의 싸늘한 말에 황승언은 눈을 질끈 감았다.
그 원인이 된 자.
서주에 있던 제갈부를 망하게 한 원인을 제공한 자.
지금 천하에서 가장 강력한 세력을 가진 자.
황승언은 입을 꾹 다문 채 걱정스레 그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말했다.
“조조… 그 자를 꼭 잡아야겠는가? 힘든 일이야. 이것은 계란으로 바위치기일세.”
“계란이요? 저를 고작 계란이라 생각하시는 겁니까?”
“이 사람아! 그런 의미가 아니지 않은가!”
황승언이 탁자를 강하게 내려침에도 불구하고 제갈량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있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처음 주호를 잡을 때도 장인어른께선 그리 말씀하셨지요.”
“…..”
“예장군수 주호… 그 자 역시도 숙부님의 죽음에 관여되어 있지요. 너무나도 명백하게.”
“그렇긴 하지만…!”
황승언은 한숨을 내쉬었다.
예장군으로 와서 백성들에게 꽤나 인망을 끈 제갈현이었다.
그런 그를 질시하던 신임 예장 군수인 주호는 제갈현이 과거 곽승과 관련되어 서주에서 피난 온 도망자라는 소문을 퍼트렸고 그 결과 제갈현을 따르던 많은 백성들과 명사들은 제갈현을 배신했다.
백성들은, 명사들은 언제 그를 따랐냐는 듯 제갈현을 무시하고 욕하며 그에게 돌을 던졌다.
예장 쪽에서의 지배력을 높이기 위해서 황실의 명을 따른다며 제갈현을 희생양으로 삼은 것이다.
결국 평생 아무런 죄 없이 살아오던 제갈현은 씻을 수 없는 굴욕을 당했고 그 분을 이기지 못해 피를 토하며 분사하고 말았다.
“…그때도… 저희는 아무것도 가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희는 주호를 잡고, 그의 목에 칼을 쑤셔 넣는데 성공했습니다.”
첫 살인.
첫번째 복수.
주변의 도적들의 밑으로 들어가 그들을 훈련시키고, 그들에게 전략과 책략을 가르쳐 주어 예장군을 습격하게 하고.
제갈현을 모욕하고 비웃은 이들을 모두 쳐죽이게 하고.
주호를 끌고 나와 그의 목에 칼을 넣었던 것.
그때 이후로 단 한번도 망설이지 않았다.
“주호를 첫 복수의 대상으로 삼았을 때도 장인어른께서는 그리 말씀하셨지요. 위험하다고.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격이라고.”
제갈현이 부임하기로 되어 있었던 예장군의 군수인 주호를 언급하자 황승언은 한숨을 내쉬었다.
고작 제갈근과 제갈량.
이 둘이 나서서 주호를 잡을 수 있을 줄은 누가 알았겠는가.
도적들과 수적들까지 끌어들여 그들이 예장군을 치게 할 줄은 누가 알았겠는가.
주호가 그렇게 허무하게 무너질 줄은 누가 알았겠는가.
“허나… 조조는 주호와는 차원이 다르다.”
“그때의 저와 비교한다면 비슷합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조조를 잡겠다고? 이보게. 사위. 그가 죽으면 천하에 어떤 일이 벌어지는 지 아는가? 무고한 사람들이 얼마나 죽고 괴로워질지는 자네도 잘 알것 아닌가.”
조조를 공격한다?
그럼으로써 천하는 또다시 전쟁의 소용돌이에 휩쌓이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와중에 제갈현과 같은 무고한 희생자가 나타나게 될 것이다
황승언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제갈량을 바라보았다.
온현에서 발견된 장부로 인해서 십상시 곽승의 일파는 크게 몰락하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이들이 죽었고 많은 명가가 몰락했다.
피해를 본 이들 중에는 실제로 그 장부나 세력과 관련되어 있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죄가 없는 이들도 연류되었다.
“온현 현령이었던 강진과 현이는 의형제였지.”
“예.”
“강진은 현이를 자신의 파벌에 끌어들인 후 예장군의 군수로 추천하려 했어. 허나 현이는 계속 거절해왔지.”
“예. 그랬지요. 저도 기억이 납니다.”
“허나 권력이라는 것이, 정치라는 것이 원래 그런 것이다. 한걸음을 잘못 내딛으면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는 그런 것이야. 비록 아무리 관련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한마디라도 이름이 나온다면. 그리 된다면 죄의 유무를 떠나서 당할 수 밖에 없어.”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하지만… 만약 조조가 아니었다면. 그 일당들이 그렇게 날뛰지만 않았다면… 숙부님께서 도망치시지도 않았겠지요. 진정으로 문제가 있는 이들만 잡았더라면, 후환을 없앤다는 이유로 움직이지만 않았더라면. 숙부님께서 예장으로 도망칠 이유도 없었겠지요.”
“허나 그렇다 하더라도 조조는 무고해. 그자는…”
“숙부님도 무고했습니다.”
