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Kingdoms Shrine RAW novel - Chapter 473
00473 마지막 제자 =========================
간만에 제대로 된 밥을 먹게 생겼다.
한중에서 추적자를 따돌리고 도망치며 건량만으로 때울 수 밖에 없었던 사마휘는 콧노래까지 흥얼거리고 있었다.
그를 지켜보던 조운은 작게 한숨을 내쉰 후 그에게 말을 걸었다.
“저. 어르신.”
“왜 그러나?”
“어르신께서는 왜 천하를 돌고 계시는 겁니까?”
늘 궁금했었다.
수경 선생 정도 되는 사람이라면 편하게 앉아서 쉴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 당장 천하에 이름을 떨치고 있는 진유하와 방통, 그리고 서복이라는 훌륭한 제자도 있었다.
그들 뿐만 아니라 천하에 있는 수경원의 제자들을 생각한다면 이리 고생을 하며 천하를 돌 이유가 없었다.
그것이 이해가 가지 않았던 조운이 묻자 사마휘는 뿌옅게 올라오는 연기를 보며 말했다.
“재밌지 않은가?”
“예?”
“나는 말이야. 세상을 보는 것이 즐거워.”
“…천하를 유람하는 것이 즐겁다는 말씀이십니까?”
“물론 그렇지. 하지만 제일 좋은 것은 저런 것이야.”
사마휘가 가리킨 곳에는 당희와 함께 옆집에서 나물을 받는 이당지가 있었다.
옆집의 여인도 남루한 옷차림이었지만 당지가 내민 바가지에 듬뿍 나물을 담아주고 있었다.
그것을 받은 이당지가 달려오는 것을 보며 웃어 보인 사마휘는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나도 한때는 관직에 오른 적이 있었지.”
“그렇습니까? 처음 듣는 이야기군요.”
“잠깐에 불과했으니까 말이야. 그런데… 어느날 문득 생각해보니까 내가 보는 사람이라는 것이 아주 추한 것이라고 생각되더군.”
긴 나뭇가지를 꺽어 단검으로 껍질을 벗겨 젓가락을 만들던 사마휘는 다 깍은 젓가락을 옆에 놓았다.
“작은 권력을 가지기 위해서 아둥바둥 싸우는 이들을 보고, 또 작은 권세를 위해서 약한 이들을 짓밟는 이들을 보고. 보고, 또 보고.”
“…..”
“그런 것들만 보다보니 사람 자체가 싫어지더라. 내가 보는 사람들은 항상 자신의 욕심에만 물들어 있는 사람들이니까.”
“그렇습니까.”
“그래. 그래서 떠났지. 관직을 내려놓고 천하를 돌았어. 과연 내가 높은 자리에 앉아서 바라보는 것과 밑바닥에서 바라보는 세상이 과연 같은 것일까 생각되더군.”
사마휘는 씁쓸한 입맛을 다시며 고개를 들었다.
손님이 왔다는 것 때문인지 다른 집에서도 이당지에게 작고 초라한 찬이나마 나누어주고 있었다.
그것을 받은 이당지는 품속에서 꺼낸 작은 약초 하나를 건네주었다.
여인은 기뻐했고 이당지는 만족했다.
서로 작은 것을 나누며 살아가는 모습.
그것을 보며 사마휘는 기쁘게 웃었다.
“그래. 내가 보던 것들. 권력을 위해서 아첨하고, 뇌물을 주고, 또 그를 위해서 타인을 핍박하고. 그런 모습들만 보았었지. 하지만 세상에 나와보니 딱히 그렇지도 않더라고. 가진 자들 중에서는 오히려 가진 것을 남에게 나누길 좋아하는 이들도 있고, 또 가지지 못한 이들 중에서도 작은 것이나마 나눠서 살아가길 원하는 이들도 많았어.”
“그렇군요… 그래서.”
“사람은 각기 달라. 같은 상황에서도 다른 행동을 하는 이들은 얼마든지 있지. 그러다보니 사람을 보는 것이 무척이나 재미있더군. 그렇게 세상 유람이 끝나고나니 내가 해야 할 일이 명확해지더라.”
“그것이… 수경원의 설립입니까?”
“그래. 그래서 수경원을 만들었지. 잘 알아두는게 좋아. 힘을 가진 자는 그 힘에 대한 책임을 질 줄 알아야 하는 법이지. 하지만 이 세상에서 그것을 알고 있는 이는 극히 드물어.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겠지.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거든. 그래서 수경원을 만들었어. 그리고 규칙을 만들었지. 자신의 힘만으로 벌어서 먹고 살아가야 한다고 정했다. 그리고 많은 제자들이 내 가르침을 받아 세상으로 나갔어.”
“그렇게 함으로써 수경원의 제자들이 작게나마 세상을 보게 해주신 것이군요.”
“그래. 내 제자가 되는 이들은 대부분 명가의 출신이었으니까. 명가 출신의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편협해. 이권을 가지고 자신들이 보던 것이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하니까. 그렇기에 그들과, 또 재능이 있는 이들을 제자로 받아들여나갔지. 그러면서 그들이 스스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어. 그럼으로서 그들이 천하를 이롭게 하게 할 생각이었어.”
“흐음…”
이제야 수경원의 제자들이 그렇게 뛰어날 수 있는지 알게 되었다.
사람은 보는 만큼 성장하게 된다.
시야가 넓어지면 넓어질 수록 커질 수 있는 한계는 높아지고 그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게 된다.
사마휘는 아예 처음부터 자신의 제자들에게 그 한계를 없애나가게 만들었던 것이다.
“물론 개중에는 처음부터 그 한계를 알아보기 힘든 녀석들이 몇 있었지. 하하… 아무튼 이제 그들이 만들어갈 천하는 아주 재미있어질거야. 그것을 끝까지 지켜보지 못한다는 것이 아쉬울 뿐이야.”
“선생께선 아직 정정하십니다.”
“아냐. 아냐. 저번에 한중에서 느낀건데… 나도 늙었어.”
“…..”
젊은 장정 서넛을 가볍게 거꾸러트리던 사람이 늙었다고 말하면 뭐라고 해야하나.
조운은 사마휘의 말에 떨떠름한 표정이 되었다.
그런 그를 향해 히죽 웃어보인 사마휘는 차분히 말했다.
“미안하지만 아직 어딘가 갈 생각이 없다면 좀 더 동행해주었으면 좋겠구만.”
“그리하지요.”
공손찬의 죽음 이후 마음을 의지할 만한 대상을 찾지 못했다.
그렇다면 그때까지는 사마휘의 가르침을 받으며 그의 여행을 돕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그의 가르침을 받을수록 모함을 받아 가세가 크게 기울어진 것에 대한 분노를 가라앉힐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럴 수록 점점 더 강해지는 자신을 볼 수 있었다.
자신을 위해서도, 그리고 천하를 위해서도, 또한 저 사마휘를 위해서도.
좀 더 그와 함께 있는 것이 나았다.
그리 생각하던 조운은 이당지와 당희가 상을 차려서 나오자 사마휘에게 말했다.
“가시지요.”
“그럴까?”
조금은 이른 저녁식사를 마치고 나서 당희와 함께 옆집으로 가려던 이당지를 잡은 사마휘는 웃으며 물었다.
“괜찮다면 이야기나 좀 할 수 있겠니?”
“예? 어… 예. 물론이죠.”
“아까 집을 보아하니 낡은 책이 몇권 있더구나. 의서로 보이던데… 글을 읽을 줄 아느냐?”
“그냥 글자 몇개 아는 정도입니다.”
“진맥도 볼 줄 아는 듯 하고…”
“그저 눈대중일뿐입니다. 그리고 침술같은 것은 잘 못합니다. 할 수 있는 것은 약을 좀 만드는 정도에 불과해요.”
“아까 네가 만든 환약을 보았다. 꽤나 잘 만들었더구나.”