“자네…”
“그러니 이제 남은 것은 조조입니다. 그가 무고하다구요? 그럴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그렇다하여 저의 원망을 사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그가 이득을 위해서 많은 이들을 쳤듯, 저 역시도 저의 분노를 해소하기 위해서 그를 칠 뿐입니다.”
제갈량은 자신의 잔에 술을 따르며 나지막히 말했다.
“그리되면… 제 안에 미친듯이 날뛰는 이 미망. 그것도 없어지겠지요. 숙부님도… 편히 쉬실 수 있으시겠지요.”
“지금 자네가 하려는 짓은… 자네의 만족을 위한 것일세. 그것을 위해서 천하가 흔들려도 상관없다는 것인가?”
“상관없습니다.”
“…괴물이 되었군. 괴물이 되었어… 내가 실수를…”
질린 기색을 드러내며 황승언이 중얼거리자 제갈량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방금 전까지 보이던 증오와 분노가 완전히 사라진 표정이다.
그저 잔잔한 미소만 짓고 있을 뿐 이었다.
“그런데 왜 저희를 거둬주셨습니까? 왜 저를 황가의 사위로 받아주셨습니까?”
“그, 그건.”
제갈량의 질문에 황승언은 머뭇거렸다.
그런 그를 똑바로 응시하던 제갈량은 천천히 미소지었다.
“왜 저희에게 많은 책을 주셨고, 왜 저희에게 많은 이들을 만나게 해주셨습니까?”
“…..”
“왜 저희를… 이렇게 강해지게 만드셨습니까? 왜 저희가 복수를 계속할 수 있게 저와 형님을 지원해주셨습니까?”
제갈량의 시선.
그의 눈.
제갈현과 무척이나 닮아 있는 그 눈을 황승언은 차마 마주하지 못했다.
고개를 돌린 채 황승언은 뱉어내듯 힘없이 말했다.
“…이, 이렇게까지 될지 몰랐어.”
“정녕 그리 생각하십니까?”
제갈량의 까만 눈이 자신을 응시하는 것을 느끼며 황승언은 고개를 떨궜다.
그래.
어쩌면 자신 역시도 분노했을지 모른다.
아무런 죄도 없던, 그저 백성을 아끼고 돌보기만을 원했던 제갈현이다.
백성들을 지키고 아끼고 싶어했던 제갈현이다.
아무런 죄도 없던 자신의 친우가 권력을 가진 이들의 다툼에 휘말려 서주에서 도망왔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부터.
그런 제갈현이 비록 주호의 수작이라고는 하나 그것에 휘말려 백성들에게 돌팔매를 맞던 것을 보았을 때부터.
제갈현의 시체를 두고 제갈근과 제갈량이 아무런 말도 못한 채 멍하니 앉아 있던 것을 보았을 때부터.
자신 역시도 복수를 꿈꿨을지도 몰랐다.
계속해서 외면해왔다.
자신은 다르다.
그저 친우의 자식과 같은 조카를 보호할 뿐이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제갈근과 제갈량이 복수를 하나씩 하나씩 성공해나갈 때마다 속으로 기뻐했고 통쾌하다 생각했었다.
그것을 명가의 사람이라는 탈을 쓰고 가려왔을 뿐이다.
“…그래. 네 말이 맞다.”
황승언은 결국 천천히 말해버렸다.
제갈근과 제갈량의 마음을 알기에.
그들이 원하는 복수를 자신 역시도 원했기에 이들을 지원했던 것이다.
제갈근과 제갈량을 자신의 가문으로 받아들인 후 자신의 모든 인맥을 동원해 그들에게 힘을 불어 넣어주었다.
그저 감정에 불과한, 치졸하고 비겁한 복수다.
제갈현이 죽은 것은 오로지 욕심에 물들어 버린 멍청한 이들의 과한 행동에 불과할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 시작은.
바로 조조다.
조조가 온현에서 발견한 그 장부.
그 장부로 인해 일어난 혈사.
그것이 시작이다.
조조만 아니었어도.
적어도 그가 그렇게 미쳐 날뛰지만 않았어도.
적어도 그들의 세력을 확장시키려 다른 이들을 그렇게 압박하지만 않았어도.
제갈현이 그렇게 서주에서 도망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죄를 뒤집어 써 역적으로 몰리지도 않았을 것이고 십상시 곽승과 엮였다는 웃기지도 않는 모함따위도 받지 않았을 것이다.
“그저 감정일지도 모른다. 분노에 휩쌓여 숲이 아닌 나무만 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사람이지요.”
제갈량의 말에 황승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것이 사람일지도 몰랐다.
비합리적이고 타인이 듣는다면 어이없을지는 모르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이들에게는 책임을 묻고, 그 책임을 지어 줄 사람이 반드시 필요했다.
비록 그것이 남들이 볼 때는 불합리하다고 여길 지언정,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넘쳐오르는 미망과 분노를 해소해야 하니까.
그들을 제물로 삼아서라도 그것을 해소하지 않는다면, 미친 말처럼 날뛰는 미망에 감싸져 결국은 스스로를 불태울 수 밖에 없을테니까.
“그게 사람이지. 맞아… 그게 사람이야.”
만약 관계없는 이들이 듣는다면 충분히 명가의 사람답지 않다고 비난을 할 만한 치졸하고 비겁한 생각이지만 황승언은 이제 자신의 마음에 수긍할 수 밖에 없었다.
그저 제갈근과 제갈량을 위한다는 이유로.
제갈현이 맡긴 그의 조카들을 키워주겠다는 이유로.
스스로의 마음을 외면하고 있던 것에서 황승언은 그것을 마주했다.
결국 자신 역시도 제갈현의 복수를 바라고 있었다는 것을.
“…..”
그것을 인정하니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황승언이 천천히 고개를 돌려 자신을 바라보자 제갈량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장인어른 덕분에 채가와 유가, 그리고 황가… 그 외에도 형주에 있는 많은 가문들과 손을 잡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욕심을 가지고 있지요. 그 욕심을 이용할 생각입니다.”
“…천하를 노리는 것인가.”
“예. 예를 들어 유표만 봐도 그렇습니다. 그는 유씨이며 스스로를 황제처럼 생각하고 있지요. 천지에 제사를 올리고 황제의 의장을 쓰는 등… 스스로 황제임을 천명하지 않았을 뿐이지 황제 대접을 받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렇구나… 그들을 이용할 생각이냐?”
“예.”
제갈근은 채가에 들어가 채모에게 큰 호감을 받고 있었다.
비록 유표가 형주를 지배하고 있지만 채가를 무시할 수는 없을 터.
거기에 채가와 협력하고 있는 괴가까지 합세한다면 유표라 하더라도 그들의 움직임을 함부로 통제할 수는 없을 것이다.
“또한 저번 손책의 공격에서 황조를 구원했지요. 그의 협력도 받을 수 있습니다.”
차분한 어조로 그가 말하자 황승언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들이 그리 만만한 이들이 아니다. 나 역시 명가의 사람이니 안다. 그들은 너희들을 이용만 하고 버릴 수 있어. 명가가 괜히 명가인 줄 아느냐? 달면 삼키는 것이 아주 수준급인 이들이다. 그들은 너희들의 복수마저 이용하여 자신의 가문을 위해 쓸지도 몰라. 그래도 괜찮겠느냐?”
“괜찮습니다. 말씀하셨지요. 계란으로 바위를 칠 정도의 무모한 일이라고. 저희들의 목숨 정도는 걸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실패한다면… 저희는 그저 그정도에 불과한 것이겠지요.”
“과해지면… 나도 더 이상 돕지 못할 수도 있다. 너도 알다시피… 황가는 예전과 달라. 내 아내의 일 때문에… 가문의 명예가 많이 깍여버렸다.”
아무리 자신의 지원을 받는다 하더라도 형주의 채가나 괴가에 비한다면 자신은 아무래도 밀릴 수 밖에 없었다.
이미 사별한 자신의 아내 때문이었다.
오월족 출신의 여인을 아내로 받아들이고 딸을 얻었다.
뛰어난 재기를 가졌지만 오월족의 모습을 그대로 보이는 딸 때문에 자신과 연을 맺었던 많은 명가의 사람들이 떨어져 나갔었다.
그것을 생각한다면 아쉽기 그지 없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은 어쩔 수 없는 일.
“물론 그것을 알고는 있습니다. 저희도 저희 나름대로 고심하고 궁리하고 있으니 걱정 마시기 바랍니다.”
“그래… 총명한 너희들이니 잘 하겠지.”
많은 스승들마저도 혀를 내두르고 갈 정도로 제갈근과 제갈량은 미친듯이 공부를 하고 머리를 굴렸다.
명가 출신이면서도 하층의 협객이라 불리는 이들이나 도적, 수적들과 어울리는 것을 망설이지 않았다.
그렇기에 더더욱 강해지고 독해질 수 있었던 그들이라면 충분히 채가와 괴가의 수작에도 쉽게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그리 생각하며 황승언이 고개를 끄덕였을 때 하인 한명이 다가왔다.
“저. 나으리.”
“왜 그러냐.”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손님? 오늘 약속한 이는 없는데…?”
황승언은 의아해하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그가 나가자 제갈량은 빈 잔을 만지작거리다가 머리를 쪼개는 듯한 두통에 눈쌀을 찌푸리고 손으로 머리를 감싸쥐었다.
숙부의 죽음을 목도하고 며칠동안 사경을 헤멘 후 일어났을 때 얻은 고통.
빨리 복수를 마쳐달라는 듯한 숙부의 외침이라고 생각되는 고질병인 극심한 두통을 느끼며 제갈량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직이다. 아직이야. 좀 더 버텨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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