“그… 부, 부끄러운 솜씨로 만든 것입니다. 과한 칭찬은… 헤헤.”
“아니. 훌륭하다. 다만 배합이 조금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효용은 좋아보이더구나.”
의원이라고는 했지만 그저 약초의 효용에 대해 좀 아는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사마휘가 저리 말한다면 진짜 의술 실력이 있는 것 같았다.
“그나저나 저 의서는 꽤나 제대로 만들어진 의서들인데. 어디서 난 것이냐?”
“그게…”
머뭇거리는 그를 향해 사마휘는 웃었다.
그의 푸근한 웃음을 보면서도 이당지는 살짝 경계하며 당희의 손을 잡았다.
“옛날에 낙양에서 살때… 누군가 불태우려던 것을 받은 것입니다.”
“그래? 하지만 손때가 잔뜩 묻어 있는 것을 보니 꽤나 많이 읽은 모양이구나.”
“예에…”
“괜찮다면 내가 너를 내 친우에게 소개시켜주고 싶다. 그의 이름은 화부. 천하에서는 화타라 불리는 자인데. 어떠냐?”
“화, 화타!? 화타 선생께 소개장을요!?”
“그래.”
의원을 꿈꾸는 이라면 누구든지 스승으로 모시고 싶어하는 이가 바로 화타다.
천하에 그 이름을 모르는 이가 누가 있겠는가.
사마휘의 제안에 이당지는 어리벙벙한 표정으로 멍하니 있다가 그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네 누이도 데려가는 것이 좋겠지. 아마 그 녀석이라면 네 누이의 병을 고칠 방법을 알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예! 감사합니다! 어르신!”
환하게 웃는 이당지와 이당희의 모습에 조운은 입을 다물고 사마휘를 바라보았다.
사마휘의 소개장.
천하 명필 중 한 사람인 그가 써주는 글씨는 귀하기 그지 없어 명가의 사람들이라면 누구라도 탐낸다고 할 정도였다.
무가인 상산 조가에서도 그의 글씨를 알아줄 정도라면 그 위광은 대단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아무에게나, 그리고 심지어 화타를 소개해주다니.
이당지와 이당희가 기뻐하며 옆집으로 가는 것을 보며 조운은 조용히 물었다.
“어르신. 어째서 그리 하셨습니까?”
“음? 뭘?”
“어째서 저 아이들에게 그런 은혜를…”
“이 사람아. 이건 은혜가 아니야.”
“예?”
의술을 배우길 원하는 이당지.
말을 못하는 이당희
그들에게 천금과도 같은 기회를 준 것이 은혜가 아니란 말인가?
조운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사마휘를 바라보았고 그 시선에 사마휘는 장난스럽게 웃었다.
“필요한 일을 하는 것이지. 자… 보세. 저 아이는 확실히 재능이 있어.”
“…그렇습니까?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있어. 평생 제자를 구하러 천하를 떠돌아다녔는데. 사람의 재능을 보는 일 정도는 어렵지 않아. 하지만 세상에는 말이지. 명가의 피가 흐르지 않음에도 그 넘치는 재능을 가진 이들이 많단 말이야.”
“예.”
“그런 이들이 자신의 신분에 절망하고, 재능이 있음에도 쓰지 못하고 좌절하면 어떻게 되는 줄 아는가?”
“어떻게… 됩니까?”
“장각이 되네.”
“…..”
“뛰어난 재능이 있으나 결국 세상을 한탄하게 되고 천하를 어지럽히게 되지. 스스로의 마음이 원하는 것에 답하지 못하고 그것을 회피하며 다른 이들에게 책임을 돌리고, 결국은 그들이 천하를 어지럽히는 악이 되는거야.”
“그렇…습니까.”
“그래.”
사마휘는 대수롭지 않게 말한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닥에 있는 부러진 나뭇가지들을 들어 모닥불에 던져 놓은 사마휘는 여유롭게 웃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단지 저런 아이들에게 이런 제안을 해주는 것만으로도 그것을 막을 수 있지. 그렇다면 된 것 아닌가? 소개장을 써주는 일이 뭐 어렵겠나? 어차피 우리도 장안에 가는 길인데 데려가는 것이 뭐 어렵겠나. 약간의 고생만으로 천하의 위험거리를 한가지 줄일 수 있다면 그게 얼마나 남는 장사인지 알겠나?”
한 사람을 구원함으로써 천하를 구한다.
한 사람의 마음을 다스리게 함으로써 천하의 혼란을 막는다.
조운은 사마휘를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어쩌면 이 사람이야말로 가장 훌륭한 스승이고, 천하의 의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스스로 천하에 나섬으로써 주목받지 못한 이들의 재능을 찾아 그것을 개화할 수 있게 도와주는 자.
그런 자라면…
조운은 그간 망설이기만 했던 말을 꺼내었다.
“…어르신. 부탁이 있습니다.”
“말해라. 날 이토록 도와주는 너인데… 내가 뭘 못해주겠나.”
“어르신의 제자가 되고 싶습니다. 받아주십시요.”
사마휘의 입가에 그려져 있던 웃음이 지워졌다.
그리고 그것을 마주하던 조운 역시도 웃음기를 지웠다.
알고 있었던 것인가?
그래서 항상 가는 길마다 가르침을 주었던 것인가.
조운의 표정이 딱딱히 굳어지자 사마휘는 씁쓸한 입맛을 다셨다.
“솔직히 말하자면 너를 처음 봤을 때부터 이런 생각을 했어. 무서울 정도의 재능을 가진 잠룡이다. 하지만 그 마음에 품어져 있는 시리도록 차가운 얼음은 언젠가 위험한 칼날이 되어 천하를 벨 것이다…라고.”
“….”
“처음 만났을 때에 비해서는 꽤나 유해져있지만… 아직까지 너는 그 한을 풀지 못한 것 같군.”
“어르신.”
“내 제자가 된다… 좋지. 나쁜 일은 아니야. 하지만 내 제자가 됨으로써 네가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진지한 그의 말 들으며 조운은 눈을 감았다.
자신의 안에 있는 분노.
멸문에 가까울 정도로 타격을 입은 가문.
그 가문을 살리기 위해 발버둥치던 자신.
가문을 도와 준 공손찬을 지키지 못 한 것.
원수인 원소와 전풍에게 칼 한번 휘두르지 못한 것에 대한 절망.
그것이 사마휘의 가르침을 들을 때마다 조금씩 깍아내려가는 것을 조운은 알고 있었다.
“제 자신에게 기대보고 싶을 뿐입니다. 그것을 어르신께서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흐음…”
조운을 차분히 바라보던 사마휘는 자리에 쪼그려 앉은 후 말했다.
“좋아. 하지만 조건이 있어.”
“무엇입니까?”
“나와 함께 북방으로 가자. 가르침은 그곳에서부터 시작될 것이다. 그래도 괜찮겠나? 언제 돌아올지도 모르고, 최악의 경우 그곳에서 죽을지도 모르지. 그래도 상관없다면 받아주마.”
“…..”
“네 안에 있는 한을 없애기 위해서는 많은 이들을 만나고 많은 이들을 봐야 해. 그저 수경원이라는 골방에 틀어박혀서 바라보는 세상만으로는 할 수 없어.”
그의 말에 조운은 망설임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부터 사부님으로 모시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사부님.”
============================ 작품 후기 ============================
안녕하세요! 레드에이어입니다!
조운 등장! 조운도 수경원의 제자가 되었군요. 퇴원은 언제할지 모르겠지만 ㅋㅋㅋ
드디어 외전이 끝났습니다.
내일부터는 본편이네요.
감기기운때문에 정신이 없네요 와 이거 진짜 이러다가 쓰러지겠ㅋㅋㅋ
내일은 바로 병원부터 가야겠습니다.
그런고로 오늘은 대댓글이 없네요ㅠㅠ
내일 뵙겠습니다요… 빠잉!